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0 개 1,604 명사칼럼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은 여성 특히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하고 불법촬영을 하여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의 다수 회원에게 판매해 엄청난 수익을 취득한 사건이다. 취약 대상을 상대로 한 범죄의 잔혹성과 패륜성도 문제지만, 수만 명의 남성이 대화방에 가입하여 범죄를 교사ㆍ방조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경악하고 있다. 사람들의 공분은 가해자들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청원과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원이 각각 2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현행 신상공개제도는,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보안처분의 성격을 갖는 신상공개(‘성폭력처벌법’ 제42조,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와 수사 중 피의자에 대한 것으로 국민의 알 권리 내지 수사를 위한 신상공개(‘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 ‘성폭력처벌법’ 제25조 등)로 나눌 수 있다. 문제되고 있는 것은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이고, 이번 사건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처벌법’ 제25조가 적용되었다.

 

‘성폭력처벌법’ 상의 피의자 신상공개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필요할 때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이를 남용해서는 안되며, 만약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상의 청소년인 경우에는 공개할 수 없다. 범죄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실제거주지, 직업 및 직장 등의 소재지, 연락처, 신체정보, 소유차량의 등록번호가 공개되는 보안처분적 신상공개와 달리, 피의자 신상공개의 범위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에 국한되는데, 이때 수사기관은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만을 취할 수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헌법상의 무죄추정 원칙에 반하고 이중 처벌과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의 이익’ 개념은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불명확하기도 하다. 공공의 이익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과, 부수적으로는 피의자의 여죄(餘罪) 파악을 내용으로 하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가 동종의 재범을 할 가능성은 없으며, 범죄 예방의 효과는 검증된 바는 없다. 잔혹한 범죄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호기심이 일지만,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실상 국민의 알 권리는 언론의 상업주의 내지 피의자에 대한 망신주기와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방어권이 위축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며, 피의자 가족에게 그 효과가 미친다는 점에서 연좌제와 같다는 비판도 따른다. 게다가 지금의 신상공개는 범행 동기나 심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의자에게만 과도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측면이 있다. 실무상, ‘신상공개위원회’의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의자 신상공개는 신상 정보가 노출되어 일상을 영위하기 힘든 피해자에 반해 피의자도 상응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점, 피해자의 권리보다 가해자의 권리가 더 보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회의, 그리고 사회의 관대한 태도와 법의 미온적 처벌에 대한 보완적 조치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에서처럼 다수의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데 따른 일반의 불안과 또다시 성범죄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의 공포를 해소함으로써 시민의 안전과 피해자 일상의 회복에 대한 요청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은, 소라넷 사건을 비롯해 일련의 디지털 성범죄에 관대했던 문화와 법의 태도에 내재된 것이어서 안타깝다. 통상의 강력 범죄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의 기소율과 구속율은 현저히 낮다. 설사 기소되더라도 법원에 의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는 비율이 높은 편이고, 그나마 대부분은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로부터 찾거나 피해자의 기여로 보는 일부 비뚤어진 시각에 분노한다. 누구도 범죄를 당해도 되거나 범죄를 저지를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원인과 책임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희석시키고,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이제 겨우 일부 운영자를 체포하여 수사 중에 있고, 여전히 검거되지 않은 운영자들과 가담자들에 대한 적발과 체포 그리고 수사와 재판, 처벌이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자를 반드시 적발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소극(笑劇ㆍfarce)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182ea266c6ea0b42cb162e96b59beb34_1587609244_2795.jpg
 

 

출처 한국일보 칼럼 <형형색색>

 

소통이 고통인 당신… 완벽, 승리, 주역 욕심을 버려라

댓글 0 | 조회 1,552 | 2021.01.27
소통은 직장생활 내내 화두였다. 나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소통이 안 되는 조직에서는 불안하고 답답했다.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통 잘 되는 조직이 … 더보기

세종 때부터 <중용>은 초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댓글 0 | 조회 1,149 | 2021.01.13
어느 시절인들 유교 경전에 탁월한 선비가 없었겠는가마는 특히 융성한 때가 따로 있었다. 조선 전기를 통틀어 전성기를 손꼽으라면 단연 세종의 치세가 최고였다. 내 … 더보기

영웅은 없다

댓글 0 | 조회 1,290 | 2020.12.23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의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결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의… 더보기

굴비가 영어로는?

댓글 0 | 조회 6,511 | 2020.12.09
“여보, 당신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 필자가 “불쑥퀴즈”를 아내에게 던졌다. “글쎄, 생각날까 모르겠네, 배우긴 배웠는데 너무 오래돼서..… 더보기

위대함의 원천

댓글 0 | 조회 1,280 | 2020.11.25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존재다.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여 인간과 관계없이 존재하던 자연의 세계 위에 무늬를 그린다.무늬를 그리면서 자연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 더보기

말 잘하는 리더의 5가지 마음

댓글 0 | 조회 1,716 | 2020.11.11
리더의 말에는 ‘5심’이 있어야 한다. 말이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을 잘 심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心)이 말의 씨앗이다. 바로 그 씨앗이 좋아… 더보기

