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계속적인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고 있다. 2021년 말 주택 버블 붕괴 이후 가격 상승세가 멈췄다.
최근 뉴질랜드 부동산협회(REINZ) 주택가격지수는 2023년 초 반등 이후 그 기세가 식으며, 2025년 9월 기준 1년간 1.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하 효과가 주택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이 내년에 거래량이 늘면서 본격적인 회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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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15개월 동안 3% 포인트 인하
뉴질랜드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2분기 0.9% 감소하면서 경제 전문가들 예상보다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나자 중앙은행은 지난달 8일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했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빅컷을 단행한 것이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2022년 7월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낮은 2.5%로 떨어졌다.
기준금리는 작년 8월 이후 8차례에 걸쳐 모두 3% 포인트 인하됐다.
인플레이션이 목표 범위인 1~3% 내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차입 비용을 더 낮출 여유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앙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중기적으로 목표 범위 중간대인 2% 근처에서 지속 가능하게 안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의 이번 결정이 뉴질랜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낮아진 금리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 경기 회복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경제 회복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ASB의 닉 터플리(Nick Tuffley)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결정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전 예상보다 약해질 가능성이 경제가 얼마나 빨리 반등하고 현재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인해 어떤 파급 효과가 발생하는지 기다리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목표 범위 상단에 근접했지만 뉴질랜드 경제에 유휴생산능력이 있어 국내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키며 내년 중반까지 2% 전후로 돌아갈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3분기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3%로, 2024년 2분기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
낮아진 금리는 차입 비용을 줄여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앞으로도 경제 상황에 따라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중앙은행이 성명에서 추가 완화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밝힌 만큼, 경제 회복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더 많은 부양책이 나올 수 있다.
웨스트팩(Westpac)은 중앙은행이 오는 26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0.25% 포인트와 0.5% 포인트 인하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3분기 국내총생산도 0.2% 증가에 그쳐 경제 회복 신호가 미약할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0.25% 포인트 인하를 확실시하고 있다.
웨스트팩은 0.5% 포인트 인하 가능성을 30~35%로 평가했다.
금리 인하에도 집값은 하락
통상 금리가 하락하면 주택시장이 활기를 보이지만 1년 여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 행진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REINZ에 따르면 전국 주택 중간가격은 지난 9월 77만달러로 2024년 9월의 78만2,000달러에서 오히려 1.5% 떨어졌다.
지난 9월 오클랜드 주택 중간가격은 97만8,000달러로 1년 전 97만달러에 비해 0.8% 상승에 그쳤다.
전국적으로 9월 주택 매매량은 6,346건을 기록해 1년 전 6,153건에 비해 3.1% 증가했지만 오클랜드에서는 1,925건으로 1년 전에 비해 5.6% 감소했다.
매매가 성사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43일로 1년 전보다 6일 단축됐다.
오클랜드에서도 43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이 지역의 9월 10년 평균인 40일보다 3일 늘어난 것이다.
지난 9월 전체 주택 판매의 14%인 889채의 주택이 경매를 통해 이뤄져 1년 전 12.2%보다 증가했다.
9월 시장에 나온 주택 매물은 9,394채로 작년 9월보다 1.3% 늘었다.
오클랜드와 웰링턴에서는 시장에 나온 주택 매물 재고가 20개월 연속 연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REINZ의 리지 라일리(Lizzy Ryley) 대표는 “중앙은행의 10월 기준금리 0.5% 포인트 인하와 추가 인하 시사, 그리고 계절적 성수기와 맞물려 부동산 중개인들은 주택시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보회사 코탈리티(Cotality)의 켈빈 데이비슨(Kelvin Davidson) 수석 부동산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인구 증가율이 저조해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앞으로 인구 증가나 이민 회복에 따라 수요가 움직일 수 있다”며 “정부의 토지공급 및 승인절차 개선이 중장기적으로 시장 신뢰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조용한 이유
계속적인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주택시장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ASB의 옌 구엔(Yen Nguyen)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이 조용한 기본적인 이유를 주택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보았다.
