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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라는 분이 40세쯤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는 군요.
그런데 이 분이 기생이지만 이 분의 문학사적인 위치 때문에 기생을 업신여기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도 이 분을 무시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국문학계에서는 조선 500년을 통 털어 황진이를 따라가는 시조시인은 없다고도 합니다.
한시에서는 허난설헌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요.
그래서 특히 국문학자들이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인물이 황진이입니다.
누가 찾아보니까 논문이 한 천여 편 된다고 그러는 군요.
그런데 이 분의 작품이 많지도 않습니다.
시조 여섯 수에다 한시 일곱 수 이런 정도인데, 한시는 잘 나와 있지도 않고 찾아야 되죠.
그 시조 여섯 수를 가지고 그렇다는 거죠.
이 분의 기생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이 두고두고 향기를 발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분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 바로 저라는 겁니다.
우주에서도 제일 부러운 사람이 저랍니다.
누구라도 하늘의 파장을 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조나 한시도 하늘의 파장을 전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할 게 없어서 마지못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공부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는 그렇게 가르쳐주시는 분이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만일에 똑 부러진 선생을 만났더라면 자기가 기생이 되었겠는가?
그때 소실의 딸이니까 아마 자신도 소실이 됐겠죠.
소실이 됐지, 그렇게 어려운 기생을 해가면서 온갖 사람을 통해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한 분이 계셨더라면..
그러니까 지금 수선재는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에요.
자신은 안 돌아다닌 데가 없더라고요.
지리산에서부터 금강산까지 그렇게 십여 년을 돌아다녔답니다.
온갖 사람을 만나고 온갖 사람을 통해서 배웠다는 얘기죠.
자기는 그렇게 온갖 사람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수선재는 한 분을 통해서 전 과목을 다 배우니 얼마나 좋으냐, 부럽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하셔요.
그래서 서경덕 선인이 안 가르쳐주시더냐? 그랬더니, 선인이 되는 전 과정을 모두 가르쳐주시지는 않으셨답니다.
그 분은 학문적으로 가르치신 분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가서 여쭈면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로 꿰뚫는 그런 답변을 해주셔서 자기가 많이 발전을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전임으로 가르쳐주고 이러지는 않으셨다고.
그런 얘기를 하시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