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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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없다

0 개 1,235 김준

2021년 11월 초, 지구 남반구의 작은 나라 뉴질랜드에서는 크고 작은 기적들에 열광하는 10대들의 환호성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평생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연말 성적을 거머쥐고서 ‘코로나 만세’를 외치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는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적같은 사건들이 비단 몇몇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도 지난 몇 개월동안 마음 졸이며 노심초사했던 연말 External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동안 받았던 학교 점수 가운데 가장 좋은 점수가 자신의 External 점수로 등록된다는 사실에, 희희낙낙하기는 매 한가지였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이고 가장 복된 소식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크고 작은 기적의 중심에는 UEG (Unexpected Event Grade : 예상치 못한 사건에 따른 성적부여)가 서 있었습니다. 과거 Emergency grade 라 불리웠던 이 제도는 학생들이 예상할수 없었던 사건 (예를들어 시험 당일에 닥친 사고라던지 질병, 가정사등) 때문에 External시험에 결시한 경우 학교에서 치루었던 연말시험의 결과를 External시험의 점수로 치환하여 적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난 3개월간 코로나 격리를 경험한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예상할 수 없었던 의료관련 이벤트’로 간주하고 오클랜드를 비록한 몇 지역의 학생들에게 UEG 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지요. 음.. 여기까지만 보면 교육부의 너그러움과 자상함이 느껴지는 정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UEG로 말미암아 앞 서 말했던 기적과도 같은 성적 급상승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경험하는 UEG의 효과는 그 의도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변형된 학교 연말시험 진행방식과 결부되어 그야말로 ‘Unexpected Event (예상치 못한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주간 연말시험을 치른 각급 학교들은 코비드 안전규정에 맞추어 시험 진행방식을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한 교실에 모여 앉을 수 있는 학생들의 숫자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학급별 학생수를 줄이고 시험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기도 했고 아예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 학교도 많았습니다. 그 운영방식이야 각 학교의 처지와 상황에 맞추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니 제가 뭐라 이야기 할 여지가 없겠습니다만.. 문제는 학생들이 그렇게 순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학교 시험을 잘 치르면 연말 External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루머가 시험전에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아이들은 제도의 헛점을 이용한 치팅(커닝)을 계획했습니다. 이게 무슨 거창한 조직범죄같은 사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치팅이라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일 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코비드 안정규정에 따라 변형된 각 학교들의 시험 운영 방식이 학생들의 치팅을 돕는 결과를 자아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시험같은 경우는 상상하시는 방법 그대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정한 시험을 위해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를 통해 방 구석구석을 비추게 하고 시험시간 내내 카메라를 통해 감독한다고 하지만 사각지대를 확인하거나 주머니속의 전화기를 투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카메라가 고장났다고 말하면 그냥 인정해 준 경우도 부지기수라 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학교에서 종이 시험지를 받아다가 며칠 보관한 후, 시험 당일에 학생에게 전달하여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만.. 그 몇일의 시간동안 어떤일이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입니다. 성적이 급격히 향상된 학생들을 눈여겨 볼 밖에요. 