“주택 공급은 계속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에 노동시장 악화와 이민 감소로 인한 주택 수요는 약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지난 9월 시장에 나온 주택 매물은 거의 1만채에 이르고, 오클랜드의 경우 주택 매물 재고가 20개월 연속 연간 대비 증가했다.
시장에 주택 매물이 충분함에 따라 구매자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급할 일이 없어지면서 주택 가격 상승을 제한했다.
또 금리가 낮아졌더라도 직업에 대한 불안정성과 높은 실업률은 주택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대출 실행을 주저하게 만든다.
실업률은 지난 2분기 5.2%로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구엔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시장이 개선되면 주택시장에도 보다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주택 수요에 기여하는 이민 수준도 작년 말 이후 현저히 줄고 있다.
8월말 기준 연간 순이민 증가는 약 1만600명으로 1년 전의 5만1,600명에 비해 거의 80% 급감한 수준이다.
팬데믹 이후 한층 높아진 생활비는 특히 생애 첫 집 구매자들과 자기 자본이 적은 주택 구매 희망자들에게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분기 2.7%에서 3분기 3%로 오르며 팬데믹 이후 물가 상승 압력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주택시장 호황기에 깔려 있었던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상대적 소외감과 두려움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은 사라지고 구매자들도 더욱 신중한 접근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집값이 2021년 고점 대비 떨어졌다고 해도 아직 소득에 비해 높은 점도 주택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무역 전쟁과 미국 관세와 같은 글로벌 불확실성도 뉴질랜드 경제와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데이비슨 이코노미스트는 “낮아진 금리는 주택시장을 지탱하는 가장 힘든 몫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하지만 많은 매물과 지속적인 노동시장 약세, 소득 대비 부채 비율과 같은 대출 제한 등은 성장의 속도를 누그러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주택시장 회복은 언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주택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효과는 전체 경제와 소비자 행동을 거쳐 시간차를 보인다.
노동시장이 개선되고 전체 경제가 개선되지 않는한 의미있고 빠른 주택시장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택 거래량은 낮아진 금리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그동안 쌓인 매물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가격 상승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주택가격은 팬데믹 이전 5년간 연평균 8% 오른 후 코로나19 부양책 직후엔 30%까지 급등했다가 이후 급락했다.
주택 부문은 뉴질랜드 GDP의 15%를 차지하고,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집값이 하락하면 소비 둔화, 건설 침체, 고용 위축 등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이 오를 땐 그 효과가 하락 때만큼 강하진 않다.
뉴질랜드에서 집값과 경기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해묵은 논쟁이다. 경기 침체로 집값이 약한 것인지, 집값이 약해서 경기 회복이 더딘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 칼럼니스트 버나드 히키(Bernard Hickey)는 “뉴질랜드 경제는 주택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집값이 회복의 견인차가 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실질적인 반등은 내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ANZ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많은 매물과 약한 모멘텀으로 올해 남은 기간이 집값이 전반적으로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0.25% 포인트 추가 인하되면서 경제와 주택시장이 동시에 점진적인 회복을 보일 내년에 집값이 5%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 세계 주요국 실질 주택가격 변동 비교 (자료: 웨스트팩)
웨스트팩은 지난 9월 발표한 주택시장 보고서를 통해 주택시장이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올 한해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지난 3년 간의 집값 하락을 마감하고 올해 집값이 0.6%로 미약하나마 상승 마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의 실질 주택가격이 올해 거의 변동이 없는 원인의 많은 부분은 주택시장이 팬데믹 시기의 분출 이후 혼수상태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뉴질랜드의 실질 주택가격은 지난 5년 동안 주요 선진국들보다 크게 롤러코스터를 탔다는 것이다.
웨스트팩은 뉴질랜드 주택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은 2026년부터라며 주택시장이 점진적으로 개선되면서 내년 집값이 5.4%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