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소주,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0 개 1,665 피터 황

1991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제 1회 세계주류박람회가 열렸을 때 한국의 국민주인‘희석식 소주’의 출품을 문의했다. 그러나 발효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품을 거절당했다. 발효나 증류과정을 거치면서 원료의 향과 맛이 살아있지 않은 술은 자격이 없다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인 진로소주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다.  

 

우리나라는 과일이 당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곡물로 술을 만들었다. 곡물을 익혀 누룩과 물을 더하면 곡물의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이 당을 먹이로 하여 미생물이 증식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알코올 발효라고 한다. 이 발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술이다. 이때 그냥 거르기만 하면 막걸리가 되고 싸리 등으로 만든 긴 통을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그것이 청주가 된다. 이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되는 것이다. 이 소주는 요즘 흔한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다. 

 

증류식은 양조주에 물을 섞어 열을 가해 한번만 증류시켜 만든 술이다. 50도 내외다. 안동소주가 대표적이다. 고려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소주는 모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양조주를 한 차례 증류시킨 증류식 소주였다. 희석식은 양조주를 여러 차례 가열해 여기서 나온 고농도의 에틸알코올에 물과 첨가제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소주다. 소주병에 표시된 희석식 소주(稀釋式燒酎)의 주(酎)자는 ‘세 번 빚은 술’ 이라는 뜻이다. 세 번 이상 증류한 뒤, 희석시킨 술이라는 것이다. 

 

1965년 30도짜리 희석식 소주가 첫 선을 보인 후 1973년 25도짜리가 나왔다. 그 후로 25년 동안 줄곧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1999년 23도,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급강하하더니, 2006년엔 20도, 2014년에는 17도까지 떨어졌다. 알코올 도수 1도를 내리는 데는 소주업계의 표현대로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 기호품은 극히 미세한 맛과 향의 차이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이유에 대해서 마케팅 전문가들은 ‘여성 소주인구 증가’를 첫 번째로 꼽고 있다. 요즘엔 여성이 낀 술자리에서 술과 안주를 여성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소주 광고는 1999년 배우 이영애를 시작으로 모두 여자다.  

 

초기의 소주뚜껑은 코르크 마개였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소주를 개봉하기 전에 소주병의 밑둥을 툭 치는데 이것은 과거 90년대에 코르크 마개였기 때문이다. 유통 중에 코르크 마개 찌꺼기가 소주 병안에 떠있기도 했는데 이를 빼내기 위해서 병을 흔든 뒤에 살짝 쳐서 소주를 따라 버리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어느정도 술자리가 지나면 거의 대부분은 ‘상대방이 귀찮아 할 거 같아서’ 자작을 한다. 나름대로의 배려인 셈이다. 최근에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각자 한 병씩 따로’ 마시는 것이다. 안주를 가운데 놓고, 저마다 앞자리에 자기 소주를 따로 놓고 마신다. 이 경우에 본인이 얼만큼 마셨는지 바로 확인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술자리에서 서로의 잔을 채워주다 보면 가장 위험한 것이 치사량의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서로 주고받게 되면 자신이 얼만큼 마셨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돼 실수로 이어지기가 쉽다.

 

정이 넘쳐서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우리는 소주잔을 꽉꽉 채운다. 가득찬 술잔은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동지적 약속이었고 암묵적인 동의 같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꽉 눌러 채우지 않으면 예의 없거나 무성의하다고 여겼다. 흘릴 듯 말듯 찰랑찰랑 잔을 채우는 것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넘치거나 한참 모자라면 갑자기 술자리의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술꾼만이 병을 잡고 따르는 각도와 시간을 본능적으로 반응해 그 높이를 정확하게 맞출 뿐이다.

 

소주 잔에 소주를 채우는 경계선은 상대방을 아름답게 취하게 하느냐, 술에 ‘꼴게’ 하느냐의 절대 라인이다. 소주 잔의 능선은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결국 술이 차고 남은 공간은 바로 ‘나(Myself)’다. 그래서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밤늦게 물에 젖은 솜처럼 돌아온 아버지의 소주 잔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2a42d340f015e8abe95345378cbf0698_1568174183_7656.jpg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눈물같이 순수한 그대, 세상살이같이 쓴맛의 그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사랑할 때도 사랑이 떠나갈 때도, 말없이 내 곁에 있어 주는 그대, 세월 따라 인심마저 변해도 모양과 빛깔과 향기 늘 한결같은, 만인의 영원한 벗 그대.” 정연복 시인의 ‘소주’라는 시다. 투명하다못해 시퍼런 빛깔의 소주를 마주하고 기도라도 드리고 싶어지는 처연한 시다. 

 

소주잔에는 50ml정도 술이 담기고 1병의 용량이 360ml인 점을 감안할 때 한병을 따르면 7잔 반이 나온다. 그러니 1병을 마시면서 소주잔과 7번의 입맞춤을 하게 되는 셈이다. 첫 잔은 갈증을 면하기 위하여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하여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하여 마신다. 하지만 넷째 잔부터는 조심하라. 로마의 속담에는 발광하기 시작하는 잔이라고 했으며 명심보감에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마시는 사람의 선택이다. 

