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슬펐던 크리스마스의 기적

너무도 슬펐던 크리스마스의 기적

0 개 2,421 서현

한 해가 바뀌기 직전이었던 지난 2022년 12월 30일(금). 


전 세계 언론에는 호주 서부에서 발생한 안타까우면서도 기적을 본 듯한 교통사고 소식이 일제히 실렸다.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겨우 5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부모가 모두 숨진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어린 동생들을 살리고 이틀이 넘는 무더위를 견딘 끝에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는 소식이었다. 


새해 처음 발간되는 이번 호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돼 지금까지도 호주에서 계속 전해지는 소식을 중심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우리에게 희망과 인간애의 의미를 깨닫게 하면서 또한 우리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만든 이들 세 아이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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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크 데이와 신디 브래덕 부부의 가족사진


<크리스마스 맞아 할머니에게 가던 일가족>


사건은 ‘제이크 데이(Jake Day, 28)’와 ‘신디 브래덕(Cindy Braddock, 25)’ 부부가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각각 5살과 2살, 그리고 태어난 지 몇 개월 된 아기 등 모두 3명의 자녀를 데리고 길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일행이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 WA)주의 주도인 퍼스(Perth)에서 동북동 쪽으로 97km가량 떨어진 ‘위트벨트 지역(Wheatbelt region)’의 ‘노썸(Northam)’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크리스마스 당일인 12월 25일(일) 이른 새벽. 


당시 이들이 타고 있던 차는 적갈색 ‘랜드 로버 디스커버리(Land Rover Discovery)’ 4륜구동차였는데, 기름을 넣고자 주유소에 들렀던 이들 부부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이는 노썸의 한 주유소 직원이었다. 


나중에 직원은 지역 언론에, 이들은 새벽 1시 11분에 주유소에 도착했고 연료를 주입한 뒤 화장실을 거쳐 주유소 안으로 들어와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그때 남편인 데이는, 자신이 동쪽에 위치한 ‘콘디닌(Kondinin)’으로 가는 중이며 그 마을은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몹시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면서 다시 길을 떠나는 그에게 ‘먼 길 운전에 행운을 빈다’고 말했었다고 증언했다. 


이들 가족은 콘디닌에 있는 데이의 집에서 데이의 엄마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아침식사 자리를 갖고자 이른 시간부터 밤길을 나섰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이들은 끝내 아침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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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집힌 사고 차량의 모습


<사고 후 55시간 만에 발견된 아이들>


결국 이들이 집에 도착하지도 않고 또 아무런 소식조차 없자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은 복싱 데이인 12월 26일(월) 오후 3시 무렵에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는 한편 콘디닌에 사는 가족과 친척들은 차를 몰고 직접 이들을 찾아 나섰다. 


또한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민들에게도 이들의 안위가 크게 걱정된다며 이들을 봤거나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은 연락을 달라고 호소했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경찰도 곧바로 긴급 경보를 발령하고 수색에 나서면서, 이들의 차량과 부부의 신원 및 사진을 공개하는 한편 이들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도 함께 알리고 인근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인구가 불과 300여 명에 불과한 콘디닌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도 비상이 걸려 이들은 찾았지만 목적지였던 콘디닌을 불과 10여 km 앞둔 곳에서 차가 뒤집힌 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은 이들이 주유소를 떠난 지 이틀 넘게 지난 뒤인 12월 27일(화) 오전 11시 50분경이었다. 


사고 지점은 국도 40호선 중 ‘코리긴-콘디닌(Corrigin-Kondinin) 로드’가 ‘사익스(Sykes) 로드’와 만나는 교차로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이 지역은 대부분 농장이 들어선 높낮이가 거의 없는 넓고 평탄한 지역으로 이곳을 지나가는 도로들도 대부분 직선으로 뻗어 있다. 


당시 차량은 직선 구간에서 도로 옆 둑과 부딪힌 후 도로를 약 10m 정도만 벗어난 상태였는데, 하지만 나무들로 가려져 도로 위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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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현장 부근의 도로


<본능적으로 동생 보살핀 5살배기 누나>


당시 사고 현장은 노썸에 사는 가족의 가까운 친구가 가장 먼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현장에 도착한 긴급구조대는 이미 사망한 데이와 브래덕 부부의 시신을 차 안에서 발견했다. 


그런데 당시 5살의 어린 소녀와 2살짜리 남아는 차를 벗어나 바깥에 나와 있었으며 가장 어린 남자 아기만 차 안에 남겨져 있었는데, 아기의 카시트는 벗겨진 상태였다. 


사고 위치와 이들이 노썸을 떠났던 시간 등을 감안해 보면 사고는 주유소를 떠난 지 얼마 안 된 25일 이른 새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결국 부모가 숨진 상태에서 아이들은 구조대가 발견한 27일 정오 무렵까지 55시간가량 방치된 채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셈이다. 


