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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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이 나는 좋다

0 개 1,189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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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만 되면 어김없이 불러다 치료를 해 주는 안과병원. 그렇게 지금까지 수년동안 눈을 잘 지켜주어 밝게 살아가고 있다. 최첨단 기술좋은 시대에 살고있으니 행운이 아닐수 없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그 감사끝에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아득히 먼 옛날의 내 할머니.


지금와서 할머니를 생각하게 되다니. 내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도 이해가 되는 참으로 얄팍한 심성이 아닐수가 없다.

할머니의 시대에는 꿈도 꾸어볼 수 없는 세상을 지금 나는 살고있다.


인생 절반을 어둠의 고통속에서 운명이라 받아들이며 마음아팠던 고뇌의 여인. 할머니의 눈은 검은동자가 안보이고 온통 하얀 보로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방은 툇마루가 달린 건넌방이었다. 작은 몸집에 두 무릎을 세우고 바깥이 그리운듯 언제나 창문을 향해 그렇게 조형물처럼 웅크려 앉아 계셨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 에 선하다.


방 윗목에는 황금색 놋쇠자물통이 큼직하니 걸려있는 곱게 손 때묻은 반닫이가 있었다. 우리들이 놀다가 만지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그것은 할머니의 보물상자라고 생각하니 궁금해서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상을 탔다. 할머니께 제일먼저 자랑을 했다. 무엇이냐고 묻기에 고학년에 올라가야 쓰는 그림물감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칭찬을 해 주며 바로 손을 내밀었다. 신이나서 얼른 그 손에다 놓아드렸다. 할머니는 저고리 품 속으로 손을 넣는가 싶더니 번개처럼 돌아앉아 반닫이를 향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제 자리에 돌아앉아 있었다. 잘 뒀다가 쓸 때 주겠다는 말이 끝이었다.


저녁에 엄마에게 그 말을 했더니 엄마는 피식 웃기만 했다. 거기 들어가면 나오기는 틀렸다는 걸 식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린 나만 모르고 있었던거였다.


지금 쓸거 아니니까 나중에는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할머니는 당신관리에 철저하게 깔끔했다. 아침이면 언제 일어나는지 아는 식구들이 없었다.


일찍이 요강부터 부셔 들여놓고 방 청소며 정리도 한결같았다. 식구들이 거동할 때 쯤이면 할머니는 벌써 머리부터 단정하게 빗어 올리고 옷차림도 늘 흰 옷이지만 반듯하게 단아했다. 언제나 무심히 앉아 있는것 같은데 바깥 동정에는 기가막히게 빨랐다. 


며느리인 엄마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눈으로 본듯 확실하게 짚어내곤 했다. 할머니 눈이 안 보인다는게 거짓말 같아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새댁 시절은 행복했다. 피부가 유난히 희고 고운데다 인물도 좋아 동네에서 예쁜각씨 라고 호칭을 했다. 그러나 눈이 그렇게 되면서부터 할머니의 행복은 끝나 버렸다. 사십대 초반의 인생이 나락으로 절망의 삶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너무도 슬프고 불쌍한 여인.


엄마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야 했던 것도 할머니 때문이었다. 친, 외할아버지 두분이 단짝 친구였다. 사정이 급한 할아버지를 돕기위해 외할아버지께서 엄마를 서둘러 시집 보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잘 견딜수 있었다는 어머니. 그러나 아내를 고쳐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할아버지께서 안타깝게도 먼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시집살이가 시작된건 그 때 부터였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만만한 며느리를 통해서 분출시켰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살아가는 최선의 위안이었을까?


할머니는 매 끼니마다 쌀을 내 주었다. 밥을 지으면 번번히 엄마 몫의 밥이 없었다. 아버지가 밥을 나눠 먹어야 했으니 할머니는 하나만 알았지 아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을 생각못했던 것 같다.


세탁 비누조차 반동강으로 잘라내 주며 다 썼다고 하면 비누를 먹었느냐고 다그쳤다. 너무도 서러운 시집살이었다.


오죽 했으면 수도없이 한강변을 서성거리며 죽으려 했을까? 열몇살 어머니의 어린 마음에도 상처가 너무 깊었다.


