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을 읽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헌책방을 읽다

0 개 1,349 수필기행

■ 김 이랑 

 

텅 빈 가게, 빛바랜 간판만이 여기가 한때 버림받은 책들의 처소였음을 알린다. 아무런 안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지도에서 사라질 모양이다. 발품을 보태 법서를 사던 시절부터 허기를 채워준 곳인데, 허전한 걸음으로 나는 다른 보물섬을 찾아 떠난다. 

 

헌책방의 질서는 뒤죽박죽이다. 정해진 자리는 형식일뿐 계급이나 서열이 없다. 펄벅의 대지 위에 한국의 야생화가 피고 백과사전에 눌린 시집이 숨을 못 쉬겠다고 엄살을 떠는가 하면, 돈키호테가 이순신 장군에게 창을 겨누어 어서 칼을 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큰스님의 어깨에 발을 척 걸친 동화를 보며 명랑만화가 깔깔거리고 명심보감이 옆에서 웃음을 꾹 참으며 앉아 있다. 법전을 깔고 앉은 사형수의 참회록과 명작 위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잡지는 단연 압권이다.

 

설욕을 벼르는가, 예리한 지혜에 탄탄한 논리를 입고도 무명 한 조각만 걸친 화보에 패한 철학이 침묵하고 있다. 처세술만 찾는 세사에게 단단히 삐쳤는지, 인문학은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바깥에는 저고리에 지문조차 찍히지 못하고 소박맞은 시집과 나이조차 까맣게 잊은 수필집이 단체로 결박당한 채 마지막 봄 햇살을 쐬고 있다. 지릿값도 못 한 죄 저들은 곧 저울대에 올라 영혼이 가난한 세상에게 동전 몇 닢 건네고 떠날 것이다.

 

한물간 몸이지만 세상에게 할 말은 있다. 책상에 빳빳이 서서 지적 허영의 배경이 되는 건 싫다. 방구석에서 뒹굴다가 냄비 밑에 깔려 뜨거운 맛을 보느니 싸늘한 아랫목을 데우는 불쏘시개가 낫다. 가난한 고시생의 법서처럼 몸이 닳도록 읽히고 싶다. 서점 창고에서도 밀려나 산골로 전학 온 소녀처럼 옷자락에 먼지가 묻을까 새침을 떨고 있는 새 책은 아직 모른다. 발 나비에게 탐닉당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꽃의 슬픔을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에 지나간 시간을 잡아두는 곳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과거로 유폐되었을까. 성벽 같은 책장과 지층처럼 쌓여있는 책 속에 묻히며 나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난 방랑자다. 역사의 강물에서 노를 젓다가 티베트에서 불어오는 명상의 바람에 마음을 실어도 본다. 눈에 띄는 책장을 훑다가 잘 우려낸 문향에 취해 언어의 소우주를 유영하기도 한다. 이곳저곳 뒤지다가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방금 제본을 마친 신간보다 새것이다.

 

활자로 낸 길을 가다보면 누군가의 흔적을 만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가 있는가 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가라는 신호도 있다. 앞서 간 사람은 어째서 줄을 주욱 긋고 그 위에다 빨간 별을 켜놓았을까.  마음의 풍경이 울리는 바람의 길목이거나, 반짝이는 깨달음 한 조각 주운 곳이거나, 아니면 문장 너머에 있는 함수를 풀지 못해 건너뛴 자리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떠난 사람이 몇 번이고 되돌아와 서성거린 자리에서 나는 이 땅에 온 영혼들의 지적 방랑을 읽는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 형이상을 헤매는 철학자, 태초에 생성된 미립자를 찾아 까마득한 밤하늘을 떠도는 천체물리학자, 진화의 고리를 찾아 황량한 사막을 헤치는 생물학자, 문명의 사금파리를 찾아 굳은 땅을 파는 고고학자, 혼돈에서 진리의 조각을 찾는 방랑자는 외롭다. 아니, 깨달음을 찾아 홀연히 떠난 붓다만큼 고독해야 한다. 과거로 떠난 것들이 퇴적된 세계는 두꺼운 침묵으로 말을 하기에.

 

배낭을 매고 홀로 변산반도로 떠난 적이 있다. 이 땅의 숨은 연대기가 차곡차곡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채석강, 지층을 몇 장 넘기면 백제의 병졸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몇 권 넘기면 털복숭이 조상이 사전에 없는 말을 걸어오고, 계속 넘기면 공룡이 달려들 것 같은 풍경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발아래에서 파도가 뭐라고 철썩거리는데, 두꺼운 시간의 지층 앞에서 나는 한없이 납작해지고 말았으니, 반세기 동안 써내려온 내 일기는 낱장에 지나지 않음을 그 날에야 알았다.

