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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푸른 자연 속에서 자라난 한 소녀에게 ‘한국’은 한때 숨기고 싶은 억양이었고, 잘라내고 싶은 조각이었다. 하지만 도망칠수록 그림자는 짙어졌고, 사회는 끊임없이 그녀의 ‘뿌리’를 물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붓을 든 소녀는 비로소 캔버스 위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발견했다. 미술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며 ‘가장 나다운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양화의 여백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되찾고 두 세계를 잇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 중인 김혜원(Alice Kim) 학생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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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위에서 방황하던 이민 2세대의 고백
현재 마리스트(Marist) 13학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나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이민 2세대 한국계 키위로 자라며 늘 두 문화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일부러 더 키위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려 노력했다. 한국 음식을 피하고 한국어 억양을 숨기며, ‘다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한국을 조금씩 잘라냈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조상과의 연결, 그리고 제 뿌리까지도 조용히 끊어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뉴질랜드는 나에게 끊임없이 “너의 뿌리(Roots)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사회였다. 자신의 조상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와카파파(Whakapapa)’의 가치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환경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동양화의 여백에서 발견한 자부심
그 긴 여정 속에서 나는 한국의 전통 미술, 특히 불교 미술과 동양화를 만났다. 절제된 색, 숨 쉬는 여백, 한 획에 담긴 집중과 수행의 시간. 그 그림들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수백 년을 건너온 정신과 태도였다. 그 예술적 깊이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그 안에는 내가 잊으려 했던 시간과 조상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동양화를 마주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과 뉴질랜드는 서로를 지워야 할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롭게 결합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예술적 모태와 성장 그리고 MJ 미술학원
나의 예술적 감각은 아마도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디자인을 공부하셨기에, 내가 자라는 환경 속에서 예술은 늘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공기와 같았다. 집 안에는 항상 스케치와 색채, 다양한 시각적 자극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나에게 창작이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지극히 당연한 일부였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셨고, 초등학교 시절 나의 미술적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MJ 미술학원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예술을 대하는 본질적인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MJ 미술학원은 나를 특정한 틀에 가두기보다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식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개방적인 환경을 경험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답 같은 그림’을 그리는 법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를 찾는 법을 배웠다. 현재 내가 여러 스타일을 과감히 실험하며 독자적인 시각적 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시기에 쌓은 경험들이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선언, 어느 한쪽이 아닌, 두 세계
내가 나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투영했던 작품 중 하나는 작년 ‘Secondary Schools Arts Award’에 출품했던 유화 작품 <Where I Stand, What I See>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화면의 배경에는 한국 전통 궁중 병풍인 ‘일월오봉도’의 형상을 차용했고, 그 중앙에는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마오리 조각상 ‘티키(Tiki)’를 배치했다. 처음 구상할 때는 이질적인 두 문화를 한 화면에 담는 것이 마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붓을 놀릴수록 깨달은 것은, 두 이미지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깊게 비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림 속 일월오봉도의 산과 해, 달은 나의 뿌리와 조상을 상징하며, 그 중심의 티키는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뉴질랜드라는 땅과 현재의 삶을 의미한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존재다. 작업을 이어가며 나는 비로소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서로 다른 문화적 상징을 물리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한 나의 첫 번째 ‘정체성 선언’과도 같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결핍의 감정을, 양쪽 모두를 품을 수 있다는 풍요로운 가능성으로 바꾼 소중한 기록이다.
예술, 나를 발견하는 가장 정직한 언어
현재 미술 대학 진학을 목표로 NCEA Scholarship Art 및 ‘NCEA Top Art’ 선정을 위해 매일 치열하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단순히 기술적으로 뛰어난 화가를 넘어 내면의 이야기와 독창적인 시선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매체와 개념을 실험하고 있다. 나에게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기술이 아니라 한국과 뉴질랜드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흔들리던 정체성의 고민을 해결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캔버스 위에서 붓을 움직이며 답을 찾아가는 가장 정직한 과정이다. 이처럼 나는 정체성의 경계 위에서 발견한 나만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확장하며, 두 세계를 아우르는 나만의 예술적 언어를 단단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글, 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