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밥 한 번 먹자

0 개 780 조기조

문밖을 나서기 불편했던 추위가 사그라지니 거리에 발길이 늘었다. 동네 식당에도 활기가 도는 것 같다. 푸성귀가 나오기 시작하니 식당에서도 찬거리 만들기가 쉬울 것이다.


 

뜻밖에도 “밥 한 번 먹자”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갑 사정이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지만, 봄기운에 버들가지 물오르듯 힘이 날 때도 됐다. 그동안 많이 움츠리지 않았는가?


직장을 시작했던 80년대에는 물가가 싸고 먹거리가 비교적 풍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밥 먹고 술 한잔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거의 확실했고, 해가 갈수록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 덕분에 경쟁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직장은 마치 기차나 배를 타기만 하면 무난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번 입사하면 안주할 수 있는 장치였다.


직장 초년에는 선배들에게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더치페이를 몰랐던 시절이다. 나중에 후배들이 많이 생기자 내가 사는 일이 많아졌다. 선배님들에게서 얻어먹은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샀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 친다면, 나는 아주 가까운 식구가 있다. 거의 날마다 점심과 저녁을 함께한 식구다. 실은 내가 산 적은 별로 없다. 우리는 직장 근처의 소박한 식당에서 하숙생처럼 먹었다. 분위기가 편안하고 음식이 입에 맞았기 때문이다. 밥 친구도, 식당 아주머니도 어떻게 고마움을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직장에서 함께 밥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운지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김밥이나 햄버거로 간단히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함께 가도 각자 먹은 것은 각자가 내는 모양이다. 당연하고 합리적인 일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 협조와 양보가 쉬운 법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함께 밥 먹는 일이 사라지고 있단다. 일과 후 회식도 사라졌다.


나는 같은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을 보면 밥값을 내준 적이 많았다. 바보 같은 짓(?)이라 하겠지만, 그냥 나가는 것이 어색했다. 점심값이 비쌌다면 내고 싶어도 못 냈을 것이다.


“왜 절 모르고 시주하느냐?“는 사람도 있었고, “장님이 기름값(호롱불 켜는) 내는 격”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훗날,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들로부터 아주 친절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누가 “밥 한 번 먹자”고 하면 그걸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그러자”고 응대한다. 내가 남의 부탁을 들어줄 위치에 있지 않고, 남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나와 밥을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언제가 좋겠느냐”고 당장 날을 잡지 않으면 그냥 하는 소리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밥 한 번 먹자”고 했으면, 날을 잡으려고 신경을 쓴다. 만나도 부탁할 일이 없으니 편하다. 필요할 때는 밥 먹자고 해놓고는 화장실 갔다 올 때 마음이 바뀌는 사람도 본다. 바쁘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한다.


춥고 얼었던 겨울이 지나가니 할 일이 생겼다. 전화번호를 둘러보며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밥 한 번 대접해야겠다.


사는 것이 별건가? 문득 영어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빨간 표지의 두꺼운 참고서 3위일체(김학기 저)가 있었다. 그 책을 펴면 29자로 된 단어가 나왔다. “월화수목금토일”의 7요일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서 이 단어에 매달렸다가 영어가 오르지 못할 산인 줄을 빨리 깨달았다. 그런데 오늘 왜 이 단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발음은 “플락_시나우_시나이_힐리_파일리피케이션”이다. ‘뜬구름처럼 여기기’ 또는 ‘황금을 돌같이 보기’라는 뜻이다. 이 단어 때문에 영어를, 인생을 뜬구름 같다고 여기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 과연 인생이 덧없을까?


일전에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여럿이 밥 먹는 자리에 숟가락 하나 더 놓겠다”고 겸양하며 말하기에 쾌히 그러자고 했다. 나를 생각해서 전화했는데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그냥 즐겁게 봄나들이 가는 것이다. 밥은 누가 사면 어떠리?


만나서 “어색(語塞)하다”는 것은 말이 막힌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가 경청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이다. 자랑이건 넋두리건 편하게 말하도록 하고, 듣는 것도 기술이며 즐거움이다. 세월의 간극만큼 사람들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 했다.


 * 출처 : FRANCEZONE


810cb4fbe86c095eb9235b9e51a4fa94_1742863219_3801.jpg
 

■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170 | 13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대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노화는 나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과정…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65 | 1일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80 | 3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치대,약대, 검안대 등)를 하는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마주하며 번아웃 혹은 중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90 | 7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험 총평과 출제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GAMSAT (Graduate Medical School Admissi…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31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 속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 수업이나 실험 중심 프…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20 | 10일전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속 생물,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존재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용’을 상상해본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며, 때로는 신의 사…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27 | 10일전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논밭을 일구어 심고 가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먹거리가 5곡이었는데 거기다 온갖…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58 | 10일전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피고 측에 송달하고, 피고 측에서도 답변서를 제출하고, 사건 관리 회의 (…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66 | 10일전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우레와(Urewera)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오리의 투호에나(Tuh…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200 | 10일전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스테이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10월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진행된 ‘2024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201 | 2026.04.29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온 세상이 젖어가…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38 | 2026.04.2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이느닷없이 나를 흔들자꿋꿋이 버티던 나도마음 흔들려아내가 모르던현금으로 꼭꼭 간직해두었던내 비자금을 실토하고난 이제 필요없게 …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5 | 2026.04.29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방’이었다.”프롤로그 -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폭발 직후의 지옥 같은 밤.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수증…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88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일반적으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주에게 피고용인의 범죄 신고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고…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501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이번 컬럼에…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2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떤 날은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막무가내 올라간다.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상상봉에 다다르면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47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체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파트너쉽 비자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8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지’라는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않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도박 문제…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28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모든 코스는 다르다.어떤 곳은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또 어떤 곳은 벙커와 해저드가 도처에 있어 한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5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8세 어르신도 걷는다. 괴산군(인구 3만7000명)은 65세 노인 비율이 4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비 예산은…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31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최근 들어 GAMSAT시험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GAMSAT은 주로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전원 (치학전문대…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3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74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ed/Health Sci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보았다. 오타고대 HSFY같은 경우 한인들 기준에서 오클랜드대 Biomed/Hea…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74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은 비극의 시작이요 삶을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90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계속 본다고 믿는가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우리는 이미 지구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우주를 관측하고, 인간의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