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거꾸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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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거꾸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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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1,317 김지향

작년에 심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봄을 맞이하면서 내 마음을 화사하게 해주었다. 벚나무는 두 그루를 심었다. 한 나무는 가지가 하늘로 뻗는 것으로 내 방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에 심었다, 나머지 한 그루는 가지가 땅 쪽으로 향하는 나무로, 부엌 창에서 보이는 장소에 심었다.


부엌 쪽의 나무가 시원찮았다. 워낙 물이 잘 안 빠지는 곳이라, 그곳에 심었던 레몬나무도 뿌리가 썩어 죽었는데, 벚나무 역시 버티지를 못하고 죽고 말았다. 모래를 섞어서 넣고 물이 잘 빠지도록 땅을 다진 거 같았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곳에 한 뼘 정도 자란 난쟁이 수국들을 심어 놓았다.


난쟁이 수국들에 대해서 간단히 열거하자면, 작년에 꽃꽂이를 할 때 침봉가리개로 썼었던 것들이다. 다른 꽃들과 잎들은 다 시들어서 버렸는데, 수국 잎만큼은 시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 꽃꽂이할 때마다 사용하다가 아예 따로 작은 병에 꽂아두었다.


10cm도 채 못 되는 짧은 가지 밑에 하얀 뿌리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중 제일 괜찮은 것 하나를 작은 화분에 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는데, 예쁜 분홍빛 꽃을 피웠다. 한 줌의 흙 위에서 기를 쓰고 피운 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수국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레몬 나무도 벚나무도 버티지 못한 땅위에서도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몸보다 더 큰 꽃을 피운 채로.


갑자기 우리 집 정원이 풍성해져가고 있다. 빨간 단풍잎들이 자랑스럽게 하늘거린다. 수줍게 핀 벚꽃들은 내 마음을 쓸어내려주었다.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여린 몸으로 잘 버텨준 것이 마냥 고맙기만 했다. 울타리 아래 심은 수국들도 올망졸망 꽃망울을 맺고 있다.


우리 집 정원에도 생명의 에너지가 춤추는구나! 너무나도 삭막했었던 우리 집 정원. 내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그저 살기 급급해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도 힘들었던 지난 세월이 아득하기만 하다. 잘 버텼다. 잘 버텼어.


나를 버티게 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마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이렇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몸만 조금 더 젊었을 때로 돌아가면 된다.


요즘 나는 친구가 권유한 오디오북 ‘윌라’에 가입하여 소설들과 인문학 서적들을 성우들의 목소리로 듣고 있다. 걸을 때도 단순노동을 할 때도 음악 대신 듣고 있는데, 예상 이상으로 만족감을 준다.


엊그제 가입한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내가 마스터한 책들이 13권이나 된다. 예전에 읽고 싶었지만 못 읽은 책들부터 요즘 책들까지, 소설부터 인문학 서적들까지 닥치는 대로 듣고 있다. 오랫동안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한 한을 한꺼번에 풀기라도 하듯.


소설은 성우들의 목소리와 음향효과까지 합하여,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 같다. TV가 귀했던 시절에 라디오 드라마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 ‘길 잃은 사슴’을 연속극으로 방송했는데, 재미있게 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회기본능이라는 것이 있긴 하나 보다. 요즘 내가 어려서 먹었었던 반찬들과 어려서 들었던 음악들, 책들을 보게 되니 말이다. 젊었을 때의 패션이 다시 돌아오니 기쁘기 한량없는 것도 모두 다 회기본능 때문이리라. 



긍정심리학자들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는 엘렌 랭어 교수가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했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들을 불러 모아 마치 20년 전인 1959년인 것처럼 해 놓았다. 환경뿐만 아니라 육체 활동까지 그때와 똑같은 상황 속에서 일주일간 생활하게 한 실험이었다.


실험 전보다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고, 체중도 늘어났다. 지능도 높아졌고, 걸음걸이와 자세도 좋아졌다. 사진을 찍어 제 3자에게 보여주었더니, 실험 전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인다고 했다. 과거로 돌아간 생활이 정신과 육체를 더 젊게 만든 것이다.


회기본능에 따라 생활해 나가면 마음과 몸이 더 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아무튼 나는 요즘 머위를 따다가 쌈을 싸 먹고,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볶아 먹고, 된장국을 즐겨 먹으면서 옛날  입맛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뱃속과 마음 모두 다 가볍고 편안해서 좋다.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부터 김치도 된장도 멀리하면서 지냈었다. 혹여 키위들한테 김치냄새 마늘냄새 풍길까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향초와 방향제를 방패삼아 매일 한국음식을 해 먹으면서 지내고 있다. 그게 속이 편한 걸 어찌하랴.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있는 요즘. 아마 본능적으로 ‘시계 거꾸로 돌리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환경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워낙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깔맞춤인 오디오북마저 나에겐 거꾸로 돌아간 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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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이미 본 ‘파친코’를 시작으로 소설부터 듣기 시작했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소설들이었는데, 노련한 성우들의 배역부터 음향 효과까지 완성도가 상당히 좋았다. 걸으면서 단순노동 하면서 듣기에 딱 좋고, 그냥 혼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면서도 듣기 좋다. 


박경리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비극으로 귀결 되는 삶의 모습들이 가슴 아팠고, 그 속에서 마지막으로 피어나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기를 바랐다. 아무리 회기본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방송 드라마는 마음이 무거워져서 싫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들은 걸 보면 참. 


어쨌건 목말랐던 사슴이 허겁지겁 물을 마시듯, 나는 한 달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오디오책 읽기에 열중했다. 아니 들었다.


요즘 책에 더욱더 목이 말라있었던 것은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내 어휘력과 기억력은 내가 놀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이게 늙는 것이려니 하면서도 더 이상 두뇌가 늙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디오북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설도 인문학 서적도 잠자고 있었던 내 지능을 깨어나게 한다. 사라져가고 있던 자신감도 일으켜 세워주고 있고, 새로운 희망에 젖게 한다. 


지금 밖은 바람 소리가 매섭다. 도저히 밖에 나가기 싫게 만든다. 그래도 봄이 왔고, 오디오북이라는 좋은 친구도 생겼으니, 비가 방해하지 않는 한 나가보련다. 아무리 심한 바람도 잠재워 버리는 작은 숲 속을 거닐며, 거꾸로 도는 시간을 마음껏 누리리라.


그 누가 알랴~~ 이러는 동안 내 젊음이 시계 바늘을 타고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육신을 젊게 해줄지. 


더도 덜도 말고 딱~ 5년만 더 젊어지면 좋겠네. 이 정도 욕심은 부림직도 하겠지. 아냐~ 좀 더 부려볼까? 이런~ 갈수록 태산이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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