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은퇴세대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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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는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이 곧 부의 시작이다”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대출로 집을 산 많은 가정이 ‘부정 자산(negative equity)’, 즉 집값보다 빚이 더 많은 상황에 처했다.
예전에는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집이 꼭 최고의 투자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금리 인하와 투자 시장의 다양화로 인해 ‘집을 사느냐, 아니면 투자하느냐’의 선택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현재 뉴질랜드의 공적연금(NZ Super)은 65세부터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해 20~30년 내에 연금제도가 지금처럼 유지되기 어렵다.
재무부는 “2065년까지 연금 수급 연령을 72세로 올려야 재정이 버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즉, “국가연금만 믿고 은퇴를 준비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의미다.
많은 중장년층이 “은퇴 후에도 살 집이 있고,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2025년 현재 뉴질랜드 주택시장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코탈리티(CoreLogic NZ)에 따르면, 최근 몇 달간 집값이 소폭 상승했고, ANZ은행은 “2026년에는 약 5%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모기지 대출 잔액도 3,850억 달러를 넘어, 작년보다 약 5% 이상 늘었다. 금리 하락 기대감 속에서 새로운 주택 대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부채도 함께 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많은 돈을 대출 상환에 쓸 것인가, 아니면 투자에 돌릴 것인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뉴질랜드 시장조사기관 TRA의 조사에 따르면, 뉴질랜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부’도, ‘행복’도 아닌 바로 ‘재정적 안정감(financial stability)’이다.
TRA의 콜린 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집은 벽돌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실제 자산이에요.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안전함’을 가장 신뢰하죠.”
즉, 사람들은 ‘이 집이 내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심리적 평안을 중요하게 여긴다.
돈의 가치가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 ‘집’의 진짜 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집을 꼭 사지 않아도 안정된 삶을 산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30년 이상 장기 임대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2024년부터 ‘무기한 임대계약’을 의무화했다.
세입자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고, 집주인이 임의로 계약을 해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다르다. 임차인은 언제든 집주인의 통보로 집을 비워야 할 수 있고, 임대료도 지난 25년간 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해왔다.
즉, “집을 안 사고 임대한다”는 선택은 주거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위험한 도전일 수 있다.
금융전문가 팀 페어브라더(Tim Fairbrother)는 이렇게 말한다.
“주택 구입과 투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소득, 나이, 위험 선호도에 따라 다른 해법이 있습니다.”
그는 실제 수치를 들어 설명한다.
• 현재 뉴질랜드에서 100만 달러짜리 집을 빌리면 연간 약 5만2천 달러의 임대료가 든다.
• 만약 그 돈을 주택 대신 투자해 세후 6% 수익을 얻는다면, 연간 약 4만 달러의 수익이 생긴다.
즉, 단순 계산으로 보면 투자 수익만으로 임대료를 다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은퇴 후에도 일정 부분은 NZ Super나 추가 저축으로 보완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적으로 보면 집을 사서 모기지를 갚는 것은 일종의 ‘강제 저축’이다.
은행에 매달 돈을 갚는 부담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산이 쌓인다.
반면 임대+투자 전략은 스스로 절제하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시장이 흔들리면 투자금을 빼고 싶은 유혹이 크다. 따라서 투자 전략은 자기 통제력과 장기 시야가 필수다.
현재 뉴질랜드 정부는 연금제도 개편을 검토 중이다.
재무부는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 이상으로 올리고, 향후 72세까지 단계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심플리시티(Simplicity KiwiSaver)의 창립자 샘 스텁스는 이렇게 말한다.
“100만 달러짜리 집을 갖고 있어도 생활비가 없으면 부유하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주거비 걱정이 없다면 연금만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죠.”
즉, 집이냐 투자냐의 선택은 결국 ‘내가 어떤 은퇴를 원하느냐’의 문제다.
안정된 주거를 원하면 집을, 높은 유동성과 수익을 원하면 투자를 택하는 것이다.
