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지난 2024년 전체 대금 결제액의 약 94%가 전자 결제로 이뤄질 정도로 세계에서 현금을 가장 사용하지 않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뉴질랜드 매장들에서 이뤄지는 거래의 약 6%만이 현금으로 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지난 2월 뉴질랜드가 완전히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해선 안된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이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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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현금 사용 빠르게 감소
현금 없는 사회는 지폐, 동전 사용을 줄이고 신용카드, 체크카드, 모바일 결제 등 비현금 지급수단으로 대금 결제 행위를 치르는 사회를 뜻하는 용어이다.
뉴질랜드는 2000년 이후 현금 사용이 빠르게 감소했다.
중앙은행은 지난 2016년 위조 방지 등을 위해 새로운 지폐를 발행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홀로그램 창이 추가된 새로운 20달러, 50달러, 100달러 지폐들보다 현금 없는 미래 사회에 더욱 쏠렸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접촉 없는 결제 방식을 장려하며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추세를 앞당겼다.
중앙은행의 2023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적인 구매에서 현금 사용률은 2019년 95.8%에서 2023년 57.2%로 현저히 감소했다.
성인의 80%는 가끔 현금을 사용하고 56%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며 8%는 현금이 유일한 결제 수단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는 기존 입장과는 반대로 현금 접근성을 강화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현금 없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된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이전에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책무만 부여됐으나 지난 2011년 중앙은행 책무에 화폐유통시스템 효율성 책무를 새롭게 부여했다.
중앙은행 책무에 현금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중앙은행 현금 서비스 지원 확대 계획
중앙은행은 지난 2월 현금 서비스 표준에 대한 공개 협의를 위해 발표한 문서에서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하는 거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현금 서비스 가능 지점을 시중은행들이 추가로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 천 개가 안된다면 수 백 개의 ATM이나 현금 서비스 지점 설치를 시중은행들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에게 무료로 사용되는 이 ATM이나 현금 서비스 지점들은 인구 1,000명 이상의 도시 지역에서는 3km 이내 도보권에 설치하고, 인구 200~1,000명의 농촌 지역에서는 15km 이내 자동차로 운전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구 1만명당 2.5개소가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지난 10년 동안 뉴질랜드 은행 지점의 40% 정도가 폐쇄됐고 남아있는 지점들의 영업 시간도 크게 축소됐다.
ATM은 종종 제한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자 수수료를 부과한다.
은행 지점과 ATM이 줄어들면서 특히 농촌 지역의 현금 접근성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은행은 사람들이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에 쉽고 충분하게 접근할 수 없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노년층이나 농촌 지역 주민 등 디지털 결제에 취약한 계층을 고려해야 한다며, 완전한 현금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은행의 이안 울포드(Ian Woolford) 현금국장은 “현금은 고객과 은행 관계의 필수 요소이다”며 “은행들이 현금 제공 장소를 줄이는 추세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은 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중 은행들이 운영되는 ‘사회 면허’라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체의 72%가 지급 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할 수 없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나타났다.
중앙은행은 다수의 은행들이 한 곳에 모여 모든 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중 은행 허브’를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모든 현금 서비스에는 현금 출금과 입금, 현금 교환 등을 포함한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들이 다중 은행 허브를 설치한다면 전국에 1,288개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현재는 모든 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허브는 전국에 마틴버러, 오포티키, 트위젤, 와이마테, 황가마타 등 5곳에 불과하다.
중앙은행은 하나의 은행 단독으로 기준을 맞추려면 현재 ATM이나 지점 수의 두 배로 증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현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소유 지점은 616개이고 ATM은 1,543대가 있다.
