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깜냥의 표주박 하나 손에 들고 성파 스님이라는 달 뜨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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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깜냥의 표주박 하나 손에 들고 성파 스님이라는 달 뜨러 가는 길

0 개 469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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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통도사야 자장매가 제일이라 하지만, 홍매화가 한껏 흐드러지게 핀들 밋밋한 들판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이리 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천년 고찰의 우아한 배경이 없었다면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고대하며 몰려왔을까. 비에 젖은 끝물의 자장매를 향해 쏟아지는 감탄사와 셔터 소리를 들으며, 그 모두를 마치 큰 그릇처럼 담고 있는 통도사 도량을 둘러본다. 새삼스럽게 아름답다.


절의 아름다움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당대의 예술이 만든 최고의 결과물이 시간을 견디고 군더더기를 깎아낸 뒤 이곳에 있다. 죽은 문화재도 아니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살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꽃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보는 통도사와, 때마다 철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보는 통도사와, 절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밤과 새벽의 절 마당을 걸어본 사람이 보는 통도사와, 그 곳에서 나고 살고 죽는 사람이 보는 통도사가 같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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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 ‘절여진’ 사람


성파 스님은 말씀하셨다. 출가자는 “문화재 속에서 태어나서 문화재 속에서 살다가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태어나기는 다른 데서 태어났지만, 통도사에서 입산했다 아이가. 그러면 승려로서는 통도사에서 출생한 거라.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있잖아요. 김치독, 소금독 안에 들어간 배추와 한가지라. 배추가 소금독 안에 들어가면 어찌 되겠노. 저절로 절여지는 거라. 그냥 간이 절여진다니까.”


통도사 전각들을 차례차례 지나 가장 깊은 정변전 넓은 방에서 스님의 작품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들으니, “절여진다”는 스님의 말씀이 실감 난다. 그 방은 성파 스님의 갤러리였다.


바닥부터 남달랐다. 옻칠한 뒤 자개 가루를 뿌려 은하수를 표현했다. 그 위에 놓인 테이블도, 벽에 걸린 그림도 모두 스님의 작품이다.


스님은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뼛속까지 절여진 사람이다. 동시에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낸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 불교문화를 계승하여 천연염색, 산수화, 옻칠 민화, 도자기, 한지, 단청, 건축, 탱화, 건칠불 등 다양한 영역을 종횡무진 누볐다. 살짝 건드려 보고 이력에 한 줄 올리는 수준이 아니다. 스승께 배우고 배운 데까지만 답습하는 수준이 아니다. 끊긴 전통을 찾아내고 사라질 뻔한 분야의 뼈대를 다시 세웠다.


도자기로 삼천불을 만들어 ‘삼천불전’을, 16만 도자 대장경을 구워 ‘장경각’을 세웠다. 일본에서 ‘도래문화’를 연구했고,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산수화를 그려 한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북경의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드론 자격증도 땄다.


스님의 삶에는 경계도 한계도 없었다. 평생을 공부하고 일해 왔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모든 분야에 우열 없이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 너른 폭을 가만히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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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야외독서당’을 준비하다


‘종이책 무한대 모으기’는 그런 스님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프로젝트다. 불교문화의 저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지만, 그 중에서도 ‘출판인쇄문화’에 있어서는 불교가 100%다. 말 그대로 ‘전부’다.


“근대에 와서 기계화되기 전에는 지금 같은 책이 안 나왔어요. 그때까지 우리 한국의 출판 인쇄는 100% 절에서 했어. 『금강경』이나 『팔만대장경』 같은 불경만 출판한 것이 아니야. 이퇴계 문집부터 안동김씨 족보 같은 책들도 전부 절에서 다 만들었어. 양반들은 절대로 막일을 하지 않았어요. 양반들은 원고를 줄 뿐, 절에서 스님들이 그 원고를 사경하고 나무를 다듬어서 그대로 각을 해서 찍어서 책을 만드는 것까지 다 했지. 종이까지도 절에서 다 만들었어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출판인쇄거든. 그리고 금속활자도 절에서 만들었잖아요. 『직지심체요절』. 구텐베르크보다 우리가 훨씬 빠르잖아. 세계에서 제일 먼저라. 금속활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절에서 보관하고 보호해 왔던 덕이다. “우리나라 출판인쇄문화에서 불교가 한 역할은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부다.”라는 스님의 말씀은 힘이 있다.


