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

0 개 2,064 김지향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형부는 여러 개의 사과가 있다면 그 중 가장 맛있는 사과부터 먹으라고 했다. 아깝다는 생각에 맛없는 것부터 먹다 보면 결국 맛있는 사과는 못 먹게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과일도 아무리 예쁜 꽃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시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변하지 않는 옷이더라도 아끼느라 못 입다 보면 결국 싫증이 나버리던지, 유행이 바뀌어 버려서 안 입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좋은 건 아끼느라 못 쓰게 되고, 맛있는 것도 시기를 놓치고 나서 먹기가 일수였다. 매 순간 그 순간의 나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게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안 그러리라 다짐하면서도 몸에 밴 습관은 버리기가 힘이 든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난 형부의 사과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 일을 오늘은 꼭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 자신을 위한 일을 미루지 않고 먼저 하기로 작정을 했다.


나의 미루는 습관은 꽤 오래 된 고질병과도 같다. 어떤 사유건 내가 미뤘으면서 남의 탓으로 돌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쨌거나 미룬 당사자는 나 인 것 아닌가. 상황이 어찌 되었건 미루는 선택을 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나, 한국의 문화로 보나, 나에게 핑계거리는 무한히 많았다. 핑계를 대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굳건히 지키면서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나는 늘 내게 가장 좋은 조건을 내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살았을 것이다.


나는 많은 내 또래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자란 편이다. 아무리 많은 형제들 속에서 남아선호 사상 속에서 치일 수밖에 없었다 할지라도 내가 나 자신을 깊이 사랑했다면 나를 제대로 이끌어가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나간 과거는 지금이 되기 위한 준비였으며,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니, 그때의 나 자신을 존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그때의 나를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고 있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 사는 내 친구는 자주 자신의 좋은 운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전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지난 모든 일들을 운이 좋아서 된 것으로 말을 하지만, 그 친구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했었던 것이다.


이제껏 운 좋게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의 운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그 친구에게 자신의 앞날은 이제껏 살아온 그 이상으로 운이 좋을 거란 말을 해주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야할 선물이니까.

0841899814f02807429422a7fb4b75de_1635374558_3581.jpg

요즘 지인의 가든에 가서 꽃들을 보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꽃도 사과처럼 싱싱한 순간이 오래 가지 못한다. 내가 그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무척 짧은 것이다. 지인이 왜 자신의 가든에서 꽃을 잘라서 꽃꽂이 수업에 쓰라고 한 지 이해가 갔다.

워낙 외일드한 가든이라서 어떤 꽃들이 어디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도 힘들거니와 그 중 몇 송이를 잘라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잘라서 꽃꽂이 해 놓은 꽃들이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 아래에 있는 꽃들보다 더 오래 가고 있었다.


분홍빛이 아름다운 일본 모과나무만 해도 너무 예뻐서 꺾기가 미안했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결국 가지 몇 개를 자르고야 말았다. 그렇게 자른 나뭇가지로 꽃꽂이를 해 놓고 사흘이 지난 후에 그곳에 가보니, 그 아름다웠던 꽃들이 벌써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숍에 꽃꽂이를 한 꽃들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런데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지, 내가 가지치기를 잘 해준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숍에 장식이 된 꽃가지들은 한 달 동안 쇼 윈도우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던지, 지나가던 행인들이 갔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서 한 참을 들여다보고는 가곤 했다. 하물며 숍 안에 들어와서 진짜 꽃이냐고 물어보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한 달이라는 긴 기간을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도 꽃을 피우면서 서 있던지. 숍의 환경이 꽃들에게 좋은 환경인거 같다. 직사광선이 직접 닿지 않으면서도 환하고, 온도 역시 적당한 것 같다. 


이 나무 뿐만 아니라 정원에서 옮겨온 모든 식물들이 정원에서보다 훨씬 더 오래 갔다. 꽃꽂이 하다가 남은 수국은 물속에서 뿌리를 내려 손톱 보다 더 작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이 수국은 조금 더 뿌리를 내리면 화분에 옮겨 심을 예정이다.


수국은 물만 있으면 아주 잘 자란다는 걸 꽃꽂이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올해 2월에 꽃꽂이 하면서 침봉 가리개로 꽂았던 아주 짧은 수국 가지가 있다. 다른 꽃가지와 잎들은 다 시들어서 버렸는데, 이 녀석은 시들지 않고 있었다. 


