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학력 평가 제도인 NCEA(National Certificate of Educational Achievement)가 시행 20여년 만에 폐지된다. 정부는 지난 4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고교 학력 평가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발표했다. 다음 달 15일까지 대중의 의견을 받아 오는 11월 최종 결정될 예정인 이번 NCEA 개편과 함께 각 계의 반응을 알아 본다.

NCEA 개편 배경
NCEA는 지난 2002년 11학년 학생들에게 레벨1으로 첫 도입된 고등학교 학력 평가 제도이다.
그 전에는 ‘School Certificate’이라는 시험 제도가 60년 동안 실시됐었다.
노동당 정부 때 시행된 NCEA는 1998년 국민당 정부 때부터 준비돼 오랜 작업 끝에 탄생됐으나 시행 초기에는 일선 교사들이 너무 많은 혼란과 문제점들이 있다며 반대했다.
NCEA는 고교 교과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재학 중 받는 내신 성적을 비롯해 외부시험 성적을 종합해서 평가, 이에 해당하는 인증서를 발급한다.
NCEA의 가장 큰 특징은 내신이 대폭 강화된 점.
학기 말에 한번 치루는 시험뿐만 아니라 교과 진도 과정에 평가가 계속 이루어진다.
하지만 뉴질랜드 학생들의 학습력이 떨어지면서 NCEA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다.
학생들이 점수를 따기 쉬운 과정을 선택하여 학점 취득에만 중점을 두고 있고 내부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캔터베리 대학의 마이크 그림쇼(Mike Grimshaw) 부교수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기능적으로 읽고 쓸 줄 모른다”며 “뉴질랜드는 적게 교육하면서 과하게 자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NCEA 중요 읽기 및 수학의 모의 온라인 시험에서 통과한 8학년 학생들이 50% 정도에 불과하면서 교육검토사무소(ERO)는 NCEA 레벨1 과정의 개편이나 폐지를 건의했다.
NCEA에 대한 이러한 우려들 때문에 개편에 대한 요구가 있어 왔고, 이전 노동당 정부 시절을 포함하여 최근 몇 년 동안 NCEA에 대한 검토 작업이 몇 차례 진행되어 부분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이번에 전면 개편된 것이다.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총리는 이번 개편 배경에 대해 “NCEA가 일관적이지 않고 학생들과 고용주들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언제나 습득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에리카 스탠포드(Erica Stanford) 교육장관은 “NCEA가 유연성과 폭넓은 학습을 위해 고안됐지만 지나치게 유연해지면서 낮은 학업 성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NZCE
• 현행 NCEA 레벨1 → 2028년부터 ‘Foundational Skills Award’로 대체
• 현행 NCEA 레벨2 → 2029년부터 ‘NZCE(New Zealand Certificate of Education)로 대체
• 현행 NCEA 레벨3 → 2030년부터 ‘NZACE(New Zealand Advanced Certificate of Education)로 대체
• 현행 excellent, merited, achieved, not achieved 평가 방식 → 100점 만점의 A, B, C, D, E 점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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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고교 평가 제도 실시 계획 (자료: 교육부)
이번 정부의 NCEA 개편안은 그동안 복잡해진 교육 평가 체계를 개선하고 학생들 개개인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하고 실용적인 평가 제도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탠포드 교육 장관은 이번 개편이 유연성을 엄격성으로, 복잡성을 단순성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NCEA를 대체할 새로운 고교 학력 평가 제도는 오는 2028년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 9학년 학생들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현행 NCEA를 적용받고 8학년 학생들부터 2026년 새로운 커리큘럼에 따라 교육을 받아 11학년이 되는 2028년에 ‘Foundational Skills Award’, 2029년에 NZCE, 그리고 2030년에 NZACE 과정을 밟게 된다.
평가 방식도 전통적인 100점 만점의 A, B, C, D, E 점수 체계로 되돌아간다.
럭슨 총리는 “새로운 교육 평가 제도는 현행 NCEA의 스탠다드 기준 평가를 유지할 것”이라며 “졸업생들에게 현대 글로벌 경제에서 성공하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NZCE도 현행 NCEA처럼 스탠다드(standards)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즉 학생들이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입증하면 통과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읽고 쓰기와 수리 능력에 초점을 맞춘 ‘Foundational Skills Award’는 영어와 수학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다.