 

나를 읽으면, 목마른 세상을 적시는 물 한 잔이나 될까. 영혼의 때를 한 소절 시도 아니고 내면의 풍경 소리를 깨우는 한줄기 법문은 더욱 아니다. 사람이 향기가 그리운 가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산문이라면 자릿값이라도 하겠으나 통속소설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나열한 활자, 내 전기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구석에서 웅크리다가 폐기될 지 모른다. 미리 알았다면 기승전결이라도 갖추었을 것을. 

 

1bb857ae7f1eafd95f9f7d9bf20fd2a8_1575939292_3764.jpg
 

더 성찰하고 교정했다면 문장이 얄팍하지는 않았을 것을. 헌 책방에는 지난 삶을 뒤져 나를 재발견하는 내가 있다.  

 

내 삶도 반 이상이 과거로 퇴적하였다.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몸값을 한껏 낮추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이제는 정착할 기슭을 찾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 시인지 소설인지 정체성을 찾는 잡지처럼 표류하다가 외딴 헌 책방에 닿았을 때 산란한 마음이 정돈되는 까닭은 왜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알뜰하게 살지만 내일은 오늘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낡고 닳아 쓸모없이 보여도 어제는 오늘에게  추억과 지혜 그리고 마음의 휴식을 준다. 어제의 모든 것이 한 자로 정돈되는 헌 책방에서 헌, 그것은 온고지신의 미학을 품은 단음절 언어이기 때문이리라.

 

고독한 방랑자들이 찾아낸 지식과 사상의 채석강, 헌책방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현란한 조명 아래 나 보란 듯 서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뒷면에 아니 보일듯 숨어있음을,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그동안 못다 읽은 책장을 넘기다가 찾았다. 뒤죽박죽 내 안의 우주에 질서를 잡는 것은 두껍고 근엄한 법전이나 얇고 약삭빠른 처세술이 아니라 허름하고 컴컴한 구석에서 스스로 캐낸 별임을.

책은 해져도 활자에 담긴 의미는 낡지 않는다. 시대의 조류에 쓸려 헌책방이 사라져도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길을 떠날 것이다. 지금은 금맥을 찾아 도시라는 이름의 정글을 뒤지지만, 멍석자리에 누워 별을 헤던 우리는 누구나 별똥별 주우러 산 너머로 지적 방랑자이므로. 

 

서울복음 2

댓글 0 | 조회 447 | 2024.01.30
시인 정 호승너희는 너희에게 상처 준 자를 용서하라.한 송이 눈송이 타는 가슴으로마른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꽃으로너희는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감사하라.감사가 없는… 더보기

단전호흡법 : 와공(臥功)

댓글 0 | 조회 389 | 2024.01.30
와공(臥功)은 단전을 자리 잡게 하고 축기하는 데 좋은 자세입니다. 단전호흡을 처음 시작한 분은 100일 동안 매일 이 와공을 하면서 단전을 자리 잡는 것이 좋습… 더보기

외로움 유행병

댓글 0 | 조회 792 | 2024.01.26
시인 정호승(鄭浩承, 1950년 경남 하동 출신)이 1998년에 발표한 ‘수선화에게’라는 시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아… 더보기

자궁경부암 검사 방법의 변경

댓글 0 | 조회 1,165 | 2024.01.23
2023년 9월 12일부터, 자궁경부암 검사(이전에는 “smear”로 불림)가 HPV 검사로 바뀌고 가정에서 자가 테스트를 하게 됩니다.새로운 검사 방법으로 hu… 더보기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댓글 0 | 조회 559 | 2024.01.17
공통년 392년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성당 출입을 금지당한 사건이 생겼다. 390년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났고, 황제는 군대를 보내 주민 … 더보기

이상한 용기로 청룡열차를 타고

댓글 0 | 조회 502 | 2024.01.17
60을 넘어서고 나서부터 내 지능은 머리카락처럼 점점 더 하얘져만 간다. 이런 나에게 대놓고 무식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농담 섞인 말이겠지만, 사실이 그러하… 더보기

녹차 덖고 마음 닦고

댓글 0 | 조회 265 | 2024.01.17
세 엄마와 로원 양의 해남 대흥사 템플스테이해남 대흥사 차 덖는 날, 푸릇푸릇 진녹색으로 변해가고차도 덖고 마음도 닦고, 웃음도 피고 새도 울고더할 나위 없이 행… 더보기

한방에 이해되는 온라인 비자 수속

댓글 0 | 조회 837 | 2024.01.17
외국인 자격으로 뉴질랜드에서 체류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비자(VISA)입니다. 온라인이 대세인 시대이기에, 뉴질랜드 이민부 역시 거의 모든 비자… 더보기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댓글 0 | 조회 251 | 2024.01.17
시인 정 진하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라간절한 소원을 밤마다 외쳐라지치면 지칠수록 더 크게 외쳐라더 큰 용기와 더 큰 꿈을 가져라가야될 인연의 길이 엇갈렸다… 더보기

겨자씨만한 씨를 심어

댓글 0 | 조회 279 | 2024.01.17
단전은 기운 주머니인데 처음에는 크기가 자궁만 합니다. 주먹 만 한 크기입니다.호흡을 하면 그 주머니에 겨자씨만한 씨가 생깁니다. 그리고 계속 호흡을 하면 이 씨… 더보기

왜 우리 집 주방 싱크대는 자주 막히나요?