당시 이틀 동안에 한낮 기온은 30C나 됐으며 간식거리와 약간의 물 외에는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상태였는데, 특히 가장 어린 아기는 5살짜리 누나가 카시트의 ‘잠금장치(buckle)’를 풀어준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결국 숨지고 말았을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곧바로 2대의 RAC 헬리콥터로 퍼스 아동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처음에 5살과 2살 어린이는 탈수 증세 외에는 치명적인 부상이 없었지만 막내는 머리에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라고 전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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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현장의 지도


<전 세계에 보도된 크리스마스의 기적> 


한편 이 소식이 전해지자 호주 언론은 물론 영국과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언론에서도, 비극적인 사고에서도 아이들이 무사한 것은 마치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기적과 같다면서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특히 겨우 5살의 어린 소녀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외딴 사고 현장에서 무려 이틀이 넘는 긴 시간 동안에 본능적으로 동생들을 보살펴 결국 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큰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 


이후 호주 현지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 안위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걱정이 됐던 막내도 검진 결과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에 따라 3명 모두 빠른 시간 내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뉴스가 입원 하루 뒤에 전해지기도 했다. 


데이의 사촌인 마이클 리드(Michael Read)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5살의 어린 누나가 신속한 판단과 용기로 동생들을 살렸으며 그 아이는 평소에도 밝고 총명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가족과 친지들은 이번 비극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며, 하지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세 아이들이 앞으로 자랄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이 될 거라고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또한 비극적인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이번 휴가 기간 중 길을 나서는 이들은 운행 중 피곤하면 반드시 휴식을 취하라고 당부하면서, 자신의 몸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라고 경고했다. 


콘디닌 마을 주민들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사고 현장을 찾아 조화를 놓고 부부를 애도했는데, 이 지역을 담당하는 브루스 브라우닝(Bruce Browning) 위트벨트 시의원은 아이들이 도로에 그처럼 가까이 있었는데도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한 게 경악스럽다면서, 이번 사건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너무도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사고 원인은 계속 조사 중이라면서, 부근에서는 지난 10월에도 트럭과 승용차의 충돌로 6명의 자녀를 둔 34세 여성이 사망했었다고 전했다. 


또한 WA 경찰은 해가 바뀐 직후인 1월 초에 집계된 잠정 자료를 통해, 2022년에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안에서 전년의 162명보다 12명이 늘어난 174명이 각종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경찰 관계자는, 주도인 퍼스에서 62명이 사망한 반면 인구가 극히 적은 퍼스 바깥 지역에서 112명이나 숨졌다며,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작년에 20명이나 미착용자가 사망했다면서, 이와 더불어 속도를 늦추고 휴식을 취하는 등 운전습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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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이 발생한 지역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모인 15만 달러>


한편 사건 발생 후 1월 2일(월)부터 이들을 돕기 위한 기부 모금이 ‘GoFundMe’를 통해 시작됐는데, 열흘이 지난 1월 12일(목) 저녁 현재 1만 9000명이 넘게 모금에 동참해 목표로 했던 5만 달러를 훌쩍 넘긴 15만 2000 호주 달러가 모였다. 


모금이 시작되자마자 하루 만에 5만 8000달러가 모였으며 기부자 중에는 2500달러를 기부한 사람도 있었고 호주 국내는 물론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 수많은 나라에서 모금에 함께 했다. 


이들 부부를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주유소 직원도 당시의 안타까웠던 만남 과정을 모금 사이트에 댓글로 설명하면서 동참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단순히 모금에만 동참한 게 아니라 댓글을 통해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한편 아이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면서, 특히 5살짜리 어린 누나의 행동에 감동했고 아이들이 모두 무사한 점에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희망을 생각하게 됐다는 이들도 많았다. 


영국에 산다는 한 기부자는, 비극적인 뉴스를 보자마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비록 작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새해에는 아이들과 남은 가족들이 평안하기를 바란다며 200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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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적으로 생존한 3명의 아이들


해당 모금 사이트의 개설자 중 한 명인 캐시 가이어(Casey Guyer)는, 비록 부모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호주 아웃백의 거친 환경에서 아이들이 살아난 건 천사가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라면서, 모든 기금은 장례식 비용과 함께 아이들의 의료비와 이후 자라는 데 쓰일 것이라고 적었다. 


또한 그는 나중에 추가로 단 댓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과 희생자의 관계를 물었다면서 자기는 제이크 데이의 사촌이며 사고 직후 병원에 있던 아이들을 찾아갔었고 강인하게 살아남은 아름다운 아이들에 대한 많은 기부에 정말 감사하다고 적었다. 


또 극히 힘든 시기에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쓴 뒤, 아이들은 현재 병원에서 나와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잘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한편 GoFundMe 모금 외에도 같은 주의 칼굴리-보울더(Kalgoorlie-Boulder) 지역의 한 카페 대표가 11일(수) 오전 5시부터 오후까지 러닝머신에서 마라톤을 하면서 모금에 나섰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카페를 찾아 그를 격려하고 모금에 동참하는 등 해당 지역의 주민과 사업체들도 아이들을 위한 신탁기금 모금에 따로 나서는 등 여러 곳에서 모금이 진행 중이다. 


또한 현지로부터 1월 12일(목) 이어진 소식에 따르면, 현재 퍼스에 머무는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이 공개된 가운데 앞으로 할머니가 아이들을 맡아 키울 예정이고 이를 위해 아마도 조부모가 콘디닌으로 조만간 이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이들이 기뻐하고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에 참혹한 사고로 졸지에 부모를 잃었지만 드라마 같은 기적을 보여준 세 어린이들이, 주변의 따뜻한 도움 속에 희망을 품고 잘 성장하기를 독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간절히 빌면서 올 한 해를 시작하고 싶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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