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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 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수를 추억으로만 달래야 할 때입니다. 추억속에서 음식을 상상하고, 음식의 맛을 떠올리고, 음식을 함께 먹던 사람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곤 했습니다.
얼마전 급한 일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일정 탓에 바쁘게 오가는 중에 문득 가장 가까운 친구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습니다. 종종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했는데 다짜고짜 그 친구는 어떤 음식이 가장 먹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이것저것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이 많았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생각이 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 친구에게 물냉면과 찐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더욱 더 물냉면과 찐만두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어느 음식점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른 점심시간이지만 손님들로 북적이는 것을 보니 맛집이 틀림없었습니다. 잠시 후 주문한 물냉면과 찐만두가 나왔습니다. 양념장을 얹지 않은 정갈한 육수와 한눈에도 메밀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면이 단정하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 접시에는 큼지막한 왕만두도 있었습니다.
냉면 육수에 식초와 겨자를 적당히 넣고 그 육수에 담겨진 면을 풀었습니다. 그리곤 젓가락으로 면을 적당히 집어서 후루룩 입에 넣었습니다. 면을 씹으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육수의 맛을 느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육수와 함께 메밀면의 맛이 아우러져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식도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만두도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만두피, 고기와 부추가 가득한 속, 고소한 육즙이 입 안에서 섞이면서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녹아버렸습니다. 너무 부드러워서 목걸림도 없이 술술 위장으로 내려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냉면과 만두를 먹어치웠습니다. 냉면 그릇을 들고 마지막 육수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서야 텅 빈 냉면 그릇과 만두 접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 먹는 양보다 많았기 때문에 금새 배가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먹었으면 하는 아쉬움말입니다.
잠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냉면과 만두를 먹음으로 인해 육신의 배만 부른게 아니었습니다. 정서적인 포만감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뭔가 허전했던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식만이 아니라 그동안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속에서만 애틋해했던 그리움들이 눈녹듯 녹아내렸습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어쩌면 먹고 소화시키면 그만인 평범한 음식 하나가 내게 가져다준 뜻밖의 행복이 말입니다. 다시 그 때를 생각해 봐도 단순히 배가 불러서 느끼는 순간적인 만족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냉면과 만두를 통해 정서적으로 느꼈던 포만감의 여운이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먼 것도 아닙니다. 저녁 식탁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보면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지어주셨던 추억속의 그 밥을 떠올리며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먹을 수 있다면 우리 마음속에서도 따뜻한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은 비록 한국 어느 맛집의 것은 아니지만 냉면과 만두를 먹으며 행복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