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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있다

soya
0 개 1,405 오소영

아무리 장수시대라 해도 누구나가 다 오래 사는건 아니다. 80대를 사는건 전체 인구의 불과 몇% 밖에 안되는 행운이란다.


병원엘 자주 드나들만큼은 아니었지만 허약하게 타고난 체질로 해서 늘 골골거리며 살았다. 한창때에도 수수깡에 눈박아 놓은 것 같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걱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기껏 잘 살면 70일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80을 훌쩍 넘겼다.


60에는 해마다 조금씩 늙는다고 한다. 70엔 달마다 늙으니 속도가 빨라진다. 80엔 날마다 늙는다고 하니 어제가 옛날이다. 그래서 밤새 안녕을 묻는다. 여든여섯 중반의 문턱도 넘어섰다.


그렇게 오래 사는 복도 고마운데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 꼿꼿하게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온전한 정신을 집중해서 매월 한번도 놓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으니 덤으로 받은 복중에도 대단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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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별하게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초조해 지기도 한다. 매일을 재촉하는 늙음을 무의미 하게 맞이하고 말 것인가. 이만한 시간을 아직도 허용해 주시는건 뭔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 분명 할텐데 . . .


삼년 전, 내 나이 여든셋 일 때 였다. 그동안 한번도 해보지 않던 큰 과제를 내 준 분이 있었다.


반드시 해 낼수 있다는 우회적인 설득이 더 위압적으로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림없는 일이었기에 못 들은걸로 지냈다.


내가 진즉에 썼던 어느 작품의 소재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수필로는 부족해서 아깝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소설로 좀 더 깊이있게 소재를 살려보라는 제안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공감하는 일이었기에 도전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내쪽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이 다르게 힘들어지는 늙은이의 상태를 몰라 하는 말 같았다. 겉으로 엄살없이 버텨사니 젊은 사람이 어찌 알턱이 있겠는가.


늘 마음 한구석에 빚을 지고 사는 기분으로 짓눌리며 살아야 했다.


까짓거 용감하게 덤벼들어봐? 틈새 시간만 생기면 그런 유혹에 빠져들었다. 아니야, 자신이 없어. 혼자서 자문자답 하기를 수 없이 했다. 그러나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세월은 정신없이 달려갔다. 코로나 록 다운으로 무료한 시간들이 하염없이 길고 지루할 때 였다.


어느 날 아무 생각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냥 무턱대고 생각나는대로 글씨를 찍어갔다. 70년전 머리속에 빼곡하게 저장된 이야기들이 누에고치에서 실뽑듯이 술술 잘도 기어 나왔다. 작업은 싱겁게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시간 될 때마다 하루에 단 몇줄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믿어주는 응원을 에너지로 삼으며 노력했다.


신들린듯 열심히 쓰다가도 허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더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내집 드나들듯 뻔질나게 치료 받는 눈이 빠질듯 아파오면 방법이 없다. 불가능 신호가 얼마동안이 될지 모르지만 무작정 쉬어야만 했다. 절연하듯 돌아 앉으면 컴퓨터는 무서운 흉기인양 바라보기 조차 두려웠다. 건강을 잃으면 끝이다. 편할리없는 마음을 혼자서 끙끙 앓으며 재 충전의 시간을 마냥 끌어야 했다.


얼마나 버텨내면 이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 을 하는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도 되었다. 시작 안한것만 못한 짓은 용서가 안되는 알량한 자존심은 또 뭔지 . . .


해가 바뀌고 또 하나 나이를 더 했다. 정초에 떡국 먹는 어느 모임에서였다. 글쓰는 일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젊은이들이었기에 내가 소설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이 누구에게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었는데 부끄럽고 민망해서 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혼자서 끄적이다가 정말 힘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 자신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의아한듯 서로의 얼굴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부정의 표현이었다.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말 한 사람에게 모아지는 의심의 눈동자들. 가벼운 웃음속에 비웃음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들로 주름 가득한 80대 할머니. 시시한 글줄이나 쓴다고 손자같은 젊은이들 속에 끼어앉아 착각이라도 하시나. 비현실적인 꿈을 말 하는 것이라고 믿는것 같았다.


