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필요와 감동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야망과 필요와 감동

0 개 1,109 명사칼럼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고 ‘새 문서’ 창을 열기만 하면 바로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학교 가기 싫은 어느 날 시인 문병란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문 선생님은 해직 교수이셨고, 나는 학교 가기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둘 다 덩그러니 던져진 여유를 나눌 동료가 필요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함께 들으면서 놀다가 회심의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답하셨다. “글에 무엇인가를 많이 담으려고 애쓰지 말고, 빼려고 노력해봐라.” 그러면서 말씀을 조금 더 이어주셨다. “모든 연애편지는 다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넘치는 감정을 다 다듬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연애편지는 대개 다 대필하였을 것이다.”


e5e83e5b8d9f59760b00dedcc152c8d4_1657601959_8189.png
 

조각하는 작업은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일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생각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글쓰기를 할 때도 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고등학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생전 처음 들어봤다. 내게는 의외였고 생경했고 어리둥절했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 의외의 내용에 무척이나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이 감동은 지금까지도 당시의 색깔과 무게를 지키며 내 안에 살고 있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기만 하면 바로 떠올라서 내 글쓰기의 감독관 역할을 한다. 실력이 늘지 않아 글을 쓸 때마다 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일도 여전하다.


나는 왜 감동했을까? 문 선생님의 빼기에 관한 그 말씀을 1년 후에 들었거나 1년 전에 들었어도 그날 그 시간의 감동처럼 선명하고 무거웠을까? 다른 사람에게 들었어도 내가 그때만큼 흔들렸을까? 턴테이블에서 송창식이 돌고 있지 않고, 마당 가운데로 햇볕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어도 나는 떨렸을까? 학교를 빼먹은 불량기가 없었어도 그만큼 짜릿했을까? 하나의 감동이 찾아오기까지 수많은 진실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모여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감동을 이루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진다면, 감동은 지금까지 나를 흔드는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간에 나는 어떤 연유로 문 선생님께 글 잘 쓰는 비법을 묻고, 셀 수없이 많은 진실한 계기들이 한 점에 모여들어 감동으로 폭발하게 할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학교 공부는 싫었지만, 학교 담장 밖의 문장들에는 관심이 많았다. 몇 권의 시집을 읽었고, 헌책방에 가서 『사상계』를 몰래 사 읽었다. 수학 공식이나 원소 주기율표는 외우기 싫었지만, 시 외우기는 좋았다. 그 시절 외웠던 유치환의 ‘생명의 서’는 긴 시간 내 삶의 눈금이 되어준다. 나는 학교 담장을 넘나들며 문장에 눈을 뜨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장을 잘 세우고 싶다는 가당찮은 야망은 감히 내 의식의 표층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심장을 끌어당기는 문장들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궁금해한다는 것 정도는 나 자신에게 분명하였다. 당시의 나는 짜릿한 문장들이 태어나는 비밀을 알 필요가 있었다. 야망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자신을 감동의 길로 인도하는 교량이다.



나는 꿈이나 비전 등과 같은 점잖은 말 대신에 일부러 야망(野望)이라는 말을 쓴다. ‘야망’이라는 단어에서는 잘 훈련된 경주마의 거친 숨이 느껴진다. 정련된 훈련만 있고, 거친 숨이 없다면, 말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 꿈을 꾸더라도 거친 숨을 쉴 수 있는 내면을 갖고 있어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쉽게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야망은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에 자기 존재의 선한 바탕을 벗어나지 않는다. 야망이 지배하면 당연히 필요가 생기고, 그 필요를 채우느라 지칠 새도 없고, 부패할 새도 없다. 야망이 없으면 쉽게 지치고 쉽게 부패한다.


