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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원시 시대 때부터 함께 음악을 즐기면서 문명사를 개척하며 살아왔다. 들판에서 노동요를 부르며 힘든 일을 견뎌냈고, 전쟁과 재난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하며 살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들은 혼자 보다 함께 노래할 때 더 큰 힘과 위안을 얻었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속에는 본능적으로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합창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독백이라면, 합창은 서로 다른 영혼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대화라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합창을 듣는 활동만 해오다가 나이 80대 중반에 합창단에 소속이 되어 합창을 창조하는 활동에 참여해 보니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새로운 분야에서 삶의 새로운 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는 각기 다른 음색과 음역을 지니고 있다. 어떤 목소리는 맑고 높으며, 어떤 목소리는 깊고 묵직하다.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지만 지휘자의 손끝 아래에서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순간, 인간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를 넘어 감동의 파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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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에는 북오클랜드 한국학교에서 열린 ‘우리 노래 부르기 대회’에 참석해 보았다. 마침, 손녀와 손자가 초등부와 유치 반에 다니고 있는 터라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학교는 학생 모두가 현지 뉴질랜드 정규학교에서 학업을 이수하고 있으나 토요일을 이용해 한국어 수업을 통하여 우리 한민족의 얼을 이어가도록 돕고 있다. 다민족 사회에서 우리 자손들이 현지 사회에 순응하며 코리안 뉴질랜더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도록 하는 특수 과정의 학교라 말할 수 있다. 고국에서 초등 교육을 마친 이민 1세대들의 추억 속엔 매년 온 마을의 축제로 열렸던 학예회를 잊을 수가 없다. 합창, 독창, 민속무용, 악기연주, 연극 등이 펼쳤는데 학생들은 몇 달 전부터 연습을 통해 발표력과 협동심을 함양하고 6.25 전쟁 후의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학창 시절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학예회는 오늘날의 대형 공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순수함과 공동체의 정이 있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웃고 손뼉 치며 웃고 즐기던 마을공동체의 축제였다. 그 추억을 되살리게 해준 이번 한국학교의 우리 노래 부르기 대회였다.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총 18개 반으로 구성된 발표팀들은 각자 개성 있는 춤을 곁들인 합창과 재롱으로 교민 사회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모든 공연 활동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합창은 혼자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예술이다. 자신이 목소리를 지나치게 내세우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므로 때로는 상대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음을 낮춰야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용기 있게 소리를 내어 전체를 받쳐주어야 한다. 그래서 합창은 단순한 음악 활동이 아니라 배려와 경청, 조화의 훈련장이기도 하다. 합창이 생성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면서 인간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우리가 떠나온 한국의 현실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판의 진흙판 싸움은 선거철만 되면 더욱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고, 국력이 세계 6위권에 진입했으며 한민족 공동체가 화합만 이루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낼 수 있는데…….
합창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현대인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으나 정신적으로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풍요 속에 빈곤한 사람들은 늘어나고 독거노인, 혼밥족의 증가, 고독사의 증가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함께 노래하는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숨결을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된다. 음악에는 언어를 초월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합창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민족과 언어, 문화적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노래를 함께 부를 때, 그 화음 속에서는 국경도 편견도 희미해진다. 다문화 사회에서 합창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소중한 다리가 될 수 있다. 작년 오클랜드 타운홀에서 열린 VOCO 합창제에서 14개의 다 민족 합창단이 합류하여 ‘Aotearoa Arirang(뉴질랜드 아리랑)’을 불렀던 일은 이러한 시대정신에도 부합한 커다란 업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합창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름답다. 젊은이에게는 열정을, 중년에게는 삶의 활력을, 어르신에게는 새로운 보람과 기쁨을 안겨준다. 기억력은 조금씩 흐려질지라도 함께 불렀던 노래의 감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된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인류애를 노래했다. ‘합창교향곡’이라 불리는 제9 교향곡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이상은 어쩌면 합창 속에서 가장 먼저 실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합창이 필요하다. 학교마다, 지역사회마다, 세대와 민족을 초월한 시민합창단이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이는 단순한 음악 인구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인간 교육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 메아리치게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합창의 진정한 매력이다. 그것은 음악 이전에 인간다운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따뜻한 울림인 것이다. 목청이야말로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 도구이다. 이 도구를 활용해서 자신의 영혼을 순화하고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