잘 해 보라는 빈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줄줄 알았는데 . . . 그러면 그렇지. 본인 스스로도 믿지못하는 일을 그들이 믿어주기를 바라다니. 그것은 내 보잘것 없는 노욕에 불과했다.


그런데 기분은 왜 그리도 씁쓸한지 참으로 괜찮지가 않았다. 한동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수습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사실 나 자신조차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는 자신감 없는 작업이 아니던가. 하루 이틀에 끝낼 일도 아니니 내 늙음이 불안 했을지도 모른다. 의치로 질긴 떡쪼가리를 우물거리며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그래 당신들 생각에 동조 해 줄께 . . .)


그랬음에도 그 날의 기분은 영 지워지지가 않았다.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끝없는 오기로 꿈틀댔다.


내 의식이 허락하는 날까지 하다가 죽더라도 해 보자.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찬 결심을 하고 또 하게 되었다.


마음은 다졌어도 도전은 역시 어려웠다. 수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리기에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열네 살 꿈 많은 사춘기 소녀가 겪었던 칙칙한 그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체험을 기억해 내는게 고통스러웠다. 긴 세월 조용히 잠재운 의식들을 그때로 다시 깨어나게 하는게 너무 무서웠다. 인간이 마치 짐승처럼 우짓으며 죽어가던 포화속. 어린 동생을 낯선 곳 언땅에 묻고 몸부림치던 어머니의 모습 등. 처절함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마치 꿈에서 깬듯 깨어나면 정신이 멍해졌다. 의자에서 일어설 땐 현기증처럼 어지러움에 비틀대곤 했다.


이미 내 안에 자리잡은 어떤 책임의식 같은게 강한 에너지를 주는지 의외로 잘 견뎌내며 전진했다. 계속해서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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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머지않아 우리 세대는 끝나 버린다.


70년전 6.25전쟁 체험기를 생생하게 살아서 쓸 수있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 을 내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힘이 되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꼭지가 완성될 때마다 긴 한숨과 더불어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도 건강 주시어 착실히 해 냈습니다.”

그렇게 2년 여의 시간끝에 드디어 마지막 끝을 낼 수 있었다. 사막을 걸은 것 처럼 멀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원고지450여매를 썼다고 칭찬을 들었다. 작품다운 글이었는지가 중요하지 많이 쓴게 자랑은 아니었다.


감수에 무난히 합격을 한 것 일까? 충분히 책을 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출판을 서둘렀다.


심심할때 했던 그림 장난을 보고 삽화까지 그리라는 숙제가 또 주어졌다. 며칠동안 머리를 쥐어짜서 어찌어찌 그려내니 통과라고 했다. 나 아닌 누군가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열심히 마무리까지 했다는데 감사할 뿐 솔직이 작품성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출판을 하려면 거금도 필요했다. 내 생애 두번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뚜렷한 기록들이 있는 6.25전쟁. 14살 소녀적에 체험한 70년전 이야기를 80대가 되어서 그려낸 소설이었다.


내 피붙이가 주인공으로, 그를 기리고 영혼을 달래주려는 큰 뜻도 있었다. 80대 늙은 수필작가가 처음이지만 해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소설로는 처녀작품이지만 처음이자 다시없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남들이 재미없어 안본다면 나 혼자라도 두고 보자는 배짱으로 결심을 했다.


늘 아이 다루듯이 칭찬으로 힘을 실어준 박선생에게도 돌려드릴건 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2019년도 재외동포 문학상에 입상했을때 내 딸에게서 여든세살 인간승리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한번 인간승리에 도전장을 내미는 어미에게 이번에는 뭐라고 하는지도 듣고 싶었다.


열렬한 응원의 팬이신 ‘하이웰 재단’ 임헌국 회장님께서 고맙게도 일부 후원을 해 주셨다.


이제 예쁜 책이 나올 날만 기다리면 된다. ‘패랭이꽃 연가’라는 제목을 달고 11월 말쯤에 세상에 태어난다. 


늘 사랑으로 저를 아껴주시는 애독자 여러분들 새로 태어나는 책도 많이 사랑해 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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