코로나 19 시대, 외계인보다 문어가 더 궁금한 이유

댓글 0 | 조회 2,416 | 2020.10.29
코로나19 시대에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넷플릭스를 보는 이가 주변에 많다. 넷플릭스는 미국의 주문형 콘텐츠 서비스 제작업체인데, 재밌는 콘텐츠가 너무 많은 듯하… 더보기

말에도 뿌리가 있다

댓글 0 | 조회 1,452 | 2020.10.14
■ 강 진모말에도 뿌리가 있다. 어떤 말은 뿌리가 얕아 유행처럼 사라지는가 하면, 어떤 말은 뿌리가 깊어 왕조가 무너져도 살아남는 말이 있다. 그렇게 뿌리깊은 말… 더보기

‘양심을 찍는 도끼’와 ‘쇤네 근성’

댓글 0 | 조회 1,501 | 2020.09.23
코로나 사태 이전 이야기다. 문학 관련 행사가 있어서 사전 답사차 안상학 시인과 강화도엘 갔다. 강화도 토호 함민복 시인의 안내와 지시를 따를 참이었다. 강화대교… 더보기

문외한의 영시(英詩) 산책

댓글 0 | 조회 1,377 | 2020.09.09
얼마 전 아내와 함께 흰 구름도 눈 부신 오후, 봄 향기 가득한 동네길을 걷고 있었다. 쇼핑몰과 상점이 있는 마을 중심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짓궂은 한줄기 소나… 더보기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댓글 0 | 조회 1,578 | 2020.08.26
법(法)의 옛글자는 灋(법)이다. 이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水(수)와 상상의 동물인 廌(태), 그리고 물러남을 의미하는 去(거)가 결합한 것이다. 해태 또는 해치… 더보기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

댓글 0 | 조회 1,375 | 2020.08.12
“부끄러움 아는 자기반성 능력, 인간적 활동의 출발점”일만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낯선 질문에 빠지기 시작한다. 나는 왜 사는가? 삶의 의미… 더보기

유머감각이 리더십이다

댓글 0 | 조회 1,471 | 2020.07.29
“당신은 웃기는 사람입니까”간디가 영국 유학할 때 이야기다. 식민지 청년이란 이유로 그를 업신여기는 영국인 교수가 있었다. 어느 날 학교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 더보기

도전 정신으로 훨훨 날으며

댓글 0 | 조회 1,634 | 2020.07.15
매년 11월3일은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기념일은 일본 강점 때인 1929년 11월 3일에 광주에서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놀려 한국… 더보기

직장 동료를 존중해서 항상 영어를 사용하기 바랍니다

댓글 0 | 조회 3,635 | 2020.06.23
지난 5월 27일 RNZ에 자극적인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English language-only sign at cafe taken down’으로, 번역하자면… 더보기

광주 환벽당

댓글 0 | 조회 1,608 | 2020.06.10
어지러운 세상, 시와 술로 달래던 김윤제의 ‘살롱’한시는 시풍에 따라 당시(唐詩), 송시(宋詩)로 나뉜다. 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당시는 가슴으로 쓰고 송시는 … 더보기

리더가 말하는 법

댓글 0 | 조회 1,862 | 2020.05.27
‘리더십=동기부여 역량’… 경청, 칭찬, 보상을 아끼지 말라① ‘경청’하고 인정하는 자세 - 스스로 성장하게 도와준다② 늘 누군가를 ‘칭찬’ 한다 - 우회적으로 … 더보기

사형수와의 인터뷰

댓글 0 | 조회 2,106 | 2020.05.13
올해 하반기는 ‘사형 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연구를 위해 구치소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녔다. 1997년 12월 30일 집행을 마지막으로 현재 총 60… 더보기

화순 학포당

댓글 0 | 조회 1,429 | 2020.05.04
의(義)란 무엇인가, 두 번 보여준 양팽손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여기서 네 등급이 나온다. 옳으면서 이익을… 더보기
Now

현재 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댓글 0 | 조회 1,605 | 2020.04.23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은 여성 특히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하고 불법촬영을 하여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의 다수 회원에게 판매… 더보기

아름다운 손

댓글 0 | 조회 2,010 | 2020.04.15
▲ Inspiringstory "The Praying Hands"​어느날 오후 내 눈 길이 우연히 아내의 손에 닿았다. 그리고 놀랐다. 어느새 굵어진 손 가락 뼈… 더보기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댓글 0 | 조회 1,518 | 2020.04.06
리더는 갈등을 ‘변화의 디딤돌’로 만든다 나는 늘 갈등한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택시와 지하철을 놓고, 그리고 청소기와 세탁기 중 하나를 택하라는 아내 앞에… 더보기

영화와 도시

댓글 0 | 조회 1,208 | 2020.03.25
뉴욕 출신 거장 영화감독들이 만든 뉴욕 스토리‘인생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 등 참여​한때 뉴욕이란 곳에서 3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 더보기

통계와 정직 훈련

댓글 0 | 조회 1,247 | 2020.03.11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가운데 “먹거리” 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특히 밭과 들에서 나오는 기본 작물에 대해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수확을 할 수 있을까… 더보기

바이러스 질병의 감염과 공포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756 | 2020.02.26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한(武漢) 폐렴’에 대한 공포가 플라스틱 미세 입자처럼 세계로 퍼져나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