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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속고 나에게 당하고..

0 개 1,628 김준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인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던 지난 주말. 한참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띠링띠링 전화가 울렸습니다. 연락올 곳이 없는데 누굴까? 하며 전화기를 들어보니 왠 한국 번호가 적혀있는데... 도무지 알수 없는 번호더군요.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이걸 대뜸 받았다가 무슨 사단이 날른지 알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설마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보이스피싱을 시도할까.. 뭘 대단한 걸 낚아보겠다고.. 싶어서 수신버튼을 터치했습니다. 곧 이어 들려오는 우렁차고도 살가운 목소리.


‘쌔앰~’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떠났던 S가 마지막 얼굴을 본지 근 10년만에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친구를 오랫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둘이서 한잔 하다보니 제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합니다. 실은 그 녀석들이 둘 다 제 학생이었거든요. ㅎㅎ 전화를 걸어준 S는 인천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함께 만나고 있는 친구는 약사가 되었답니다. 비싼 국제전화를 걸어 준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에 시간 질질 끌어가며 부담을 더 할수는 없어서 5분남짓 통화를 하곤 한번 놀러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화에 놀라서인지 아니면 30을 바라보는 S의 나이가 이젠 젊지 않음이 확실한 제 나이를 자각하게 해서인지.. 저도 모르게 가는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S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했던 찬란하고 화려하고 한편으론 마음 아팠던 그 시절로 잠시 회귀하였습니다.


2000년대 말.. 


친구 둘셋만 모여도 Tell me~ Tell me~ 하면서 열맞춰 줄맞춰 손가락을 찔러대고 노래방에만 갔다하면 애절한 목소리로 ‘총 맞은 것처럼’을 구슬프게 노래하던 그때 그 시절..  S는 이곳 오클랜드에서 한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좋은 인연이 잘 맞아 떨어졌는지 S는 Y11부터 저를 만나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상냥하고 살뜰한 맘 씀씀이와 하나를 배우면 두세 스텝을 먼저 나가는 총명함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S는 저의 최애학생중 한명으로 손꼽히게 되었는데요. 사람 눈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던가요..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서글서글한 S는 학교에서도 인기만점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제 스스로도 키만 조금 더 컷으면 연예인이 될려고 했다며 떠들고 다녔을까요. ㅎㅎ


캠브리지 Y12 과정인 AS를 만족할만한 성적으로 마치고 한 후 S는 서둘러서 Y13과정인 A2를 준비하길 원했었습니다. AS보다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훨씬 난이도가 높은 A2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미리 앞당겨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제 충고를 반영한 요청이었지요. 그래서 AS시험을 마치자마자 잠깐 한국에 다녀온 후로 S와 같이 열심히 선행을 했습니다. 하긴 뭐 선행이라 해봤자 2개월치 남짓 되었겠네요. 개학을 하고 난 후 시간표 작성의 문제로 인해 S는 가장 자신있어하던 물리과목을 Away 코스로 수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는 않고 혼자서 공부해서 시험만 치르는 형식이지요. 학교에선 시간표작성이 안되니 물리를 포기하라 했지만 전략과목을 포기할수는 없다고 S는 맞섰고 그래서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은것이 바로 Away 과정이었습니다. 그 비싼 유학생 학비를 내는 마당에 조금 억울하기도 했고 아무리 개인교습으로 끌어간다고는 하지만 학교수업을 못받는 것이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일수도 있는 법! 둘은 모의작당을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선행으로 거진 반정도 진도를 마친거.. 조금 더 서둘러서 11월이 아닌 5월 시험을 치러보자. 그러면 남은 반년동안 한 과목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니까 나머지 두 과목에만 집중을해서 A* A* A* 를 만드는거지. 그럼 목표로 하고있는 영국의 모모 대학교는 너끈히 합격할거다.’


각각 중년과 청년의 초입에 선 두 사내들의 작당 치고는 더이상 건전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으샤으샤 공부를 하다보니 5월 시험은 순식간에 다가왔고 S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A*를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성적이 발표되던 날.. 그 기쁜 소식에 지난 몇 개월간 묶었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리는듯 했지요. 동시에 잘 꿰어진 첫단추의 탄력을 힘입어 남은 4개월도 열심히 달려갈 수 있을듯 했습니다. 


