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욕(老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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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老慾)

0 개 1,368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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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터인지 가슴이 뻐근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생각이 나면 어김없이 또 아팠다. 어느 날은 조금, 어느 때는 좀더 강도가 심했다. 웬만큼 아픈건 버티며 사는데 버럭 겁이 났다. 심장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병원에서 심장에 문제는 아닌것 같다고 해서 일단 안심은 되었다.


수영장 풀에 들어갈 때마다 스타트 봉에 매달려 300번 정도 자전거 타기를 하고 허리 돌리기를 했다. 팔 다리가 쭉 펴지는 느낌이 시원하고 좋았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문제인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처음인것도 아니고 전부터 늘 해왔던 것인데 새삼스레 문제라니 기분이 찜찜했다.


몸이 하루가 다르게 쇄약해지고 있는데 마음이 그걸 따르지 못하고 있으니 균형을 맞춰 살라는 신호였다. 


50대 중반쯤이었다. 건강관리가 필요한 때라며 운동을 권유한 사람이 있었다. 숨쉬기 말고 따로 운동이란걸 생각 해 본적도 없었지만 여건이 허락지도 않았다. 전업주부가 스스로 건강 챙길 여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그런 시대였다.


여름날 저녁 먹고 길에 나서면 골목마다 깃털같은 하얀 공 을 어른 아이 함께 어울려 많이들 치고 있었다. 그게 배드민턴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시하고 별것 아닌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배우려니 그게 아니었다.


꽤 여러 달을 따라다녔는데 결국은 안되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침 산뜻한 공기 마시며 산에 오르는 일이 그렇게나 좋을 수가 없는데 그만 두라니 슬며시 화가났다. 자존심이고 뭐고를 떠나서 혼자 무던히 연습을 했다. 시작한거 끝장을 보아야 하는 성격이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해보니 살아온 세월 탓이었다. 그 나이에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게임같은 것 못 끼어도 상관 안했다. 말벗하는 친구들도 생겨 갇혀 살았던 가슴도 뚫리니 좋기만 했다.


어느날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운동화에 묻은 흙을 털려다가 아얏 소리를 내고 주저앉았다.


무릎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병원에서 X선 촬영까지 마치고 내린 결론은 참으로 놀라웠다.


“몸 기계도 그만큼 썼으니 고장 날 때도 되었지요, 그냥 쉬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나만 그럴까? 자신의 허약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6.25 종전 직후에 버스비가 없어서 많이도 걸어다녔었다. 그래서인지 다리 힘만은 누구보다 튼튼하다고 믿었었는데 배신감마저 들었다.


자신의 처지를 착각하고 지나치게 혹사를 했다는 자책으로 그렇게 오래 지낼수 밖에 없었다. 많이 좌절하고 슬펐다.

쉬라고만 하지말고 치유하는 방법을 왜 안 알려주었는지? 무작정 쉬기만 하면 낫는 줄 알고 순응하고 따랐던 나도 바보였다.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을 탐하는 것만이 욕심이라고 생각했었다. 건강관리 한답시고 무리하는 것도 욕심이긴 매한가지다.  


이제 부질없는 욕심은 특히 노욕이라고 구분지어 지탄을 받기에 나이먹어 갈수록 더 조심스럽다. 현역에서 물러난만큼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살아야 어르신으로 대우를 받는단다.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눈치껏 조심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 먹어보니 제대로의 음식맛도 모르겠고 삼시세때 식사량 조절하기도 매우 어렵다. 어쩌다가 입에서 땡겨 좀 많이 먹으면 금방 탈이나니 배 부르게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아득하다. 아무리 맛난게 있어도 그림의 떡으로 생각하는게 현명할 뿐이다.


아직도 먹성스럽게 식사를 잘 하는 분들도 있어서 부럽기 짝이없다.


조금 먹으니 외출시에 허기질까봐 걱정이다. 백 안에 간식이라도 챙기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먹는게 바로 힘이기에  쓰러질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전에 노년의 여인들이 큰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게 늘 궁금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먹을것은 물론 약봉지며, 추울세라 바람막이 덧 옷이나 스카프, 비록 주름진 얼굴이지만, 여자라고 간단한 화장품 등, 때없이 샤워비도 잘 내리니 우산까지, 힘에 버거운 내 가방을 보며 웃음이 나온다.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와있는 것이다.


