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학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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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학습’은 없다

znblue
0 개 1,030 김준

지인의 가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을때였습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입맛이 아직 초딩인 저는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느냐, 아니면 어떤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느냐 하는 다분히 어른스럽고 성숙한 모임의 의미보다는 오로지 제 입맛에 짝짝 들어붙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수있다는 단 한가지 즐거움에 한껏 들떠 있었던듯 합니다.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그동안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묻는 지인의 말도 거진 무시한채 교과서 읽듯 메뉴를 신중히 읽어가며 주문을 했습니다. 제 입맛은 소중하니까요. 

 

십여분을 기다린 끝에 음식이 나왔습니다. 바삭한 튀김에 달콤한 샐러드도 맛났지만 탱글탱글한 우동 면발이 꼼지락거리며 목울대를 넘어가는 느낌이 얼마나 그리 찰지던지요.

 

한참을 말없이 먹기만 하는 남편이 조금 무안했던지 아내가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며 ‘뭐라고 말좀 해’라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입의 또 한가지 용도인 ‘말하기’를 시작할 무렵..

 

땡그르~ 식당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손님들이 들어섰습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식당에 누군가 들어선다해서 바로 이목을 끌 이유는 없을텐데도 저를 비롯한 손님들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무리의 손님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20명 남짓한 젊은 한국인 청년들.. 어쩌면 그렇게 다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한지.. 하나같이 연예인 빰치게들 생겼더군요. 저야 눈만 뜨면 대하는 것이 학생들 얼굴이니 뭐 별로 특이할 것이 없었습니다만 평일 점심시간에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 한인 남학생들은 사실 주변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던지 그들은 식당 홀의 중앙에 준비되어있던 긴 예약석에 앉았습니다. 한참 혈기 왕성한 젊은 사내애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느니 얼마나 왁자하게 떠들어댈꼬.. 오늘은 조용히 점심먹기는 글렀구나.. 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분위기가 조용했습니다. 뭔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느껴져서 의도치않게 그들의 나긋나긋한 대화를 조금 엿듣게 되었는데요.. 대화 내용이 KPOP도 아니고 게임 얘기도 아니고 연애 얘기는 더더욱 아니고 세상에.. 공부이야기더라구요. 이런.. 밥먹으러와서 공부이야기라니... 그들은 어떤 어떤 교수님의 강의 스타일이 어떻고 어떤 페이퍼가 점수가 잘 안나오는데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어떻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아이들이 이런 품행방정한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져서 슬금슬금 눈짓을 해볼수 밖에 없었는데요. 서너번쯤 힐끗 거렸을까 그 중 어느정도 상석에 앉은듯한 학생 하나와 눈이 딱!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2초간 서로 얼음 땡이 되는듯하더니만 그 친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했습니다. 예의 그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말이지요. 

 

‘선생님 아니세요. 안녕하셨어요’

‘응 그래. T야.. 잘 지냈어? 오랫만이다~ㅎㅎ’

 

입꼬리에 묻은 소스를 서둘러 훔치고는 꿀꺽, 입안을 비우며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단체로 모인 자리에 불청객이 되면 안될듯하여 옆 빈자리에서 손짓으로 T를 불러내곤 두손을 맞잡았지요.

 

‘그래. 얘기는 들었어. 공부 힘들지?’

‘아녜요. 다들 하는건데요. 뭐..’

‘그래도 이렇게라도 얼굴을 볼수 있어서 참 좋다. ㅎㅎ. 오늘은 무슨 모임이 있어서 온거야?’

‘아. 네. 의대 한국인 학생회 모임이 있어서요. 회의 끝나고 점심먹으러 왔어요’

‘아~ 그렇구나. 의대 한인 학생회라구~ 어쩐지 다들 공부 잘하게 생겼더라.ㅎㅎㅎ’

‘진짜요? ㅎㅎ’

 

너무 오래 아이를 잡아둘수가 없어서 짧은 몇마디 인사만 나누고는 언제 한번 학원으로 놀러(?)오라 당부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아이는 ‘조만간 한번 갈게요’ 라며 지켜지지 않을것이 뻔한 약속을 했고 저는 ‘그래. 기다릴게’ 라며 기대감 없는 기다림을 약속했습니다. 서로 사는게 바쁘니 그저 그려러니 이해할 밖에요. 

 

자리에 돌아와 다시 튀김을 집어드는데 눈동자 여섯개가 ‘물음표’를 하나씩 달고서 저를 바라봅니다.

