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0 개 1,991 명사칼럼


법(法)의 옛글자는 灋(법)이다. 이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水(수)와 상상의 동물인 廌(태), 그리고 물러남을 의미하는 去(거)가 결합한 것이다. 해태 또는 해치라고도 하는 廌는 옛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뿔달린 짐승으로 기록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法은 본래의 형태에서 廌가 빠져 있는 셈인데, 필자에게는 마치 法이 상상 속의 짐승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술적 관점을 벗어나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읽힌다.

실상 법의 근대성은 개인이 자신의 판단하에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핵심으로 한다. 칸트는 실천이성 개념을 통해 자기입법의 의지로서 도덕법칙과 보편 입법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개인의 철학적 토대를 정립하였다. 여기에 사회계약이라는 이론을 통해 근대적 개인의 생명, 신체, 자유, 재산이 보호된다. 특히 부르주아적 시민의 등장으로 개인의 재산권이 강조됨에 따라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는 민사 분쟁을 넘어 국가의 형벌을 통해 처벌되는 범죄가 되었다. 절도(竊盜)는 소유권자의 동의 없는 재산의 불법적 이전이고, 여기에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면 강도(强盜)가, 기망 내지 위계를 수단으로 하면 사기(詐欺)가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이,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촘촘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성(性)은 국가나 사회의 것, 이른바 풍속(風俗)으로 다루어지면서 자기결정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성이 그렇게 취급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성만이 국가나 사회의 것으로 취급되었을 뿐, 남성의 성은 철저하게 자기결정의 영역으로 강조되었고, 심지어 가부장의 권리로서 엄격하게 보호되었다. 

우리 법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입법을 통해 형법 제32장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6년부터다. 이때부터 형법은 여성(부녀)의 ‘정조’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은 빠르게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성폭력 범죄의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등하게 보호받게 되었다. 친고죄 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피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타당한 변화였다.  

올해부터는 강간 등의 예비ㆍ음모를 처벌하는 조문이 신설되었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이 13세에서 16세로 상향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될 여지가 마련되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해석을 통해서도 지속되었다. 부부 강간을 처벌함으로써 부부 사이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함을 확인했고, ‘성인지 감수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상 여성인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 수용될 여지가 확보되었다. 이른바 ‘기습추행’ 처럼 폭행 자체가 추행인 경우 폭행의 정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임을 요하지 않고 그 의사에 반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대소강약은 불문’ 함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에 더 나아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지 않더라도 ‘동의가 없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간음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동의없이 이루어지는 재산 침해를 절도나 횡령으로 구성함으로써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처럼, 동의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온전히’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발의되는 비동의 간음죄의 경우, 법정형 등이 기존 강간 및 강제추행과 정합적이지 않고, 법문언으로서 ‘동의’ 개념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을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산물로 보아온 그동안의 문화 또한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것이 아닌 한, 자기의 선택과 결정은 온전하게 존중받고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주체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언젠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이기에, 이 노력은 미완의 프로젝트로서 계속되어야 한다.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출처 : 한국일보 <형형색색>

■ 김대근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 경제범죄 연구실장

553c429a7b8aff1d211c5dc35aa7101b_1598418531_3229.jpg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210 | 1일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맥(不整脈)이 있어 심전도(心電圖)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고령자는 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69 | 9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4 | 10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2 | 2025.12.10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4 | 2025.12.10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44 | 2025.12.10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2 | 2025.12.10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42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7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7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73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34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43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35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11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8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49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6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19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9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7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4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62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4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31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