“지금은 출판이나 인쇄 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대량으로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잖아요. 옛날과 달리 무한대잖아요. 우리나라에 온 세계 책이 다 있어요. 어디든 다른 나라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 나라 책을 가지고 왔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세계 도서문화를 보존하려고 하면 전 세계 서적을 다 모을 수가 있어. 여기 앉아있어도 우리나라에 온 세계 서적이 다 있다니까. 그런데 그 책들을 폐기처분한대요. 도서관에도 자리가 없어서.”


스님이 ‘종이책 무한대 모으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버려지고 폐기되는 책들이 참 안타깝잖아요. 우리가 역할을 안 해주면 그걸 할 데가 없어. 다른기관도 없고, 어느 독지가가 마음을 내서 책을 많이 모은다고 해도 후대에 보관을 계속할 수 있을지 보장이 안 되는 거라. 그런데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바뀌어도, 주지가 바뀌어도 보관이 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화재 전체를 통틀어서 80~90%가 불교문화재잖아. 보관을 잘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스님의 생각은 단순한 사명감에 그치지 않는다. 스님이 보기에, 책은 우리의 미래를 구원해 줄 대안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무조건 빠르게 하려는데,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다 보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라는 스님의 판단은 “자동차 엔진도 자꾸 돌리면 열 받아서 과부하가 걸리듯 인간들의 과부하로 인한 고통도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스님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다. 과부하로 인한 자멸을 막기 위해서는 전통문화, 그리고 인류의 정신문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책이고 독서라는 것이다.


“내가 책을 모으는 게 그래서라. 우리가 선방에서 공부할 때, 제일 먼저 화두를 잡으라 하거든. 번뇌 망상이 죽 끓듯이 끓고 팔만 사천 번뇌가 일어나도 화두 하나를 잡으면 이게 잠을 자는 거라. 그런데 그건 일반 사람들은 안 되는 거라. 독서는 선방에서 화두 잡는 것과 한가지라. 과부하 걸리는 정신상태를, 탈선하는 정신상태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라. 앞으로 독서가 필요한 시대가 틀림없이 와요.”


책은 인류의 미래 구원할 대안


스님이 한계 없이 책을 모으는 데는 든든하게 믿는 ‘뒷배’가 있다.


“우리 통도사 땅이 한 600만 평 돼. 이 자체가 전부 야외 독서당이라. 그래서 앞으로 나무 밑에, 돌 위에, 개울가, 전부 다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야 돼. 책을 많이 모아 책 목록 작성해서 원하는 책을 가져다 보게. 앞으로 독서가 아니면 마음을 못 잡아요.”


점점 얄팍해지고 가벼워지는 시대에 사찰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지만, ‘600만 평 야외독서당’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스님은 절의 역할을 네 줄의 한시로 간명하게 설명한다.


무궁산하천無窮山下泉

보공산중려普供山中侶

각지일표래各持一瓢來

총득전월거總得全月去


“끊임없이 흐르는 산 아래 샘물을 산을 찾는 여러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 말이야. 각각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 와서, 다들 달까지 담아가라 이거라. 물만 먹고 갈 게 아니고 물 한 바가지 딱 뜨면 달이 비치거든. 그 달까지 담아가라 이거거든. 바로 절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라. 절은 무궁무진하게 끊임없이 나오는 샘물이라. 그러니 목마른 사람들은 와서 다 목을 적시고, 갈증을 해소시켜라. 그리고 갈 때 또 달까지 담아가라 그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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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술의 달인, 세계를 가지다


스님이 걸어온 길을 되짚고 말씀을 들으며, 한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세계의 규모를 생각한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 그토록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스님은 그 비결로 “종탈자재(縱奪自在)”를 든다.


