잘 늙어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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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어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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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엡스틴 파일” 속에서 대표적인 ‘자본주의 비판자’인 노암 촘스키 교수와 대표적인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의 친근감을 나타내는 서신 왕래나, 엡스틴 범죄 행위의 여성 피해자들의 항의를 희화화하는 촘스키의 편지 등을 봤을 때에는, 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꼭 촘스키만이 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명망가”의 위치에 오른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정도의 추함을 나타났을 것이라고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이 그 자리를 바꾼다기보다는 자리는 인간을 바꾸는 법이죠. 이건 만고의 철칙이고, 그렇지 않은 군자들은 정말 드물어도 아주 드물죠. 촘스키가 그런 예외적인 사례가 되지 않은 것은 개인적 유감일 수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 정도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주위를 모방하는, 그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일부 한국문화 본질주의자들이 ‘눈치’란 오로지 한국문화만의 특징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서구, 미국, 러시아 등 여러 사회들을 안에서부터 관찰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동서 만인들이 대체로 ‘눈치’를 보고 ‘공기’를 읽습니다. 그들이 속한 사회의 ‘공기’ 말씀입니다. 명문대 교수이자 유명 작가로서 고소득자인 촘스키는, 주로 백인 남성인 고소득 전문가 사회에 속해 있었고 그 사회는 일면으로 엡스틴이 대변했던 금융가의 부호, 즉 지배층과도 닿아 있습니다. 


그 사회에 속하게 되면 그 사회의 각종 불문율에 알게 모르게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문율이란 사실 고학력, 고소득 중년 남성 위주의 강남의 “고급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연”들에게 나름 충성을 보여 잘 챙길 줄 알아야 하고, 특히 본인에게 도움되는 “인연”에게 잘해줄 줄 알아야 하고, 특권층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경우 당연히 (?) 전자를 사석에서라도 두둔해야 합니다. 촘스키와 엡스틴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보면 이 불문율들이 다 지켜진 것입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고 (촘스키는 이름을 빌려주고 추천해주고, 엡스틴은 조언과 금전 등으로 돕고), 서로에게 나름 충성하고, “바깥쪽” 사람 (여성 피해자)에 대해 특권층 남성 특유의 “연대 정신” (?)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리고 촘스키의 사상은...한국에서도 강남 좌파와 강남 우파가 필요할 때에 서로 연대 (?)하는 것을 못보셨습니까? “사상”이 아니라 “계급”과 “자리”의 문제고, 특정 개인만의 문제도 절대 아닙니다. 


슬픈 아이러니지만, 계급 타파를 그 구호로 내건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 스스로의 계급이 바뀌는 그 순간 인간적으로도 완전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스탈린이나 모택동을 생각해보시죠. 둘 다 낭만적인 시까지 써가면서 혁명에 흠뿍 빠진, 참 매력적인 투사들이었습니다. 1895년의 이 시를 한 번 음미해보시죠:


“끊임없이, 예전과 다름없이 항해하라,

구름에 가려진 대지 위로,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너의 광채로

지금 가득한 안개를 몰아내라.

[…]

카즈베크 산에게 자장가를 불러다오,

그 빙하들이 높은 곳에서 너를 향해 뻗어 있으니.”


낭만적이기 끝이 없는 이런 시를 쓴 사람은, 42년 후에 대숙청을 일으키고 고려민족 전체를 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옮겼다는 사실은 믿어지십니까?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지만, 정확히 같은 사람이며 단지 그 “계급”은 “지배층의 정점”으로 승급된 것일 뿐입니다. 일단 계급이 확연히 바뀌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마도 젊은 날의 반전 투사이었던 촘스키 역시, 늙어서 미국 최승류층의 “마당발 포주”와 친구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데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는 그 사이에는, 젊었을 때의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대다수에게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다리를 밟아가고 “위”로 올라가면서 늙어가는 사람은 이런 유의 추함을 피할 길이라고는 있을까요? 절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같은 진보계라 해도 실질적 투쟁의 현장에 있는 사람, “윗쪽”을 향하지 않고 응시하지 않는 사람, “성공의 사다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노년을 부유한 범죄자들과 같이 보낼 일도 없을 것입니다. 


또 타락이 얼마나 쉬운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 아마도 이런 일을 의식적으로 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 쉽지 않지만 말입니다. 끝까지 인간답게 산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죠.


* 출처: 네이버 블로그 | Vladimir Tikhonov (박노자)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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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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