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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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0 개 2,025 코리아타임즈
학교에 첫 등교하는 날, 아들을 교실에 들여보내고도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교실밖에서 서성거렸다. 영어를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가 저 안에서 어떻게 잘 견딜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면서 연신 창문을 통해 교실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외국인 젊은 여자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얼른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내가 뉴질랜드에 온지 몇 달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을 벌써 눈치챈 터라 내심 반갑고 또 의아했다.

근데,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학교 교장이라는 거였다. 순간 깜짝 놀랐다. 30대 중반밖에 안 되는 젊은 여자인데......!!! 이번 4학기에 새로 교장직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나는 얼른 얘기를 시작했다........우리 아들역시 이번 4학기에 새로 이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온지 몇 달 안 된다, 영어를 아주 못한다, 수업을 어떻게 따라갈지 걱정이다, 학교에서 어떤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하교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교장이 정문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마중나온 부모들을 보며 잘 가라고 인사도 하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며칠후에는 후문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정문과 후문을 교대로 서 있는 모양이었다. 교문앞에 서 있던 학부모와는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는 모양이었다.

입학한지 한달쯤 지난후에 학교체육대회가 근처 공원에서 있었다. 아이들이 종일 잔디위에서 뛰고 뒹굴고 웃고 떠들던 날, 교장은 종이박스에 머핀을 담아들고 공원 이곳저곳에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하나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또 몇 주후에 학교에서 줄넘기의 날이 있었다. 운동장 한 편에, 전교생이 모여 둥그렇게 앉아 있고, 학부모들은 그 뒤에 빙 둘러서서 아이들이 준비한 줄넘기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학부모들 틈에 끼여 구경하고 있었는데, 교장이 내게 다가오더니, 요즘 아들은 학교 잘 다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같이 서서 한참을 얘기했다. 내심, 이 아줌마가 그냥 동네 친구가 아니고 우리 아들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지....하는 생각을 언뜻 하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완전 수다떨기에 가까웠다.

왜 그렇게 젊은데도 교장이냐,
교장되는 공부를 따로 했다,
한국은 교장선생님이 연세가 다 있으시다,
그럼 너무 늙은거 아니냐,
남편은 뭐 하냐,
남편도 교장이다,
교장커플이구나,
남편은 한국인이 많은 northshore에서 교장한다, 전교생중 70명이 한국학생이란다, 그래서 편하다고 하더라,
곧 여름방학인데 외국유학생을 위한 방학중 특별 영어수업은 없냐,
TV나 보여줘라, 등등

내 평생 교장선생님과 이렇게 사적이고 부담없는 대화를 오랫동안 나눈 적은 없었다. 이렇게 젊은 여자 교장선생님 역시 본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아들녀석의 담임선생님부터가 아주 높은 산이었다. 쉽게 다가갈 수 없고, 무엇이든 쉽게 말할 수 없고, 항상 뭔가 신경쓰이는 그런 존재였다. 하물며 교장선생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입학식때 ‘말씀’ 들은 기억밖에 없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나는 부모들의 변중에, 서구에는 교육환경이 더 좋기 때문이라는 말은 상투적일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직접 그 환경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유가 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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