이후 S는 우리의 계획대로 꾸준하게 공부해 나갔고 연말이 되어 우리의 목표대로 영국의 한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연말시험만 잘 치르면 되는것이었죠. 


그런데 막판 스퍼트로 하루하루 애를 쓰던 S에게 학교에서 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이미 한달도 전에 제출했던 지원서류를 다시 풀세트로 만들어서 다음날까지 제출하라는 메일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던 S는 학교에 연락을 했고 학교의 대답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해외대학 진학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실수로 S의 서류를 분실했답니다. 그래서 지원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그 시점에서 제출서류들을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한거랍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한국에서 발행되어야 할 서류들 때문에 지원서류를 다시 작성하려면 열흘은 족히 걸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학교측에 이야기하고 다시 한번 찾아봐줄것을 요청했지만 대답은 ‘아몰랑~ 너가 알아서 해~’ 였습니다.


S는 부리나케 한국의 부모님께 연락을 한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한다.. 입학 에이젼트와 상담을 한다..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그의 영국행은 좌절되고 맙니다. 참으로 어이도 없고 경우도 없는 이유로 말입니다. Final시험이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렇게 큰 상실을 맛본 S는 그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0살도 되지않은 아이가 감당해 내기에는 너무도 큰 좌절이었고 억울함이었음이 당연해서 뭐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만난 S는 다크서클이 축 늘어진 눈에 그래도 웃음기를 띄우며 그냥 뉴질랜드에서 진학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받아놓은 점수가 진학에 충분해서 남은 시험은 낙제만 하지 않으면 될것 같다며 오히려 맘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몇 개월 뒤 S는 무리없이 지원했던 학과에 합격을 했고 무리없이 졸업을 했고 무리없이 취업을 해서 지난 토요일에 이르른 것입니다. 


S가 진학했던 뉴질랜드의 대학교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거나 불만족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학교이고 또 훌륭한 학생들이 입학해서 더 훌륭한 모습으로 졸업하는 학교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S의 개인적인 소망과 계획에 비춰보았을때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진학이 좌절되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S는 그렇게 제게 기쁨과 아쉬움을 골고루 안겨준 후 사랑스런 제자로 기억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S가 학교의 진학 담당자에게 서류제출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했었더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더구나 바로 2년전에 비슷한 류의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 사고는 제게도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 이후론 해외진학을 결심한 학생들에게 지원서와 자료들이 제대로 발송되었는지 계속 확인하고 접수여부를 문서로 받아 놓으라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S의 진학은 의도치 않은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영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지만 그 교훈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살아있으니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이고 금과옥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8월.. 이제 캠브리지는 과정의 연말시험은 딱 10주 남았고 NCEA는 15주정도 남았습니다. 말그대로 하루하루 시험날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듯한 요즘, 진학과 시험에 관련된 몇가지 기억에 남는 사례를 살펴보며 배울것은 배우고 버릴것은 버리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S의 이야기가 타인의 실수에 의해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은 사례라 한다면 자의에 의해 스스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A는 매 수업마다 공부할 부분을 스스로 정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자의식이 강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교만한것이겠습니다만 다행히도 학교 성적은 꽤 좋은편이었지요. 이전에도 가끔씩 그런 학생들을 만나왔었고 또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니, 좋은 성적을 잘 유지해주기만 한다면 입시결과도 나쁘지 않을 아이에게 제가 구지 하나하나 감놔라 배놔라 따지고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고 그에 연관된 사례들을 소개해서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일에만 집중하면 됐으니까요. 물론 그것도 A의 윤허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만.. ㅎㅎ 


