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를 넘긴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여전히 일하면서 일터에 회색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뉴질랜드처럼 정년이 없는 호주, 영국 등 비교 대상 국가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의 65세 이상 키위들이 아직도 일선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고령층의 경제 참여 실태와 함께 엄연히 존재하는 고령층의 어려운 구직 현실 등에 대해 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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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70세는 예전의 50대 - 더 건강해진 시니어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노령화에 대한 특별 보고서를 함께 발표했다.
‘실버 경제의 부상: 노령화의 세계적 영향’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22년 29개 선진국과 12개 신흥국의 50세 이상 100만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2022년 70세는 2000년 당시 53세와 동일한 인지능력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력과 폐활량 등 신체능력 또한 2000년 당시 56세와 같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는 더욱 오래 살 뿐아니라 정신적, 신체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보고서는 건강 개선만으로 2025~2050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연 0.4% 포인트 끌어올릴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한 기대수명 증가와 출산율 감소로 세계 각국의 경제가 급격히 고령화되면서 오는 2035년까지 모든 선진국 경제는 인구학적 터닝 포인트를 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학적 터닝 포인트는 전체 인구가운데 15~64세 생산가능 인구에 대한 비율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해를 말한다.
2070년까지 대부분의 저소득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라 연금에 대한 지출이 늘고 의료 등에 사회적 부담이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질적인 은퇴연령은 그대로인채 기대수명이 연장되면 개인들은 더 길어진 노후 준비를 위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면서 금리 하락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금리와 저인플레가 이어지면서 경제 성장세가 낮아지고, 건강하지만 세계적인 고령화로 남은 21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생산량 증가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앞으로 역동적인 경제보다는 정체된 경제를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보고서는 고령화가 앞으로 50년 동안 세계 경제 성장의 주요한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65세 이상 키위 24% 일하고 있어
기대수명이 늘고, 일할 수 있는 노인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은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근로자가 일찍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면 국가의 부양 부담이 높아지는 만큼, 정년 연장을 통해 이를 상쇄하려는 목적도 있다.
정년 연장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다.
지난 2017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개편한 한국에서도 8년 만에 재개편 논의가 불이 붙었다.
한국은 작년말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24만4,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법정 정년이 60세인 일본은 더 일하고 싶은 근로자가 있다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했다.
프랑스는 연금개혁안을 필두로 62세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독일은 66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뉴질랜드에서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83세이고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로 18세의 격차가 있고, 이 격차는 기대수명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커지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노령연금 비용 증가도 문제다.
지난해 노령연금으로 총세수의 17%인 230억달러가 지출됐고,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경우 10년 안에 세수의 20%를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은퇴위원회에 따르면 65세 이상 뉴질랜드인들의 24%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뉴질랜드처럼 정년이 없는 호주의 12%와 영국의 10%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역시 정년이 없는 미국의 19%보다도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근로자 수는 22만5,000명으로 뉴질랜드 전체 300만 근로자의 약 7%를 차지한다.
20년 전 2.5%에 비하면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은 오는 2040년대에 7~11%, 2070년대에 7~15%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65세 이상 근로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업은 기계작업자와 운전사(10.3%), 매니저(9.1%), 육체노동자(8%), 전문직(7%) 등이 있었다.
70세 이상에서는 매니저(4%), 육체노동자(3.7%), 전문직∙사무관리직∙영업직(3%)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80세 이상에서는 매니저들이 가장 많았고 90세 이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1,257명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필요와 삶의 만족 등이 일하는 주된 이유
더욱 많은 고령층이 일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비 급등 문제가 있다.
생활비가 급등하면서 노령연금과 은퇴 저축 만으로 생활하기에 빠듯해진 고령층이 직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고 있는 것이로 풀이된다.
특히 고령층의 주택 소유율이 감소하면서 많은 무주택 고령자들이 주택 소유를 기초로 산정한 노령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게 됐다.
사회개발부에 따르면 노령연금과 임대보조금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2019년 12월 3만4,279명에서 2023년 12월 4만7,223명, 2024년 12월 4만8,78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노령연금을 받는 인구는 총 92만8,029명으로 나타났다.
은퇴위원회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트타임 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65세 이상 응답자의 36%는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일을 놓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64%는 주로 본인이 원해서 일을 한다고 응답했다.
