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할것, 변하지 말아야 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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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할것, 변하지 말아야 할것

0 개 1,620 김준

1.

아침이 밝았습니다. 


창호지를 바른 네모 반듯한 창문은 하얀 광채를 뿜어내며 어서 빨리 집안으로 햇빛을 들이라고 야단입니다. 그 성화에 못이겨 나무틀 미닫이창을 드르륵 밀어 여니.. 


쏘아부치듯 따갑고 까실한 햇살 아래 끝 없이 펼쳐진 여름 바닷가.


섬 몇개가 드문드문 얌전히 앉아있는 연안에는 서핑과 수영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활기찹니다. 파란 하늘과 짖푸른 바다와 파릇한 청춘의 삼중주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어제 밤 늦게 이 민박에 들어설때는 어두워서 미쳐 몰랐었는데 아침 햇살아래 반짝이는 이 동네는 참 아름다운듯 합니다. 그저 넋놓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심장이 너무 팔딱거려서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동네를 한번 돌아볼 양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어촌마을답게 어시장은 활기가 넘치고 경치좋은 바닷가 동네답게 여행객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한참 어슬렁거리다가 민박으로 돌아오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침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계란과 단무지와 톳과 된장국... 그리고 밥상의 주인인 하얀 쌀밥 앞쪽으로는 마른 전갱이구이가 기름을 번들거리며 자리잡았습니다. 


‘카스미’씨는 한동안 묵묵히 전갱이를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한조각 크게 떼어 입에 넣었습니다. 눅진하고 고소하지만 약간 군내가 나는 전갱이 특유의 기름맛이 혀에 차악 감깁니다. 그 맛이 좋아서 일까요. 카스미씨의 의식은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그 여름방학으로 돌아갑니다. 소년 카스미는 그때까지만해도 전갱이를 먹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지의 민박집에서 주인아주머니의 눈치가 보여 눈 질끈감고 한 입 베어물고 난 뒤... 그의 입맛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부하던 음식에서 꺼리지 않는 음식으로, 그저 그런 음식에서 선호하는 음식으로, 그리고 이제 말린 전갱이구이는 카스미씨가 일부러 찾아서 먹는 가장 애호하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사십 몇년전이나 지금이나 전갱이구이의 맛은 그대로이겠지만, 소년 카스미가 노인 카스미로 변화하는 사연많은 시간을 거치는 동안 질색이었던 그 맛은 어느새 사랑하는 맛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방랑의 미식가’라는 일본 단막극의 한 에피소드입니다. 60세가 되어 정년퇴직을 한 ‘카스미 다케시’라는 주인공이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며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그린 짧은 드라마이지요. 한편에 15분정도밖에 되지않는 길이여서 간간히 부담없이 몇 편을 보았는데요.. 이번 에피소드의 ‘어릴적엔 싫어하던 음식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라는 주제는 특별히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내는듯 합니다. 아마 저 뿐아니라 많은분들께서 맞아맞아~ 나도 그래~ 하시며 맞장구를 쳐 주실것만 같습니다. ㅎㅎ


우리 모두가 경험해왔듯 입맛이 변하는 것은 비단 카스미씨만의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저만해도 어릴적엔 시금치 된장국과 콩나물을 너무나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아침상에 올라온 콩나물국이 그렇게도 개운할수가 없습니다. 북어 몇 쪽에 새우젓까지 넣어 휘휘 저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지요. 계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적엔 젓가락 가기가 힘들었건 반찬이었건만 지금은 최고로 사랑하는 식재료가 계란입니다. 밥 한공기에 버터 반 스푼과 날계란 두알을 깨 넣고 착착 저어서 오븐에 구워주면 계란밥구이가 됩니다. 거기에 간장, 참기름 그리고 파를 더해 비벼먹으면 시간없을 때 한끼 식사로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어릴적에 김치국을 그렇게도 싫어했다던 아내는 이제 칼칼한 김치국을 너무나 사랑하고 야채보기를 돌같이 했다던 잘 아는 형님은 어른이 되어서는 깻잎 쑥갓에 향채까지 보이는대로 넙죽넙죽 집어삼키기에 바쁘십니다. 


