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 값 피노누아(Pinot Noir)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집 한채 값 피노누아(Pinot Noir)

0 개 2,943 피터 황

1945년산 1병의 가격이 6억 3000만원에 낙찰된 지 몇 분 후에 1937년산도 예상했던 가격보다 20배 이상의 가격으로 경매되었다. 물론 품질뿐만 아니고 와인 평론가들의 호들갑이나 와인 투자자들의 속물근성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날 경매에 나온 로마네 꽁띠(Romanee-Conti) )는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직후에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최고품질의 포도로 600병만 한정 생산한 제품이다. 


8edd327b01b3a4d5139bca1ed5a064a3_1599624378_2023.jpg
 

그 다음해에 프랑스는 미국에서 건너온 진드기 ‘필록세라(Phylloxera)’의 피해로 뿌리가 썩은 포도나무를 모조리 뽑아 내버렸다. 그러니 16세기 말에 심어졌던 것과 같은혈통으로 생산된 마지막 빈티지라는 희소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 생산되는 와인은 1947년에 다시 심어진 포도로 만들어 진다. 와인 평가관들은 ‘놀랄 만큼 향이 좋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풍부한 과일 맛, 순수한 크리스마스 푸딩, 세상에서 가장 긴 애프터 테이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가히 지구상에 현존하는 피노누아(Pinot Noir)의 최고봉이다.


로마네 꽁띠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베네딕트 교단 생비방(Saint-Vivant) 수도원의 소유지였다. 그러다가 1625년 수도원이 폐지된 이후 1942년부터 현재까지는 로마네 마을의 8개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DRC법인회사에서 운영한다. 로마네-꽁띠(Romanee-Conti), 라 타슈(La Tache), 로마네-생-비방(Romanee-Saint-Vivant), 리쉬부르(Richebourg), 에셰조(Echezeaux), 그랑-에셰조(Grands-Echezeaux), 꼬르똥(Corton) 그리고 유일한 화이트 와인인 몽라쉐(Montrachet)이다. 라벨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에 의해 병입되었다는 표기(Mis en bouteille par DRC)가 되어있다. ‘비단과 같이 부드럽고 매혹적이면서도 장미꽃의 비밀스러운 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로마네 꽁띠의 1.8헥타르 포도밭은 바위와 자갈이 많아 철분이 풍부한 석회질 지대다. 이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수령이 50년된 포도나무의 열매만을 사용하고 150년 이상의 나무로 제작된 오크 통은 그해 빈티지를 숙성시킨 이후엔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뉴질랜드에 로마네 꽁띠의 묘목을 심었다는 와이너리가 있다. 마틴보로 지역의 선구자 클라이브 패튼(Clive Paton)이 설립한 아타랑이(Ata Rangi) 와이너리다. 1970년대 중반에 프랑스의 DRC법인회사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장화속에 몰래 숨겨온 것을 뉴질랜드 세관원이자 와이너리 소유주였던 말콤 아벨(Malcom Abel)이 압수한 뒤 올바른 검역과정을 거쳐 자신의 농장에 심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뉴질랜드 로마네 꽁띠랄까. 아무튼 이곳에 심어진 묘목은 마틴보로에 적응하면서 아벨 클론(Abel Clon)으로 불리며 명실상부한 뉴질랜드의 그랑 크뤼 등급의 와인으로 통한다. 수확 후 7-15년 숙성이 되었을 때 정점에 이르고 더 긴 시간도 숙성이 가능하다.