쥐고 놓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스님은 스스로를 “대단한 욕심쟁이”라 자평해 왔다. 욕심쟁이란 꽉 쥐고 안 놓는 사람들 아니던가. 어떻게 쥐었던 것을 홀가분하게 놓을 수 있었던 걸까.


“그게 더 큰 욕심 아이가. 놔도 다 내 거라.”


과연, “욕심쟁이” 앞에 “대단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하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쥐든 놓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사실 내것 네것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지 않을까. 그 경지는 아니라 해도 우리들 평범한,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 아닌가 싶어 종탈자재 할 수 있는 비법을 슬쩍 여쭈었다.


“그게, 보통 단련으로는 안 된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알아서 얻어지는 거면 논리로 다 알 수 있어. 그러나 실제로 붙으면 안 되는 거라. 왜 그러냐. 체득을 해야 해.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다 이거라. 아무리 달아나도 그 속에 있는 거라. 그래서 언제든지 잡아당기면 당겨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되는 거라고. 물고기를 잡다가 떨궜단 말이야, 그러면 못 잡잖아. 그런데 낚싯대에 물려 있으면 놔도, 달아나도 당기면 다시 딸려 오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라. 놔도 안놨다 할 정도는 돼야 달아나봤자 멀리 못 가잖아. 언제든지 땡기면 딸려 오는 거라.”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품고 있는 세계가 그지없이 넓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손을 뻗어도 손바닥 안이었던 것 아닐까. 종교, 철학, 문화, 어느 분야든 그 품 안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학교 가면 과목이 많잖아요. 불교에는 전 과목이 다 들어있어. 과학도 들어있고 철학도 들어있고 온갖 것이 다 들어있어요. 인문학도 들어있고 생물학도 들어있고 다 들어있지.”


종횡무진 분야를 넘나드는 얘기를 듣다 보니 성파 스님이야말로 불교라는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고기라는 말에 스님은 파안대소하신다.


불교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나는 둔갑을 하는 사람이라. 물고기에만 그치지 않아. 물고기가 됐다가 새가 됐다가, 나는 뭐든지 다 돼. 정신문화에서는 뭐든지 다 되는 거라고. 육체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 저게 개다, 저게 소다, 이렇게 살아가잖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정신은 뭐든지 다 된다니까. 성인도 될 수 있고 악인도 될 수 있고. 마음이라는 건 요사무사해서 온갖 게 다 돼.”


스님의 둔갑술이야말로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신출귀몰할 수 있었던 비밀이 아닐까. 한 시절은 영축총림 통도사의 주지와 방장으로, 또 한 시절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자전거 한 대 끌고 돌아다니는 이방인으로, 한 시절은 만학도 유학생으로, 한 시절은 야생화와 차밭을 가꾸는 농부로, 한 시절은 화가로, 시인으로, 장인으로, 또 한 시절은 대한불교조계종의 가장 높은 어른인 종정으로. 매 시절 둔갑했지만 매번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천진하게 미소 짓는 성파 스님이셨을 테다.


스님은 올해 9월 25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스님의 작품 만여 점 중 고르고 고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가 될 예정이다. 주로 미발표작이 중심이 될 것이라 한다. 스스로를 “숭악한 사람”이라며 남에게 주지도 않고 팔지도 않고 모아둔 작품들이 햇빛을 본다. 정변전과 서운암에서 몇 작품 보기는 했지만, 넓은 미술관에서 잘 배치된 작품을 한눈에 보면 드넓은 스님의 세계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려나. 좁쌀만 하지만, 나도 내 표주박 들고 가야겠다. 내 몫의 달을 깜냥껏 떠 와야겠다.


1) 스님의 족적을 살펴보고 싶다면 책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성파스님 말씀하고 김한수 쓰다)를 참고 하시길.

2) 스님이 전한 시 한 수는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의 시. 아들이 존경하는 스님이라는 말에 궁금해서 초의선사에 계신 일지암에 방문했다가 감화받아 쓴 시로 알려져 있다.


■ 통도사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055-382-7182 l www.tongdosa.or.kr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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