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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성공, 명품실패

0 개 2,092 김준

몇 년전인지 계산하기도 쉽지 않은 중학생 시절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시골중학교에 새로운 교장 선생님께서 부임해 오셨습니다. 나름 진취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자부했던지 새로 오시는 교장선생님은 전보다는 젊으시고 학생들의 입장을 많이 이해해주시는 분이시기를 바랬습니다. 드디어 새로이 부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첫 조회를 하시는 월요일 아침..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궁금함으로 가득해 단상을 올려다보았는데.. 웬걸요.. 일주일전 전근을 가신 이전 교장선생님보다 두배는 더 연세가 있어보이시는, 십대 초반 어린 아이의 눈에는 거의 백발의 호호 할아버지로 보이는 분께서 단상에 올라서시겠지요. 체구는 또 왜 그리 작으신지.. 구태 완연한 헐렁한 양복을 두루마기처럼 걸친 교장선생님은 아직 이년이나 남은 중학생활을 초라하게 만드실 것만 같아 불안했습니다. 다행이 선생님은 웬만한 젊은이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계셨고 놀라울 정도로 달변이셨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훈화말씀이 기대되어서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이 기다려졌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이라 말씀하시겠지만 당시의 제게는 그랬습니다. 항상 어디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오셨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도 쉬운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시곤 했습니다. 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오신 교장선생님이 제 어머니의 초등학교 은사님이셨다는 사실을 알게됐을때엔.. 막 피어나기 시작한 존경심위에 인간적인 친근함까지 덤으로 얹고야 말았습니다. 팬심이라고 하지요.. 


교장선생님께선 읍내의 한 하숙집에서 기거하셨습니다. 군청소재지라고는 하지만 손바닥 반쪽만한 동네에서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찬거리를 들고 선생님을 방문한다는 것은 중학생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영예였습니다. 군청 대장이신 군수님, 경찰서 대장이신 서장님, 소방소 대장이신 소장님처럼 삼대장안에 드는 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화원 관장님이나 세신병원 원장님 정도의 명망을 지닌분과 친분을 가진다는 것이 내심 자랑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어서 하숙집문을 열어제끼며 일부러 큰소리로 교장선생님~~ 하고 고함을 지른적도 많았고, 오이지나 상추무침을 담은 보자기를 달랑거리며 길을 걷다가 학교 친구라도 눈에 띄면 ‘응 엄마가 교장선생님께 반찬좀 가져다 드리라네~ 교장선생님이 옛날에 우리 엄마 선생님이셨거든~’이라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부름가는 발걸음이 그토록 의기양양했으니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짜르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그와 더불어 제 자부심 또한 나날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마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등장하는 ‘뽀르뚜까 아저씨’와 ‘제제’ 같다며 선생님과 저의 관계를 과장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교장선생님께서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기발한, 지나치게 기발한, 학력 신장 계획을 발표하십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기발함 때문에 전교생의 학력은 대폭하락했고 그간 이루어오신 모든 업적도 평가절하 되었으며 제 마음속의 자긍심이었던 교장선생님과의 친분은 어느덧 부끄러움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운동장의 프라타너스가 한참 초록잎을 뻣쳐올리던 시기였으니.. 아마 5월쯤 되었던 듯 합니다. 아침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서 학교에 새로운 시험제도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잖아도 시험이 너무 많아 손에서 연필가루 털어 낼 날이 없는데 또 시험이라니요. 매월 말 마다 치르는 월례고사에 네번의 정례고사를 더하면 일년에 12번의 시험을 치르어야 했는데 거기에 시험을 더 한다구요? 감히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토를 달거나 야유를 할 수는 없었지만 60명 남짓한 아이들은 입이 대빨이나 나와서 축 쳐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을 이으셨습니다. 


“자. 자. 그렇게 실망할 필요 없다. 선생님도 시험문제 출제하려면 더 힘들어. 그렇지만 이건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계획하신거고 아마 너희들 중 많은 학생들이 좋아할 일이 있을거다”


시험치르면서 퍽이나 좋을일이 있겠네요.. 맘 속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반장의 구령에 맞춰 선생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어디엔가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일말의 믿음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 좋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새롭게 시작되는 시험은 이름도 새로웠습니다. 