 

안경까지 더하면 10개가 되겠군요.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의대 한인 학생회 모임이래’

순간 터져나오는 숨죽인 탄성. 

‘와...’

‘그럼 지금 이 식당에 의사만 20명이 앉아있는거네.. 지금 당장은 아니라해도.. 20명 하루 일당만 다 모아도 어마어마하겠다. ㅎㅎ’

 

평소 큰아이를 의대에 보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지인은 어줍잖게 농담 한마디 던졌다가‘일당 많이 받으려고 의사하느냐’는 핀잔을 들었고 저와 T사이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있던 주변의 테이블마다 예의 그 작은 탄성들이 퐁퐁 터져나와 20명 남짓한 미래의사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차안. 

 

T와의 우연한 만남은 그와 함께했던 근 3년여의 시간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때 저는 지금보다 젊었고 T는 지금보다 미숙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가 지금보다는 더 열정적이었듯이 그때의 T 또한 지금보다는 더 뜨거웠던듯 합니다. 

 

그는 아주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몇명의 학생들을 사례로 들어 학습과 성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T는 무조건 포함시켜야 할 학생이라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가 보여주었던 그 치열함은 당시 저의 열정을 넘어섰고 그래서 결국 제가 끌려가기 바쁜 이상한 형국이 되었는데, 재미있게도 그러한 의욕과 충족의 불균형이 오히려 성공적인 학습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과유불급’의 예외라고 할수 있을까요..

 

T와의 추억을 되짚다가 문득 그를 한 단어나 짧은 문장을 사용해 아주 직관적으로 표현한다면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 이걸론 부족해. 무한한 승부욕...? 이거 뭐야.. 종합격투기도 아니고.. 뭔가 주체적이면서도 강렬한 열정같은 것이 있는 아이인데.. 1%의 가능성을 향해 100%를 불사르는 그런 뜨거움이 있는 아이..’

 

뭐라고 쉽게 정의 할수 없는 T의 뜨거움은 그후 며칠동안 머리속을 맴돌며 수십가지 신조어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우아한 전투력, 뜨거운 냉정함, 섬세한 마구잡이... 무언가 아주아주 정밀한 방향설정과 아주아주 폭발적인 에너지의 합성어가 필요할 것만 같았습니다. 거기에 입술 질끈 깨물고 무조건 버티는 인내심까지 더해야 하겠지요.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몇개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을 조합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T를 묘사할 수 있는, 그리고 T와 같은 성향을 가진 학생들을 묘사할수 있는 그 모든 단어와 합성어들은 기실 한가지 특징의 여러 단면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 특징은 바로 ‘자기주도성향’이었습니다. 

 

T가 저와 함께 공부했던 근 3년의 시간동안 보여준 그만의 독특하고 기특한 학습의지는 ‘자기주도성향’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가장 합당한 듯 했습니다. 그는 알아서 하루의 스케쥴을 조정해가며 가장 정신이 맑은 알토란같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줄 알았고, 학교 시험스케쥴을 분석해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와 특별활동에 신경써야 할 시기를 구분해 낼 줄 알았습니다. 숙제와 공부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매일매일 학교 학습내용을 복습하는 성실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공부뿐 아니라 직장일로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챙겨가며 공부시킬줄도 알았고 10년후 20년후의 스스로를 상상해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T의 열정은 무서울정도 였습니다. 이미 스칼라반에서 공부를 하는 최상위권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진지한 수업, 더 깊은 내용, 더 높은 수준을 향한 자기 주도적 향학열은 그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움이었습니다. 어느샌가 그 무시무시한 불꽃은 제게도 옮겨붙었고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그리도 무모한 도전과 피마르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었나 봅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T가 그렇게 공부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해서 정신적으로 이상한 구석이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공부뿐 아니라 골프와 양궁팀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도 했었습니다. 그저 공부 자체에 대한 의욕이 유별났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이쯤되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가운데엔 무릎을 탁 치면서 ‘그래 그래. 학생이 이래야지. 이 T라는 학생이야말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학생의 표본이라 불릴만 하구만’ 하며 감탄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모든 공교육, 사교육기관에 유행처럼 번진 단어 ‘자기주도학습’의 좋은 사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계획을 짜서 스스로 노력을 기울인 후 스스로 그 결과를 검토하는 그런 지극히 능동적인 학습과정을 현실적으로 구현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T의 유별난 학습의욕을 ‘자기주도학습능력’ 이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T가 가진 그 능력은 관심사에 대한 ‘자기주도성향’ 혹은 ‘자기주도추진력’ 일수는 있지만 콕 찝어서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라 말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습이라는 활동은 학생의 의지나 추진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참으로 다양한 요소가 관여하는 복합활동이고 그래서 학생의 자기주도성향만으로는 온전한 학습을 이루어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주도성향은 학습과정 자체가 아니라 학습의욕에 관련합니다. 불타는듯한 욕구가 심장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와서 책을 펴지않고는 견딜수 없는 열망이 모든 학생들에게 충만히 차고 넘친다면이야 더 이상 바랄나위가 없겠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조차 몰래 전화기 들고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속에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의욕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도 대단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의욕은 의욕일 뿐입니다. 의욕은 현실적인 방향의 설정과 구체적인 실현의 방편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욕이 넘치는 누군가가 적절하지 못한 방편을 만나게되면 모든일은 걷잡을 수 없는 급류를 타고 자신과 타인을 망하게하는 길로 흘러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은 의욕이 충만하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의 지도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과 나중, 저학력과 고학력, 입문과 완성의 모든 학습방향에 대하여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아무리 열정이 끌어올라 자기주도적으로 운동을 하려해도 구체적인 과정을 지도하는 코치가 없으면, 혹은 일관된 방향으로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 학교의 선생님이 자주 바뀌면 아이들 성적이 널을 뛰게 되는 것이지요. 성적에 관계없이 말이지요. 

