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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그 해의 겨울도 예년과 다름없이 긴 장마와, 가끔은 그 사이를 틈탄 햇볕이 쏟아지기도 했었다. 며칠만에 보는 갠 하늘이 반가워 밖으로 나왔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모처럼 오늘은 좀 먼 곳, 가보고 싶었던 곳까지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운동이란 게 언제든 번거롭고 귀찮아도 운동화 끈을 매고 허릴 펴면 그때부터 “아! 나오길 차암 잘했어”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비가 오고 추워도 이미 봄은 우리 속에 들어와 있었다. 갖가지 봄꽃이 피어있는 화원도 들려보고, 엔틱가게도 구경한다. 스쳐 지나가는 길갓집 담장의 새순을 손으로 훑듯이 쓰다듬는다. 철없이 일찍 핀 어떤 집 담장안의 자목련 봉오리를 오래 멈춰서서 올려다 본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뜰에서 일하는 부인이 허릴 펴곤 내가 올려다 보는 쪽을 같이 쳐다보며 웃는다. 고운 것을 가진 사람의 자랑스런 표정이다. 나는 검지로 목련을 가리킨 후 엄지척을 띄워 보낸다. 둘이 같이 소리내어 웃는다. 햇볕이 부서진다.
되돌아 오는 길은 힘들면 버스를 탈 수 있는 길로 정하고 걷는다. 그 길엔 또 다른 모양의 풍경들이 나를 새롭게 한다. 이미 새순으로 나올 때부터 단풍이 든 듯 빨간 잎들이 꽃보다 더 곱게 반들거린다. 그곳에서도 멈춘다. 주인이 부지런 한 듯 묵은 가지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한덩이의 커다란 꽃다발같다. 그곳에서도 잠시 멈춘다. 목이 마르다. 그제서야 물병을 챙기지 않은 나를 안다. 그리곤 내 집 주소가 걸려있는 큰 길로 접어든다. 자주 지나다니는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버스가 온다. 하지만 내가 정류장에 다다르기 전에 떠난다. “그래? 그럼 다음 버스 타지…”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안오네? 에이 그럼 걷지 뭐!” “하긴 이렇게 찬란한 날씨엔 소급해서 좀 걸어줘야 해.” 중간쯤에서도 또 다른 버스를 보낸다. 게임처럼 반복하며 많이 걸었다. 그럴 정도로 오늘은 보기 드문 날씨였다.
그런데 거기까진 확실히 기억나는데 눈을 떠보니 파란 하늘을 가운데로 여러 피부색을 한 사람들이 비잉 둥글게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인가?” 두눈을 꾸욱 감았다 떠본다. “꿈이 아니네…” 지나다니며 본 듯한 술가게 젊은이, 베지테리안 식당 인도 아줌마 등등.
나는 갓길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에게 수염기른 젊은이가 “당신 여기서 넘어졌다.” 낯선 억양의 발음으로 말한다. “내가? 여기서? 왜애?” 급하게 묻는다. 나를 부축한 젊은이가 가게앞 의자에 나를 앉게하며 뭐라 하는데 대충 “머릴 안부딪혀 다행” 이라는 듯 손짓을 해가며 설명한다. 서둘러 물컵을 들고 나온 아주머니가 나의 뒷목을 받치며 물을 마시게 한다. “그래 내가 많이 목이 말랐었지.” 다소 많은 양의 물을 얻어 마시고서도 넋이 달아나 고맙다는 말조차 잊는다.
완전히 필름이 끊겼다. 술취한 이들의 필름끊김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었나. 생각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내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비해 몸이 멀쩡하다. 아픈 곳도 한군데도 없고 정신도 너무 멀쩡하다. 한참을 쉰 후 구십도로 머릴 숙여 인사한 후 집까지 또 멀쩡하게 돌아왔다. 며칠 후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딸아이가 많이 속상해 한다. 안 알렸다구. 뭐 알릴만한 일도 아녔는데…금방 끝나기도 했고…하지만 이상하긴 하다.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길바닥에 누워 아예 필름이 끊겼는데 원인이 없다는 게…그래도 낡았지만 아직은 한줌의 남은 품위라도 지키려 노력하며 살고 있는 중인데, 영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인 어떤 이는 탈수로 혈루막힘에서 오는 증세일 수 있다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한 원인분석이 없다. 그 당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찾았어야 했었나?