‘OO 중학교 학력경시대회’ 


매년 2학기와 4학기 두번에 걸쳐 실시되며 전교생의 학력증진을 목표로 넓은 범위의 스펙트럼을 가진 문제들로 구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시험날짜가 발표되고 이례적으로 학교 게시판에 포스터까지 나붙자 순수한 학생들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것은 무조건 좋은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골 문화에 길들여졌던 아이들은 이 시험이 광장히 특별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대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어리숙한 기대감의 일등공신은 바로 포스터에 씌여져있던 한문장 이었습니다. 


‘성적 우수자 특별 포상’


간첩신고 500만원 포상! 간첩선 신고 천만원 포상! 따위의 표어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포상’ 그 두글자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귓전이 둥둥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어마어마한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생각대로라면 교장선생님은 최소한 문교부장관정도의 국가재정 동원능력을 가지고 계신것이 틀림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나무랄수가 없는것이.. 그 동안 교장선생님의 노력으로 저희 학교가 전국에 몇 개소 안되는 컴퓨터 교육 시범학교로 선정되어서 삼성 SPC-1000이란 컴퓨터를, 그것도 무려 두 대나 지원받기도 했었고, 교장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하루만에 급조된 원예부가 어찌어찌해서 무슨 상을 받더니만 학교에 초대형 온실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시청각교육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각 교실마다 TV와 비디오가 설치되었고 덩달아 방송반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문화적으로 낙후된 시골에 살고있다는 열등의식에 찌들어있던 시골 중학생들에겐 교장선생님이야 말로 마이다스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성적우수자 포상이 주택복권 당첨금만큼 부풀어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지요.




시험날이 되었습니다. 사전에 손때 좀 묻혔다.. 자부하는 학생들로부터 ‘오늘으 나는 어제으 나가 아닌 것이여!’라 으스대며 벌건눈을 꿈뻑거리는 공부 초년생까지..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나름의 각오와 이유를 가지고 교실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동안 공부보다는 외양간의 송아지와 더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도 사뭇 진지하게 시험에 임했는데요. 그건 바로 포상 내역중에 ‘진보상’이 끼여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은 예상외로 쉬웠습니다. 솔직히 너무 쉬운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이도가 낮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평균 점수는 무지하게 높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당연히 실수 하나도 용납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잘 하면 만점자가 한반에 열명씩은 나올 것 같은 수준이었죠. 시험이 끝나고 쾌재를 부른 것은 당연히 공부초년생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시험때마다 절반은 찍고 절반은 굴려서 10분만에 끝내던 친구들이 나름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서 문제를 풀어냈다는 것에 스스로 감격하는듯 했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혹시 교장선생님께서 목적하신 것이 이런것이었을까..?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짐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후, 경시대회 시상식.


시상식이라 해봤자 별건 없었습니다. 외부손님들이 오신것도 아니었고 무슨 장식이 특별히 더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소에 하던 월요일 조회처럼 전교생이 대오를 맞춰 운동장에 모여 섰을 뿐이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신 교장선생님이 단상에 오르셨고 예의 카랑카랑한 목청을 돋워 말씀을 시작하셨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선생님 옆에 놓여진 박스에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광이 나는 하얀천으로 덮여있는 박스안에 그토록 궁금하던 ‘포상품’이 들어있으리라.. 과연 그 포상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혹시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까? 


말라붙은 목구멍을 끈적한 침으로 달래가며 기다리고 기다리기를 몇 십분, 드디어 포상품을 덮고있던 흰 천이 벗겨졌습니다. 


아... 6월 초여름 햇살아래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찬란한 금빛.. 저는 두 눈을 의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교장선생님께서 학교를 성장시키는 마이다스라 해도 그렇지 중학교 학력경시대회에 정말 금덩어리를 상품으로 내 놓으시다니.... 혹시 진짜 마이다스 이신가??