우리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청년기를 거쳐 소위 말하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변화의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콩나물국, 김치국 맛이 슬그머니 변화한 것은 아닐겝니다. 계란이 어느순간 거위알이나 타조알로 진화한 것도 아닐것이고, 기가막힌 조미료를 넣은 덕에 씁쓸한 채소맛이 한순간에‘해륙진미’로 탈바꿈한 것은 더더욱 아닐겁니다. 음식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당연할테고 실상은 우리의 입맛이 변해온 것이겠지요. 달큰하고 자극적인 라면국물만 찾던 입맛에서 진득한 사골육수의 깊은 맛을 즐기는 입맛으로 변화하고, 기름진 고기에 소스발라 빵에 끼운 햄버거만 좋아하던 입맛에서 담백한 흰살생선에 간장베이스 소스를 끼얹은 생선찜을 좋아하는 입맛으로 변화하고.. 결국 내 입맛이 변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몰랐던 음식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것입니다. 


변해간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취향이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듯 합니다. 


게슴슴하던 맛이 담백함으로 바뀌고 떫떠름한 풀내가 향긋함으로 바뀌는 변화는 이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개벽과도 같습니다. 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 말하는게 더 정확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날이 변화하며 그 변화의 과정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가치를 쌓아간다고 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기능으로서의 변화를 우리는‘성장’이라 부릅니다.  


지난주를 끝으로 우리 아이들의 한 학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계절은 카스미씨가 감탄했던 그 파란 여름의 초입에 들어섰고 아이들의 젊음 또한 한층 짙어진 푸르름으로 찬란합니다. 산으로 바다로 실컷 뛰어다니기 너무 좋은 계절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고 그 들뜬 마음을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듯 길고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올 한해의 여름을 지나며 그만큼 더 변화하고 그만큼 더 성장하겠지요. 키도 더 커질것이고 머리도 더 여물어질 것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조금은 더 구체적이 될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 더불어 한가지만 더 변화하고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부취향입니다. 


조금만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면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나 안해’한마디를 퉁명스럽게 내뱉던 반항아에서 눈 한번 질끈감고 되든 안되든 시작이라도 해 보는 도전가로의 변화를 기대합니다. 모든 해야할 일들을 마지막 그 순간까지 꾹 누르고 앉아있다가 결국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징징대는 베짱이에서 하는듯 마는듯 찔끔거리지만 매일매일 한걸음씩 꾸준히 걷는 부지런한 개미로의 변화를 기대합니다. 입에 넣어 씹어보지도 않고서 공부는 맛이 없다며 퉤퉤거리던 철부지에서 단 한과목 한 챕터라도 마스터해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진중한 학생으로의 변화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터럭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 여상여일한 ‘학습’의 가치를 조금은 더 성숙한 입맛으로 가늠해가는 우리의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산도 많고 호수도 많고, 그리고 곰 또한 많은 나라. 웃는 사람이 많은 나라로도 유명하고 경찰들이 고압적이지 않고 친근한것으로도 유명한 나라. 흔히 ‘단풍국’으로 불리우는 이 나라는 바로 캐나다입니다. 하지만 수려한 풍광과 다양한 야외활동에 가려져 명성을 얻을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면모가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시계산업입니다. 캐나다는 의외로 정밀공업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요즘이야 세계적인 공업생산지역이 북미에서 중국을 거쳐 동남아로 넘어가는 추세이니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지금도 캐나다에는 스위스와 협업을 하며 훌륭한 시계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Watch maker 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중엔 Marathon (마라톤) 이라는 회사도 있습니다. 


