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편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겨울 편지

0 개 1,636 수필기행

■ 반 숙자 


방금 우체부가 다녀 갔다. 요즘 부쩍 늘어난 우편물에 우체부는 영문 모를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오늘로서 편지는 65통을 채웠다. 9월, 10월 두 달 사이에 날아든 독자들의 편지다. 연예인도 아니요 유명인사도 아닌 평범한 촌부요 수필가인 내게 이렇게 많은 편지가 오다니 우체부의 의아스러움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9월호 S지에 실린 원고지 8매의 짧은 글이 몰고 온 거센 바람은 얼음 속에서 피어나는 갯벌의 수선화를 내 생활에 피워 주고 있다. 내가 살아 온 이 만큼의 여정에서 이처럼 훈훈하기도 처음이요 부끄럽기 또한 처음이다.


과실 치사죄로 4년을 복역하고 나온 젊은이가 세상의 냉대에 좌절하며 요즈음은 아이들 장난돌에 맞아 바르르 떨며 죽어가는 개구리를 보고도 마음 아파 울어 버린다는 안성의 S군, 나는 S군의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참회의 눈물로 씻긴 맑은 영혼임을 짚어 낸다.


여행길에서 글을 읽고 책장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흐느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다는 K대학의 김군. 누구에게인지 꼭 한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쓰리라고 2년 동안을 수첩 속에 넣고 다니던 우표로 여관방에서 편지를 쓴다는 멀리 제주도의 고경화씨, 그는 40원짜리 우표 두 장을 한꺼번에 붙였다. 또한 35년 동안을 방에만 누워 고독과 싸운다는 경주의 김경화양. 아름다운 영혼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는 푸른 군복의 이화식 소위님. 당신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신념에 찬 격려를 보내주신 반도호텔 조형건 대표님, 용기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고 책을 보내주신 설우사 전호윤 사장님.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편지들을 사과가 곱게 익는 가을 과수원에서 울며 웃으며 때로는 가슴 치며 읽었다. 들풀처럼 사는 내게 이렇듯 큰 은총이 넘치다니, 너무나 감사해서 울고 지면을 통해 뼈시리게 전달되는 그들의 고통, 외로움, 절망을 울었다.


요즘에는 멀리 태평양을 건너 날아오는 해외 동포들의 편지에 다시 한번 콧등 아리는 사랑을 느낀다. 깊어 가는 가을밤 잎 지는 창가에서 이슥토록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두 영혼이 마주하는 답장을 쓰노라면 비로소 나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나는 편지들을 통하여 놀라움이 컸다. 아침마다 신문 삼면을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도 많지만 세상에는 고통에 짓눌려 신음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또한 풍요의 물질 속에서 어찌하여 마음을 앓고 사는 이들이 이렇게 많을까 하는 의아심도 들었다. 현대처럼 시계 초침에 매달려 전화 한 통화면 용건이 해결되는 편안한 세상에 살면서 휴지처럼 흩어버릴 보잘 것 없는 글에 감동과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는 것을 새로운 발견이요, 신비한 개안 이었다.


사람들은 편지를 좋아 한다. 일년 내내 편지 한 장 쓰기를 힘겨워하는 사람도 자기 앞에 날아온 편지는 반가와 한다. 가장 싼값으로 가장 값진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란 매체는 그래서 우리 서민의 발이요 눈이요 가슴인 것.


나는 더욱 편지를 좋아 한다. 내게로 오는 편지에는 소인이 없는 편지도 많다. 건들마가 서걱서걱 수수 이파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가을이 오는 계절의 편지도 있고, 노오란 해바라기를 보면 불행한 천재 빈센트 반 고호의‘슬픔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되는 거야. 이제 죽고 싶다’고 한 마지막 말이 귓전으로 스며드는 색채의 편지가 있다.


엄정행씨, 그분의 맑고 깊은 노래속에 직통 전화로 걸려오는 내면의 떨림은 속진이 여과되는 정화수. 어찌 이뿐이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열연하는 루돌프 누에예보와 마코트폰데인, 두사람의 발레리나가 온몸으로 퍼내는 강렬한 사랑의 밀어는 황홀한 한 편의 생동하는 편지가 아닌가.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편지를 쓴다. 병상에 누운 친구에게,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의 시간을 내서 엽서를 띄운다. 그것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연탄을 사들이는 심정과 흡사 한 것. 내 곁에 방풍림을 심어두는 어한의 몸짓.


추위가 심할수록 사람들은 문을 닫아 걸고 들어 앉는다. 냉랭한 처마머리 어디 한군데 발 붙일 곳 없는 현대인의 냉기. 물리적인 추위는 문을 닫아야 보온이 되지만 끝없는 마음의 추위는 마음 문을 열어야 녹일 수 있는 것. 우리들의 삶에 있어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 있을 때 창문 하나만이라도 열어 보면 그대는 알리라.