그러나 그 아름답고 황홀한 착각이 산산조각 나는데는 채 몇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사실, 무수하게 많은 금메달과 은메달들이었던 겁니다.‘메달’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수하게 많은’이 중요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뒤를 이어 단상에 오르신 어떤 선생님께서 학년별, 반별로 우수상과 진보상 수상자들의 명단을 주욱 주욱 불러주셨습니다. 총점 몇 점 이상은 모두 다 우수상 수상자여서 금메달을 받았고 지난 시험보다 어느수준 이상의 향상을 보여준 학생들은 모두 다 진보상으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전교생의 반 이상이 수상자여서 하나하나 수여하지 못하는 점 양해하라 하시며 각 반의 반장들을 불러 우유박스에 메달들을 퍼 담아주셨습니다. 대체로 허약해보이는 반장들은 아직 여물지 못한 팔근육으로 용을 쓰며 박스를 날랐고 조회가 파한 후 교실은 이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놋쇠에 금맥기를(시골에선 도금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입힌것이 분명한 금메달은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서‘뽑기’로 건질수 있는 플라스틱 장난감 메달보다 조금 나아보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뒷면에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게 정말 내 이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괴발개발이어서 참담한 마음이 더했습니다. 이걸 받자고 지난 몇 주동안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었나.. 하는 자괴감에 스스로가 비참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런 암울함은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공부로 메달을 받았다~’며 흥분했던 친구들도 조금씩 분위기를 파악해 갔고 쉬이 끝나기 어려운 중학생들의 난장판은 제풀에 숨이 죽어 이내 파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학력경시대회를 통해 기분이 고양된 사람은 교장선생님 한 분 뿐인듯 했습니다.


그 해 초겨울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이 의미없고 쓸모없는 무료금메달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다음해에는 수상자를 더 늘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반에서 메달을 못받는 아이들은 아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 뿐이었습니다. 


3학년 학력경시대회의 메달을 나눠받은지 며칠 후, 친구 한명이 선생님께 불려갔습니다. 알고보니 제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국민학생에게 ‘진짜 금’ 이라고 속여서 팔아먹었다 했습니다. 500원에 말이지요.. 세상에 학교와 제 이름이 버젓이 새겨진 물건을 속여 팔다니 제 정신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읍내 차부 쓰레기통에서 주웠다며 금메달을 들고 학교로 찾아오신 아저씨는 ‘공부도 잘 하는 아가 이거 일어부리고 월매나 맴이 아팠을꼬..’ 하며 안타까워 하셨지만 정작 분실(?)한 학생은 그저 난감해 할 뿐이었습니다. 은메달로 동네에서 비석치기를 하는 아이가 발견되기도 했고 물수제비에 탁월해서 강을 넘긴다는 리뷰를 접하고는 학교가 파한 후 동네저수지로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조회시간 훈화말씀을 통해 ‘땀과 노력과 성장의 증거인 메달을 함부로 다루는 몰지각한 세대’를 개탄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 금메달, 은메달이야말로 금속으로서의 가치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짝퉁 성공의 징표라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교장선생님께서 많은 고민끝에 시도한 일 이셨겠지만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는 모두의 메달은 물수제비 띄울때나 제 몫을 하는 짝퉁성공의 징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요즘 한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강사가 한분 계십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들과 아직 아재근성에 조금 덜 물든 3~40대 남성들에게 ‘원탑’으로 손꼽히는 강사님이십니다. 소통전문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김OO 강사가 그 주인공 이신데요. 사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대중강연 강사로 알려져서 그렇지 이 분의 직함은 한 두가지 아닙니다. 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중이기도 하시고 사설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하시며 각종 온라인매체의 감사직이나 고문직도 수행하고 계십니다. 아내의 소개로 이 분의 강의 동영상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영화배우 빰을 치다못해 강냉이를 털어버릴듯한 외모와 수려한 말 솜씨, 그리고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탄탄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비음섞인 목소리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발음은 또 얼마나 그렇게 명료하시던지요.. 저도 말하는 것이 직업이다보니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발음을 고치려 노력해 보지만 선천적인 구강구조에서 오는 바람새는 목소리는 도무지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그 분이 부러울밖에요..