물건이나 제도나 이념이나 철학 등은 다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다. 막연한 것일지라도, 야망을 품은 사람은 문제를 발견하게 되어 있다. 언제나 야망을 채워줄 ‘필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요를 채워줄 문제가 행운처럼 눈에 들면, 그 사람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문제를 푸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던진다. 문제를 풀기 위해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우선 자기 자신을 감동시킨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감동하는 것, 이것이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다. 자신의 온(咸) 마음(心)이 다 반응하여 움직이는(動) 일이 일어나야 감동(感動)이라는 절차가 따라오는데, 자기 전체가 반응해서 자기 일로 받아들인 일은 안 할 도리도 없고 지칠 수도 없다. 지치지 않으니 멈추지 않을 수 있고, 멈추지 않으니 진부해지지 않는다. 삶의 생산자 위치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지치지 않고 진부해지지 않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쉽게 지치고 쉽게 부패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물건이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제도가 되었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들은 기실 다 감동의 산물이다. 삶에서 지치지도 않고 진부해지지도 않으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우선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가장 먼저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 출처: 중앙일보


■ 최 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 새말새몸짓 이사장

e5e83e5b8d9f59760b00dedcc152c8d4_1657602044_9532.png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451 | 7시간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270 | 7시간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155 | 7시간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59 | 9시간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14 | 9시간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94 | 9시간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99 | 10시간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181 | 14시간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74 | 4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31 | 6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78 | 8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04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43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5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69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1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

뉴질랜드 부동산 등기부등본 (Certificate of Title)은 공신력이 …

댓글 0 | 조회 725 | 2026.03.11
한동안 한국에서는 대규모 전세사기로 인해 뉴스가 떠뜰썩 했었지요. 그것과 관련해서, 혹은 집 구매와 관련하여 사기를 당한 뉴스에서도, ‘한국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더보기

준다는 것

댓글 0 | 조회 170 | 2026.03.11
시인 안 도현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빈손밖에 없다 할지라도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나 무엇 하나부러운 것이 없습니다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떨리는 내 손을 … 더보기

뉴질랜드•호주 의대 입시, 구조적 변화의 흐름

댓글 0 | 조회 341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뉴질랜드에서… 더보기

24. 와이아타푸 – 네이피어 바다에 잠든 정령

댓글 0 | 조회 145 | 2026.03.11
* 바다가 노래하던 시절아주 오래전, 지금의 네이피어 해안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신성한 울림의 장소로 여겨졌다. 그곳에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 더보기

결격 사유를 '면제'로 바꾸는 기록의 재해석 - Waiver

댓글 0 | 조회 370 | 2026.03.10
뉴질랜드에 오래 머물기를 원한다면, 건강 상태와 신원에 대한 확인은 이민 심사의 기본 요건입니다. 대체로 1년을 넘는 체류를 계획하는 경우에는 신체검사가 요청되는… 더보기

그 해 여름

댓글 0 | 조회 173 | 2026.03.10
오래 전 한국에서의 어느 봄, 나는 야트막한 언덕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 땐 꽤 외진 곳으로 주변엔 박석처럼 인분이 말라붙어 있는 시금치 밭과, 여러 종류의 채… 더보기

5편 – MK-울트라의 아이들

댓글 0 | 조회 203 | 2026.03.10
“지워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뿐이다.”프롤로그 - 2030년 3월 1일, 네바다 사막 ‘구(舊) 블랙사이트’모래폭풍이 지나가자 … 더보기

SMC 문턱이 나를 위해 낮아지나?

댓글 0 | 조회 616 | 2026.03.10
(부제 : 8월, 신규 영주권 카테고리 도입과 중간시급 완화 대환영)뉴질랜드 이민부는 지난해부터 드문드문 소식을 전하면서 2026년 8월 시행될 SMC기술이민에 … 더보기

오늘 해야 할 일

댓글 0 | 조회 272 | 2026.03.10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점심은 누룽지 섞인 쌀 밥에찬물 말아 오이지 한 조각씩밥 숟가락에 얹어 먹을 수 있기를아내 손끝으로잘 펴서 널어놓은 청바지 걷어 입고햇볕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