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의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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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나’의 베이비

0 개 208 오소영

어린이는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우리는 흔히 좋은 음식과 건강한 환경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양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꿈’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어린이의 마음과 영혼을 자라게 하는 가장 깊은 자양분이 바로 꿈이다.   


정차했던 버스가 막 떠나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이다. 저만치 앞에서 한 여인이 손을 흔들며 느리게 걸어오고 있다. 바쁜사람 어쩌라고 저리도 여유로우신가?


아이를 돌려안은 때문인지 걷는 모양새가 영 불편했다. 차에 오르는데 유난히 하얗고 예쁜 아이가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안고있는 검은 여인과는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새파란 눈동자에 흰 모자를 눌러쓴 아이의 볼살이 복사꽃처럼 화사하다.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수가 없다.


저토록 깔끔하고 예쁜 아이와 볼품없이 검은 여인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 혹시 혼혈손녀? 아니라면 남의 아이를 봐주는 것이 맞을 성 싶었다.


바로 내 앞자리 경로석에 아이를 내려놓고 자기는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는 곧바로 시선을 밖으로 향했다. 마치 아이와는 무관한듯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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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양볼. 반팔 옷 밑으로 내민 팔과 앙징스러운 손. 그 귀여운 손을 꼭 한번 잡아보고 싶다. 문화가 다른 나라이다보니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 참기로 했다. 


요즘 증손봤다는 친구들이 많아서일까? 욕심없는 나도 그 부문에서 만큼은 샘둥이가 되어가는것 같다. 어린 애들만 보면 자지러진다. 쇼핑 센터에 가면 으례히 아동복 매장이나 신발가게를 둘러본다. 인형이나 입을 성싶은 작은 옷들과 신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저 앙징스런 옷들과 신발을 신은 아기들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넘친다. 내 아이를 낳아 기를때 느끼지 못했던 묘하고 색다른 감정이다. 나이 먹어가며 거스를 수 없는 이치가 그런것인가. 스스로 놀란다.


특별하게 예쁜 아이를 오래두고 보려고 핸폰을 꺼내서 얼른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증손고픔을 그렇게라도 달래보고 싶었다.


역시 다른사람 눈에도 그 예쁜애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았던 중년의 여인이 갑자기 아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아이의 손을 잡아 보려는지 팔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번개처럼 날아온 어떤 시커먼 손이 빠르게 아이를 감쌌다. 그리고 소리질렀다. “마이 베이비... 마이 베이비...”


사나운 매의 눈독을 발견한 어미새의 날렵한 모습이었다. 날개를 펼쳐 새끼를 보호하는 번개같은 그 동작. 아이를 막아서서 사나운 눈초리로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다. 돌발적인 여인의 행동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그녀의 부릅뜬 눈에 살기가 도는 것 같아 무서웠다. 겁먹은 여인은 버스가 정차 하자마자 잽싸게 내렸다.


혼자만의 영혼에 갇혀사는 여인?....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임을 알게 되자. 일시에 조용해졌다. 나도 모르게 후~ 긴 한숨이 나왔다.


몰래 찍은 사진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일진이 나빴으면 나도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 뻔했다.


그렇더라도 이미 불붙은 호기심에 내 시선은 계속 아이에게로 쏠렸다. 여인에게 너무도 어울리지않는 아이와의 관계가 더더욱 궁금했다. 오지랖도 넓지. 뭘 그리도 알고 싶었는지... 그런데 이상했다. 왜 아이가 눈을 깜빡이지 않지? 어라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네. 갑자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뭐야 이건?...)


어리석은 바보는 결국 내 쪽이었다. 실망과 함께 허탈했다. 남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어놓고 나 몰라라 등돌리는 배신을 당한 것 같았다.


반짝이는 복사꽃 빛 피부는 채색이 완벽한 플라스틱 광채였다.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기계가 만들어낸 인형에 감쪽같이 속았다. 인간을 기계로 찍어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사람의 기능을 대신하는 로봇이야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가 오래다. 하지만 형체만의 인간이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역시 뒤쳐진 현실세계에서 사는 늙은이었다. 두살은 실히 되어보이는 실물대의 인형. 나만 속은게 아니어서 조금 위로가 되었다. 만들어낸 누군가에게 경탄을 했다. 그 정도는 속아주어야 상품 가치가 있지..... 문득 나도 갖고 싶다는 치기가 스몰스몰 올라왔다. 어디 매장에가면 살 수 있을까?ㅎㅎ


도대체 그녀의 “마이 베이비”와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분명 대단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어떤 절규같은...   

골드카드가 나오기 전. 시니어  올데이 버스요금이 8불이었다. 버스를 두번타고 하버를 건너서 북쪽까지 그라프트 (graft)센터에 다녔던 때다.


노인도 젊은이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에 그냥 놀고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간식 나르고 설거지 봉사라도 하겠다고 나선 참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는 이미 젊은이들이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멋쩍게 돌아서 나오는데 상냥하게 웃으며 붙잡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회장 M여사다. 부드러운 음성에 키가 훌쩍 큰 그녀는 인상 또한 낯설지 않았다. 친근감이 느껴졌다.


8.90대의 어르신들이 앉아계신 옆에 우리를 앉혔다. 가벼운 시중을 들며 함께 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분들은 당신들보다 젊은 우리를 무척이나 반겼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동양인 코리안을 편하게 대해주었다.


커피 한잔에 케잌을 나눠먹으며 담소로 즐기는 친교의 시간은 정말 멋졌다. 언어 아닌 표정만의 교감으로도 하나되는 분위기가 늘 좋았다.