Marathon이 그리스의 한 지명이라는 사실은 이제 왠만한 분들은 다 알고계신 상식입니다. 마라톤 평야에서 치루어진 전투에서 승리한 그리스 장군이 승전보를 본국에 전할 장거리 파발꾼을 선발했고 그 병사는 42.195Km를 쉬지않고 달려 국민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 후 그 자리에서 숨졌다는.. 다소 안스럽지만 가슴 뭉클한 유래를 지닌 이름이 바로 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마라톤이라는 이름이 시계회사 이름으로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혹시나 뭐.. 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에게 적합한 특이한 기능이 있어서 그런것일까 생각해볼수도 있겠지만 이 회사가 생산하는 시계들은 하나같이 묵직하고 두툼하고 우직해서 날렵한 달리기 선수와는 영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시계회사 이름이 마라톤일까요? 


이 특별한 이름의 이유는 이 회사의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은 북미지역, 다시말해 미국과 캐나다의 국방부에 시계를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그것도 일반 군인들이 아니라 실전에 배치되는 특수전 병사들이나 수색구조대, 해양잠수부대, 인명구조요원들이 주 착용자 입니다. 그 분들은 예전에 마라톤 평야를 쉬지않고 달렸던 장거리 파발꾼과 같이 모든 전투의 승전보를 본국에 전달해야 할 의무를 띄고있고 그래서 그분들을 위한 시계라는 의미로 ‘마라톤’이라 불리게 되었다합 니다. 용도가 특별한 만큼 이 회사의 시계들은 당연히 고도의 정밀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무리 험한 상황이 닥쳐도 손상되지 않을 내구성까지 골고루 갖추어야 했고, 따라서 마라톤 시계 제작에 적용되는 기술이나 사용되는 재료들은 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명품시계들을 만드는 기술과 재료에 쳐지지 않습니다. 조립 정밀도나 시간의 정확도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롤렉*, 오메*, 콘스탄*... 등등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사실 시계산업의 기폭제는 일, 이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차대전을 거치며 손목시계가 등장했고 2차대전을 거치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기틀이 확립되었습니다. 요즘 전세계의 시계매장을 호령하며 큰기침 좀 한다는 회사들은 이 두번의 전쟁을 거치는 동안 사세를 확장하며 성장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장사를 하며 엄청난 물량을 제작하는 동안 점점 기술력을 키워갔고 전쟁이 끝난 이후엔 전장에서 쌓아올린 지명도를 발판삼아 명품시계의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거기에 뛰어나고 요사스런 마케팅기술까지 접목된 결과 지금은 왠만한 사람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몸값을 자랑하는 시계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국가의 안전과 자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그 숭고한 자리에서 회사의 이익과 소비자의 허영심을 부추키는 배금주의의 자리로 옮겨앉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유명세를 떨쳤던 마라톤은 그 안락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직하게 목숨을 구하고 작전을 성공시키고 테러리스트들을 저지하는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몸값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는 언저리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제 가격의 수십배에 달하는 시계들보다 더 단단하고 더 고급스럽고 더 정밀하고 더 튼튼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지급되어야 하기에 비싸질 수가 없었습니다. 번쩍이는 광택으로 보는 사람의 기를 죽이는 대신 오히려 고운 사포질로 금속 천연의 광택을 죽였고, 반사광이 매혹적인 유리코팅 대신 오히려 반사광이 사라지는 유리코팅을 했습니다. 시계를 보는이의 눈을 현혹하는 대신 시계를 볼 수도 있는 적군의 눈을 망혹하기위해 마라톤의 시계들을 철저히 그 기계적 가치를 숨긴 것입니다. ‘기도비닉’이야말로 군사작전의 기본중 기본이니 마라톤 시계들은 평생이 지나도 어디가서 제 가치에 합당한 대접을 받기는 영 그른듯 합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소위 명품시계들이 모양만 그럴싸한 ‘훌륭함’을 자랑할 때, 사람이 살고 죽는 절체절명의 현장에서, 대규모 살상을 막아서는 목숨을 건 현장에서, 국가의 존망이 엇갈리는 차디 찬 바닷속에서, 마라톤의 시계들은 살아 숨쉬는 훌륭함을 수행해 냅니다. 아니 이것은 훌륭함이 아닌 숭고함이라 불러도 좋을듯 합니다. 


