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빵구지는 지금 어찌 변해 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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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빵구지는 지금 어찌 변해 있을까? 궁금하네요

0 개 1,387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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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집들 사이로 골목길을 빠져 나가면 갑자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야가 환해진다.


멀찍이 앞을 가로막는 뚝길이 길게 뻗어있다. 그 뚝엔 들풀들이 지천으로 엉켜 자라고 있다. 들풀 사이사이에는 앙증맞게 작은 꽃들이 붉게 노오랗게 방긋거리며 피어 웃고 있다. 마치 서로 다투어 봐 달라는 아양같이...


그 뚝방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토끼풀꽃을 따서 꽃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웠다. 색스러운 꽃들로 화환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공주놀이를 했다. 누구 것이 더 예쁜지 시샘을 하며 치마폭에 꽃을 따 담았다.


뚝방 반대쪽에선 ‘또다닥 또다닥 또다다닥 또다닥’... 불협화음의 메아리가 언제나와 같이 들려왔다. 모진 시집살이 한을 풀기라도 하는가? 젊은 여인들의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거칠었다.


뚝에 올라서면 푸른 물살 한가득 넘실거리는 강이 눈앞에 확 펼쳐져 있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길엔 두 줄 마차길이 나 있고. 강 쪽 뚝방은 큼지막한 돌들로 촘촘하다. 햇볕에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그 위엔 만국기처럼 색스럽게 빨래들이 널려있다. 


왼쪽으로 멀찍이 돛을 내린 배들이 무수히 출렁거리고 있다.


아침 일찍이 싱싱한 제철 생선들이 살아있는 빛깔로 배에서 내려지는 마포나루. 비릿한 내음이 바람결에 묻어와 코끝을 자극했다. 차띠기 물건들은 벌써 실려나가고 한나절 소매 상인들의 장마당이 북새통이다.


아가씨 종아리처럼 매끈하고 통통한 무는 장단에서, 꿀처럼 부드럽고, 달디단 고구마는 옹진 기름진 밭의 것이란다. 껍질을 벗기면 노오랗게 빛깔도 예쁜 육질이 부드럽게 입 안으로 쪽 빨려 들어왔다. 치아가 신통찮은 할머니는 늘 그 고구마만 찾으셨다. 농산물은 주로 황해도의 것이 맛이 있어 역시 그 곳 땅이 기름지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은빛 눈부신 밴댕이가 살아서 펄펄 뛴다고 소리친다. 밴댕이 성질급해서 그럴리 없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모른척 속아주는 사람들. 물건을 고르기보다는 장사꾼들의 외치는 입담이 더 구수하고 재미 있었다.


엄마를 따라나서면 무언가를 반드시 손에 들려주는 것도 좋았지만 장마당 풍경을 더 즐겼던 것 같다.


한강의 마포나루가 교역의 장터였던 시절,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몰려오는 온갖 물건들이 언제나 그 곳 배에서 풀려 나왔다.


쉬고있는 빈 배들까지 한가할 틈 없는 강가, 짙푸른 물밑에선 송사리떼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어린 아이들을 유혹했다. 손에 잡힐듯해서 고무신짝 벗어들고 뛰어들어가 첨벙거려 보지만 그 날쌘 동작에 놀아나 옷만 흠뻑 적실뿐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마치 강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다. 바위벽이 물 가운데로 툭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다.


바쁘게 흘러가던 물이 막혀서 잠시 쉬었다가 돌아나가는 곳. 거긴 시퍼런 빛깔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깊어 잔모래도 올라오지 않는다. 벽에 막혀서 또한 아늑하기까지 하다. 거기가 바로 여인들의 빨래터 한강의 돌빵구지다.


그 곳을 빠져나간 물살은 마주치는 물살과 부딪히느라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 버린다. 거친 물살을 바라보기만 해도 무섭다. 위험지역인걸 명심하듯이 빨랫돌이 박힌데서만 빨래를 했기에 사람이 많은 날은 돌 차지도 힘들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물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돌아앉은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고집같은 그 이유를 알게된 것은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였다. 



어머니가 열세살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시집을 온건 할머니의 건강 때문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 친 할머니가 병중에 실명을 하게되자 살림이 급한 할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민며느리로 달라고 졸랐다.