뉴질랜드의 피노누아 와인 생산지로는 북섬의 마틴보로, 남섬의 말보로와 센트럴 오타고가 유명하다. 말보로(Marlborough)는 긴 낮과 서늘한 밤, 밝은 햇빛, 건조한 가을 등의 환경을 가졌고 다른 지역보다 무게감이 가볍고 식물성 향이 강하다. 마틴보로(Martinborough)의 기온은 북섬의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낮으며 서쪽의 산과 들에 비구름이 막혀 뉴질랜드에서 가을이 가장 건조한 곳이다. 일교차도 뉴질랜드에서 가장 크다. 이런 환경은 피노누아의 생장에 잘 맞는다. 마틴보로의 피노누아는 드라이하면서 질감이 벨벳처럼 부드럽다. 강렬한 자두 향과 체리 향을 풍기지만 때때로 흙냄새가 나는 것도 있다. 현재 30여개의 와이너리에서 부르고뉴 스타일의 피노누아를 생산한다. 이곳을 대표하는 아타랑기(Ata Rangi), 마틴보로 빈야드(Martinborough Vineyard), 드라이 리버(Dry River) 등이 1980년대 초에 설립되었고 뒤를 이어 다수의 개인 생산자들이 부르고뉴(Bourgogne)풍의 와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찬란할 만큼 밝은 색상을 가지고 있고 오랜 숙성을 거치지 않아도 강하면서 우아하고 복합적이면서 농밀한 과일 향을 풍긴다. 뉴질랜드의 여러 곳에서 피노누아를 재배하지만 재배조건이 가장 좋다. 뉴질랜드의 다른 와인 생산지가 해양성 기후 지역인데 반해서 센트럴 오타고는 밤낮의 일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 지대다. 또 여름은 매우 짧고 겨울 날씨는 몹시 춥다. 포도는 이런 날씨 속에서 낮에는 당분을 밤에는 산 성분을 축적한다. 이렇게 축적된 당분과 산은 훌륭한 와인을 위한 필수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여름과 초가을의 매우 건조한 날씨는 곰팡이에 약한 피노누아가 잘 열매를 맺도록 해준다. 다만 주로 석회암과 진흙으로 이루어진 부르고뉴와 달리 센트럴 오타고의 포도밭은 퇴적토라서 부르고뉴 피노누아 와인과 비교해 보면 맛에 차이가 있다. 1990년대 초에 설립된 펠턴로드(Felton Road) 와인어리는 센트럴 오타고 피노누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큰 공헌을 했고 마운트 디피컬티(Mt. Difficulty), 리폰(Rippon)빈야드도 이지역의 주요와인 생산자다. 


어쩌면 피노누아(Pinot Noir)품종은 많은 와인 제조자들에게 ‘도전’ 이나 ‘모험’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재배하기가 어렵고 병충해에도 매우 약하다. 또한 토양의 성분과 조건에 따라 수확량과 품질이 달라지고, 좋아하는 토양에 대한 선택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악평가들과 평론가들도 30년 동안이나 성숙되어가는 피노누아 앞에서는 무릎을 끓는다. 테이스팅을 한 와인 평가관이 결국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는 전설의 피노누아(Pinot Noir)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진정한 명품(名品)은 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갈고 닦는 자기성찰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바로 당신이다.  


쉬라(Syrah) VS 쉬라즈(Shiraz)

댓글 0 | 조회 13,909 | 2014.08.12
쉬라(Syrah)는 프랑스를 비롯한 구대륙에서 부르는 말이고 쉬라즈(Shiraz)는 호주 등 신대륙에서 사용한다는 식의 뭉뚱그린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정보의 업데… 더보기

요리(料理), 와인을 만나다

댓글 0 | 조회 10,152 | 2015.06.10
섹시한 남자가 대세다. 빨래판 같은 식스팩의 복근쯤은 가져야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시절에서 이제 뇌(학력)가 섹시해서 능력이 남다르거나 쉐프수준의 요리실력을… 더보기

샴페인과 삑사리 철학

댓글 0 | 조회 8,870 | 2015.10.14
고향에선 추석명절이면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이 화투(花鬪)를 하곤 했다. ‘꽃으로 싸운다’는 뜻의 화투는 그 이름에서 이미 심오한 철학의 무게가 느껴진다. 48장의… 더보기

첫 인상, 외모도 경쟁력이다

댓글 0 | 조회 7,764 | 2014.01.14
첫인상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인간의 뇌에 있는 편도체라는 부위는 첫인상을 관장하는 곳으로 아주 짧은 1000분의 17초라는 시간에 판단할… 더보기

나폴레옹과 술의 황제, 코냑(Cognac)

댓글 0 | 조회 7,250 | 2016.06.09
프랑스의 지명이기도 한 코냑(Cognac)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최고급 브랜디(Brandy)인 코냑이 와인을 증류해서 만든 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 더보기

청주(淸酒) VS 사케(Sake)

댓글 0 | 조회 6,624 | 2016.04.13
아버지와 여러 겹의 노끈으로 손잡이를 만든 백화수복을 들고 고향에 내려 올려다본 밤하늘엔 별들이 빼곡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더보기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

댓글 0 | 조회 5,357 | 2012.12.12
한해를 마감하는 뉴질랜드의 연말연시는 친구나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인다기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여름휴가철이 된다. 꽃이 만발하고 녹음이 짙어가는 화… 더보기

아라비아의 와인, 커피(Qahwa)의 유혹

댓글 0 | 조회 4,338 | 2014.05.13
학창시절 음악다방에서 신청 곡과 사연이 적힌 쪽지를 들이밀고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신청한 곡이 나오길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인스턴트 커피와 프림, 설탕의 황금… 더보기

드라이(Dry), 그것이 알고 싶다

댓글 0 | 조회 4,333 | 2015.09.10
하루에 사계절이 들어있다는 뉴질랜드의 봄(Spring)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프링(Spring)처럼 변화무쌍하다. 드라이(Dry)라는 단어는 건조해서 … 더보기

마시는 화장품, 와인 차(茶)를 아시나요?

