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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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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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구층암 ‘죽로야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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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를 알아요?”


차밭을 정비하러 나서는 길, 구층암 주지 덕제 스님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알 리 없다. 더욱이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가 차나무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차밭 정비는 보통 칡 같은 넝쿨(덩굴) 식물들을 걷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스님이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이것저것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도 ‘야생차밭이라 칡이 워낙 무성한가 보다’ 막연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지리산 자락 구층암은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산내암자로, 무려 10만여 평에 달하는 야생 차나무밭에 감싸여 있다. 화엄사와 구층암 주변 골짜기마다 펼쳐진 너른 차밭은 천 년을 이어 자연적으로 자란 차나무들이 군집을 이룬 곳으로, 대부분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해 온 ‘진짜 야생차’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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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생차밭을 관리하기 위해 덕제 스님이 하는 일은 차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주변 식물들을 정리하고 차나무의 상태를 점검하는 정도다. 스님이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를 물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나무는 차나무와 상생할 수 있지만 조릿대는 어렵기에 제거 대상이다.


스님에 따르면, 대나무과 식물인 조릿대는 마디를 맺으며 자란다는 점에서 대나무와 비슷하지만 자라면서 주변 차나무의 생장에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조릿대가 땅속으로 줄기와 뿌리를 뻗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주변을 점령하며 금세 무성해지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차나무가 잘 자라기도 어렵고, 어린 차나무의 경우 햇볕을 받지 못해 자라지 못하거나 시들어 버린다는 설명이다.


“어느 정도 자라기 전에는 대나무와 조릿대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뿌리가 자리 잡는 간격이 넓고 쭉 뻗어 자라는데, 조릿대는 뿌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빽빽하게 자라죠. 마디를 자세히 보면 차이가 보여요. 대나무는 괜찮지만, 조릿대를 그냥 두면 차나무가 잘 자라는데 아주 방해가 됩니다.”


구층암 뒤편 차밭은 사실 밭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야생 차나무 군락지다. 그동안 흔히 봐왔던 차밭처럼 차나무들이 야트막한 언덕에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산속 구석구석 온통 차나무가 모여 자라고 있다. “구층암 바로 뒤편 차밭” 이라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으나,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등산을 하게 된 셈이다. 허리춤을 훌쩍 넘어서는 크기의 차나무는 흔하디흔한 수준이다. 개중에는 한 뿌리에서 났지만 굵은 가지 대여섯 개가 동시에 자라 두 팔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위용을 자랑하는 차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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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으면 떫어지는 차


초가을 내리쬐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골짜기를 굽이굽이 오르는 동안에도 덕제 스님의 눈과 손은 도통 쉴 틈이 없다. 수풀이 우거져 길조차 감춰버린 산자락 곳곳을 헤치며 조릿대를 걷어내고 넝쿨을 뜯어낸다.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조경용 가위와 칼, 삽이 번갈아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이 도구들은 주변 식물들을 걷어낼 뿐 차나무에는 닿는 일이 없다.


“차나무도 생명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쓴맛이 강해져요. 그해 야생 차나무에서 처음으로 딴 찻잎을 우리는 첫물이라고 부르는데 그 맛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죠. 같은 나무에서 찻잎을 또 따면 두 물이 되는 건데 확실히 다릅니다. 그러니 애초에 칼을 대고 가위를 대어 정돈할 필요가 없어요.”


구층암 ‘죽로야생차’가 맛 좋기로 입소문 난 이유도 제다법이 아니라 본 재료인 찻잎에 있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사람의 손으로 찻잎을 따는 것도 차나무에는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며 “찻잎이 이미 떫고 쓰면 차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맛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함께 등산하던 구층암 봉사자가 공감하며 말을 보탰다.