어린 딸을 시집보낸건 외할아버지의 의리때문이였다. 친구의 인품을 알고 있기에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리라 생각하셨던 외할아버지였다. 그러나 병중에 실명까지 하게된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의외로 혹독했다.


배고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한강에 빠져죽자고 강 가에서 서성대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어린 시동생이 형수의 치마폭에 매달려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귀찮고 싫었지만 엄마 대신으로 따라다니는 어린게 가엽기도 했다. 차차 정이 들어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빨래터에는 데려갈 수가 없어서 몰래 눈치를 봐가며 다녀야 했다.


어느 날 빨래함지를 이고 살금살금 나서는데 눈치를 챈 시동생이 울면서 따라나섰다. 먹을 걸 손에 쥐어주고 달래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시어머님은 아이 울린다고 야단을 쳤다. 


어쩔수가 없었다. 내 말 잘 안들으면 큰일난다고 당부에 겁까지 주며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하며 연신 강가에서 놀고있는 시동생을 살피기에 바빴다. 또래의 아이와 어울려 곧잘 놀고 있었다.


아주 잠깐 사이였다. 갑자기 어느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아이가 물에 빠졌으니 어쩌느냐고 일어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빨래하던 여인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강 쪽 깊은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이가 물속에서 정신없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깜짝놀란 어머니는 아이가 놀던 쪽을 바라 보았다. 아이는 거기에 없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아이는 벌써 저 밑으로 흘러가 시커먼 물 바위벽 가까이에서 곤두박질을 했다.


어머니는 미친듯이 소리쳤다. 사람살리라고 비명에 가깝게 절규했다. 아이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면서 어머니가 정신없이 물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세차게 물밖으로 어머니를 밀어 내동댕이 쳤다. 잠시 혼절을 했던 어머니가 정신을 차렸을 때 희미하게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세상에 장한 사람도 있지. 어쩔뻔 했어”


아이를 바닥에 엎어놓고 물을 토하게 처치까지 하고는 기진해서 그대로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있었다. 옷도 입은채로였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채 겁부터 나서 어찌할 줄 모르는 어머니였다. 누군가가 빨리도 집에 알린 모양이었다. 놀라서 달려온 아버지가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 남자는 아이를 들어 아버지 등에 업혀주며 어서 집으로 데려가서 잘 간호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동생을 업고 휭하니 가 버렸다.


어머니는 빨래할 기운도 없고 넋이 나간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빨래터도 점점 비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봐야 시어머니께 꾸중만 들을 터였다. 아이만 업고 훌쩍 가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보다 아이는 무사한지도 두려웠다.


처얼석 처얼석 강물 흔들리는 소리만 들릴뿐.


너무도 조용한 강변. 물로 뛰어들어가 그냥 빠져 죽었으면 싶었다. 아버지가 데리러 와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렸다.


시동생이 무사하다면 챙길줄 알았는데 혹시라도 잘못된게 아닐까? 어머니는 점점 무서운 생각만 들었다.


사방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물로 뛰어들 자신도 없으니 일어서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중병을 앓은 사람 같았다.


신세한탄이 절로났다. 가뜩이나 두려운 시집살이인데 앞 이 캄캄했다. 살뜰히도 챙겨주시던 시아버님 정 믿고 지냈는데 그분은 왜 그리도 빨리 돌아가셨는지... 겁내지말고 들어가라는 인자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집에 왔지만 선뜻 대문 열 자신이 없어 또 서성거렸다. 굴뚝뒤에 숨어 앉아서 집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집안은 너무도 조용했다. 나쁜 일이 생긴 것 같진 않았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긴장이 풀렸는지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멀지않은 곳에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소식을 들었다며 궁금해서 오시다가 굴뚝밑에 쪼그려 잠 이든 딸을 보고 놀랐다.



그 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어찌됐을까? 어머니는 오랜세월 그 때의 매정했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질타했다. 부부 싸움에서 아버지가 늘 백기를 들어야만 했던 옛날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빨래터에 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강을 뒤로하고 돌아 앉아야만 하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삼촌이 어른되고 그 또래의 아빠가 된 때에도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빵구지 빨래터.


그동안 헤일 수 없이 많이 두드리고 보내버린 세월. 어머니의 시집살이 서름은 그래서 버티어 낼 수 있었던걸까?


6.25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우리는 한강을 뒤로했다. 지금의 돌빵구지는 어찌 변해 있을까? 너무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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