젊어선 아는 이들이 나를 보곤 차돌같이 야무지단 얘길 했었는데…어찌됐건 나의 요상한 전위예술은 풀어지지 않는 불가사의 속으로 사라져가 버렸다.
그 후 많은 생각을 했다. 혼자 한 퍼포먼스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운전중에 필름이 끊기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요즘 자주 듣는 미필적 고의 뭐 그런거?
전엔 급하게 병원갈 일이 가끔 있었지만 지금은 그닥 바쁠일도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차가 집을 지키고 있다. 처음으로 버스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곤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본다. 먼 브라운스베이도 가고 핸더슨 끝도 가보고 밀포드 바닷가도 걸어보고, 배타고 데본포트도…나름 손수 운전할 때보다 쉽고 여유롭다. 물론 무료인 배삯, 버스비를 전제로 하고…말하자면 일종의 워밍업같은 걸 치른 후 차를 없애기로 딸과 합의를 보았다. 차가 아직은 멀쩡하기도 하고 십수년 나와 동행하는 동안 무탈하게 보냈고 나는 한번도 차가 소리지르게 하지도 않았다. 경적을 한번도 누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뒷 꽁무니가 들려 끌려가는 차를 보내며 돌아서서 결국 눈물을 찍어낸다. 너무 싸게 팔아버린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조금 더 받겠다, 옥신각신 하는 것도 가는 차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염기른 딜러의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말에 화악 마음이 후해지기도 했었다. 차를 보내고 나니 많은 걱정이 줄어들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줄어들었고 가는 곳마다 주차걱정을 안해도 되었다. 또, 제일 큰 것은 혹시 버스타고 가다 정신을 잃는다 해도 큰 사고로 연결될 일이 없을 터였다. 요즘엔 차 있을 때보다 먼 곳을 더 많이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땐 오히려 내가 움직인다. 버스를 갈아타고 가도 한가롭고 밖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오늘은 좀 긴 외출에서 돌아오던 길, 집이 멀지않은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넜다. 네 차선중 건너편 두 차선에 차들이 저 뒷쪽까지 늘어서 있다. 하늘엔 먹구름이 무슨 불만이 있는지 스산하고 바람조차 예사롭지 않다. 길에 널부러져 있던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회오리 바람에 날아다닌다. 서둘러 인도에 올라 몇걸음 옮기다가 나는 누군가가 패대기라도 친 듯 무지막지하게 엎어졌다. 핸드백이 튕겨쳐 나가고 왼쪽 무릎이 꺾이면서 오른쪽 손바닥으론 땅바닥을 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순간 끊긴다. 내가 건너길 기다리며 신호대기중이던 운전자들이 하나같이 내쪽을 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 그들은 눈만 꿈벅거린다. 너무도 순간적이기도 하고 보여주기 싫은 이 현실앞에 차라리 내가 눈을 감아버리면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긴 생각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신호가 풀리고 차들이 움직인다. 나는 그냥 길에 길게 누워버리고 만다. 어디랄 것이 없이 온몸이 아프다. 특히 왼쪽 무릎엔 무슨 일이 있는지 쓰라리고 넘어지며 바닥을 친 오른손 바닥이 너무 아프다. 누운 채 펴보니 굵은 모래들이 살속에 박히듯 묻어있다.
날씨는 더 험악해지고 그때 뒷쪽에서부터 너덧살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가 시야에 뛰어들어온다. 그의 파란 눈에 금새 눈물이 그렁하게 고인다. 콧날개를 벌렁대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하다. 누워있는 나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몰라서, 나대려는 자기의 양팔을 제어하려는 듯 주먹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날개치듯 파닥댄다.