나이가 꽤 되신듯 한데도 20대에 지지않는 체형을 유지하고 패션감각도 남 다른지 입고 나오는 옷마다 예사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동영상에 빨려 들어갈듯 하트 뿅뿅의 눈길로 경청하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그래.. 내가 못 채워주는 허전함을 그렇게라도 달랠수 있다면.. 충분히 즐기렴..’하며 지긋이 눈을 감아준게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의 강의에 빠져 이런 동영상 저런 동영상을 계속 찾아보다 보니 뭔가 같은 내용이 되풀이 되는것 같기도 했고 더 오래 접하다보니 어떤 공통된 코드를 하나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해결점을 제시하지 않는 현상파악’이었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 덧 붙인다면 ‘해답이 없을때는 네가 너를 위로하렴’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겠네요. 그렇게 한번 주요 맥락을 잡고나니 이젠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아서 흥미가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김 강사님의 강연중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남성들은 대화의 결론을 내고 싶어합니다. 끝 맺음이 정확해서 Yes 나 No로 마무리되길 원합니다. 저 또한 남성이니 이런 성향이 강한것이 당연할테고, 아마 그래서 허무한 마음을 한 없이 어루만져주는 강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감동하다가도 ‘삶의 실천사항 1, 2, 3’이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강의에 당황스러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 버릇이 참 무서운가 봅니다. 이젠 흥미가 없다며 딱 끊었던 김강사님의 강의가 TV화면에 올라오면 버릇처럼 클릭이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한동안 강의를 듣습니다. 조금 시큰둥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눈물 납니다. 그렇게 김강사님에 다시 빠져들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감성팔이라고 비판했던 나 조차도 이 분의 강의에 또 다시 빠져들고 있잖아.. 왜지? 왜 이분의 강의는 이렇게 강력한 흡인력이 있고 떠났던 사람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그리움같은 정서를 느끼게 하는걸까?”  


이제는 왠만한 레파토리는 그대로 복사할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지난 강의들을 떠 올리며 이유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찾아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김 강사님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운것을 가장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무너져보았던 경험이 있고 스스로가 직면했던 한계가 있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모든 아픔과 걱정과 후회와 번민속에서 빛나는 사금파리같은 깨달음을 건져내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야기는 위로가 되고 그 분의 강의는 설득력이 있었던듯 합니다. 


김 강사님은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사고로 청각을 잃으신 후 갈수록 완고해지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수발을 들면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 대학은 꿈도 못꾸던 고등학생은 고되고 힘들다는 해병대에 입대를 했고 거기에서조차 온갖 폭력에 시달리다가 겨우 제대를 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길을 찾아 방황을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김강사님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치유전문, 소통전문 강사가 된 것이지요. 이후 강사님은 길고 암울했던 실패의 시간들과 아픔의 나날들을 통해 자신이 발견해 낸 깨달음을 아직도 그늘속에서 괴로워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던져주고 계신것이지요. 그 분의 강의는 이렇게 현실속의 이야기이고, 자신의 이야기이고, 더구나 실패했던 이야기였기에 마치 한권의 자전석 소설을 읽는것처럼 진지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듯 합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실패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후일의 성공을 예약하는 실패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은 서럽고 아프고 눈물나는 실패이지만 언젠가 때가되고 기회가 오면 스스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자산이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서도 한다는 고생이고 미리 지불하는 성공의 댓가이니 어찌보면 값을 매길수 없는 명품 실패라 부를수 있을듯 합니다. 


이제 2020년 연말시험기간이 거의 끝나갑니다. 