작은 창문을 통하여 얼마나 따뜻한 인간애의 햇살이 비춰 오는지를, 그것은 한가닥 남은 희망이기도 하고 위안이기도 한 사랑의 메시지.


우리는 이렇게 추위를 녹여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6.25를 치른 겨울, 춥고 배고픈 교실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우리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손비빔을 했다. 손등끼리, 손바닥 끼리 그렇게 한참을 비비고 나면 몽당연필을 쥘 수 없이 곱았던 손에 온기가 살아 났다. 그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비빔이다. 미움과 사랑끼리, 있음과 없음끼리, 마음과 마음끼리 서로 대고 비벼가다 보면 거기 모처럼의 정(情) 이 생기고 애착이 생겨난다. 그러자면 빗장을 열고 마주 서야 한다.


올 가을 내내 내게 수없이 날아오는 독자들의 편지는 이제 문 여는 소리, 나는 반겨 듣고 달려나가 찬 손이나마 뜨겁게 마주 잡아야 한다. 내 무슨 비범한 재능이 있어 불후의 명작을 남기겠는가. 이렇듯 겨울을 사는 이웃들에게 한줄기 따스한 햇살로 부서져 내려 그들의 추위를 녹일 수 있다면 내 문예에의 보람은 성취되는 것. 그러고 보면 예술이란 인간에게 보내지는 가장 진실되고 영원한 구원의 메시지가 아닐지...


편지는 가슴과 가슴을 잇는 사랑의 징검다리, 그리하여 나는 외로울 때는 음악을, 마음이 추워질 때는 편지를 쓰리라. 

 

* 출처: 한국수필 82, 겨울호


02df3dea709621506feba07078fe9f94_1636576690_0496.png
 
■ 반 숙자 
​*약력 
충북 음성에서 태어남, 청주사범 졸업,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충북음성군내 초등교사 17년 역임, 과수원 경영
*문단 활동
주요경력: [한국수필] 수필천료(81), [현대문학] 수필천료(86), 수필문우회 회원, 가톨릭문우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음성문인협회 회장역임, 음성예총 회장역임
저서 및 대표작품: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교음사 1986년,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 외길사 1990년, <가슴으로 오는 소리> 고려원 1995년,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 천년 숲, 사과나무, 이쁘지도 않은 것이
*수상경력
현대수필문학상(91), 한국자유문학상 신인상(92), 충북문학상 수상, 음성군민대상 수상, 충북도민대상(문학부분)수상, 동표문학상(2004.3.20), 월간문학 제1회 동리상수상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228 | 20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대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노화는 나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과정…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78 | 1일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85 | 4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치대,약대, 검안대 등)를 하는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마주하며 번아웃 혹은 중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93 | 7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험 총평과 출제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GAMSAT (Graduate Medical School Admissi…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41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 속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 수업이나 실험 중심 프…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24 | 2026.04.29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속 생물,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존재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용’을 상상해본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며, 때로는 신의 사…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9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논밭을 일구어 심고 가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먹거리가 5곡이었는데 거기다 온갖…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60 | 2026.04.29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피고 측에 송달하고, 피고 측에서도 답변서를 제출하고, 사건 관리 회의 (…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70 | 2026.04.29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우레와(Urewera)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오리의 투호에나(Tuh…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203 | 2026.04.29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스테이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10월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진행된 ‘2024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204 | 2026.04.29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온 세상이 젖어가…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50 | 2026.04.2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이느닷없이 나를 흔들자꿋꿋이 버티던 나도마음 흔들려아내가 모르던현금으로 꼭꼭 간직해두었던내 비자금을 실토하고난 이제 필요없게 …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8 | 2026.04.29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방’이었다.”프롤로그 -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폭발 직후의 지옥 같은 밤.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수증…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91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일반적으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주에게 피고용인의 범죄 신고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고…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504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이번 컬럼에…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4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떤 날은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막무가내 올라간다.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상상봉에 다다르면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53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체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파트너쉽 비자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지’라는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않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도박 문제…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모든 코스는 다르다.어떤 곳은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또 어떤 곳은 벙커와 해저드가 도처에 있어 한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8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8세 어르신도 걷는다. 괴산군(인구 3만7000명)은 65세 노인 비율이 4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비 예산은…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33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최근 들어 GAMSAT시험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GAMSAT은 주로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전원 (치학전문대…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5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76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ed/Health Sci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보았다. 오타고대 HSFY같은 경우 한인들 기준에서 오클랜드대 Biomed/Hea…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76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은 비극의 시작이요 삶을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92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계속 본다고 믿는가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우리는 이미 지구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우주를 관측하고, 인간의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