나는 부시시 일어나며 “아가 괜찮아. 괜찮아” 한다. 꼬마가 오던 쪽을 바라보며 손짓한다. 뒤이어 그의 엄마인듯 한 젊은 여인이 유모차를 밀고 급하게 우리 상황 속으로 들어온다. 유모차 속엔 젖꼭지를 문 아기가 타고 있었다. 날씨는 더 나빠져 가끔 던지듯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나는 “괜찮아졌고 우리집이 조-오기다.” 그리곤 하늘을 가리키며 비가 곧 올 것 같으니 아이들 데리고 얼른 가라 서툰 영어를 섞어 수화하듯 말한다. 이 모든 일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유모차를 서둘러 보낸 후 기듯 일어나 핸드백에서 튕겨나가 흩어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주워담는다. 잔디밭 속에 숨어있는 립스틱을 주워담고 쏟아진 열쇠 꾸러미도 챙겨 넣으며 저만큼 가고 있는 그들을 본다. 꼬마가 유모차를 붙들고 엄마를 따라가다 뒤돌아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어여 가라 손사레를 치며 억지로 웃는다. 그러자 시멘트 블럭에 걸려 아이가 넘어진다. 유모차에 매달리듯 대롱댄다.
“이를 어쩌누.” 엄마가 아이를 일으켜 거들며 옷을 털어준다. 멋쩍은 듯 웃으며 모자가 내 쪽을 본다. 멀어지는 아이가 주먹쥔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쎈 바람이 아이가 눌러쓴 사하라 캡을 휘젖고 지나간다. 기어이 오늘 내가 너를 울리는구나. 생각한다. 아이의 그렁대던 눈물을 떨어뜨릴까봐 나는 참았었는데 사실은 나도 울고 싶었었거든…먼곳에서 그들을 배웅한 후 아픈 무릎을 걷어 상처를 살핀다. 흰 쌀알같은 이것은 뭘까 뼈인까? 가늘게 흘러내린 핏자국을 본다. 아니 어디 특별한 걸림돌도 없는 평탄한 길인데 이렇게 패대기 쳐지듯 넘어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 희미한 발자국 같은 것에 걸린 것인가? 오래 전 넘어져서 차까지 없앴는데…넘어지는 전문인가? 아니면 돐때 수수팥떡을 안해줬나? 옛말에 돐때 수수팥떡을 안 먹이면 잘 넘어진다 하던데…하긴 난세에 그 떡을 해먹였을 확률이 별로 높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방된 기념으로 수수팥떡을 해먹었을리는 더더욱 아녔을 것 같다. 이젠 물어볼만한 이들도 모두 떠나고 없다.
모래를 떨어낸 손바닥엔 채송화 꽃밭처럼 작고 붉은 점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젖은 머릴 한 채 따끈한 찻잔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물감이 풀어지듯 스멀스멀 어두워지고 있는 뒷뜰을 내려다 본다. 비는 오고 바람도 여전히 불고 있다. 물색없이 고운 무릎담요 위로 후두둑 하고 아까부터 참아왔던 눈물을 쏟고 만다. 늙었음이야!!
그날 저녁 나는 호되게 앓았다. 수년동안 한번도 아프지 않았고 코로나도 비껴간 건강인데, 어줍잖은 퍼포먼스를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실연했던 자괴감이 나를 한없는 절망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무릎의 상처는, 왜 꼭 그곳만 자꾸 부딪히는지 피딱지가 굳었다 떨어지길 몇번째 반복하고 있다. 손바닥의 붉은 점들은 보라색 멍으로 남아 자꾸 들여다 보며 이제서야 피로 얼룩지고 구멍나서 버려버린 바지를 아까워한다. 그리고 다독이듯 나를 달랜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야 아무데도 부러지지 않고, 또 치마를 입지 않아 덜 부끄러웠지 않나! 미니시대가 아니니 약간의 흉터쯤이야 뭐 괘념치 않는다.
누구나 일생 살면서 가끔 넘어지기도 한다. 물리적으로나 사업상으로, 또는 예기치 않은 건강상의 이유로…그래도 그 넘어진 땅을 짚어야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실한 명제앞에 숙연해 지는 추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