어떤 학생은 두번의 Lock down과 여러가지 활동의 제약 속에서도 쉬지않고 꾸준히 제 걸어야 할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또 어떤 학생들은 방법보다는 핑계를 찾아서 될수 있는 한 노력하지 않는 길을 골라 깨금발을 찍으며 오늘에 다달았을겁니다. 그 동안의 과정의 어떠하였든 이들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 앉았고 공정한 저울추에 지난 일년의 삶을 달아보았습니다. 속이 꽉 찬 무거운 한 해를 보낸 학생과 쭉정이 같이 가벼운 한 해를 보낸 학생이 같은 질량으로 증명될리는 만무합니다. 그러나 때론 시험시스템이라는것이 아주 특별한 한명 한명을 세세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70%을 받아야 통과하는 시험에서 작은 실수로 69%를 받아 낙제하는 경우도 있고 또 동시에 ‘찍신’이 보우하사 71%을 받아서 합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장 차이이고 그래서 그로 말미암는 환희와 좌절 또한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실패했다 하여서 좌절하지 맙시다. 그것이 품고있는 명품의 가치를 감지하고 보완한다면 지금의 그 실패는 미래의 성공을 키워내는 엄청난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명품실패는 기어코 또 다른 성공으로 열매 맺을 것입니다.  


성공했다 하여서 자만하지 맙시다. 세상엔 그 끝이 한없이 초라한 짝퉁성공들이 흔하디 흔다 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제 겨우 성공의 스타트라인에 선 자신이 한없이 불안하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성공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2021년을 준비할 때 입니다. 


성공한 이는 겸허한 마음으로 실패한 이는 또 다른 의지로 다가오는 한 해를 가꾸어 나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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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댓글 0 | 조회 1,391 | 2020.08.26
세상은 넓고 먹거리는 많다지만 그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들 가운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화산활동으로 유명한 나라 아이슬란드입… 더보기

남에게 속고 나에게 당하고..

댓글 0 | 조회 1,628 | 2020.08.12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인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던 지난 주말. 한참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띠링띠링 전화가 울렸습니다. 연락올 … 더보기

다시 8월에 서서

댓글 0 | 조회 1,103 | 2020.07.29
어느덧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2020년을 두동강내며 term3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학년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term2 방학이 끝났으니 이제는 하반기로 접… 더보기

사람은 사람으로..

댓글 0 | 조회 1,486 | 2020.07.15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나름 큰 충격을 받아서 여기저기에 소문까지 내 가며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나가야 할까 모색하느라 고민했었는데요. 사람이… 더보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댓글 0 | 조회 1,294 | 2020.06.24
1960년 5월 11일.아르헨티나의 한 주택가에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들 7명이 서 있었습니다. 초조해보이는 모습들이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시간… 더보기

긍정의 힘?

댓글 0 | 조회 1,292 | 2020.06.10
‘아직도 거기야?’‘네..’‘헐.. 어쩔려고 그런데니...?’지난 2주간 학생들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딱 위의 세 줄이 될것 같습니다. 저는 수업시작… 더보기

슴새는 배가불러 죽었다

댓글 0 | 조회 1,338 | 2020.05.26
대한민국에서 가장 뉴질랜드스러운 땅, 제주도.그 제주도의 북쪽 언저리 푸른 바다에는 ‘사수도’라 불리우는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돌섬인 이 사수도는… 더보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댓글 0 | 조회 2,507 | 2020.05.13
‘Pandemic’은 이제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그야말로 ‘Pandemic’의 pandemic 입니다.누구나 이야기하고 어느 누구도 해결점을 알지 못하기에 이 … 더보기

열심히, 하지만 안 열심히

댓글 0 | 조회 1,508 | 2020.03.25
한마디만 던졌다가는 금방 눈물을 뚝 떨굴것만 같았던 Z가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왜.. 그럴까요...? 왜 저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걸까요?”애먼 창 밖 구… 더보기

바이러스 대첩

댓글 0 | 조회 1,507 | 2020.03.11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대화의 주제가 거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듯 합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도 ‘몸은 건강하냐’로 시작해서 ‘몸조심해라’로 … 더보기

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댓글 0 | 조회 1,167 | 2020.02.26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더보기

‘자기주도학습’은 없다

댓글 0 | 조회 1,031 | 2020.02.12
지인의 가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을때였습니다.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입맛이 아직 초딩인 저는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