학생들을 작은 수의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 하루하루 번갈아가며 시험에 응시하게 하는 안전한 방법을 채택한 학교도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학생들을 그룹 A, B, C로 나눈후 첫날은 A에게 ‘분자구조론’ 문제지를 주고 B에게는‘화학반응론’문제지를, C에게는 ‘유기화학’ 문제지를 줍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A에게 ‘화학반응론’을, B에게 ‘유기화학’을, C에게 ‘분자구조론’을 주는 방식으로 로테이션을 시키는 겁니다. 한 학급에 모여앉는 학생들의 숫자를 줄이면서도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한 시험의 기회를 주는것 처럼 보이지만.. 정작 문제는 학생들이 받아든 시험문제지가 똑같았다는 사실입니다. 첫날 시험만 점수가 좀 낮았을 뿐 다음날부터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만점을 거머쥐는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서로서로 시험정보를 공유했음이 당연하니 말입니다. 사실 제가 학생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 중엔 귀를 의심할만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을것 같아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런 변칙적인 시험 운영과 SNS의 전파력과 UEG 가 맞물려 지금 오클랜드는 뜸금없이 등장한 학력우수자들로 천지삐까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전과목을 거쳐 achievement 로 패스하는 것도 버거웠던 한 학생이 이 마법같은 조합을 힘입어 Y13에서 전과목 Excellence를 기록하기도 했고 지식의 수준으로 친다면 언감생심 쳐다보지도 못할 대학전공에 떡 하니 합격점수를 받아놓고 희희낙낙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점수 퍼주기’정책에 모든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엔 여전히 볼멘 소리를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바로 NCEA 이외의 학습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IB와 캠브리지를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인 것이죠. 그것도 졸업을 눈 앞에 둔 Y13 학생들이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상대적인 불이익을 보게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습 부담 (애초에 UEG를 발현하게 된 이유)은 NCEA 보다는 이 두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 월등히 높게 나타납니다. 학습량에서, 그리고 교과과정의 질적인 면에서 그 차이는 절대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학습이 용이하고 결과도 잘나오는 NCEA학생들에게만 UEG 라 하는‘편애적 자구책’이 주어졌으니 뿔이 날만도 합니다. 우는 동생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모습을 옆에서 손가락 빨며 지켜봐야 하는 언니의 심정이라 할까요.. 캠브리지과정에서 소소한 수준의 점수보상책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소소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고 IB는 그나마도 전무하니.. 결국 마음의 부담감을 안더라도 좋은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겠다던 최초의 결단이 한없이 후회스러운 상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NCEA 학생들 중에도 존재합니다. 약간은 상대적일수 있겠습니다만 애초부터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들 중 일부는 이런 성적 inflation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전교생이 모두 Excellence를 받는다해도 자기 성적만 잘 유지하면 아무 문제 없는것이 NCEA이긴 합니다만 언제나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해왔던 자신의 점수가 이제 누구나 맘만 먹으면 -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 획득할수 있는 점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끼는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구는 Lock down의 불안정한 상황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두배로 노력하며 공부해 왔는데 누구는 학교 안간다고 팽팽 놀기만 하다가 UEG와 치팅의 혜택을 입어 거의 대등하거나 심지는 우월한 점수를 획득한다면... 저라도 부아가 나서 씩씩거릴것만 같습니다. 


최근 이렇게 뿔이 잔뜩 난 아이 하나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심 마음을 좀 달래 줘야겠다.. 생각했지만 서로의 마음에 삐죽거리는 뿔과 부아를 조금이나마 해소해보고자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더 큰것 같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어떤일이 있었고.. 어떤 아이가 세상에 이러저러한 점수를 받았고.. 그건 정말로 정책의 잘못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고..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내심 걱정하고 있던 부분인데 그걸 이제 갓 16살 넘은 아이가 언급한다는게 놀랍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점수를 퍼주고 나면.. 그 다음은 뭘까요? 성적순으로 반을 배치하는 것도 이제 당장 내년부터는 의미가 없을거구요.. 또 누가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겠어요? 이런 팬데믹이 또 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그럼 그때마다 학생들은 치팅과 UEG 로 점수를 받겠지요. 오히려 lock down을 기다리게 될거 같아요. 저도 막 후회되고 그러는게 집에 있는 3개월동안 도대체 왜 시간표 짜서 공부하고 그랬나 싶은.. 그런거거든요. 짜증도 많이 나서 엄마랑도 막 싸우고 그랬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그냥 신나게 놀기나 할걸.. 그랬으면 저도 지금쯤‘불로소득’이 아닌‘불학점수’를 받아들고서 코비드 기적을 기뻐하고 있을텐데...”


순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이 분의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야.. 세상에 기적은 없어. 이건 모두 기적처럼 보이는 올가미일 뿐이지.. 이게 말야 내가 지금 만들어낸 얘기가 아니라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가 하신 말씀이거든. 너 혹시 Richard Feynman 박사님이라고 들어봤니?”    