“내 집이냐, 투자냐” - 뉴질랜드 세대별 은퇴 전략의 갈림길
뉴질랜드에서는 여전히 ‘내 집’이 인생의 가장 큰 자산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금리, 인구구조, 주거 형태가 빠르게 변하면서 세대별로 ‘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1. 50~60대: 집은 ‘안전벨트’, 그러나 유동성은 부족
현재 50대 이상 세대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삶의 성취이자 안정의 상징이다.
이 세대는 1990~2000년대 초반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과 완화된 대출 기준 덕분에 집을 마련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집값은 올랐지만 현금흐름이 막힌 ‘자산가 빈곤층(Asset rich, cash poor)’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집을 팔면 큰 돈이 생기지만, 다시 사거나 임대하려면 생활비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집을 팔지 않고, 일부만 활용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 일부 방을 임대해 수익을 얻는 홈셰어(Home Share),
• 주택 담보를 활용한 리버스 모기지(reverse mortgage),
• 다운사이징(집을 줄이고 차액을 현금화) 전략 등이 있다.
즉, ‘집을 유지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이 세대의 현실적 해법이다.
2. 30~40대: “집이냐, 투자냐”의 실전 세대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달리 ‘집=안정’이라는 공식에 회의적이다.
높은 집값과 DTI•LVR 규제로 인해 집을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KiwiSaver•인덱스펀드 등 투자 수단이 대중화되면서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임대 시장의 불안정, 임대료 상승, 세입자 권리의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임대료는 25년간 물가 상승률을 앞질렀고, 최근 3년간 평균 임대료는 월 700~800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즉, ‘투자 수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주거 안정성이 흔들리면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세대에게는 “안정된 주거 + 장기 투자 병행”이 합리적이다.
3. 20대와 신규 이민자 세대: ‘집보다 경험, 투자로 자산 쌓기’
새로운 세대는 ‘집을 가지는 것’보다 ‘삶의 유연성’과 ‘경제적 자유’를 더 중시한다.
이들은 장기 대출보다 투자와 자기계발을 선호하며, 해외 ETF, 부동산 크라우드펀딩, 디지털 자산 등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탐색하고 있다. 하지만 변동성과 세금, 투자 실패의 위험은 피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투자는 하되, 장기 주거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거 불안이 투자 실패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살까, 투자할까’는 단순한 재테크 문제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의 선택이다.
자녀 교육, 건강, 직업 안정성, 은퇴 시점 등 개인의 인생 여정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렇다.
• 주택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 투자는 재정적 유연성을 준다.
따라서 2025년 이후의 뉴질랜드 은퇴 전략은 ‘하이브리드 포트폴리오’, 즉 집으로 안정감을 확보하고, 투자로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뉴질랜드가 금리 인하와 정책 변화의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이 문제는 더 이상 부유층의 고민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 집을 소유하되 일부를 임대 수익용으로 활용하거나,
• 저금리일 때 일부 대출을 유지한 채 여유 자금을 투자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이처럼 ‘집과 투자’를 병행하는 혼합 전략(하이브리드 전략)이 2025년 이후 뉴질랜드 현실에 가장 맞는 해법으로 꼽힌다.
나에게 맞는 은퇴 전략 세 가지
1. 안정형(안정과 주거 중심)
• 모기지 상환을 최우선으로 두고 주거비를 없애는 것이 목표.
•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남는 자금은 저위험 펀드에 투자.
2. 균형형(집 + 투자 병행)
• 집은 유지하되 일부 대출을 남겨 세금 혜택을 활용.
• 남는 자금은 KiwiSaver•ETF 등 장기투자에 분산.
3. 성장형(투자 중심)
• 주거는 임대로 해결하고 자산 대부분을 주식•채권 등 고수익 투자에 배분.
• 단, 임대료 상승과 시장 급락 리스크를 감수할 준비 필요.
집을 사든, 투자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와 ‘재정의 지속성’이다.
은퇴를 앞둔 세대에게 가장 큰 위험은 빚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집은 안정감을 주지만 자금이 묶이고, 투자는 유동성을 주지만 시장의 파도에 흔들린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하이브리드 전략’ — 안정성과 유연성을 함께 갖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다.
뉴질랜드 경제가 빠르게 변하는 지금, 각자의 삶의 리듬과 가치관에 맞는 은퇴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 본 기사는 일반적인 재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 맞춤형 재정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