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명예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가격표를 붙이고 조명 찬란한 쇼케이스에 앉아있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공헌하는 시계가 과연 어느쪽인지 말입니다. 


마라톤 시계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부산의 원조 돼지국밥 할머니는 추운 겨울 새벽에 한데 앉아서 고생하시지 말고 가게를 차리시라는 한 젊은이의 권유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합니다.


‘내레 가게를 내뿌면 고저 내 일신이야 편할거이 당연한거 아이갔니? 그티만 생각해보라. 내레 뭐이 영화를 보갔다고 새벽 찬바람 마아가며 이짓이갔니? 고저 몸뚱이 하나가꼬 식구들 건사하가따고 새벽가티 일나가는 아아들 싱건 국물이라마 따땃하게 한 모금하라고 이러고 있는거 아니갔니? 알간? 내레 다른거이 다 세상 따라가도 이 새벽 국물장사는 몸 편아~하이 하지는 못하지비..’


지금은 지역명물이 되버린 돼지국밥을 최초로 시작하셨던 원조할머니를 추억하는 노 컬럼리스트의 글이었습니다. 소뼈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어서 헐값에 구할수 있는 돼지뼈를 우려 국물을 내고 도살장에서 버리다시피하는 부속물을 깨끗하게 손질해 건지로 만드셨다던 할머니.. 누구라도 쉽게 사먹으라고 원가만 받고 국밥을 파셨다는 돼지국밥 할머니.. 장사를 하셨으면 크게 이익을 보셨을 그 분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구지 가지 않아도 될 험한 길을 가셨습니다. 돼지국밥할머니뿐 아닙니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많은 분들도, 언젠가 위인전에 등장하게 될 많은 분들도, 모두 하나같이 일신의 영화보다는 더욱 숭고한 가치를 위해 좁은 길을 가셨습니다. 강직하고 헌신적인 마라톤 시계와 같은 분들입니다. 


일년 중 가장 한가한 이맘때쯤이면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그래도 그 정도면 잘했다~’라며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도 하고 ‘앞으로 이려면 안돼!’하며 제 머리를 쥐어박기도 합니다. 어렵게 말해 ‘자기성찰’이고 쉽게말해 ‘매일반성’인 셈이지요. 그런데 아이들 가르치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교육의 목적과 가치’라는 부분까지 생각이 확장되기 일쑤입니다. 정규학교 선생님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무슨 교육자라고 ‘페스탈로찌’ 코스프레냐 핀잔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키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젊은 인생길을 같이 고민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교육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어떤 직업이 좋은직업이예요? 어느 학교를 지원해야 해요? 훌륭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예요? 왜 공부해야 해요? 노력은 어떻게 하는거예요? 왜 놀기만 하면 안되요? 


이 수많은 질문들.. 규칙도 없고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날 때마다 툭툭 던져대는 질문들에 대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 때문이다’ 라고 말이지요. 


