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미나리 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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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미나리 강회

1 2,815 오소영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순간 버릇처럼 어김없이 떠 오르는 어느 분 얼굴이 있다. ‘테레사’ 형님!. 그 댁의 ‘토마토 하우스’ 밑에 만들어진 미나리 깡에는 토마토가 먹고 흘린 영양소로 맘껏 자란 미나리가 언제나 풍성하게 너울거렸다. 우리가 갈 때마다 긴 장화(長靴)를 신고 낫을 휘두르며 절벅절벅 들어가던 그 분의 남자같이 기운찬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머리속에 깊이 각인 되어있다. 푸짐한 미나리 보따리에 더러 토마토도 찔러 넣어주고 밭에 정성드려 심은 푸성귀도 뜯어다 얹어주던 모습이 딸을 챙기는 친정 어머니처럼 정스러워 그 고마움을 마냥 세월이 지나가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고령 어르신으로 예전같지 않아 자주 만날 기회조차 쉽지가 않다. 수 차례 건강상의 어려운 고비를 물리치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그 분답다고 뜨거운 마음으로 존경을 하게 된다. 아마도 나눈 사랑이 너무 커서 누군가가 베푸는 기도속의 은혜로움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다시 씩씩한 옛 모습을 뵈어야 할텐데....

미끈하게 잘 자란 미나리를 그냥 데쳐서 나물로만 먹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어 곁 이파리를 젖혀내고 원 줄기만을 추려 김치를 담을까 하다가 그대로 사알짝 파아랗게 익혀냈다. 짙은 향기. 햇냄새에 갑자기 무디어진 내 미각 신경에 생기가 돌고 군침이 넘어 간다. (그래 그게 있었지 강회!) 모처럼 신경써서 내 먹거리를 준비 한다는 새삼스러움이 너무도 신통하고 괜찮았다. 탱탱하게 고무줄처럼 탄력이 생긴 줄기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돌돌 말아 접시에 돌려 담으며 먼 옛날 어떤 그림 속으로 추억여행을 달려간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삼월삼짇’ 날. 그 날은 친정 어머니의 생일이기도 해서 제비가 우리 집에 반가운 첫 손님인 셈이다. 봄을 안고 돌아 온 제비. 새 봄의 전령처럼 새파아란 ‘미나리 강회’가 그 생일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었다. 겨우내 묵은김치에 지친 입맛을 산뜻하게 바꿔주는 계절의 별미. 그 날을 시작으로 봄을 타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나물을 다듬어야 했던 어머니의 손톱밑이 늘 새까맣던게 생각난다. 이모. 숙모님. 언니까지 여자들이 부엌 안에 가득해서 나 같은 아이는 들어서지도 못하게 했건만 미나리를 돌돌 말아 만들어 내는게 너무도 재밋어 보여 비집고 들어가 어른들 흉내를 냈는데 그 때부터 그 일은 내게 맡겨진 단골이 되었다. 어린것이 제법 잘 따라 한다는 칭찬에 그만 발이 묶였던 것이다. 무늬 없이 하얗고 큰 접시에 파아란 미나리를 가즈런히 돌려담고 그 가운데 매콤새콤하게 만든 빨강 초고추장을 올리면 그 색스러움만 가지고도 밥상의 분위기가 요리상으로 훌륭했었다.
 
시집가서 식성 까다로운 남편에게 제일 먼저 인정받은 음식도 아마 미나리 강회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 식탁에 올린 그 것을 하나 집어먹더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좋아하는 그를 위해 맛깔스럽게 볶은 살코기 한 점 겯드린 특제로까지 만드느라 봄마다 내 손톱밑은 늘 칙칙하니 고운 모습을 잃고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나물 자체로만 즐기셨는데 육식체질인 그는 달랐다.   

미나리를 다듬는 날은 옆 집 ‘린티’(강아지 이름)네 아줌마가 신나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 집 앞을 오며 가며 군것질 만난 아이처럼 미나리를 집어다가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다닌다. 고혈압 환자에게 미나리가 약이라며 급할 때 미나리 찾는 것도 자주 보아왔기에 이해가 된다. 음식솜씨 좋은 개성 아줌마. “나도 오늘저녁 메뉴는 강회야” 활짝 웃으며 미나리 다발을 흔들어 보일 때면 늘 소녀같다고 생각했었다. 나와 띠 동갑이던 그 분은 아직도 살아계신지? 미나리 김치도 잘 담아서 나눠 주시더니... 
 
생각은 먼 옛날을 헤메는데 손 놀림을 하는 동안 내 접시가 파아랗게 고운 색깔로 덮히기 시작한다. 매콤 새콤 달콤 혀끝에 맛을 보며 초 고추장을 만들어 꽃심처럼 가운데 놓아본다. 역시 보기만으로도 산뜻하다. 돌이켜보니 강회 좋아하던 남편을 위해 정성으로 해 내던 그 이후로는 처음 공드려 만들어 본 나를 위한 성찬인 셈이다. 그런데 그냥 먹기엔 아깝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식탁 앞에서 망서린다. 여자들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 혼자서의 식탁이 영 낯설어 졌기 때문이다. 음식같이 먹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씩은 칭찬도 들으면 그 또한 얼마나 멋진 보람인가. 스스로를 환대하지 못하면서 살아 온 사실이 바로 그런 이유라는게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쩌랴.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으니 물먹어 살진 미나리가 툭 터지며 찐한 향기가 입안에 번진다. 맨 밑둥에서 씹히는 독한 향이 조금은 쌉싸름 하기까지 하다. 개운 해진 입맛따라 기분이 좋아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행복감으로 짜릿 해 진다.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모처럼의 이 감정. 참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느껴지는 색다른 감정에 스스로 놀랜다. 나이 먹으니 속물로 변해 가는 것 중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 혼자 웃는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사람은 이렇게 변덕쟁이. 수시로 변하며 사는 것인지... 뱃속에 파란물이 들도록 푸성귀로만 채우고서도 그득한 만복감을 느끼기도 참 오랫만이다.

이제부터 나만의 성찬(?)을 준비하는데 좀 더 부지런해 져야겠다. 그래서 자주 행복 해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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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런 글의 향기가 가슴 속으로 파고 듭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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