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없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영웅은 없다

0 개 970 명사칼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의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결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가령, 노예나 평민 보다는 (오이디푸스 같은) 왕은 죽어야 비극의 규모와 강도가 커지고, 관객들에게 ‘공포와 연민’이라는 비극적 감정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원칙은 잘 지켜져서 먼 고대서부터 세익스피어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의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귀족들이었다.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이 일이었다. 영국에서 소설이라는 근대 시민 중심의 새로운 장르가 출현한 것도 18세기이다. 소설이라는 근대 시민문학이 부상하면서 영웅 중심의 서사시 시대는 끝났다. 따지고 보면, 문학 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평민들, 보통 사람들, 근대 시민들이 출현한 지도 벌써 수백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多衆 multitude)’의 시대인 21세기에 아직도 영웅 중심의 정치적, 사회적, ‘메시아주의’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에 출몰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정치는 메시아 찾기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이름들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컬트(cult)’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숭배자들은 자신들이 흠모하는 대상 바깥에서 사유(思惟)를 하지 않는다. 알뒤세르의 말 대로 “이데올로기는 그 내부에 모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데올로기의 모순은 그 바깥으로 나와야만 비로소 보인다.


이 정치적 메시아들의 바깥으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숭배자들에게 이들은 절대적이고도 항속적인 진리의 담보자들이다. 친박, 친노, 친문, 친김 등의 용어들은 일종의 ‘초월적 기표(記標)’로서 그 아래 박, 노, 문, 김 등을 무오류의 성상(星象)으로 섬기고 의지하는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다.



정치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회 조직들, 공장, 회사, 학교, 종교단체도 꼭대기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명령의 적절성, 정당성, 합리성, 윤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전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달만 있을 뿐, 아래로부터의 소통이 없는 조직에 불평거리들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 불평은 명령이 시달되고 실천되는 현장이 아니라,  술자리의 뒷담화로 소비될 뿐이다. 군주들에게 밉보였다가는 온갖 손해를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최악이 경우‘갈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항의 힘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절박한 운명에 내몰린 사람들에게서 마지막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절대 군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문제는 21세기 현재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는 정치적 메시아의 시대가 아니라, ‘다중’의 시대이다.

다중은 수적으로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영웅 중심의 그 어떤 ‘대서사(큰 이야기, grand narrative)’로 통합되지도 않는다. 다중은 개체들이면서 집단이고, 집단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개체들이다.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사회적 메시아주의는 다중의 “공통적인 것(the common)” (안토니오 네그리)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권력이 생성에만 집중한다. 그들이 내놓는 대부분의 정책은 공공선(公共善)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재생산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 초얼적 기표로서의 ‘아버지들’과 헤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대문자 ‘아버지의 법칙’ 대신에 다중의 이해에 복무하는 원리와 원칙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선거가 증명하듯이 우리 사회는 이미 ‘아버지의 유령’에 저항하는 수 많은 오이디푸스들을 생성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로, 신화로 더 이상 소수 권력이 유지, 재생산되지 않는 시대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 심지어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조차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존경받던 시대는 끝났다. 영웅은 없다. 오로지 다중만이 있을 뿐이다. 


■ 오 민 석  교수 

fd5a42f68d6652672b2f5eb929245fe6_1614139925_8509.jpg
 

나를 만든 한 권의 책 <<문학과 미술 사이>>

댓글 0 | 조회 866 | 2022.03.09
대학과 학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으며, 1982년 봄 대학신입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 환상이 사라지는 시간은 입학과 동시에 다가왔다. 졸업정원제로 인한 고등학… 더보기

한글학교 - 미래의 자산

댓글 0 | 조회 1,230 | 2022.02.23
5천여 년이란 길고 긴 역사의 물결과 함께 한 중국사람들......부드럽고 은근한 면이 있는가 하면 또 생각이 깊고 앞을 멀리 내다본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늘 … 더보기

SNS 시대, 개인 내면의 소멸?

댓글 0 | 조회 1,069 | 2022.02.10
저는 아무래도 사화관이나 정치관은 (자본주의에 좀 회의적인 만큼) ‘진보적’인지 몰라도 생활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전자 기계들을 다룰 때마다 대단한… 더보기

이대남의 생각

댓글 0 | 조회 915 | 2022.01.26
■ 오 길영오늘자 토요판 종이신문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기획 기사를 읽었다.(기사는 댓글) 시의성 있는 기획이다. 토요판이 알차진 느낌이다… 더보기

백석, 우리 시대 시인들의 시인

댓글 0 | 조회 1,024 | 2022.01.11
■ 백 승종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인간을 소재로 시를 썼습니다. 마을에 전하는 민속 또는 민간신앙 등을 고향의 구수한 사투리 즉, 토착어(土着語)를 … 더보기

멋 있게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1,136 | 2021.12.21
요즘 팬데믹으로 불편하고 때로는 위축되어 지내다 보니 바쁜 가운데서도 멋 있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마음과 영혼에 신선한 멋을 공급하며 삶을 즐겁게 살아… 더보기

<오징어게임>의 함의

댓글 0 | 조회 910 | 2021.12.07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은 <기생충>에 뒤이어 세계에다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그 근거 자료로 삼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물론 이 … 더보기

아빠, 내 이름은 무슨 뜻이야?