좋은직업이란 인류사회 고유의 변하지 않는 가치들을 지켜내는 직업이고, 좋은 학교는 그 학교만의 가치를 고수하는 학교이고, 훌륭한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보편가치를 강화해 나가는 사람이고, 공부는 선대의 지식과 가치관을 변함없이 전승하기 위해서 하는거고, 노력은 발전의 근간이라는 변치않는 가치를 지니기에 중요하고, 하냥 놀기만 하면 변하지 않아야 할 인생의 가치가 변질될 수 있으니 위험한 것이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엔 변해야 살아남는 가치들도 존재합니다. 국제관계가 그러하고 첨단기술이 그러하고 경제활동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변하지 않아야만 의미있는 가치들도 있습니다. 사랑이 그러하고 선과 악에 대한 정의가 그러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그러하고... 마지막으로 학습에 대한 열정이 그러합니다. 군인에게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인것 처럼 학생에게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인격과 능력을 고양하는 것이 존재의 가치입니다. 그것은 나를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하는 군인의 봉사와도 같이 나를 성장시켜 남을 이롭게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공헌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뿐 아니라 이 뜨거운 여름을 학습의 열의로 불태우는 우리의 아이들 또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수호하는 마라톤시계들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십대들이 패션유튜버가 되고 싶고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고 유명연예인이 되고 싶어 안달복달인 요즈음, 인류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변치않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공사장의 아이


주황고깔 널부러진 공사판 한 켠에도

가녀린 풀꽃은 기어이 피어나고

고속도로 옆 나대지 왕왕대는 소음속에도

귀머거리 들꽃은 꽃가루 나려 수분을 합니다.

생명은 그렇게 기죽지 않고 

생명은 그렇게 꾸준합니다. 

어디 던져놓은들 속 편한곳이 있을까마는

제 앉은 그 자리에 다리를 뻣고

살아갈 하루에만 온 힘을 다하는

생명은 본디 그러한가 봅니다.


척박한 불모지에도

굳어버린 돌짝밭에도

생명은 묵묵히 번성해가고

메마르고 텁텁한 땡볕 여름도

질척하고 음습한 냉골 겨울도

생명은 덤덤히 견디어냅니다. 


오늘, 세상은, 

소란하고 척박하고 건조합니다.

그 속에 심기워진 들꽃 씨앗으로

아이는 또 하루를 살아냅니다. 


지지않고 기어이 피어날 수 있기를..

울음 삼키며 끝끝내 승리하기를..

먼지구뎅이 꽃잎 흔들며 개구지게 웃는

들꽃의 담대함을 배울 수 있기를..

시들은 이파리로도 여전히 푸르른

들풀의 자신감을 기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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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11일.아르헨티나의 한 주택가에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들 7명이 서 있었습니다. 초조해보이는 모습들이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시간… 더보기

긍정의 힘?

댓글 0 | 조회 1,292 | 2020.06.10
‘아직도 거기야?’‘네..’‘헐.. 어쩔려고 그런데니...?’지난 2주간 학생들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딱 위의 세 줄이 될것 같습니다. 저는 수업시작… 더보기

슴새는 배가불러 죽었다

댓글 0 | 조회 1,339 | 2020.05.26
대한민국에서 가장 뉴질랜드스러운 땅, 제주도.그 제주도의 북쪽 언저리 푸른 바다에는 ‘사수도’라 불리우는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돌섬인 이 사수도는… 더보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댓글 0 | 조회 2,507 | 2020.05.13
‘Pandemic’은 이제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그야말로 ‘Pandemic’의 pandemic 입니다.누구나 이야기하고 어느 누구도 해결점을 알지 못하기에 이 … 더보기

열심히, 하지만 안 열심히

댓글 0 | 조회 1,508 | 2020.03.25
한마디만 던졌다가는 금방 눈물을 뚝 떨굴것만 같았던 Z가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왜.. 그럴까요...? 왜 저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걸까요?”애먼 창 밖 구… 더보기

바이러스 대첩

댓글 0 | 조회 1,507 | 2020.03.11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대화의 주제가 거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듯 합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도 ‘몸은 건강하냐’로 시작해서 ‘몸조심해라’로 … 더보기

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댓글 0 | 조회 1,167 | 2020.02.26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더보기

‘자기주도학습’은 없다

댓글 0 | 조회 1,031 | 2020.02.12
지인의 가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을때였습니다.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입맛이 아직 초딩인 저는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