가끔씩 이모들이 오면 몰래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조그만 노인네 앉은 채로 반짝 들어다 버리라고 해서 놀라고 겁도 났다.


우리들은 밤이면 할머니 방으로 모였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조곤조곤 참 재미있게 들려주곤 했다. 가끔씩 젊은 여인의 구슬픈 사연을 들려주면 우리들은 슬퍼서 눈물짓기도 하고 한숨도 쉬었다.


그 이야기는 할머니 당신의 한맺힌 이야기였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나들이 갈 일이 생겨 외출복이라도 갈아입으려면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비아냥거렸다.


“제 년이 새 옷이라고 입어봐야 수탉같을게 뻔하구만 쯧쯧쯧 . .”


할머니의 시샘과 심통이란걸 알만큼 우리들은 자랐다. 할머니보다 어머니가 더 불쌍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쯤 할머니는 치매증상까지 와서 어머니가 주는 밥도 안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삼촌을 결혼시켜 작은 며느리 밥이라도 챙겨드리려고 부모님들은 서둘렀다. 그런데 밥은커녕 혼례 때 절도 받을 수 없어 밖에서 허배를 할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작은 며느리 얼굴도 대면하지 못한채 할머니는 한많은 일생을 접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드디어 할머니의 반닫이가 열렸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니의 빨간색 머리빗은 아버지가 만주에 들락거릴때 어머니의 선물로 사 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끼던걸 딸 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청승스럽게 잘도 불고 다니던 오빠의 하모니카도 있었다. 만만한게 동생이라고 숨겨놓았으면 빨리 내놓으라고 닥달을 당했던 억울함이 생각났다. 그림물감도 물론 있었다. 가지고 있던 무언가가 안 보인다고 찾던것 들이 전부 반닫이 안에 있었다. 그러려니 했던 일이라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할머니의 비정상적 삶이 안타까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허접스러운 것들 맨 밑에서 색스러운 옷들이 차곡차곡 했다. 반듯하게 개어 놓은 비단 옷들이 날이선듯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그 옷들을 들추는 아버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에 그렁하게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가 시집올 때 친정이 대단한 부자였다고 했다. 혼수로 해 온 옷들이 고급비단으로 하나같이 화려했다. 그 옷을 절반도 못입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죽지못해 살아온 비통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다시 보는 아버지의 가슴이 미어졌다.


들추는 옷들 속에서 예쁜 비단 노리개가 툭 떨어졌다. 그 노리개를 보자 아버지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기여이 오열을 하고 말았다.


“이건 너 장가들 때 네 색시 줄꺼다”라고 자랑하던 어머니의 환한 얼굴표정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그 것을 엄마 손에 가만히 쥐어주었다. 일찍이 며느리에게 주려고 마련해 두었던 어머니 선물이었다며 흐느끼셨다.


두 분은 아이들 앞인것도 잊은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상밖에 빛도 못보고 어둠속에 갇혔던 고운 옷가지들을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며 통곡을 하고야 말았다.


할머니에게도 꽃다운 젊음이 있었다. 그 많은 고운 옷들 꺼내도 못보고 단절된 혼자의 공간에서 평생을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타고난 비운을 저주하며 삶 같지도 않은 삶을 살다간 한 여인. 그 고달픈 할머니의 한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았던 내엄마도 불쌍하긴 매한가지였다.


결국 할머니의 반닫이는 우리집 여인 2대의 슬픔을 품고있던 역사적 가보(?)였던 것이다.

    

비에 젖은 나뭇잎 하나가 달리는 차 앞 유리창에 살포시 날아와 앉는다. 무엇이 그리도 바쁠까? 금방 훅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문득 우리 인생도 저 잎새를 닮은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보면 아주 잠깐 스쳤을 뿐인 삶. 아둥바둥 살아보지만 떠나고나면 덧없는 한점 티끌인 것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할머니의 세상이 아닌게 지금 내겐 너무 다행이다. 비에 젖은 세상도 이렇게 아름답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 ....


그래서 나는 바로 지금 이 세상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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