고령자들이 일을 하는 요인들로 정신적 자극, 목표 의식, 여윳돈 마련, 재무적 안정감 등이 꼽혔다.
회계법인 ‘베이커 틸리 스태플스 로드웨이(Baker Tilly Staples Rodway)’의 인사 담당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수석은 세무계와 법조계 등 전문성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 서비스 부문에 많은 고령 근로자들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이트 수석은 “장수가 분명한 요인이다. 건강한 상태이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하고 싶어한다. 재정적인 차원에서 더 오래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고령인에게 일은 삶의 만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65세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65세는 곧 지나가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며 단지 또 하나의 나이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65세가 되면서 받는 노령연금 수령액은 계속 일을 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단지 임금과 노령연금을 합해 총소득으로 됨으로써 납부해야 할 세금이 높아질 수 있다.
지난 2019년 시니어를 위한 취업 사이트를 개설한 이안 프레이저(Ian Fraser, 75세)는 50대와 60대 초의 사이트 이용자들은 풀타임 일자리를 찾고 60대 중반 이상 이용자들은 파트타임 또는 고정기간 계약직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프레이저는 그 자신이 60대에 겪었던 구직 실패에 자극 받아 시니어를 위한 취업 사이트를 만들었다.
구직 신청을 75번 했지만 인터뷰로 이어진 신청은 단 한 번 뿐이어서 실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그의 사이트를 이용하는 웨어하우스, 하비 노먼 등의 기업들이 불만족한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면 업무에 고령 근로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고용주와 직원들이 모두 고연령인 소규모 회사들에서도 충원할 경우 종종 나이 많은 직원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전에는 고령의 구직자가 젊은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할 때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러한 경향이 많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비욘드 리쿠르트먼트(Beyond Recruitment)’의 리자 비즈(Liza Viz) 대표는 경험, 전문성, 충성심, 직업 윤리 등 고령 근로자들의 가져오는 장점을 고용주들이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즈 대표는 팬데믹 이후 고용 형태가 변하면서 고령 근로자가 늘었다고 밝혔다.
즉 팬데믹 이후 파트타임, 재택근무, 유연한 근무형태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고령의 근로자를 더욱 채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1,000번 구직 신청해 두 번 면접받았다는 50대 구직자
뉴질랜드에는 일정한 정년이 없고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차별이 불법이라고 해도 고령의 장벽을 넘은 구직이 쉽지 않은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온라인 언론 매체 ‘스터프(stuff)’가 최근 소개한 한 사례는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최근 이혼한 57세의 로나 토드(Rona Todd)는 비교적 쉽게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1,000번의 구직 신청 결과 단지 두 번의 인터뷰 기회만 주어지면서 크게 낙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드는 작년 이혼 전까지 남편이 트럭 운전사로 일했기 때문에 가끔 파트타임 직을 가졌지만 일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이혼 후 남편은 경력을 살려 호주에서 쉽게 직업을 구했지만 1,000여 곳에 이력서를 보낸 토드는 단 두 곳에서만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녀가 지원했던 한 창고 포장직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1,400여명의 구직 신청이 몰릴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캔터베리의 라이프스타일 주택에서 살던 토드는 수입이 없어지면서 작년 애쉬버튼의 작은 집을 구입해 이사했고, 1년이 지난 지금 실업수당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재산세, 보험료 등 공과금도 제대로 납부할 형편이 못돼 집을 팔려고 하고 있다.
토드는 “내 사용 기한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많은 일자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고령의 이혼녀 또는 전직 전업주부를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컴퓨터 과정을 이수하고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대형 면허도 땄지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되면서 “아무도 신규 기술자를 채용하려고 하지 않는데 왜 훈련을 받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결혼 시절에는 돈 걱정 없었던 토드는 현재 미용실에 제때 갈 형편도 못 된다고 얘기한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경험과 성숙함이 가치를 받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탈락에 자존감이 무너졌다.”
자신의 경험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 토드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50대 여성의 반응에 놀랐다고 밝혔다.
시니어 취업 사이트를 운영하는 프레이저는 그의 사이트를 이용하는 7,000여명 중 65%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프레이저는 “고령자들이 분투하고 있다. 구인 광고마다 500명 이상이 지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계속해서 탈락되는 것은 정신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실업률로 구직이 어려워졌고 일부 고용주들이 고령 구직자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인식은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