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피아노

0 개 1,473 수필기행

카페 음악 방에 영화음악 ‘피아노’가 올랐다. 영화의 여러 장면이 떠올라 한나절을 음악에 묻혀 지냈다. 그 영화를 본 것은 1993년, 촬영지가 ‘뉴질랜드’라는 광고를 보고 서둘러 개봉관을 찾았었다. 그 곳으로 이주 신청을 해놓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때였다. 배경이 된 피하비치(PIHA BEACH)의 아름다움과 바다에 가라앉던 피아노의 강렬한 영상이 눈에 선하다.


이삿짐을 풀고 맨 먼저 찾은 곳이 ‘피하’였다. 바닷새가 군락을 지어 알을 품는 바위언덕이 시골마을처럼 따뜻하던 그 곳은 영화촬영지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바다였다. 파도 타는 젊은이와 낚시꾼들을 보내고 고요하게 노을을 맞는 저물녘의 바다, 나는 그런 피하가 좋았다. 그러나 눈 닿는 곳마다 그림엽서라는 자연 속에 살면서도 늘 무언가 허전했다. 사람이 그리웠다. 사람 속에서 살고 싶었지만, 사람 속으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눈길 한번 주는 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막막할 때면 그 곳으로 갔다. 해거름의 피하에 가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곤 했다. 쉼 없이 뒤척이다가 제풀에 잦아드는 파도처럼.


두 아이가 학교에 익숙해지자 남편은 주류도매 가게를 열었다. 점원과 재고 상품을 함께 인수한 가게는 손님이 많았다. 외로울 겨를이 없었다. 함께 일하게 된 점원은 중년의 백인여자와 원주민 청년이었다. 백인 아줌마 ‘로빈’은 깍듯하면서도 틈만 보이면 주인의 기를 꺾으려 들며 잘난 체했다. 사람 속에 살기를 바랐지만, 사람 때문에 주눅 든 나를 북돋우어 입을 열게 한 이가 마오리 청년 ‘필’이었다. 그는 영화 속의 남자 ‘베인스’ 처럼 문신을 했고 말이 없었다. 벙어리가 된 주인을 위해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얘기하며 묵묵히 일하던 필. 그로 하여 나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서툴게나마 말을 시작하고 차츰 낯선 생활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주급을 받는 금요일은 일손이 부족했다. 길게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서는 파트타임 점원을 따로 사야 했다. 그날 누구보다 분주한 사람은 점원들을 위해 바비큐를 준비하는 안주인이었다. 소금 후추 외에 고기양념이 따로 없는 곳에서 간장에 버무려 맛을 낸 양념갈비는 시장기 도는 이들을 자극하는 일품요리였다. 특급요리사라 엄지를 치켜 주는 점원과 손님들의 주말파티를 위해 나는 간장을 말통으로 사다 놓고 갈비를 재워댔고 그렇게 조금씩 이국생활에 젖어들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식사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점원 구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주말 바비큐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리라.


토요일은 행복한 날이었다. 주말학교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토요일마다 문을 여는 한국학교에서는 교민이나 주재원 자녀들에게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그것은 낯선 문화에 부대끼고 풀 죽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었다.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 있던 시절은 우리말이 어눌한 아이들을 위해 꼼꼼하게 교안을 작성하고 가르치던 그때였을 게다. 자녀들이 공부하는 동안 뜰에서 떡볶이와 잡채를 만들고 호떡을 굽는 부모들도 잔칫날처럼 환한 얼굴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힘을 키워주던 주말학교. 일주일에 단 하루였지만, 타국 속의 모국이 되어 주었던 그 곳에서 우리는 마음껏 행복했다.


새해가 되면 여러 나라 민속놀이가 전파를 탄다 .‘마오리춤’을 방영한다는 예고가 있으면, 나는 서둘러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우리와 피부색이 같고 비슷한 문화를 가진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웃통을 훌렁 벗어젖히고 혀를 쑤욱 내어 빼물고 추는 그들의 춤을 보고 있으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뭔가 도움 주려 애쓰던 필이 보고 싶어진다. 사람 수보다 많다는 순한 양떼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하늘가에 뜨던 무지개도 생각난다. 잊혀진 듯해도 지나간 날들은 무의식의 갈피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스며있는 것 같다. 낯선 세상에 살면서 익힌 낯선 것에 대한 자유로움까지도.


음악을 들으며 다시 ‘피하비치’를 거닌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뉴질랜드를 떠나야 했던 영화 속 여인 ‘에이다’. 그녀처럼 나도 그곳에서 떠나왔다. 영화에 후속편이 있다면, 그녀도 나처럼 지난날을 잊지 못하고 그 시간 속을 서성일까.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는 필름을 명화라고 한다면, 낯선 문화에 부대끼면서 살아낸 내 삶의 한때도 한 편의 명화가 되리라. 그리운 시절이다.


■ 최 현숙 

1335d01041b424f009869e7c2e846d81_1613003616_1123.jpg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202 | 21시간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맥(不整脈)이 있어 심전도(心電圖)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고령자는 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67 | 8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1 | 9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 | 2025.12.10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2 | 2025.12.10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42 | 2025.12.10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1 | 2025.12.10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40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5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5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70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33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39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34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09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5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47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4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18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7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5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3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60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3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28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