시들지도 않은 식물을 버릴 수가 없어서 매번 꽃꽂이할 때마다 사용하다가 물병에 꽂아두게 되었다. 어느 날 물을 갈아주다 보니, 가는 뿌리가 나고 있었다. 가는 뿌리가 제대로 자리를 잡자 작은 화분에 그 녀석을 옮겨 심었다. 아주 작은 새잎이 돋더니 앙증맞은 꽃을 피워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0841899814f02807429422a7fb4b75de_1635374593_2803.jpg
 

이번에 꽃꽂이 하고 남은 이 수국은 자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뿌리를 내리고 작은 꽃망울까지 맺은 것이다. 이 녀석은 정원에 심을 예정이다. 꽃꽂이로 한껏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뿌리까지 내려 우리 집 정원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수국이 참으로 고맙고도 고맙다.


지인의 가든은 보물창고와도 같다. 자신의 보물창고를 흔쾌히 내 준 지인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지인 또한 내가 자신의 가든 꽃으로 꽃꽂이 하는 것을 보면서 흥겨워 한다. 숨어 있는 보물들을 찾아 빛나게 해주는 내가 마냥 신기한가 보다.


사과나 꽃이나 그 어떤 것이나 가장 싱싱하고 좋을 때 사용해야 한다. 생명력이 없는 옷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좋아서 아끼느라 입지 않고 벽장에 두고 있다 보면 유행이 지나가서 입지 못하게 되던지 실증이 나서 입지 않게 되어 버린다.


형부 생각이 옳았다는 걸 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 희생하고 참는 게 덕으로 여겨졌었기에, 형부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버리곤 했었다.


지금은 형부의 그 말에 크게 공감을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산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장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서로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정’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요즘 나의 이런 바람이 바람이 되어 내 주위를 돌고 있다. 숍 밖의 풍경에서도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에서도 숍 안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얼굴에서도 나의 바람이 엿보인다. 


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을 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 느낌이 내 삶 속에 충분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꿈같은 하루를 보낸다.



꿈은 꼭 이뤄진다

댓글 0 | 조회 1,055 | 2022.07.13
꿈은 꼭 이뤄진다. - 이 비밀을 알고만 있다면유은이의 돌잔치는 오미클론 때문에 많은 차질이 생겼다. 세 모녀가 오클랜드로 가는 도중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 더보기

여행이 주는 기쁨

댓글 0 | 조회 947 | 2022.06.29
바람이 사납게 불어도 비만 오지 않으면 강가로 여행을 떠난다. 겨울비로 불어난 흙탕물이 거세게 흘러가지만, 그 소리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요즘 나는 … 더보기

내 사랑 파미

댓글 0 | 조회 983 | 2022.06.14
오월을 어찌 보냈는지 기억도 없는데 6월이 한 주를 훌쩍 넘어버려 열흘이라는 시간을 삼켜버렸다.어제부터 무섭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과 번개까지 동원이 되어 한… 더보기

나의 해방일지

댓글 0 | 조회 1,169 | 2022.05.25
비가 온다. 가을을 미처 즐기기도 전에 겨울이 온 거 같다.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고즈넉한 겨울의 운치를 맛보고 있다. 삶에 대한, 계절에 대한 해방감이 온 몸을… 더보기

복중의 복이 늦복이리라

댓글 0 | 조회 1,121 | 2022.05.11
파미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갈수록 파미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파미 생활에 익숙해져서 모든 것이 다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꼭 … 더보기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댓글 0 | 조회 1,070 | 2022.04.27
몇 달 전에 고구마 한 개를 땅에 심었는데, 그 고구마에서 제법 많은 줄기가 자라났다.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텃밭을 가꿀 줄도 모르고, 진득하니 식물을 잘 가꿀 … 더보기

광기와 어리석음

댓글 0 | 조회 937 | 2022.04.13
엊저녁에 한국에 사는 언니와 오랫동안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자정을 넘겨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오직 그림을 그리고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살아왔던 나의 큰 자… 더보기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댓글 0 | 조회 1,057 | 2022.03.23
푸르른 하늘부터 반겨 준 웰링턴 여행길. 그날은 무척 행복했다. 대선 투표를 마치고 한인 마트에 들려서 파미에서 살 수 없는 물품들을 사고, 해변 가의 멋진 레스… 더보기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

댓글 0 | 조회 1,613 | 2022.02.23
얼마 전에 언니와 통화를 하다가 대선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는데, 언니는 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며, 누가 되든 나라는 망하지 … 더보기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커닝했다