댓글 0 | 조회 1,446 | 2021.11.23
최근에 한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중 특히 나이 어린 학생들이 많이 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민 2세가 태어나 자라고 있어 자랑스럽고 이들을 위한 우리 말과 글의… 더보기

내가 그 때에 왜 행복했는가?

댓글 0 | 조회 907 | 2021.11.10
그제 10살이 된 딸내미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과거 이야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지금 수십 개의 티비 채널 중에 하나를 골라 볼 수 있는 딸내미는, 아빠가 어렸… 더보기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은 ‘공감력’에서 출발

댓글 0 | 조회 1,046 | 2021.10.28
늦은 시간 술에 취한 남자가 택시를 잡으려고 비틀비틀 차도 깊숙이 들어갑니다. 씽씽 달리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려대며 지나갑니다.‘저러다 큰일 나는… 더보기

내 손가락 끝에 모든 것이

댓글 0 | 조회 1,228 | 2021.10.13
언젠가 한 Rotary Club 모임에서 Kiwi참석자와 교민 회원들 간에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옆 그릇으로 옮겨 담는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웃자고 했었으나 … 더보기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댓글 0 | 조회 1,939 | 2021.08.25
■ 김 무인1차 백신 주사를 며칠 전에 맞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후유증이 있다. 콧물에 몸살 증세도 수반되어 sick leave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쉬면서 … 더보기

일본문학과 일본 친구를 좋아하는 한 비평가의 생각...

댓글 0 | 조회 994 | 2021.08.10
아마도 나는 누구보다도 일본의 친구들과 일본문학과 문화, 일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편이라고 기꺼이 말하고 싶다. 실제가 그렇기도 하다..일본여행과 일본음식…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4)

댓글 0 | 조회 1,190 | 2021.07.27
다양성은 어디에?이번 역사교육 커리큘럼 초안에 대한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전문가 어드바이스 패널 중에 유일하게 아시안으로 참가한 …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3)

댓글 0 | 조회 1,618 | 2021.07.14
이번의 역사적인 결정이 있기까지2022년부터 초중고에서 뉴질랜드 역사교육을 의무화하는 정부의 결정은 2019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2017년 노동당의 선거 공약에…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2)

댓글 0 | 조회 1,175 | 2021.06.23
■ 김 무인자국 역사교육의 긍정적 효과와 기대위 같은 우려 상황이 분명 있지만, 자국의 과거에 대한 ‘솔직한’ 교육은 이런 우려를 거뜬히 뛰어넘는 긍정적 효과가 …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1)

댓글 0 | 조회 1,509 | 2021.06.10
머리말최근 지인으로부터 초중고교 뉴질랜드 역사교육 의무화에 대한 설명회가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약이 있어 참가는 못했지만, 과연 무슨 … 더보기

어휘력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

댓글 0 | 조회 1,075 | 2021.05.26
2007년 10월 3일 평양 외곽 백화원초대소에 있었습니다.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온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에 묵고 있었지요. 나는 평양 방문 첫째 … 더보기

노만남매를 파키스탄으로 돌려보내야만 했을까?

댓글 0 | 조회 3,055 | 2021.05.11
■ 김 무인머리말이 블로그의 주 탐사 주제는 ‘ethnic relations’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재발견/부활’ 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 더보기

무위당 장일순, 물질 만능의 세태를 질타하다

댓글 0 | 조회 992 | 2021.04.29
장일순(1928~1994)은 평생 단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언어도단(言語道斷) 곧, 말로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그는 동서양의 종… 더보기

도강 만세

댓글 0 | 조회 1,050 | 2021.04.14
1960년대인 대학시절에 필자는 경영학과로 진학했었다. 법학과나 상학과는 주위에 전공자가 너무 많았다. 인문계통이면서도 조금은 새롭고 특성이 있는 방향으로의 진학… 더보기

기대하던 영화 ‘미나리’를 봤다

댓글 0 | 조회 1,663 | 2021.03.23
■ 오 길영 충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기대하던 영화 ‘미나리’를 봤다. 단상을 적는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낯선 미국에서 병아리를 감별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 더보기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댓글 0 | 조회 1,021 | 2021.03.09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 더보기
Now

현재 영웅은 없다

댓글 0 | 조회 971 | 2021.02.24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의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결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의… 더보기

나라의 근본 체력은 국방력과 조세제도

댓글 0 | 조회 1,128 | 2021.02.11
국방과 조세는 자의적 해석이나 타협-양보-유보를 할 수 없는 문제근본이 제대로 서야 강국이 되고 국제 주도권 갖는다축구는 이미 운동 경기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