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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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한 선생님

2 4,522 왕하지


우리 뒷집 말 목장 풀밭에는 수꿩의 울음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꿩 요리인데 가슴살은 날 것으로 먹고 샤브샤브요리에다 꿩 만두, 거기에 소주 한잔 곁들이면 캬아~, 푸케코, NZ비둘기, 검정새 이런 새들 고기 맛은 또 얼마나 맛있겠는가,

이렇게 다 늙어 먹을 것만 밝히는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어도 잘 그리는데 젊었을 적부터 그림을 그렸다면 도대체 얼마나 잘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모든 일은 참 다행인 것 같다. 너무 잘해도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중학교 때, 나는 수업이 끝나면 쭈볏 쭈볏 창문너머로 데생실을 바라보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었다. 데생실은 돈을 낸 미술부 아이들만이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중학교 처음으로 야심찬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며 참가하고 싶은 학생들은 액자 값을 내라고 하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미술 전시장을 가던 날 나는 깜짝 놀랐다. 내 그림이 몇 점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모두 다른 아이 이름이 적혀있었다. 액자 값을 낸 아이들 이름인 것이다. 나는 얼굴이 후끈거려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쪼르르 화장실에 달려가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관람객들에게 설명을 하며 씨~익 웃고 있는 미술선생님의 얼굴에는 비굴한 냄새가 흘러넘쳤다. 나는 그 후 미술과 담을 쌓았다.

30년이 지난 후 내가 디자인회사를 하고 있을 때 큰조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조카는 그림을 잘 그렸는데 돈이 많이 드는 미술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 끝에 마침 건물도 한층 비어있어 미술학원을 설립하였다. 조카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곧 미술 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을 간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시킬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생각에서였다.

조카는 학원에 올 때마다 내방에 찾아와 인사를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미술학원은 우리 회사 인지도로 인하여 1년도 안되어 자체 운영이 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조카는 내 방에 오지 않았고 건물입구에서 만나면 인사만 한 후 슬그머니 피하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며칠 후 조카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작은아빠, 정말 제가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모두 말씀드리려고 찾아 왔어요.”

조카이야기는 이러했다. 미술선생이 다른 곳에 이미 학원을 차렸고 학생들도 다 가기로 했고 끝으로 조카에게도 선생의 꼬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선생이 아빠를 만났고 아빠도 미술선생을 따라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형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씨~익 웃으며 말하는 형님말씀이 더 걸작이었다.

“우리 아들이 미술을 잘해서 그 선생님도 학원비 안 받는댔어, 그리고 명문대 합격 보장한댔어. 동생이 우리아들 명문대 합격 보장할 수 있어?”

갑자기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다른 비굴한 냄새가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형님 때문에 더 화가 났기 때문일까, 나는 당장 미술선생을 고소하라고 지시하였다. 몇 차례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다니던 선생은 야윈 얼굴로 부모와 함께 찾아와 잘못했다고 빌었다. 다시는 인생을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나는 고소를 취하해 주었다.

“자네가 미술학원을 하고 싶으면 떳떳하게 말하고 하면 되는 거야, 자네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따라갈 수도 있는 거고, 비굴한 방법으로 우리학생들 다 데려갔는데 걔들 공부 끝나면 학원 문 닫을 건가? 앞을 보고 바르게 노력을 해야 냄새가 안나니 명심하게나,”

그 선생은 몇 달 후에 학원 문을 닫고 말았다.

새로 온 선생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조카는 명문대학에 합격하였다. 나는 조카를 불러 입학금
과 첫 등록금을 내주었고 조카는 입이 함박 만해졌다.

“언제든 아르바이트 하려면 작은아빠에게 오너라.”

조카나이 이제 30대 중반이다. 얼마 전 조카와 통화를 했는데 형님과는 달리 많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 열심히 그리고 비굴하지 않게 살아라... 내가 너희 아빠를 도와준 건 후회스러울 때가 많지만 너를 조금 도와준 건 후회스럽지 않게 말이다.
쌔엠
나쁜걸 좋게 생각하기는 힘들지요.ㅎ
특별히 지나간 건 돌이키기가 불가능하지만,
그것 마져도 희망을 걸 수 있다면..^^
하지님 그림 처럼 세상이 넓게 보일거란 생각입니다.

왕하지
쌔엠님 날씨가 화창해 지는가 했더니
여전히 구름낀 날씨입니다.
날씨때문에 채소가 자라다가
그만 늙어버렸어요. ㅎㅎㅎ
올 여름 날씨는 영 좋게 생각이 안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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