댓글 0 | 조회 987 | 2022.02.10
음력 설날에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다. 얼마 전의 통화와 달리 아버지께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한참을 아버지의 기억을 위해 애를 썼는데… 더보기

줄이고 또 줄여야

댓글 0 | 조회 1,347 | 2022.01.27
오늘 저녁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들을 만나면 내 입 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가고 엉터리 영어지만 창피함을 모르고 함께 떠들게 된다. 그들… 더보기

아가의 웃음소리

댓글 0 | 조회 984 | 2022.01.12
까르르르~~ 유은이의 웃음소리가 우리 집 전체에 울려 펴졌다. 유은이는 둘째 딸이 작년 6월 말에 낳은 아기이다. 코비드가 잠시 종식이 되었을 시기에 태어난 덕분… 더보기

화살 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 2021년

댓글 0 | 조회 899 | 2021.12.22
한 해도 훌쩍 지나 벌써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올해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한 해였는데, 그 중 가장 특별했던 일은 손녀를 본 일이다. 코로나 팬… 더보기

지옥의 끝

댓글 0 | 조회 1,047 | 2021.12.08
우리의 삶이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내 의지에 의하여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죽음마저도 내 의지대로 맞이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인간들은 초자연적인 상… 더보기

크로스오버 인생

댓글 0 | 조회 1,109 | 2021.11.23
큰애가 UCOL Whanganui에서 디자인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를 연말 전시회에 출품하게 되었다.‘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는 … 더보기

오징어게임 티셔츠

댓글 0 | 조회 1,265 | 2021.11.09
요즘 나는 ‘오징어게임’ 명함의 로고(○△□)와 오징어게임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시중에서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인 친구가 만들어 준 티셔… 더보기
Now

현재 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

댓글 0 | 조회 2,065 | 2021.10.28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형부는 여러 개의 사과가 있다면 그 중 가장 맛있는 사과부터 먹으라고 했다. 아깝다는 생각에 맛없는 것부터 먹다 보면 결국 맛있는 사과는 못… 더보기

코비드도 내 꿈을 막지 못한다

댓글 0 | 조회 1,088 | 2021.10.13
요즘 내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코비드로 인하여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 안의 행복을 빼앗아 갈 능력은 없다.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더보기

10년 후 지금의 세상이 사라진다고 해도

댓글 0 | 조회 1,495 | 2021.08.24
겨울비가 무겁게 쏟아지는 화요일 저녁에 닭볶음탕 하나로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오붓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유리 창문을 때리건 말건 온기… 더보기

Re - Story Studio

댓글 0 | 조회 736 | 2021.08.10
한 달 만에 집에 와보니, 그동안 우리 집 텃밭의 채소들은 쑥쑥 많이도 자라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잘 보살펴 준 흔적이 그대로 보여 기분이 좋았다.거실에 있는… 더보기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댓글 0 | 조회 1,189 | 2021.07.28
둘째 산바라지를 위해 오클랜드에 온 덕분에 오클랜드의 유명한 명소들을 관광하게 되었다. 코리아 포스트 편집장과 사돈들 덕분에 제대로 오클랜드를 여행하게 되었으며,… 더보기

늦게 피는 꽃나무의 신화

댓글 0 | 조회 928 | 2021.07.14
기다렸던 손녀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다. 다행히도 내가 오클랜드에 도착한 이후에 출산을 했고, 딸과 손녀는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 내 곁에 있다. 이미 딸 바보가 … 더보기

사람이 재산이다

댓글 0 | 조회 1,040 | 2021.06.23
고구마 잎줄기가 아이비처럼 장식하고 있는 부엌 창문 너머로 가는 겨울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면서 지나간다. 남편은 커피 원두를 곱게 갈아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리고 … 더보기

돈이 따라오는 외모가 있다

댓글 0 | 조회 1,943 | 2021.06.10
요즘 나는 옷들부터 음식들까지 옛 것을 즐기고 있다. 추억의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먹고, 추억의 옷들을 꺼내어 손질하여 입고, 빈티지 구제 명품 옷과 신발들을 사… 더보기

머니트리 덕분에 부자 되겠네

댓글 0 | 조회 1,543 | 2021.05.25
2021년 신년 꽃꽂이를 하러 꽃집을 돌았었는데, 코로나 영향인지 꽃집에 쓸 만한 꽃들이 없었다. 파미에서 가장 꽃꽂이하기 좋은 소재들이 많은 꽃집은 아예 문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