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 그 중간쯔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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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그 중간쯔음 . . .

0 개 207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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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여행지는 늘상 가던 온천행이 아니었다. 낯선 캠핑장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내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다. 이게 웬 호재인가?


두대의 버스가 북쪽과 남쪽에 배치된다는데 직접 갈수 있어 좋았다. 절약된 시간을 그냥 넘길수 없었다. 늘 다니는 수영장이 그 곳에선 가까웠다.


주섬주섬 수영복 가방까지 챙겨서 차에 싣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이 일러서 버스는 도착 전 이었다.


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여 있고 부슬비가 오락가락 했다. 


캠핑장 넓은 실내로 들어갔다. 여러가지 게임도 하고 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커먼 구름속에 갇힌 희미한 햇볕이 서쪽에 기울고 있었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잽싸게 수영장으로 차를 몰았다. 더운물에 꿉꿉한 몸을 얼른 풀고 싶었다. 얼마 안가서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무섭게 비가 쏟아져 내렸다.


전조등을 켰는데도 앞길이 희미했다. 수영장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아 금방 도착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버스로 가신 분들을 걱정했다.


날씨 탓일까? 넓은 파킹장에 차들이 빼곡했다. 일찍 온 탓에 금방 빈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공짜로 얻은 시간같아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다.


느긋하게 피로를 풀고 나오니 몸도 날아갈듯 가벼웠다.(바로 이 기분이야...) 가는비가 여전히 흩뿌려지고 있다. 급한 마음으로 조금 멀찍이서 자동차 키를 작동하고 다가갔다. 문이 열리지가 않는다. 키를 꽂아 돌려봤지만 막무가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디 고장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앗차! 라이트를 안끄고 내린 것 같았다. 아뿔사!


방전이 되어버렸으니 이제 어쩌지?... 자책만 하고 언제까지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좋았던 기분은 졸지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몇사람 기분좋게 나오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와줄수 없느냐고 물었다. “No sorry” 한마디로 점잖게 피해갔다. 비도 내리고 어두워오는 그 시간에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는가. ‘오피스’에 들어가 전화 좀 쓰자고 했다. 대답대신 밖에 써 있는 걸 보라고 턱으로 가리켰다. ‘50센트’ 작은 쪽지가 붙어있다. 반나절은 좋았는데 안되는 날이었다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던가. 돈 쓸 일 없다고 지갑은 놔두고 수영장 회원권만 들고 나왔다.


할 수없이 몇사람 더 붙잡고 사정을 했지만 장비가 없단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오피스’로 들어가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서야 전화통을 가리켰다. 갈 때마다 “Hello” 하면서 반겼던 사람들의 두 얼굴을 보면서 씁쓸했다. 내 잘못에 남을 원망하지 말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사정을 알면 한달음에 달려올 사람. 전화 한 통화가 비장의 카드다. 아니나 다를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장비를 들고 짱 하고 나타날 검은망또의 흑기사님?.


저녁 한 술 뜨고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모터웨이를 삼십분이나 달려와야 할 먼 거리다. 식사때 놓치면 안되는 사정을 알고 있으니 한시간쯤으로 잡고 기다려야 했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두툼한 파커의 지퍼를 올리고 머리에 후두까지 썼다. 훗훗하게 달아 올랐던 몸이 벌써 싸늘하게 식었다. 긴장이 풀리니 한기가 느껴졌다. 금방 집에가면 벗을 것 속 옷은 안 입을까 하다가 꾸역꾸역 껴입었다. 선경지명 이었을까? 싱겁게 웃음이 나왔다.


기다림의 시간은 아직도 멀었는데 입구에 깜빡깜빡 신호가 보인다. 다른 차겠지. 환한 불빛이 내 앞으로 다가와 정차를 했다. 문이 열리더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배고픔도 참고 그냥 씽씽 달려왔다고 했다. 역시 고마운 기사님이었다.


신속하게 장비를 꺼내고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젊은이처럼 신선해 보였다. 남자들은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친 우리는 식당부터 찾아가야 했다. 밥같이 먹어도 전혀 흉허물 없는 동병상련의 오랜 친구. 생각과 말이 통하는 공감대 하나로 동성처럼 친해진 이성친구다. 


뜨거운 열정 다 타 버리고 재만 남은 노후인생,이성이란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인간적인 남 녀의 만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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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모임에서 등산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산을 오르기엔 조금 더운 날씨었다. 처음 20분 정도에서 제일 힘이들어 쉬어가야 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되는대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지나가는 바람 한줌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다. 꼭 잡아두고 오래 즐기고 싶었다. 


숨을 다 고르기도 전인데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엉덩이에 흙을 털며 주춤거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분이 고개를 푹 숙인채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냥 가려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가가 보았다. 땅바닥이 젖어 있었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 이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얼굴빛이 노랗다. 너무 당황해서 왜 그러시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대답이 없다. 어쩔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탕 . .  . .  이ㅡ 써ㅡ 요”  


정신없이 배낭을 뒤져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포장벗길 힘도 없는 것 같아 빼앗듯이 해서 입에 물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 장난질을 했던 것처럼 일어섰다. 걱정스러워 곁에서 지켜주며 무사히 그 날 일정을 마쳤다.(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초콜릿 하나가 약이 되는 병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게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사탕이나 초콜릿 봉지는 내 핸드백 안에 필수품이 되었다. 운전하고 가다가도 느닷없이 “사탕 없어요?” 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여기 처음 와서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나의 열렬한 팬이었던 젊은 ‘가리엄마’ 에게서 소포가 왔다. 처음으로 보는 예쁜 골프장갑이었다.