그런데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A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대학입시를 위해 가장 중요한 13학년 External에서 A는 자신이 받아본 중 최저의 점수를 받고 맙니다. A가 희망하던 학과에서 불합격했음은 물론이고 소위 ‘보험’이라 일컫는, 아무리 안되도 여기는 합격한다.. 싶은 지원학과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NCEA 시험의 문제유형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수험생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일것이니 A의 참담한 성적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많이 생각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책임감을 동반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반년이 지나 전년 시험문제가 NZQA 사이트에 기출문제로 공지된 후에야 얻을수 있었습니다. 제가 전과목 문제들을 다 분석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것은 아니니 모든 과목을 통털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제가 가르쳤던 두가지 과목의 문제들 만큼은 충분히 분석해 낼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시험문제들은 마치 미리 짜고서 만든것처럼 A의 약점들을 조목조목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A가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챕터들..  A가 자주 실수를 해서 제가 계속 반복시키는 바람에 갈등만 커졌던 그런 부분들.. A가 입버릇처럼 그건 다 알아요~ 라고 말했었지만 정작 시험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는 잊어버렸다며 허둥대던 그 concept들.. 새로운 형태로 구성된 시험문제들이 그 모든 A의 약점들을 실날하게 파헤치고 남김없이 무너뜨린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후회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멋대로 삐쳐나가는 아이라 하더라도 아닌것은 아니고 틀린것은 틀렸다고 확실히 잡아주었어야 했었는데 말입니다. 나름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준비의 방법을 저 혼자서 결정하게 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지요. 그럼 도대체 A는 어떤 방식으로 시험준비를 했던 것일가요? 과연 그것은 보통의 학생들과는 다른 유별난 방법이었을까요?  A가 저지른 실수를 우리의 아이들이 되풀이 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며 저지르기 쉬운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과목별, 챕터별로 경중을 따져서 투자하는 시간이나 노력을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과목이 있고 싫어하는 과목이 있습니다. 쉽게 쉽게 문제가 풀려나가는 챕터가 있고 한 문제를 붙잡고 몇시간을 끙끙대도 남는것은 지끈거리는 골치뿐인 챕터도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학생들도 사람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문제가 풀리지 않고 점수가 나오지 않는데도 그저 재미있고 좋아하는 과목은 존재하지 않고, 손만 대면 문제가 술술 풀려나가고 멍하니 앉아서 듣기만 해도 쏙쏙 이해가 되는 챕터를 징그러울 정도로 싫어하는 경우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싫어하면 못하게 되서 그런걸까요? 아닙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잘하는 과목을 좋아합니다.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과 챕터를 좋아하고 그 과목의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적성이나 타고난 재능에 의해 과목의 선호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과목의 성적에 정비례해서 과목의 선호도는 결정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는 것이지요. 


하여튼.. 시험 준비에 들어갈 무렵, 아이들은 연말 점수를 가늠해보며 나름 계산을 시작합니다. 


이 과목은 열심히 해 봤자 몇점 안나오니까 그저 시간낭비.. OK.. 그냥 버리고... 


이 과목은 최소한 몇점이니까 무조건 몰빵해서 전체 점수를 올리고... 


이 챕터는 요 몇년 통 시험에 나온적이 없으니까 그냥 가볍게 개념정리만 하고..


이 문제유형은 뭐 내가 잘하는거니까 아예 뿌리를 뽑아야지.. 전략과목!!


물론 말이 됩니다. 저도 NCEA 학생들이 Y13에 올라갈때면 선택한 과목들의 챕터별 Credit를 하나하나 계산해가며 버릴 챕터와 살릴 챕터를 선별해주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입시 필요점수인 80credit를 훨씬 상회하도록 넉넉한 여유를 두고서 작업을 하는 것이니 위와같은 아이들의 계산과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점수계산과 학습계획은 자기가 잘하는 과목, 그러니까 좋아하는 과목과 챕터에만 치중해서 시간을 배정하고 목표를 설정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들 스스로가 판단하는 잘하고 못함은 결국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또 다른 표현인데 시험문제의 난이도라는 것이 한 학생의 개인적 선호와 딱 맞춰서 결정되지는 않기에 둘 사이에는 심각한 어긋남이 발생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학생이 좋아라하고 성적도 잘 나오던 부분의 문제가 너무 어렵게 출제되거나 아예 출제가 안될수도 있고, 학생이 멀리하고 싶어하는 문제가 보너스 문제형식으로 쉽게 출제가 되어서 자기만 빼놓고 남들은 다 득점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아이들의 대표적인 핑계인 ‘공부한 곳에선 하나도 안나오고 안한데서만 출제됐다’가 아주 심각한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A가 겪었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제 단기적인 시험준비에 돌입해야 하는 8월을 맞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자세는 전과목, 전챕터에 대한 차별없는 ‘사랑’ 입니다. 저득점의 골을 메워서 평균을 올려야 할지, 아니면 고득점의 산을 높여서 평균을 올려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인 방법이니만큼 당연히 과목별, 챕터별 경중을 두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공부에서 배제하는 과목이 있다거나 아니면 하루종일 한 과목만 붙들고 있는 누를 범해선 안될것입니다. 