또 은행이 소유하지 않는 ATM이나 현금 서비스 제공 점포는 1,500~1,600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은행이 새로운 기준의 현금 서비스 지점이나 ATM 증설을 독자적으로 할지, 아니면 다른 은행들과 협업할 지는 자율적인 결정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울포드 국장은 중앙은행의 제안이 추가 설치 비용을 넘는 사회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은 현금 서비스 추가 설치로 은행들이 부담하는 연간 비용은 1억400만달러지만 공공에 대한 적절한 현금 서비스 제공은 뉴질랜드에 연간 28억3,000만달러의 혜택을 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은행들이 부담하게 될 비용은 은행권의 연간 100억달러 이상 세전 수익에 비하면 1%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만약 은행들이 현금 서비스 추가 설치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한다면 평균 대출 금리를 0.018% 포인트 올려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즉 현재 대출 금리가 4.5%라면 4.518%로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들간 경쟁으로 그러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사회 전체의 혜택을 고려하면 결과는 괜찮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은행은 현금 사용이 소규모 사업체들에 생산성 혜택을 주고, 사회 전체적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기부 등으로 웰빙 혜택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금 없는 사회, 거래 비용 절감과 투명성 제고 장점
은행권은 ATM과 은행 지점을 늘리려는 중앙은행의 계획에 반대했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은 필요할 때를 위해 현금을 보유하려는 키위들의 바람과 일치하지 않는 태도라고 맞받았다.
울포드 국장은 “우리는 지역사회들과 많은 의견을 나눴고, ATM과 은행 지점 증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며 “사람들이 현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논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은행협회 로저 뷰몬트(Roger Beaumont) 회장은 “중앙은행의 ‘특이한’ 제안은 갑자기 나왔다”며 “이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은행들은 소도시에 ATM 한 대를 유지하는데 연간 수 천 달러가 들어가는데 사용률이 급격히 낮아진 상황에서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매시 대학의 클레어 매테스(Claire Matthews) 교수도 중앙은행이 요구하는 정도의 많은 ATM과 은행 지점이 실제로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매테스 교수는 “현금은 비위생적이고 다루기 귀찮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만 현금을 원하지는 않고 소규모 사업체들도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이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재해시에는 예외적으로 현금이 필요하지만 ATM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존 키(John Key) 전 총리도 뉴질랜드인들은 보통 현금을 찾기 위해 ATM에 가길 원하지 않는다며 중앙은행의 제안을 비판했다.
그는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수표를 없앤 첫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며 “중앙은행이 앞으로 5~15년 동안 디지털 서비스를 낮추고 현금 거래를 늘리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금 체계는 뉴질랜드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경제라고 지적했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투명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현금 지급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카드발급이 어려운 청소년 등 금융 취약계층의 경우,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빨라질수록 다양한 금융 서비스로부터 소외될 우려도 커질 수 있다.
여전히 필요한 현금의 역할
뉴질랜드는 현금을 보호하는 규정이 없다.
어떤 사업체가 고객으로부터 현금으로 지급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현금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최근 현금 판매를 거부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이와 관련, 중앙은행 울포드 국장은 상인들이 현금 수령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울포드 국장은 해외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고 현금 서비스 확대 관련 공개 협의가 마감된 후에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금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사용되기 때문에 여전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금은 재난시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을 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울포드 국장은 앞으로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도입 계획과 관련, 울포드 국장은 그 프로젝트가 보류 중이라고 밝혔다.
대신에 중앙은행은 결제 시스템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현금에 대한 접근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관리와 안정성에 관한 것이다.
여전히 간편결제나 모바일 금융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존재하고 해킹 등으로 인한 위험성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금이 많은 사회에서는 자기 현금만 잃어버리면 되는데 해킹은 전재산을 가져가는 금융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와이카토 지역에서 데어리를 운영하는 마가렛(Margaret)은 “어떤 고객들은 여전히 20달러 지폐를 내는 것을 선호한다”며 “ATM이 40km 떨어져 있다면 큰 불편이 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디지털 결제 수단과 기술, 은행 온라인 거래에 대한 신뢰가 없는 ‘디지털 하위계층’ 형성을 우려한다.
현금은 상품•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개인의 보편적 이용권을 보장하고, 자본과 국가권력의 감시 속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국가 입장에서도 거시경제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디지털 결제를 추진하면서도 현금 사용을 막는 건 주저하기도 한다.
디지털 결제가 보편화된 스웨덴의 경우, 2020년 중앙은행법을 통해 시중은행의 ATM 설치를 의무화했다.
영국은 2021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물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현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ATM의 감소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뉴질랜드는 유난히 짧은 전환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중앙은행이 제안한 현금 서비스 확대 계획 이외에도 이동식 ATM 도입과 지역 상점에서 현금 인출 서비스 제공, 고령층 대상 디지털 금융 교육 확대 등의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