12학년의 NZCE와 13학년의 NZACE는 5개 과목 중 4개 과목 이상을 통과해야 하는데, 각 과목은 2회의 에세이 형식 평가와 1회의 시험을 치루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되는 문제점
새로운 고교 평가 제도인 NZCE는 NCEA 이전 시험 위주의 ‘School Certificate’ 제도로의 유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행 NCEA가 결점이 있더라도 시험 위주의 새로운 고교 평가 모델로의 복귀가 학생들의 학습력 증진에 도움을 줄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의 시험 결과에 의존하는 평가는 성별, 불안감, 시험 당일의 개인 환경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NCEA 제도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더욱 많은 학생들이 인증서를 받고 고교를 졸업했지만 새로운 평가 제도에서는 아무런 자격 없이 학교를 나오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각 계의 반응
20여년 만에 전면적으로 개편되는 고교 교육 개혁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교육 관계 당사자들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더니든에서 7학년 아들을 가진 한 어머니는 이번 개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녀는 NCEA가 학업을 뒷걸음치게 하는 제도라고 꼬집으며 이번 개편이 보다 체계적인 학습으로의 복귀이고 핵심 과목들에 대한 집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자들을 채용하는 고용인으로서 요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영어, 수학, 과학 수준이 예전 직원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느낀다”며 “새로운 고교 평가 제도는 엄격하기 때문에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인 아들과 9학년 딸을 둔 한 어머니는 “NCEA 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은 아들이 고교 때 충분한 학점을 취득했을 때는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며 “새로운 점수 체계는 학생들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몰아부치거나 학습을 포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그녀는 이어 “학부모로서 솔직히 약간 겁이 난다”며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지만 제도가 어떻게 시행되는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8학년 손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새로운 교육 제도가 학생들을 돕는다면 지지한다면서도 학생들의 중퇴 선택 가능성에 대해 걱정했다.
그녀는 “5개 과목 가운데서 4개 과목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의 능력 이상일 수 있다”며 중퇴 학생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오클랜드 대학의 아론 윌슨(Aaron Wilson) 부교수는 NCEA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전면적인 개편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윌슨 부교수는 “NCEA의 두 가지 장점은 내부 평가 및 외부 평가의 균형과 각 과목의 세밀한 학생 강점과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다”며 “시험은 학생 학습에 대한 어느 정도의 타당한 평가가 될 수 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학은 시험 결과에만 의존해서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운트 알버트 그래머 학교(Mount Albert Grammar School)의 패트릭 드럼(Patrick Drumm) 교장은 이번 개편을 올바른 방향으로의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드럼 교장은 “NCEA의 지나친 유연성으로 과학 과목에 대해서도 학교에 따라 가르치는 내용이 다른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새로운 평가 제도는 모든 학교마다 보다 일관된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대학들이 학생들의 학교 보고서에 대해 혼란스러워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다며 새로운 점수제 평가 방식은 그러한 혼란을 방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그의 학교는 이미 11학년 학생들에게 NCEA 레벨1 인증을 폐지하고 자체 커리큘럼으로 대체하고 있다며 NCEA 레벨1 폐지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지지했다.
세인트 토마스 오브 캔터베리 컬리지(St Thomas of Canterbury College)의 스티브 하트(Steve Hart) 교장은 “NCEA의 철학은 매우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변화가 필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이어 “학교들과 교육부가 진정으로 의미있는 교육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의하기를 희망한다”며 “내부 평가가 지나치게 많아 교사들의 업무가 늘었지만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의 적절한 균형은 각기 다른 성향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스탠다드’ 평가 기준이 한 학생은 레벨3을 하고 있고, 다른 학생은 다른 경로로 레벨3을 취득하는 등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랑기오라 고등학교(Rangiora High School)의 브루스 키르니(Bruce Kearney) 교장은 정부의 발표를 예상했다면서도 NCEA의 전면적인 개편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키르니 교장은 “NCEA 레벨1은 전체 학교의 65%만 실시하고 있어 국가적인 자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완이 요구됐지만 NCEA의 모든 과정이 학생들에게 목적을 가져다주어 지지해 왔다”며 “우리는 정부가 너무 급하게 개편을 하고 있다는 우려의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랜드 컬리지(Newlands College) 12학년에 재학중인 브린 피어스(Brynn Pierce) 학생은 “NCEA가 지나치게 혼란스러워 개편을 환영한다”면서도 “주위 친구들은 특히 내부 평가의 감소 등을 지적하며 혼합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정부의 고교 교육 개편안에 대해 지켜 보자는 입장이고, 녹색당은 반대했다.
녹색당은 NCEA를 폐지할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새로운 교육안은 정부의 일률적 접근 방식의 또 다른 사례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