시험결과를 뚝 떨어트리는 묘안 중에는 위의 ‘과목별 편식’ 뿐 아니라 ‘학습과정의 몰이해’ 라는 방법도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 K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제가 아이들을 한두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연말시험 결과를 듣는 것 만해도 근 20년인데 설마 상황판단을 못할까요..


‘그래서... 빨랑 얘기해. 몇 점이냐?’


두세번 다그치고 나서야 K는 마지못하는 목소리로 점수를 이야기 했습니다.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놀라는 목소리로 학생의 기를 죽일수는 없지요.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 중의 하나입니다. 오히려 아직 남아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서 말해주며 희망을 품게 해야 합니다. 희망고문이라 하더라도 좋습니다. 적어도 고문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럼 성적이 A로 가기에는 조금 모자라네.. 아무래도 내년에 엄청 열심히 하던지 아니면 재시험을 치러야 할거 같다. 그래도 학교에 가서 성적을 자세히 알아봐봐. 혹시 문제 중에 실험 페이퍼 성적이 많이 안 좋아서 전체 성적이 떨어졌을 수도 있어. 만약 그렇다면 재시험을 안 보는게 나을수도 있으니까’


캠브리지 과정을 수강하는 K는 Y12 물리시험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저조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본인도 그렇고 아무리 안되도 A라며 낙관했었는데 정작 결과는 B range의 중간쯤이었지요. 캠브리지 시험은 Y12와 Y13 점수의 평균으로 최종점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12학년 점수가 안좋으면 13학년에서 너무 고생을 해야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고생을 해서 12학년의 부진을 만회할만큼 성적이 잘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더 양도 많고, 더 난이도가 높은 과정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캠브리지 과정은 12학년에서 점수를 만들어 놓아야 하고 그게 여의치 않았다면 13학년때 재시험을 치러야만 합니다. 참 많이도 복잡하지요. 그런데 과학과목엔 더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과학과목의 시험문제는 세가지 문제지로 나뉘어집니다. 객관식과 주관식 그리고 실험이 그것입니다. 일년치 학습내용 전부를 객관식으로 한번 풀고 주관식으로 또 한번 풀고 거기에 더해 실험시험을 통해 조작능력과 필수지식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한 과목이 이정도이니 이런 방식으로 5과목의 시험을 치르고 나면 아이들이 초죽음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요.


K의 성적에 의구심을 품은 채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정말로 세개 페이퍼가 골고루 엉망이면 어찌하나.. 만약 실험만 문제가 된다면 재시험을 치러야하나 말아야 하나..


개학을 하고 y13으로 등교한 첫날, K는 일러준대로 선생님을 찾아서 Paper별 점수를 확인했고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쌤. 객관식은 A* 구요, 주관식은 A인데요.. 실험이 D예요. 히히히..”


다행히도 이론 베이스의 공부는 열심히 했음을 증명할수 있다는게 기분이 좋았는지 아이는 제 속도 모르고 웃기까지 했습니다. 성적을 듣는 중에 ‘네가 진정 단매에 죽고싶은게냐?’ 하는 고전적인 욕지거리가 튀어나올뻔 했습니다. 캠브리지과정을 수강중인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만 실험페이퍼의 비중은 무시해도 될만큼 가볍지 않습니다. 전체 점수의 28%가 실험점수 입니다. 더구나 학생들의 점수가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 양상이 강해서 A와 적은 수의 B, 그리고 C를 거른채 D로 연결되는 특이한 점수분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까딱 잘못했다가는 순식간에 A에서 D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캠브리지 과학 과목의 실험페이퍼인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이 상황을 누누히 말해주고 실험시험준비를 위해 문제도 풀리고 숙제도 주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실험 문제는 그리도 싫어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결과가 A*, A, D인 것이지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K는 재시험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점수만 낮은 경우엔 재시험을 치르는 것이 큰 개선의 효과를 기대할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그 노력으로 13학년 점수를 올리는 것에 치중하기로 한 것이지요. 다행히 작전이 잘 맞아 떨어져서 간당간당하게 최종점수 A를 받기는 했지만 고등학교의 마지막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버거운 일년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간혹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의 특색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알려줘도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무조건 잠 안자고, 무조건 고득점을 외친다해도 과정의 이해가 없는 노력은 많은 경우 큰 골치거리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K가 경험했던 캠브리지 12학년 과학시험이 그렇습니다. 복잡한 설명이나 계산이 없다고 해서 실험페이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28%에 해당하는 점수를 놓칠수도 있고 설사 겨우 패스를 한다해도 재시험의 기회를 잡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캠브리지 12학년 AS과학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 있다면 꼭 기억하세요. 만약 올해 실험페이퍼를 놓치면 내년에 지옥을 경험할 겁니다. 


