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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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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의 옛글자는 灋(법)이다. 이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水(수)와 상상의 동물인 廌(태), 그리고 물러남을 의미하는 去(거)가 결합한 것이다. 해태 또는 해치라고도 하는 廌는 옛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뿔달린 짐승으로 기록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法은 본래의 형태에서 廌가 빠져 있는 셈인데, 필자에게는 마치 法이 상상 속의 짐승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술적 관점을 벗어나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읽힌다.

실상 법의 근대성은 개인이 자신의 판단하에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핵심으로 한다. 칸트는 실천이성 개념을 통해 자기입법의 의지로서 도덕법칙과 보편 입법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개인의 철학적 토대를 정립하였다. 여기에 사회계약이라는 이론을 통해 근대적 개인의 생명, 신체, 자유, 재산이 보호된다. 특히 부르주아적 시민의 등장으로 개인의 재산권이 강조됨에 따라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는 민사 분쟁을 넘어 국가의 형벌을 통해 처벌되는 범죄가 되었다. 절도(竊盜)는 소유권자의 동의 없는 재산의 불법적 이전이고, 여기에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면 강도(强盜)가, 기망 내지 위계를 수단으로 하면 사기(詐欺)가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이,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촘촘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성(性)은 국가나 사회의 것, 이른바 풍속(風俗)으로 다루어지면서 자기결정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성이 그렇게 취급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성만이 국가나 사회의 것으로 취급되었을 뿐, 남성의 성은 철저하게 자기결정의 영역으로 강조되었고, 심지어 가부장의 권리로서 엄격하게 보호되었다. 

우리 법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입법을 통해 형법 제32장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6년부터다. 이때부터 형법은 여성(부녀)의 ‘정조’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은 빠르게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성폭력 범죄의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등하게 보호받게 되었다. 친고죄 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피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타당한 변화였다.  

올해부터는 강간 등의 예비ㆍ음모를 처벌하는 조문이 신설되었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이 13세에서 16세로 상향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될 여지가 마련되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해석을 통해서도 지속되었다. 부부 강간을 처벌함으로써 부부 사이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함을 확인했고, ‘성인지 감수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상 여성인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 수용될 여지가 확보되었다. 이른바 ‘기습추행’ 처럼 폭행 자체가 추행인 경우 폭행의 정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임을 요하지 않고 그 의사에 반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대소강약은 불문’ 함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에 더 나아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지 않더라도 ‘동의가 없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간음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동의없이 이루어지는 재산 침해를 절도나 횡령으로 구성함으로써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처럼, 동의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온전히’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발의되는 비동의 간음죄의 경우, 법정형 등이 기존 강간 및 강제추행과 정합적이지 않고, 법문언으로서 ‘동의’ 개념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을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산물로 보아온 그동안의 문화 또한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것이 아닌 한, 자기의 선택과 결정은 온전하게 존중받고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주체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언젠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이기에, 이 노력은 미완의 프로젝트로서 계속되어야 한다.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출처 : 한국일보 <형형색색>

■ 김대근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 경제범죄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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