 

간혹 학부모님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렇게 사교육을 받다보면 ‘자기주도학습능력’이 떨어져서 대학에 가서 공부할때 어렵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진짜 공부는 그때부터인데 말이지요’

 

저는 이러한 우려가 두 가지면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첫째. 공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짜입니다. 사실 대학공부를 진짜공부라고 말하는 이유는 참으로 단순합니다. 더 어려운 내용을 더 많은 노력을 들여 더 짧은 시간에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컬리지의 공부는 더 쉬운 내용을 더 적은 노력을 들여 더 여유있게 공부하죠. 그래서 가짜인가요? 우리는 학생들의 능력이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사고력이 자라가고 정신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대학공부를 해 나갈수 있는 능력과 소양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이전의 학습에 바탕을 두고있습니다. 컬리지에서 하는 공부가 바탕이 되었을때 적절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그 성장을 바탕으로 대학공부가 이루어지는 연계선상에 우리 아이들의 젊은 시절을 놓여져 있습니다. 다시말해 컬리지공부와 대학 공부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컬리지 공부는 쉬워서 가짜이고 대학공부는 어려워서 진짜인가요? 

 

기억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컬리지 학습이 없이는 성공적인 대학 학습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요. 대학공부가 진짜이듯이 컬리지공부도 당연히 진짜 공부입니다. 어쩌면 대학학습의 근간을 이루는 더 중요한 공부일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자기주도 학습능력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자기주도 학습의지가 존재할 뿐입니다. 효과적인 학습이란 단순히 학생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질수는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 대학교 심리학과에서 발표한 연구결과가 잘 말해주듯 효과적인 학습이란 학생과 선생님과의 좋은관계에서 탄생되며 이는 공부라는 활동이 여타의 사회적 활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습에는 독불장군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공부라는 것은 학생과 책이 주체가 되고 거기에 선생님과의 관계가 얹혀있는 형식이 아니라 학생과 선생님이 주체가 되고 그 공교한 관계의 바탕위에 학습자료들이 얹혀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스스로 주도하여 공부의 처음 시작부터 끝 맺음까지 완수하겠다는 생각은 사실 어찌보면 망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자기주도적 자세로 공부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 또한 망상가를 키워내는 것에 진배없는 일이 될수 있겠습니다.’

 

이런 장황한 답변에 대해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또 다른 질문을 주시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제시하시는 학습방법은 무언가요?’

 

한 마디로 대안을 제시하라는 강력한 요구이지요. 그 질문에 대해 저는 T를 비롯한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그리 모든 공부를 척척 알아서 잘 할수 있을까요? 그거야말로 ‘자기주도학습능력’ 인것은 아닐까요? 과외한번 안 받고 고득점을 줄줄이 뽑아내는 학생들이나 책과 노트만 가지고 우등생의 반열에 올라선 학생들.. 그들은 과연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유전적 기여를 힘입어 그러한 급진적인 향상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모르게 야음을 틈타 어딘가에 숨어있는 은둔고수에게서 지도를 받는 것일까요? 그러한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에게는 나름의 비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 비법이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스스로의 학습에 강력한 지침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 비법은 대부분 누군가 (학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 혹은 형이나 누나 등등..)의 지도에 의해 습득되었고 실제 학습과정에서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반복된 연습에 의해 강화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에 능통했다기보다는 자신의 학습스타일에 맞는 지침을 접한 후 그것을 강화해서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그래서 혼자 공부하지만 언제나 선생님이 함께하는, 무형의 코치를 옆에두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찌보면 행운아라고 할수도 있겠지요.”