댓글 0 | 조회 684 | 2024.01.16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니다.여름 휴가 시즌 동안,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함께하는 식사의 시간은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신선한 야채와 함께 삼겹살이나 … 더보기

하루 3분 살빠지는 스트레칭

댓글 0 | 조회 382 | 2024.01.16
2024년 새해 잘 시작하셨나요?매년 이 맘때는 대부분 새해 계획과 다짐으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 다양한 목표를 세우곤 하는데요, 그래서 최근 제 유튜브를… 더보기

청용(靑龍)의 해에 용꿈을 꾸세요

댓글 0 | 조회 409 | 2024.01.16
우리 한민족의 삶 속에는 언제든지 용이 있다. 용은 상상속의 동물이나 못이나 강, 바다와 같은 물속에서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더보기

새해에는

댓글 0 | 조회 340 | 2024.01.16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한 해가 가는 것이 아쉽지 않습니다그저 무심히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아 죄스러운 마음입니다그래서 새해에는 커다란 것 바라지 않겠습니다남보다 뛰… 더보기

기계고객의 시대

댓글 0 | 조회 340 | 2024.01.16
전 세계의 90개국 이상의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가트너(Gartner)사는 85개의 지점에 거의 2만명 가까운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의 대부분이 똑똑이들이라 브… 더보기

비빔밥 이야기

댓글 0 | 조회 536 | 2024.01.12
창립 25주년을 맞은 구글(Google)이 지난 12월 11일 ‘올해의 검색어’를 발표했다. 올해 전 세계인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레시피(recipe, … 더보기

'2024 학년도 한국대학 입시 결과'

댓글 0 | 조회 2,251 | 2024.01.04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코로나 19 비상사태를 선언한지 3년 4개월만인 2023년 5월 초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해제를 발표했다. New Normal 시대에 접어… 더보기

국민당 정부 고용법 개정

댓글 0 | 조회 1,249 | 2023.12.23
지난 칼럼에서는 국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큰 고용법 개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 바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국민당 주도 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변화… 더보기

전신 군살 빼는 10분 전신운동

댓글 0 | 조회 552 | 2023.12.23
최근 gym에서 운동을 시작한 저희 큰 딸이 이런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엄마! 대부분 사람들이 운동 전후에 간단한 스트레칭도 안하고 그냥 운동만 해..… 더보기

휴가 동안 소규모 비즈니스의 현금 흐름

댓글 0 | 조회 664 | 2023.12.23
올해에는 사업에서 휴가를 즐길 계획이신가요?올해 이 시기는 소규모 비즈니스에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출은 계속되고 채권자들이 휴가에 들어가면 현금 흐름이 타격을… 더보기

기왕 이렇게 된 것

댓글 0 | 조회 586 | 2023.12.23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글지글 끓는 날에더워진 논물 담은 논두렁에서올챙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들여다 봤어야 했다반나절 걸려서 찾아간 양구스물 다섯 살짜리 군인이 … 더보기

흔적의 역사(歷史), 미룰 수 없는 전법(傳法)

댓글 0 | 조회 349 | 2023.12.23
경주 남산 삼릉 ~ 금오봉 순례경주 남산이 불국토(佛國土)인 것은,경주가 불국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그래서 신라의 왕들은 남산에 묻히기를 원했을지 … 더보기

그의 끝나지 않은 사랑

댓글 0 | 조회 583 | 2023.12.22
그의 아내는 장난끼 많은 남편 곁에서 늘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어릿광대처럼 아무에게나 장난을 걸어도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지없이 행… 더보기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댓글 0 | 조회 378 | 2023.12.22
▲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12월의 첫 주말, 저녁 산책을 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대립과 증오로 넘친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구촌 두곳… 더보기

단전은 기운의 저수지

댓글 0 | 조회 324 | 2023.12.22
단전은 저수지입니다. 항상 어딘가로부터 모이는 곳이 저수지잖아요? 단전도 기운의 저수지이기 때문에 배를 들락날락 안 해도 그냥 기운이 모입니다. 다 열리면 피부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