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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해의 뉴질랜드 체육인 (NZ sportsman of the year 2019)으로 선정된 종합격투기 (UFC) 미들급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 (Israel Adesanya)가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Tall Poppy Syndrome이 젊은이들의 꿈을 말살하고 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땀과 눈물로 이룬 성공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성공을 자랑하는 것이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이지리아출신 이민자인 그는 격투기 출신 체육인으로서는 처음으로 NZ 체육상을 수상하면서 보수적인 뉴질랜드 체육계와 그들의 독특한 정서인 Tall Poppy Syndrome을 작정하고 비판했다.
Tall Poppy Syndrome은 ‘자신이 성취한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거나 성공을 과시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므로 늘 자신을 낮추어 행동해야 한다’는 뉴질랜드인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서이다. 이 말은 유난히 두드리지게 키가 큰 양귀비 꽃을 잘라버린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뉴질랜드나 호주는 영국의 계급사회로부터 탈출한 2등시민(?)들이 평등주의(egalitarianism) 세계관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속에서 세워졌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토양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과시적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서가 대세로 자리잡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사람들 중 어느 누가 성공을 마다하겠냐만은 나의 성공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자기성찰적 이타적인 태도와 행동은 실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이민와서 Tall Poppy Syndrome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이질감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획일화된 한국 사회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뉴질랜드에 Tall Poppy Syndrome이 있다면 한국에는 ‘튀지말고 중간만 가라’는 처세철학이 있다. 일본처럼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 (겉마음)을 구분하는 것이 예의다’라는 극단적인 타인의식문화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은 집단이나 군중속에서 몸을 낮춘채 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학교나 직장, 군대 등 조직생활을 거치며 ‘묻혀가는 것’이 생존전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소용돌이쳤던 질곡의 근현대 역사속에서 자기 한몸 지키려는 보호본능이 발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편안하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Tall Poppy Syndrome’와 ‘튀지말고 중간만 가라’라는 말에는 타인의 주목을 피하며 불필요하게 타인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감정의 배려가 들어있다. 하지만,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원하는 바를 성취하였을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인간본성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때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남의 성공을 질투하는 마음과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면서 용기를 얻겠다는 마음은 도덕적 기준으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출발선상의 감정은 같다. 결국,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이라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슬픔과 용기를 동시에 얻는다는 것이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심에 불타서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해악을 끼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성공속에 녹아 있는 땀과 눈물을 알아보고 이를 높이 평가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이기고 부단한 성찰과 노력을 통하여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타적인 존재가 될수 있다. 타인의 행복을 축하하면서 나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계산으로도 남의 성공을 폄하해서 내가 얻을 것이 없다. 남의 성공을 폄하한다고 해서 내가 더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lowing out someone else’s candle won’t make yours shine brighter…”
남의 촛불을 끈다고 해서 너의 촛불이 더 밝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