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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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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글인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며 설명을 해 달라고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 글을 가까이하는 내가 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서각 작품을 읽으려면 한참을 궁리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이면 그래도 좀 나은데, 아는 한자도 흘려서 쓴 것은 읽을 수가 없다. 마치 가림토 문자(加臨土文字) 같다. 가림토 문자는 일부 민족주의 사학이나 재야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고대 한국의 문자”다. 그 존재와 진실 여부는 내가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나,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군 시대 또는 고조선 시대에 사용되었고, 한글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문자이며, 한글의 원형이 되는 문자로 38자 또는 여러 자모 체계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가림토 문자를 보는 것 같다.


한글 이전에 써서 우리가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이두와 향찰, 구결이다. 이들은 모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었다.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우리 선조들은 우리말을 적기 위해 한자를 뜻으로도 쓰고(훈차), 소리로도 빌려서(음차) 우리말과 비슷하게 어순과 조사까지 표현하였다. 이두(吏讀)는 공문서나 호적, 송사(訟事) 등에 관리(吏)들이 읽고 쓰는 문자였다. 삼국시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고려 시대에 널리 사용했고,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인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초기에 향가(鄕歌)를 적는 데 사용한 것은 향찰(鄕札)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는 서동요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등이 유명하다. 우리말을 거의 그대로 적으려고 한 것이지만 해독은 쉽지 않다. 구결(口訣)은 한문의 독해를 보조하는 용도로 써서 지금 일본 책에서 한자에 독음을 달아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신라 경덕왕 때 스님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로, 작가가 재(齋)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을 날려 서쪽(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 향찰 원문은 어려우니 두고, 풀어쓴 내용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애절한 가족 간의 사랑은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 다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 닦아 기다리리다.”(양주동 풀이)


미타찰(彌陀刹)은 불교, 특히 정토신앙(淨土信仰)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의 극락세계(極樂世界)를 관장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머무는 부처님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誓願)을 세운 부처로, 끝없는 광명(무량광)과 무한한 수명(무량수)을 가진 존재다. 불자들이 비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오니, 저를 지켜주시고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라는 기도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린다는데, 태어나실 때는 부처가 아니어서 부처님이 되신(열반하신) 기원전 544년부터 치면 올해가 불기(佛紀) 2570주년이다.


경남 고성군에 안국사(安國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름인데, 거기 나는 쪽풀로 쪽물들이기가 유명하다. 항아리에 쪽풀을 가득 담고 물을 부어 돌로 눌러 이틀 정도 우려내고, 그 물에 굴 껍데기를 구워 만든 소석회 가루를 넣고 세차게 저어 공기(산소)와 마찰시킨 후, 가라앉은 앙금에 다시 잿물을 부어 며칠을 발효시켜야 사용 가능한 쪽물이 된다. 물들일 옷감을 쪽물에 담갔다가 공기 중에 펼치면 반응하며 푸른 물이 드는데, 몇 번을 반복해야 원하는 색을 얻는다. 마지막엔 흐르는 물에 잿물을 다 씻어내고 말리면 된다.


우리 한글이지만 읽기 어렵다는 그 그림에 있는 글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쓴 것이란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푸른색은 쪽(람)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혹은 후배가 선배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을 때 아낌없는 찬사를 하는 말이고, 또 그렇게 되라는 격려의 주문이다.


쪽물 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모시나 인견 같은 천연섬유에 천연 염색, 쪽물을 들인 것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우리 것이다. 스승을 넘는 제자가 되는 것이 쪽물 들이는 것처럼 힘든 일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쪽물을 들이지 못했다 싶어 스승의 날이 민망스럽다.


* 출처 : FRANCE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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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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