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0 개 1,127 템플스테이

강진 무위사 ‘달빛 명상’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543_2619.png
 

달이 뜨는 산, 달 아래 마을

달의 아이들이 뛰놀고 

무위사 극락보전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

둥글게 달이 떠오르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충일하게 다정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부처님이 보았던 달이다. 그와 나 사이의 시공간을 삭제한다면 우리는 지금 저 달을 동시에 보고 있는 셈이다. 정수리부터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전율이 인다. 마침내 달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앉아 숨을 쉬며, 생생히 살아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달빛이 촉촉이 스며든다. 


달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초저녁 무렵이었다. 차창 밖으로 엄지손톱에 가려질 만한 크기의 돌멩이 같기도 하고 찹쌀떡 같기도 한 희고 둥근 구멍이 자꾸 쫓아왔다. 낮고 창백한 건물에 가려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새 옆에 다시 나타나서는 뚫어지게 쳐다보며 따라오던 눈 하나. 


서울 변두리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창가에 앉은 한 아이를 미행하던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맞닥뜨린 최초의 자아였을 것이다. 아이는 어지러워 엄마 무릎에 귀를 대고 누웠고, 그때부터 세상의 멀미를 시작했던 것 같다. 삶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된 순간이다. 


달이 차면 나타나는 것들


월출산 월하리 무위사.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스며든 강진과 해남, 완도, 장흥, 영암 다섯 개 군의 관문인 성전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절 이름과 지명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명상적인 그곳에서는 한 달에 보름달이 차는 사흘만 허락되는 ‘달빛 따라 마음 여행’ 템플스테이가 펼쳐진다. 


그날의 월출 시각은 오후 6시 12분. 하루 종일 날이 흐려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저기 먼 하늘 중간 중간 퍼런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월출 시간이 지나 천지사방이 초저녁의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거무스름한 구름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어느 하늘에서 갑자기 얼굴을 내밀 것도 같았다. 절집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기대감이 고조되었을 때다. 침침해 가는 사위에서 극락보전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단단하게 나이든 소박하고 정갈한 오래된 목조 불전이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청춘처럼 아미타여래삼존벽화를 배후로 아미타삼존불이 극락보전 가운데 열린 문으로 나투셨다. 오늘 당신들의 달을 기다리는 마음을 저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뜻밖의 연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란 말에서 어려움과 고결함이 분절되기 전인 고대의 희랍어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86_734.png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다


세종 12년,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중수하여 수륙사로 지정했다. 수륙사란 바다와 육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천도의식을 지내기 위한 절이다. 그러한 뜻을 담아 정성스럽게 불전을 지었고, 이승의 존재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셨다. 극락보전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후불 벽화와 그 뒤편의 신비로운 관음보살도를 바라보며 한이 많아 떠도는 중음신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달빛 따라 마음 여행의 첫 수행은 무위사 총무 항덕 스님을 따라서 무위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절의 역사며 전각들의 미학과 불상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었다. 수륙재를 지내는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마음 하나를 보태는 간절함이 되어 보는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마음…. 그 심정으로 극락보전을 다시 바라보자 그것은 불법(佛法)으로 하나하나 엮은 둥지 같았다. 


눈을 감고 다짐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믿지 못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 끊임없이 선의와 다정 쪽으로 마음을 챙겨 돌려야겠다.” 아미타여래의 협시불인 지장 보살과 관음 보살은 자비와 결기로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세 그루의 높고 그윽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는 극락보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무위사 템플스테이 오인숙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템플스테이의 다음 일정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71_6615.png
 

마음의 토끼를 찾는 시간


탁 탁 탁. 


허튼 생각 나부랭이 떨쳐버리고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내리치는 주지스님의 죽비소리. 단일하게 숨만 쉬면서 눈, 코, 입, 귀, 몸, 뜻 여섯 개 번뇌의 구멍을 꽉 틀어막으면 막다른 곳으로 토끼가 뛰쳐나와 단박에 품에 안길 거라고 인도하는 무위사 주지 법오 스님을 따라 참선하는 시간이다. 숨이 들어왔다 잠시 머물렀다가 빠져나가는, 달빛을 받았다가 머금었다가 사그라트리는 무위의 존재를 일깨우려 하심일까. 


아, 그러나 실재는 숨 한 번에 오만가지 생각이 틈입하고 어디로인지 모르게 빠져나갔다. 놓쳤다, 아니 토끼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 같고 나는 토끼를 잡을 발심조차 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큰 비가 지난 여름 쏟아졌다. 내륙으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지도에 없는 거대한 물웅덩이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최악의 호우가 여기 있었고, 저기에는 최악의 가뭄이 있었다. 바닥을 드러낸 체코 북부의 엘베강에는 가뭄의 역사를 새겨놓은 기근석이 발견되었다. 중세시대 돌에 새긴 글귀는 ‘내가 보이면 통곡하라’였다라고.


탁 탁 탁. 


참선의 마침을 알리는 죽비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법오 스님이 질문할 기회를 주셨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53_3837.png
 

다정하게 달이 다가와서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해가 떠서 밝은 시간을 낮이라고 하는데, 달이 떠 비추는 시간을 칭하는 말은 왜 없는 것일까. 달낮이라고 하면 될까. 일 년에 단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백중날이 가까운 때라 보름달이 떠 오를 것이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었으나 저녁 무렵이 되어서 점차 구름이 벗겨졌다. 그때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높다란 팽나무 가지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비쳤다. 그 순간이 너무도 짧아서 갸륵했다. 


나무의 나이까지 더해 칠백 살이 넘은 무위사 극락보전이 달빛을 머금자 순간 청춘의 모습이 되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렇게 나중에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는 오래된 목조불전은 조만간 보수작업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달의 아이들이 되어 극락보전 앞에 앉았다. 달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지만 눈앞으로 환하게 둥근 달이 다가왔다. 욕망과 폭력과 그리고 허무에게 끝없이 시달리느라 지친 몸과 영혼을 비추는 달은 그 빛과 기운이 다정했다.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에서의 달빛 명상이 인생의 한 컷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달을 볼 때마다 언제라도 그 기억 속으로 달려갈 것 같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218 | 2일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맥(不整脈)이 있어 심전도(心電圖)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고령자는 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73 | 9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5 | 2025.12.11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5 | 2025.12.10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5 | 2025.12.10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45 | 2025.12.10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3 | 2025.12.10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43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9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8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74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46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46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41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12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9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50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7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20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9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8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8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70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5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31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