이렇게 대화의 주제는 파인만 박사님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Richard Feynman (1918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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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을 공부해 본 분들 사이에서는 범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서기는 커녕 따라갈 수도 없는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대학자 이십니다. 흔히들 아이슈타인의 후계자로 부르기도 하지만 고전물리학자였던 ‘슈타인형님’에게 양자물리학자였던 ‘파인만형님’은 그리 탐탁지 않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파인만 박사님이 얼마나 천재적인 학자였는지는 간단하게 그 분의 삶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수 있습니다.   


14살에 혼자서 수학공부를 하다가 수열의 한가지 형태인 베르누이 수를 발견했고 15살에 삼각함수, 무한급수, 해석 기하학, 미적분학을 마스터 했습니다. 이후 MIT에 입학해 학부시절인 21살에 Physical review journals에 두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한편에서 추후 Hellmann-Feynman 정리라 불리게 되는, 고전적인 정전기 역학과 파동함수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냥 두 가지 다른 세계의 임계점을 지정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MIT 졸업이후 프린스턴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중 22살때 자신의 연구과정을 소개하는 인생의 첫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는데요.. 쟁쟁한 청중들 가운데에는 보통분들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음직한 유명인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0년대의 수학자로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컴퓨터 바이러스의 창조자이고 말년엔 이미 인공지능의 골격을 완성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고 일컬어지는 존 폰 노이만, 별도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아인슈타인, 양자적 미시세계의 불확정성을 설명하여 양자역학과 파동론의 기초를 닦은 파울리, 수리 이론 물리학계에서 말 그대로 셀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유진 위그너 등등의 대가들이 이제 겨우 콧수염이 자리잡는 앳띈 청년의 세미나를 듣기위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당시 파인만 박사님이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알수 있을법한 대목입니다. 25살때 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파인만 박사님은 1965년 ‘양자전기역학’의 신영역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수상했으며 이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됩니다.  물리학과 학장을 역임하던 당시 학부학생들을 위한 물리학 교재를 출판하시는데요. 세권으로 이루어진 100 챕터가 넘는 교재는 커버의 색깔때문에 ‘빨간책’이라 불리우며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오죽 인기가 많았으면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별도의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이니까요. 파인만 박사님의 천재성은 대학교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양자세계의 사건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고안한 ‘파인만 다이어그램’ 인류 최초로 과학자의 생전에 대학이 아닌 고등학생 교과서에 수록된 연구결과로 남아있습니다. ‘무언가를 쉽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수없이 말했던 평소의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미국의 인물평전 작가인 ‘제임스 글락’이 쓴 파인만 박사님의 평전 제목이 단순하게 ‘천재’한 단어였다는 것만 보아도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인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듯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파인만 박사님에 대해 찬사일색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뒤꼭지를 당기며 따라붙는 또 한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괴짜’라는 단어 입니다. 그렇습니다. 파인만박사님은 천재라 불리운 동시에 괴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분의 괴짜스러움은 일찌감치 발현되었는데요  


어릴때부터 학교에서 배운지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 세상 만사를 독특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게 됩니다. 이후 집 지하실에 작업실을 차리고서 동네 전자제품들을 수리하는 수리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개미로 부터 식품을 지키는 장치를 발명해 주변에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였던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당시, 그저 재미를 위해 프로젝트 멤버였던 한 장군의 기밀문서 금고를 열어 ‘금고털이범’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취미생활은 또 어떻구요. 봉고와 드럼에 심취해 한 발레 공연단의 음악담당 디렉터로 활동했는가하면 마술에 심취해 전문 마술가로 전향할 결심을 굳힌적도 있었습니다. 지역 안마시술소에서 누드화를 그리다가 급기야는 누드클럽의 멤버가 되어 성인잡지 표지모델로 등작한 적도 있지요. 