지금까지 몇가지 사례를 들어 얼만 남지 않은 연말시험을 준비하는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일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다음 기회에 말씀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부디 타인에 의해 혹은 스스로에 의해 괴로움을 겪는 일 없이 진학과 연말시험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거두어 들이는 2020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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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시험준비

댓글 0 | 조회 1,562 | 2020.10.13
이제 2020년도 10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연말시험기간에 들어섰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다가오는 연말시험의 중압감을 피부로… 더보기

그대, 알바트로스

댓글 0 | 조회 1,238 | 2020.09.22
십 수년전의 어느날. 발길 닿는대로 남섬을 여행하던 중 더니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커녕 인터넷카페도 몇 개 없었던 그 시절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 더보기

너 자신을 알라

댓글 0 | 조회 1,392 | 2020.08.26
세상은 넓고 먹거리는 많다지만 그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들 가운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화산활동으로 유명한 나라 아이슬란드입… 더보기

현재 남에게 속고 나에게 당하고..

댓글 0 | 조회 1,629 | 2020.08.12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인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던 지난 주말. 한참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띠링띠링 전화가 울렸습니다. 연락올 … 더보기

다시 8월에 서서

댓글 0 | 조회 1,104 | 2020.07.29
어느덧 말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2020년을 두동강내며 term3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학년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term2 방학이 끝났으니 이제는 하반기로 접… 더보기

사람은 사람으로..

댓글 0 | 조회 1,486 | 2020.07.15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나름 큰 충격을 받아서 여기저기에 소문까지 내 가며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나가야 할까 모색하느라 고민했었는데요. 사람이… 더보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댓글 0 | 조회 1,294 | 2020.06.24
1960년 5월 11일.아르헨티나의 한 주택가에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들 7명이 서 있었습니다. 초조해보이는 모습들이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시간… 더보기

긍정의 힘?

댓글 0 | 조회 1,292 | 2020.06.10
‘아직도 거기야?’‘네..’‘헐.. 어쩔려고 그런데니...?’지난 2주간 학생들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딱 위의 세 줄이 될것 같습니다. 저는 수업시작… 더보기

슴새는 배가불러 죽었다

댓글 0 | 조회 1,339 | 2020.05.26
대한민국에서 가장 뉴질랜드스러운 땅, 제주도.그 제주도의 북쪽 언저리 푸른 바다에는 ‘사수도’라 불리우는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돌섬인 이 사수도는… 더보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댓글 0 | 조회 2,507 | 2020.05.13
‘Pandemic’은 이제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그야말로 ‘Pandemic’의 pandemic 입니다.누구나 이야기하고 어느 누구도 해결점을 알지 못하기에 이 … 더보기

열심히, 하지만 안 열심히

댓글 0 | 조회 1,508 | 2020.03.25
한마디만 던졌다가는 금방 눈물을 뚝 떨굴것만 같았던 Z가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왜.. 그럴까요...? 왜 저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걸까요?”애먼 창 밖 구… 더보기

바이러스 대첩

댓글 0 | 조회 1,507 | 2020.03.11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대화의 주제가 거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듯 합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도 ‘몸은 건강하냐’로 시작해서 ‘몸조심해라’로 … 더보기

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댓글 0 | 조회 1,167 | 2020.02.26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더보기

‘자기주도학습’은 없다

댓글 0 | 조회 1,031 | 2020.02.12
지인의 가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을때였습니다.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입맛이 아직 초딩인 저는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