돌아올 때 식탁위의 꽃 한송이 쓱 뽑아 손에 들려주는 ‘M여사’. 그녀를 어찌하면 닮을수 있을까? 그 자상함에 늘 고국에 있는 언니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에 기름같은 한 여인이 있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그 예쁜 이름 ‘엘리나’였다. 회원 자격도 없으면서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 가곤했다. 그녀의 품에는 손 때로 꼬질꼬질한 작은 인형이 안겨 있다. 혼자서 그것을 쓰다듬으며 노는게 일과였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마이 베이비’라고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녀의 이름이 아예 ‘마이 베이비’ 로 호칭이 바뀌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늘상 굶고 다니는지 음식만 보면 허겁지겁으로 달겨들었다. 상대 해 주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지만 M회장만은 따뜻했다. 늘 손에 먹을걸 쥐어주는 할머니. 마이 베이비를 흔들며 제법 어리광도 부렸다.


처음 친구 C여사와 단둘이서 찾아 갔었다. 어느새 우리 식구가 여섯명으로 늘었다. 우리는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기로 했다. 코리안의 정체성도 알리고 고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었다. 알록달록 꽃밭을 이룬 홀 안이 황홀했다. 현지 노인들이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오클랜드 한 귀퉁이. 코리안 여인들의 조용한 외교라고 생각되어 너무 기뻤다. 반응이 이토록 뜨거울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찬사를 보내오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그들은 무대로 불러올려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우리들은 목소리를 모아 ‘아리랑’을, 때로는 ‘고향의 봄’을 열창했다.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렸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보람의 시간들이었다.


거기에 힘입어 ‘한복쇼’를 해보기로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지고 있는 한복들을 다 싸가지고 나가니 모두 열세 벌이었다.


옷보따리를 펼쳐놓자마자 서로 다투어 입어 보겠다고 줄을 섰다. 호기심으로 들뜬 할머니들을 보며 신이났다. 쭈굴쭈굴한 속살에 까실한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얌전하게 따라주는 노인들 표정이 진지하다. 어깨가 벌어진 체형에 우리들 보기엔 어색했지만 한결같이 좋아했다. 어느분은 흥분해서 넓은 홀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양 팔을 크게 벌리고 맴을 도는 모습은 날개를 펼친 잠자리같았다. 어디서 보았는지 한국춤 흉내를 내는 분. 엄지를 세우며 코리안을 외쳐주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윙크를 날리는데 그 애교가 귀엽다. 감동으로 홀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유난히 키가 큰 ‘마가렛’ 회장의 분홍 치마는 발등 위에서 끝이 났다. 키를 줄여서 발등을 덮으려는 그녀의 기발한 몸짓에 한바탕 폭소가 터져나왔다.


바로 그 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불쑥 불청객이 다가왔다. 마이 베이비 ‘엘리나’가 옷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서 있었다.


불결한 손으로 옷을 만질까봐 불안했다. 하지만 어느새 집어들었는지 이미 치맛자락 하나가 낚시줄에 걸린듯 그녀의 손에 잡혀 있었다.


끌어간 치마자락으로 베이비를 감싸고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아기같이 놀고 있는 어른을 보는게 너무 징그러웠다. 누군가가 해결사 M회장을 불러왔다.


묘하게 눈을 반짝이며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회장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입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인지력이 부족해도 여자라는건 아는 모양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 피부는 탄력으로 탱탱했다. 땟자국에 가려져 그렇지 인물도 괜찮은 편이었다.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까웠다. 겉 옷을 벗기니 뽀얗게 속살이 드러났다. 젊은 여인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덩이같은게 가슴을 누르는 무거운 마음은 연민일 것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 . .


그녀가 끈질기게 들고있는 남색 치마에 구색을 맞춰 노란색 저고리를 입혔다. 품을 여며 옷고름을 얌전하게 매어주니 옷이 몸에 착 감겼다.


키와 체형이 우리와 비슷해서 제법  옷태가 났다. 탄력잃은 노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점수를 주자면 그녀가 단연 일등이었다.


그녀는 생각난듯 잠시 내려 놓았던 ‘베이비’를 다시 주워들었다. 치마폭으로 감싸고 사랑의 눈길로 바라본다. 아이를 안고 행복한 여느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인생 노후는 70대가 황금기인데... 그녀에게 멈춰버린 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동안 다른 분들은 픽업 봉사자에 의해 벌써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텅 빈 홀 안에 그녀 놀이에 구경꾼이된 우리만 남아있었다. 그가 스스로 옷을 벗기란 기대할 수가 없다. 어쩌지? 우리는 얼굴만 서로 바라보고 난처해했다.


이번에는 M회장의 손길도 뿌리쳤다. 아무래도 그대로 돌아서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꽃무늬가 화사했다. 베이비를 감싸고 있는 치마위에 예쁜 손수건을 얹어 다독여 주었다. 그녀의 눈빛이 환희로 빛났다.


입었던 한복은 관심도 없다는듯 시키는대로 훌훌히 벗었다. 오직 예쁜 옷에 감싸인 베이비 만이 최고였다. 누가 먼저일까? 박수를 쳤다. 모두들 따라 박수를 쳤다. 뜻모를 응원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가느다랗게 미소가 번졌다. 처음으로 보는 웃음기였다. 그 행복해하던 모습이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마이 베이비’에 집착하는 속내가 참으로 궁금했다.


그들 두 여인에게 “마이 베이비”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식이고 그는 엄마였다.


여자로서 어머니란 본능만큼 대단하고 위대한게 또 있을까? 언제 어떤 변화속에서도 엄마라는 사랑만큼은 잊어버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월은 한국의 어버이 달이다. 이 나라 마더스데이도 오월에 있어 그 어느때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되새기게 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엘리나’. 


그 여인이 떠오른다. 그녀도 나도 어머니라는 공감대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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