체육센터 사업을 시작하고 제일먼저 내가 떠올랐다는 그녀. 뉴질랜드가 골프의 나라이니 당연히 내게도 해당이 되는 줄 안 모양이다. 주인을 잘못 찾았구나, 서랍속에 깊숙히 묻어 두었다. 그 장갑이 빛을 보게되는 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그의 골프 파트너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새로운 도전 의욕은 곧 희망의 분출구였다.


매일을 푸른 초원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필드에 올라서면 우선 묵직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열린다. 외로움인지 서러움인지 칙칙했던 감정도 공과함께 멀리 날아가 버린다. 작은 공 하나에 매달려 팍팍한 바깥세상 일은 잊고사니 참 좋았다.


때없이 나타나 길을 막는 오리가족들. 그들 자유로운 세상에 우리가 침입자였다. 어미를 놓칠세라 졸졸졸 뒤따르는 병아리들이 앙증스럽고 너무나 귀엽다.


쫓기듯 내달려봐야 뒤뚱뒤뚱 오리걸음. 웃음이 나왔지만 새끼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능은 눈물겨웠다.(해치지 않을테니 천천히 가렴 . . .)


높은 철책에 흐드러진 라일락 꽃향기가 발길을 잡는다. 문득 손수 심어 가꾼 고향집 담장이 떠오른다. 처음 활짝핀 꽃송이를 신기해서 바라보던 서울토박이 아줌마. 


그냥 돌아설 수 없어 한송이 남몰래 가방에 넣어와 추억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사물사물 고운 무지개는 왜 그리도 가깝게 와 있는지... 골프채 집어 던지고 달려가는 속수무책 동심은 나이같은것 까맣게 잊어버렸다. 자연과의 교감만큼이나 만나는 사람들도 자연을 닮아있는지 친근함이 특별했다.


점심시간은 또 다른 분위기로 즐거웠다. 카페주인이 알아서 시럽까지 서비스로 넣어주는 아메리카노 한잔. 조합이 좀 그렇긴 해도 찰떡 몇조각이면 훌륭한 점심이었다. 커피의 깊은 맛보다 달달한 시럽을 좋아하니 세련되기엔 한참 멀었다. 커피를 맛으로 마시나 분위기로 마시지. . .   흐흐 


한잔 커피에 얼굴 마주치는 젊은이들과 세상 이야기 나눌 때가 참 좋다.


세대를 초월한 편견없는 공감을 공유할 때 참으로 기쁘다. 같은 시대를 동참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착각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내리막 비탈길에서 만났다. 외로운 노후 서로 다독이고 어두운 길에선 등불 밝혀주는 동행자였다. 친구가 있다는 건 그래서 좋다.


당뇨가 있는 그를 안과병원에서 자주 불렀다.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나 역시 안과를 자주 들낙거렸다. 둘이서 번갈아가며 픽업을 맡아했다.


사실 병원이란 그리 기분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과병원 가는 날을 나들이가는 기분으로 나서곤 했다.


그동안 가족처럼 친밀해진 통역사님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치료가 끝나는 즉시 침침한 눈으로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으례 그러려니 시간도 넉넉히 잡아두고 약기운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대화는 주로 노인들 건강에 촛점이 맞춰졌고 좋은 의료 정보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그의 차에 같이 타면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운전을 하는듯 했다. 길치인 척 길 안내를 반드시 내게 맡겼다. 그러니 모르는 초행길도 미리 지도공부를 해서 아는척을 해야 했다. 혼자보단 둘이가 그래서 좋지않냐고 실없이 웃을 때는 꼭 천진스런 아이같다. 웃기도 하고 별거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면서 미운정이 더 많이 들지 않았을까?


아내와 사별의 아픔을 달래려고 뉴질랜드에 오게 되었다는 친구, 이제 그 상처가 다 아물고 기쁨있는 나날이었으면 좋겠다. 말 수 적고 무뚝뚝해서 재미는 없어도 가식없는 진심만은 믿었기에 긴 날들이 이어졌다.


해외로 합창공연을 떠나던 날 새벽 2시. 모두가 깊은잠을 잘 시간이다. 밤길을 달려와 공항까지 픽업을 해 주었다. 운전을 하면서 슬며시 내민 보온병. 따끈한 율무차가 새벽바람에 차가운 몸을 녹여주었다. 잔잔한 감동으로 더러 미웠던 감정들을 울컥하게 흔들었다.


윤끼 흐르는 애호박을 보면 무심히 흘리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애호박 칼국수가 그립다던 말. 땀을 뻘뻘 흘리며 칼국수를 밀어 그를 초대했다.


우리가 변함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건 그렇게 기울기없는 평형의 유지였다. 물질이나 돈으로 얽히면 어떤 관계이든 오래가지 못한다. 그 부분에서는 두사람 똑같이 냉정했기 때문에 오래 함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않고 당당하게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게 내 소신이었다. 가진 것 많지 않아도 노욕없는 소소한 일상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이제 비탈길도 다 내려와 붉은 노을빛 끝자락에서 긴 그림자를 뒤돌아본다.


그가 의식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남은 길 은 오직 한 길뿐. . .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 나를 모른척 하기에요?”


표정도 대답도 있을리가 없다. 조금만 아프면 ‘청심환’ 가지고 달려 오라고 엄살도 잘 하더니 . . . 내 의식도 가물가물 멎어가는 느낌이었다.


작별 인사는 그렇게,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보고가려고 기다려 주었던 친구. 질긴 인연이었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우정이었을까?


 편히 영면 하소서!!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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