외식 자리에서는 식탐이 아닌 그 반대의 모습으로도 꼴불견이 된다는 걸 느낀다. 너무 많이 먹는 것도 그렇지만 옆에서 깨지락거리는 것도 재미없고 밥맛 떨어진다. 별맛 아니라도 복성스럽게 먹어주는게 바른 예의이기에 말이다.


이무러운 자리에선 남긴 밥을 싸 가지고 온다. 버려지는 밥이 아깝기도 하지만 죄를 짓는 것 같아서다.


우리 세대는 쌀 귀한줄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70년대만 해도 나라에 식량 사정이 안 좋아 명절때 떡가루에 다른 것을 섞어서 방앗간에 가지고 가야만 했다. 단속반에 걸리면 벌금까지 물었다. 


지금 2.30대 젊은이들이 들으면 아마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 알 것이다.


내가 남긴 밥을 싸 오는데 혹시라도 힐끔거리는 눈총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용서가 안될 것 같다.


관절에 워터워킹이 좋다는 새로운 정보가 귀에 달콤했다. 그러나 수영장 가기가 가당찮은 한국에서의 여건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며 뉴질랜드에 왔다.



목욕탕 가기만큼이나 편한 곳에 왔으니 수영장부터 찾았다. 막연하지만 큰 기대를 가지고 물에 발을 담갔다. 물을 유독 무서워 해서 지금까지 수영은 배울 생각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을 이겨내며 꾸준히 걷기를 시도했다. 아주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생기자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데려다 주는 것 만으로는 성에 차지않아 혼자 버스 타기까지 익히며 2년동안 정말 열심히 수영장을 들락거렸다.


고국에 나갈 일이 생겼다. 올 때 불편했던 다리가 아무렇지 않았다. 얄미울만큼 아팠던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기분이 멋졌다.


집에 가보니 그동안 주인을 잃었던 배드민턴 라켓이 창고 한켠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채 걸려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무조건 3개를 다 가지고 돌아왔다. 


친구를 불러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라켓을 나눠쥐고 조심조심 잔디밭을 뛰어봤다. 날아오는 셔틀콕을 가볍게 받아치며 날개를 잃었던 한마리 새의 비상처럼 가슴이 벅찼다.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날만큼 감격이었다.


아늑하게 숨어있는 양궁장이 우리들 놀이터 운동 마당이었다.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착각속에서 마냥 뛰었다.


녹슬어 있던 관절을 갑자기 무리해 썼던게 탈이란걸 이미 경험했으니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20여년 별 문제 없이 관리가 된 것은 늘 적당한 운동으로 녹스는 것을 방지해 온 덕이었다.  


배드민턴으로 뛰다가 등산으로 걷고 70대가 되어서는 골프로 나름의 단계처럼 끊임없이 움직였던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아직도 관절만큼은 이상이 없다. 그렇더라도 이젠 골프마져 2년 전에 끝냈다. 수순을 밟아서 적당한 때에 끝낼줄도 알아야 하는게 지금 나에게 맞는 것 같아서다. 18홀 골프 다 마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나오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생각하면 아쉽고 섭섭해서 마음 한 귀퉁이가 비어오는 느낌이지만 참고 살아간다.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해도 그게 사람 살아가는 순리인걸 어쩌리.


새다리 같이 가녀린 다리가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젠 녹슨 기계가 아니라 쓸만큼 다 써서 버려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건강한 장수가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몸은 시들어 가도 영혼만은 좀 더 오래 맑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욕심은 노욕이라고 미움받아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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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을 집에서 출발해 운동장 다섯바퀴를 돌면 4킬로미터가 된다. 기분에 따라 힘든 날도 있고 견딜만한 때도 있다. 힘들 때는 조금 줄이는게 무리 안하고 좋을 듯하다. 스스로의 안전장치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라고 평소 말씀하시던 친정 아버님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평생에 과함은 없었다. 늘 부족할 따름이었으니 아버지의 그런 말씀이 생각날 일도 그동안 없었다.


인생 다 저물어가는 이 때에 과한게 있다니 좀 웃습다.


건강 지킴이의 빨간 불을 수시로 보내는 몸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간절한 부탁을 하고 싶다.


백수 시대라는데 웬만하면 조금 봐주고 넘어가주면 안되겠니?...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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