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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한인 물리치료사가 있다. 한때 한국의 치열한 투자은행(IB) 업계에서 근무했던 임경우 물리치료사(Core A Physio)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스포츠 현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40대라는 늦은 나이에 과감히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교 물리치료학과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쳤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35년간 매주 코트를 누벼온 지독한 농구 마니아이기도 하다. 오른쪽 다리 인대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햄스트링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겪으면서도 결코 운동을 쉬지 않았던 정열의 스포츠맨이다. 이처럼 자신이 직접 겪은 수많은 부상의 아픔은 역설적이게도 환자의 고통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치료하는 물리치료사로서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뉴질랜드 땅에서 자라나는 어린 학생 선수들을 위해 따뜻한 스포츠 자원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하며 교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임경우 물리치료사를 만나 그의 특별한 도전 스토리와 치료 철학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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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병원 물리치료사로 활동
오타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뉴질랜드 국립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인버카길과 혹스베이에 위치한 국립병원을 거쳐 노스쇼어 병원까지 수년간 근무하며 정형외과, 내과, 신경계, 심혈관계 재활병동, 물리치료 외래 등 병원 내 다양한 부서를 두루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종류의 질환과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며 임상 경험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이석증과 같은 전정기관 이상 관련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병원 내에서 전정계 전문 치료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TMJ 턱관절 질환, 팔다리 절단 장애 환자, 뇌졸중 및 파킨슨병 환자, 척추 수술 환자 등 다양한 중증 환자들의 재활 치료를 전담해 왔다. 국립병원이라는 큰 무대에서 마주한 이 치열한 경험들은 치료사로서 나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쌓은 수년간의 임상 경험은 현재 개인 클리닉을 개원하여 환자들을 마주할 때도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특정 부위의 통증에만 매몰되지 않고 환자의 전체적인 건강 상태와 신체 균형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며, 보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최적의 맞춤형 치료를 처방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쌓은 수년간의 임상 경험은 현재 개인 클리닉을 개원하여 환자들을 마주할 때도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어린이 농구클럽 코치 재능기부
‘블랙타이거 농구클럽’은 화려한 스포츠 클럽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로 3년째 비영리로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한인 어린이 농구 동호회다. 현재 1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즐기고 있는데, 사실 이 클럽의 시작은 나의 ‘아들’이었다. 처음에 몸이 다소 허약했던 아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단둘이 시작했던 농구 트레이닝이 지금 클럽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아들과 둘이서만 연습을 하다 보니 아들이 쉽게 지루해하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아들의 친구들을 한두 명씩 초대해 함께 뛰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현재 우리는 매주 일요일 오후, 언스워스(Unsworth) 지역의 한 교회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모여 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 클럽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자부심은 단순히 아이들을 학원에 맡기는 구조가 아니라, ‘아빠들이 함께 뛰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주말마다 아빠들이 직접 나와 아이들의 훈련을 어시스트하고 함께 시합을 뛰며 교감한다. 나는 아이들을 단순히 운동 학원에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와 아들이 눈을 맞추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뜻깊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러한 진심이 통했는지 아빠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클럽의 규모도 계속해서 커졌다. 현재 블랙타이거는 외부 리그에 참여하기보다는, 각자 소속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의 개인 기량 향상을 위해 전문적인 스킬 트레이닝과 연습 게임 위주로 내실 있게 운영하고 있다.
골프관련 물리치료로 활동
30대 중반에는 골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단순히 취미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골프를 정말 잘 치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미골프지도자연맹(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획득했고, 당시 한국의 프로 3부 리그에 출전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골프에 필요한 신체 메커니즘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서 TPI(타이틀리스트 퍼포먼스 인스티튜트) 과정을 이수했고,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가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이 골프를 더 잘 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흔적들이다. 하지만 실제 대회에 나가 마주한 엘리트 스포츠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프로 3부 리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출전 선수들의 실력은 압도적이었고, 결국 뒤에서 두 번째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냉정한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 미래의 진로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을 워낙 좋아했던 데다 향후 누군가를 돕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 두 가지 열망이 만나는 교집합에 바로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이 있었다. 그렇게 늦은 나이이지만 뉴질랜드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한 도전을 결심했었다. 지금은 물리치료사가 되어 현장에서 환자들을 마주해 보니, 과거에 내가 겪었던 수많은 스포츠 경험과 훈련, 그리고 부상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고 전문성 있는 치료사로 만들어 주었음을 실감한다. 지금도 국제대회를 나가거나 직역 전국 토너먼트를 나가는 전문적으로 스포츠를 하려는 친구들을 위해 치료뿐만 아니라 컨디셔닝, 코아트레이닝, 달리기 퍼포먼스 교정 및 부상방지 트레이닝을 제공하고 있다.
3대가 함께 찾는 가족 주치의 클리닉 구축
물리치료사로서 나의 목표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전문 대형 클리닉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부터 부모, 조부모까지 ‘3대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족 주치의’가 되고 싶다. 특히 육아와 일로 손목·허리 통증을 앓는 어머니들이 재발 없이 스스로 운동할 수 있도록 실전형 재활을 지도하고 있으며, 아빠들의 만성 요통과 어르신들의 관절 통증 치료를 위한 전문 장비 도입에도 힘쓰고 있다. 전문성을 갖추되 누구나 문턱 없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따뜻한 의료 공간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글, 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