 

자기주도학습.. 

 

너무나 달콤한 말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요구할수 있는 것은 자기주도적인 학습의욕을 고취하라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겐 불타는 열망을 최선의 방향으로 현실화시키는 지도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부담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자기주도적 학습의 벼랑으로 아이들을 몰아가며 너 혼자 계획하고 너 혼자 추진하라고 다그치기 보다는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받고있는 도움의 가치를 경시하지 말고 그 가르침속에서 학습의 현실적 비법을 찾으라 지도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리라 생각됩니다. 

 

T가 Y12에 올라가던 여름, 제게 물었습니다.

 

‘AP 화학 시험을 보고싶은데 올해 서둘러 준비하면 가능할까요?’

 

어느정도 그의 성격을 파악한 터라서 이미 확고한 결심이 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속에 ‘AP만점’을 향한 불꽃이 퍼렇게 일렁이고 있다는것도 모를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만류했습니다. 자칫하면 마음속의 불꽃이 허튼데로 튕겨져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소중한 성취들이 한 순간에 불타버릴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뜨거운 마음에 데여 화닥거리는듯 그의 열정과, 체력과, 응시해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지만 저는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언쟁을 했고 T는 결국 저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해에 T는 학급 최고점수로 AS과정을 마쳤고 A2선행과 AP과정을 병행 한 후 Y13에 AP에 응시해 만점을 획득했습니다.

 

물론 한 해 전에 시험을 치렀어도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는 AS과정보다 많이 어려운 AP를 공부하느라 진이 빠졌을것이고 그럼 캠브리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일컫는 AS성적을 보장하기 힘들었을수도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의욕’은 그 자체만으로는 모든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의욕’은 ‘타의주도 학습내용’과 결합되어야만 제대로 된 결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그 시절 T와 저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케미를 가지고 있었던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2020년의 신학기를 시작하는 2월,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주도적 열성과 선생님의 섬세한 지도를 잘 섞어서 소기의 성취를 이루어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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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나름 큰 충격을 받아서 여기저기에 소문까지 내 가며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나가야 할까 모색하느라 고민했었는데요. 사람이… 더보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댓글 0 | 조회 1,293 | 2020.06.24
1960년 5월 11일.아르헨티나의 한 주택가에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들 7명이 서 있었습니다. 초조해보이는 모습들이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시간… 더보기

긍정의 힘?

댓글 0 | 조회 1,290 | 2020.06.10
‘아직도 거기야?’‘네..’‘헐.. 어쩔려고 그런데니...?’지난 2주간 학생들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딱 위의 세 줄이 될것 같습니다. 저는 수업시작… 더보기

슴새는 배가불러 죽었다

댓글 0 | 조회 1,338 | 2020.05.26
대한민국에서 가장 뉴질랜드스러운 땅, 제주도.그 제주도의 북쪽 언저리 푸른 바다에는 ‘사수도’라 불리우는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돌섬인 이 사수도는… 더보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댓글 0 | 조회 2,505 | 2020.05.13
‘Pandemic’은 이제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그야말로 ‘Pandemic’의 pandemic 입니다.누구나 이야기하고 어느 누구도 해결점을 알지 못하기에 이 … 더보기

열심히, 하지만 안 열심히

댓글 0 | 조회 1,508 | 2020.03.25
한마디만 던졌다가는 금방 눈물을 뚝 떨굴것만 같았던 Z가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왜.. 그럴까요...? 왜 저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걸까요?”애먼 창 밖 구… 더보기

바이러스 대첩

댓글 0 | 조회 1,507 | 2020.03.11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대화의 주제가 거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듯 합니다. 지인들과의 대화도 ‘몸은 건강하냐’로 시작해서 ‘몸조심해라’로 … 더보기

나는 왜 ‘공부운’이 없을까?

댓글 0 | 조회 1,166 | 2020.02.26
2002년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한창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이 도시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더보기

현재 ‘자기주도학습’은 없다

댓글 0 | 조회 1,031 | 2020.02.12
지인의 가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을때였습니다.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입맛이 아직 초딩인 저는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