이쯤가면 괴짜보다는 망나니에 가까울듯해서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는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파인만 박사님은 이런 기행을 저지르는 와중에 연구에 몰두했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노벨상을 받았고 저술활동을 했다는 점 입니다. 남들은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오롯이 쏟아부어도 가능할듯 말듯한 업적들을 위에 열거한 엉뚱한 짓거리들을 해대며 이루어 냈다니... 소위 천재들의 클라스가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놀랍기도 하면서 동시에 질투심이 드는것도 어쩔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천재로 태어나서 놀며 딴짓하며 공부해도 저 정도인데 난 그저 찌그러진 밤송이마냥 살아야 한다니..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의 주인공인 파인만 박사님 본인은 정작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칭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노년의 파인만 박사님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며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을뿐이라는 이야기를 해서 많은 물리학도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중 한 분인 파인만 박사님은 우리와 똑같은 범인 이었을까요? 만약 인간 지능의 간략한 판단기준이 IQ라면 그분의 자기인식은 정확했다 말할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그 분의 IQ는 125였습니다. 인간의 평균 IQ를 100으로 잡는다 하니 평균보다 높은 지능인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천재는 말할것도 없고 소위말하는 영재급에도 들지 못할 수준입니다. 심지어 주변을 둘러보면 널린 것이 IQ 140이요 왠만하면 ‘멘사’ 회원인 한국인 사회에서 IQ 125는 어쩌면 ‘범인’의 상한선 정도에서 그치는 지능일수도 있습니다. 인지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20세를 넘긴 후에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성이고 다른 하나는 IQ 라하는데요. 그렇다면 파인만 박사님도 125의 IQ로 평생을 사셨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지능으로 온갖 창의적인 기행과 더불어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범인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희망이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 


스스로의 지능이 천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일까요.. 파인만 박사님은 단 한번도 학습의 성취가 두뇌에 달려있다는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런 뉘앙스를 비춘적도 없습니다. 왜요? 주변의 인식과는 달리 본인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니까요. 오히려 그 분이 강조했던 것은 ‘열정적 노력’과 ‘지속적인 성실함’과 ‘꾸준한 진보’ 였습니다. 아마도 그 세 가지는 당신의 인생을 통해 증명했던 그 분만의 공부공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박사님은 자신의 저서 ‘빨간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여러분이 물리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배워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지난 200년동안 빠른 속도로 쌓여 온 방대한 양의 물리지식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엄청나게 양이 많아서 학부의 4년 과정으론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배우려면 대학원까지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방대한 양의 지식 앞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점을 가질수 있습니다. 물리에 관련된 공식과 아이디어들을 몇 페이지에 걸쳐 적어놓고 그 공식들을 활용하는 법만 가르친다면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물리학을 섭렵할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교육하지 않는것일까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하지만 물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리현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과 기술은 아주 추상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을 필요로 합니다. 아주 고차원적인 수학적 이해는 덤으로 필요하죠. 여러분은 그 난해한 개념들이 무엇인지 배우기 전에 상당한 수준의 훈련을 거쳐야만 합니다. 만약 이 과정을 건너 뛴다면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근본 요소중 하나인 정확성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훈련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당면한 과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요. 


Study hard.

Be patient.

Step by step.