“2년 전인가, 스님을 따라 차밭에 갔다가 한 번도 찻잎을 따지 않았다는 차나무 잎을 따서 바로 먹어본 적이 있어요. 진짜 떫거나 쓴맛은 하나도 없고 달기만 하더라고요. 그 찻잎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사실 녹차를 향한 대중의 선입견 중 하나가 떫은 맛이다. 녹차를 우릴 때 뜨거운 물을 식혀 붓는 방식이나, 차를 마실 때 다식을 함께 먹는 이유도 이 떫은맛과 일부 연관이 있다. 반면, 사람의 손길이 적게 닿은 야생 차나무의 찻잎은 떫은맛이 적어 잎이 좀 커도 충분히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덕제 스님은 “수좌스님들 중에도 차를 먹으면 ‘속이 긁힌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며 “특히 빈속에 떫은맛의 차를 마시면 속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식을 함께 먹는데, 경험상 찻잎이 좋으면 맛이 부드러워 다식도 딱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골짜기 초입의 차나무들은 이미 흰 꽃을 피웠고, 간혹 열매가 매달린 차나무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차나무의 꽃과 열매 또한 차나무에 닿은 사람의 손길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위협을 느낀 차나무는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실제로 구층암 차밭 역시 수령 10~20년 가량으로 추정되는 한 뼘 남짓한 크기의 어린 차나무들이 초입에 유독 많았다.


덕제 스님은 “2007년경 구층암에 와서부터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이전에는 차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으니 꽃도 피지 않다가 5년째가 되니 차나무 꽃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무렵 구층암 차를 마셨던 스님들도 차 맛이 변했다고 하기에 이러한 이치를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덕제 스님이 구층암에 온 지도 어느새 17년을 채운다. 2005년 화엄사 원주소임을 살 무렵부터 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전부터 차를 사랑했으니, 차와의 인연은 20년이 훌쩍 넘어선다. 그래서 아쉬움도 많다. 여전히 화엄사와 구층암 주변 10만 평 상당의 차밭에는 아직 찻잎을 따보지도 못한 차나무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찻잎을 따러 가기엔 너무 험하거나 매번 차를 만드는 인원이 부족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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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간 찻잎을 함께 땄던 마을주민들도 이제는 연로해 오르기 힘든 곳은 가지 못하는 상황이고 인부를 쓴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채다(採茶) 시기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템플스테이의 일환으로 구층암을 찾아와 함께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지만 항상 부족한 인원이어서 평균적으로 40g 기준으로 3,000통 가량 겨우 만드는 수준이다.


사찰과 함께 천 년 넘은 야생차밭


화엄사와 구층암 일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차밭이 존재했지만, 차를 좋아하는 일부 스님들이 찻잎을 따 차를 만들고 사중스님들과 나누는 정도였다.


여기에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층암에는 유독 차를 사랑한 스님이 있었다. 바로 덕제 스님의 은사인 종열 스님의 은사, 도광 스님이다. 차를 워낙 좋아했던 도광 스님은 40여년 전 화엄사에 주석할 당시 마을주민들을 데리고 차밭에서 찻잎을 따 차를 만들었고 인근에서 좋은 찻잎을 구할 수 없으면 나주까지도 찻잎을 따러 다녔다고 전해진다. 도광 스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 차통은 손상좌인 덕제 스님의 다실 한쪽에 잘 보관되어 있다. 덕제 스님은 “오래전부터 차나무가 있더라도 차를 사랑해서 찻잎을 따고 차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차나무도 번식을 한다.”며 “그렇게 보면 아마도 노스님 살아계실 적에 화엄사와 구층암 인근에 차나무가 많이 확산됐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화엄사와 차의 인연은 역사가 상당하다. 화엄사가 창건된 통일신라시대부터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의 차를 공양 올리는 보살상이 그 인연을 짐작하게 한다. 화엄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연기조사는 효심이 지극해서 어머니에게 항상 차를 끓여 공양을 올렸다고 전해지는데 바로 그 모습이 조각된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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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차를 사랑하게 됩니다. 확실히 차를 마시면 정신이 고요해지고 맑아지거든요. 떫거나 쓴 차도 효능이 있어요. 애초 농사의 신이라는 신농이 차를 마시게 된 연유가 해독과 항염에 있잖아요. 부드럽고 맑은 맛의  야생차라면 더할 나위 없죠. 사찰과 선원에서, 또 사회적으로 차를 더 가까이하고 즐겨 마시는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화엄사 구층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2

010-5436-0009 l http://gucheungam.com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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