댓글 0 | 조회 4,004 | 2014.09.10
다른 이를 위한 희생, 이제 박물관에나 보관되어 있을 법한 단어다. 죽음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홀로 수백의 적함 선을 향해 뛰어든다. 이순신 장군, 성공의 키… 더보기

청국장과 치즈는 누가 다 먹었을까

댓글 0 | 조회 3,967 | 2016.03.10
카메라 앞에만 서면 무뚝뚝하게 서있는 나에게 사진사는 간절하게 김치를 외쳐댄다. 그래 봐야 마지못해 억지웃음을 만들어내자 이번엔 치즈를 부르짖는다. 입가에 웃음을… 더보기

와인의 고수(高手), 피노누아(Pinot Noir)

댓글 0 | 조회 3,928 | 2015.05.13
어느 분야에나 고수(高手)는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를 이룬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겐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남이 알지… 더보기

요강을 뒤엎는 술, 복분자(Black Raspberry)

댓글 0 | 조회 3,847 | 2015.12.09
대충 약 30년 전의 서울시 시민들의 이야기가 리얼하다. ‘연탄불, 성문종합영어, 골목길, 카스텔라’. 응답 받고 싶은 1988년도, 나의 대학시절이기도 한 그 … 더보기

와인 디자인, 블렌딩(Blending)의 세계

댓글 0 | 조회 3,781 | 2016.08.11
언제나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맛 집들은 대부분 한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창적인 비법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전통의 맛을 변함없이 지켜가기… 더보기

번데기와 피노 그리스의 꿈

댓글 0 | 조회 3,734 | 2014.02.12
초등학교 후문은 코흘리개의 용돈을 겨냥하고 좌판을 벌여놓은 온갖 야바위꾼과 잡상인들로 북적였다. 나무로 만든 뱀과 개구리 장난감, 큰 함석대야에서 벌어지는 물방개… 더보기

슈퍼에 와인이 돌아왔다

댓글 0 | 조회 3,679 | 2020.03.11
슈퍼마켓 완전정복 (1)슈퍼마켓와인이 진화하고 있다. 5달러부터 시작하는 착한 가격은 물론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와인회사로 국한되었던 예전과는 달리 30달러이상하… 더보기

호스트 테이스팅(Host Tasting)을 아시나요?

댓글 0 | 조회 3,588 | 2016.11.09
허물없이 친한 사람들끼리의 자리라면 그다지 매너를 따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형식이나 절차가 편안한 분위기를 너무 학문적(?)이고 딱딱하게 만들 수도 있기 … 더보기

나의 첫 사랑, 피조아(Fejoa)

댓글 0 | 조회 3,324 | 2016.01.14
남자는 첫 사랑을 못 잊어 또다시 닮은 사랑을 하고 여자는 첫 사랑을 잊기 위해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한다고 했던가.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대략 20년 전, 데본포… 더보기

코로 와인 마시기(Ⅱ)-오키(Oaky)면 오케이(Okay)

댓글 0 | 조회 3,202 | 2015.03.11
일상에서 작은 사치(Small Luxury)를 즐기려는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트렌드가 양으로 승부하던 외식업계를 고급화시키고 더불어 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 더보기

육각형의 방, 코르크(Cork)의 정체

댓글 0 | 조회 3,019 | 2016.02.11
와인은 오래될 수록 좋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숙성이 되면서 풍미가 풍부해지는 와인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와인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코르크(Cor… 더보기

사람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비결

댓글 0 | 조회 2,955 | 2014.04.09
상도(商道)의 제 1원칙, 상즉인(商卽人)의 의미는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무역거상, 가포(稼圃) 임상옥(林尙… 더보기
Now

현재 집 한채 값 피노누아(Pinot Noir)

댓글 0 | 조회 2,944 | 2020.09.09
1945년산 1병의 가격이 6억 3000만원에 낙찰된 지 몇 분 후에 1937년산도 예상했던 가격보다 20배 이상의 가격으로 경매되었다. 물론 품질뿐만 아니고 와… 더보기

봄에 바람이 부는 이유

댓글 0 | 조회 2,912 | 2019.10.08
고혈압으로 평생 약을 드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신 이후로 하루도 병상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고 보낸 적은 없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마냥 마누카의 하얀 꽃이 바람에… 더보기

엄친아 아버지, 카베르네 프랑

댓글 0 | 조회 2,870 | 2016.05.11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공부 잘하고 부모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한다는 무시무시한 존재, 엄친아(엄마친구아들).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더보기

테스형(兄)도 모르는 와인 다이어트

댓글 0 | 조회 2,719 | 2020.10.14
다이어트의 역사는 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탐식이나 비만을 죄악시했고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Socrates)는 ‘식욕이 강하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