그렇습니다. 천재가 아닌 범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파인만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열정적 노력’과 ‘지속적인 성실함’과 ‘꾸준한 진보’ 세가지 입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 손에 거머쥔 성적표가 ALL EXCELLENCE 라 하여도 변할수 없는 진실이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정직한’성적 때문에 분통이 터진다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천재라 불리기엔 무리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파인만박사님이 노력에 노력을 더 했던것처럼, 예상치 못했던 UEG성적표가 스스로의 능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노력에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학생이 올해 그랬던 것처럼 내년에도 이런 요행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만약 어떤 학생이 올해 경험한 기적을 스스로의 능력인양 착각하고 있다면, 파인만 박사님의 인터뷰를 통해 말씀하신 이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제가 상상했던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냐구요? 물론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수백년간 쌓여 온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나아가는것 뿐입니다. 나는 그저 열심히 공부한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행히 어린시절부터 물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열심히 배웠을 뿐입니다. 특출나고 특별하고 천재적인.. 한눈에 양자역학이 이해되고 전자기장이 저절로 머리속에 그려지는 기적같은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그것들은 열심히 읽고 연습하고 익히고 공부해 온 과정의 결과일 뿐입니다. 세상에 기적이란 없습니다. 양자역학으로 규정되는 이 세상에 노력없는 성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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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한적하기보다는 얼핏 을씨년스럽기조차 했습니다. 아마 진한 겨울비 냄새를 머금은 눅눅한 공기가 처량맞은 감성을 사방팔방 대류시키기… 더보기

스마트폰 단상

댓글 0 | 조회 1,215 | 2019.11.12
‘Control this madness before it’s too late!’‘너무 늦기 전에 이 미친짓을 그만둬라.’마치 머리에 띠를 두르고 불끈 쥔 두 주먹… 더보기

이제 절반?

댓글 0 | 조회 1,214 | 2016.07.13
이제 2016년의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term 2 방학이 시작 되었다. 선뜻 느껴지는 것은 이제 반이 지났구나.. 이제 반년 남았구나.. 하는 2분법적인 감각… 더보기

피그말리온, 스티그마

댓글 0 | 조회 1,211 | 2018.11.15
피그말리온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볼 발그래한 10대 소년이나 매료될법한 어여쁜 조각상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자… 더보기

공부의 왕도 5편 -쓰기

댓글 0 | 조회 1,202 | 2019.09.11
그동안 지지리도 공부 안하던 학생이 맘먹고 책을 펼쳤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공부의 왕도 시리즈가 이제 … 더보기

시험준비 - 최후의 전략

댓글 0 | 조회 1,198 | 2017.11.09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형을 이야기하고 산세를 이야기할 때, 또는 어려운 일을 당한 지인을 위로하고 응원할 때 흔히들 쓰는 표현입니다. … 더보기

공부의 기술 (Ⅰ) - 정리의 기술

댓글 0 | 조회 1,196 | 2016.01.27
이제 2016학년도 신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두 달 여간의 긴 방학 동안 학생들은 연말 시험의 결과를 받아보았을 텐데 어떤이는 끈질긴 노력이 주는 달콤함을 맛… 더보기

노력 2020

댓글 0 | 조회 1,192 | 2019.11.26
뉴턴이 창시했다고 알려진 고전 역학은 고도로 체계화된 물리학의 한 분야 입니다. 고전역학이 다루고 있는 물리량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그 중 모든 다른 개념들의 근본… 더보기

학교병

댓글 0 | 조회 1,191 | 2016.05.25
이곳 오클랜드에서 꽤 오랜 시간 사교육에 종사하다 보니 오클랜드 각 학교마다 전통적인 ‘학교병’이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중심부의 명문 공립 오*** … 더보기

그에겐 그의 성공이 있다

댓글 0 | 조회 1,189 | 2017.02.09
연일 날씨가 점점 더 더워져 간다. 날이 추우면 추운대로 싸늘한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아이들이 떠오르고 날이 더우면 더운대로 솟아나는 땀방울을 훔쳐가며… 더보기

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댓글 0 | 조회 1,179 | 2020.02.26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더보기

상권

댓글 0 | 조회 1,174 | 2019.03.14
4년간 생활하던 장소를 떠나 또 다른곳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도톰하게 쌓여있던 떠깨비같은 먼지를 털어내야자니 긴 시간… 더보기

말, 말, 말!

댓글 0 | 조회 1,173 | 2018.06.30
세상 누구나 인정하는 낭만의 도시 파리.하늘도 맑은 어느 가을날 오후, 한 중년 신사가 맵시있게 빠진 철제 가로등을 끼고 돌아 광장입구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