 

바다로 간 산타클로스

댓글 0 | 조회 1,645 | 2020.12.08
숨죽여 가만히 정지해 있거나 심지어 거센 물결에 밀려서 거꾸로 걷는 것 같았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거울나라에 가서 붉은 여왕과 손을 잡고… 더보기

개천용(龍)들의 소울푸드, 라면의 정석

댓글 0 | 조회 1,913 | 2020.11.11
영화 ‘넘버 3’의 삼류킬러 송강호는 부하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면서 홍수환이 챔피언이 되고 임춘애가 금메달을 딴 것이 라면을 먹고 운동한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더보기

테스형(兄)도 모르는 와인 다이어트

댓글 0 | 조회 2,717 | 2020.10.14
다이어트의 역사는 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탐식이나 비만을 죄악시했고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Socrates)는 ‘식욕이 강하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더보기

집 한채 값 피노누아(Pinot Noir)

댓글 0 | 조회 2,942 | 2020.09.09
1945년산 1병의 가격이 6억 3000만원에 낙찰된 지 몇 분 후에 1937년산도 예상했던 가격보다 20배 이상의 가격으로 경매되었다. 물론 품질뿐만 아니고 와… 더보기

말(馬)이야 막걸리야

댓글 0 | 조회 1,876 | 2020.08.11
구불구불한 골목의 끝에 다다라서야 간판도 없는 피맛골의 전봇대집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 투박한 양푼에 담긴 막걸리와 이면수구이 한 접시가 자동으로 … 더보기

맥주의 품격

댓글 0 | 조회 1,645 | 2020.07.15
슈퍼마켓 완전정복 (3)겨울철에도 맥주의 소비는 꾸준한 편이다. 기존의 소비자들이 맥주의 ‘청량감’을 즐겼다면 현재는 맥주도 와인처럼 향과 풍미를 음미하며 천천히… 더보기

슬기로운 와인생활

댓글 0 | 조회 1,907 | 2020.06.10
슈퍼마켓 완전정복 (2)이태리 베네치아를 여행하다가 터미널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버스기사가 장담하는 최고의 커피라는 말을 그땐 믿지 않았… 더보기

왕년의 감기 퇴치법

댓글 0 | 조회 2,397 | 2020.05.13
편도선염이 심했던 초등학교 시절, 난 가장 먼저 감기에 걸리는 편에 속했다. 어머니는 한솥가득 보릿잎으로 된장국을 끓여 주셨지만 질기고 깔깔한 잎이 목에 닿아서 … 더보기

슈퍼에 와인이 돌아왔다

댓글 0 | 조회 3,679 | 2020.03.11
슈퍼마켓 완전정복 (1)슈퍼마켓와인이 진화하고 있다. 5달러부터 시작하는 착한 가격은 물론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와인회사로 국한되었던 예전과는 달리 30달러이상하… 더보기

음식은 이제 패션이다

댓글 0 | 조회 1,764 | 2020.02.11
솔직하게 말해서 예쁜 건 마다하기 힘들다. 몸과 정신이 함께 건강한 것이 삶의 지향점이 되면서 몸에 해롭지 않은 저염식과 채식주의, 오가닉 푸드는 기본이고 거기에… 더보기

짜파구리와 피 맛의 추억

댓글 0 | 조회 1,917 | 2020.01.15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짜파구리는 짜장라면 짜파게티와 국물라면 너구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뭐니뭐니 해도 부잣집 사모님에게 어울리는 한우 채끝살을 소금, 후추… 더보기

맛과 향의 연금술, 발효의 비밀

댓글 0 | 조회 1,719 | 2019.12.10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볶거나 갈 때 그 향은 정말 강렬하다. 제과점에서 빵을 굽는 냄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향은 막 만들었을 때만 유효하고 시간이 지나면 … 더보기

복분자에 취한 민물장어의 꿈

댓글 0 | 조회 1,613 | 2019.11.12
혹시 동백꽃이 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동백꽃이 지는 건 독특하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거나 시들고 빛깔이 바래서 지는 다른 꽃들과는 달리 동백은 너무나도 멀쩡한… 더보기

봄에 바람이 부는 이유

댓글 0 | 조회 2,903 | 2019.10.08
고혈압으로 평생 약을 드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신 이후로 하루도 병상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고 보낸 적은 없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마냥 마누카의 하얀 꽃이 바람에… 더보기
Now

현재 소주,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댓글 0 | 조회 1,666 | 2019.09.11
1991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제 1회 세계주류박람회가 열렸을 때 한국의 국민주인‘희석식 소주’의 출품을 문의했다. 그러나 발효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품을 거절당했… 더보기

쉬라즈(Shiraz)와 이순신 병법(兵法)

댓글 0 | 조회 1,559 | 2019.08.13
임진년(1592년)이후 7년간의 해전을 통해 보여준 전승무패의 역사는 한국인의 가슴에 신화가 되었다. 승리의 원리는 불리한 상황에서는 질(質)적인 전투력으로 일본… 더보기

전장(戰場)에서 목이 날아간 샴페인

댓글 0 | 조회 1,650 | 2019.07.10
1813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가 프랑스를 침략하고 샴페인을 생산하던 랭스(Reims)지역을 점령했을 때 포도밭을 맘대로 약탈하기 시작했다. 남편 프랑수아… 더보기

나의 혈액형은 카베르네

댓글 0 | 조회 1,634 | 2019.06.11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이 혈액형이 같은 사람은 같은 종류의 유전인자를 갖게 돼 성격, 행동, 질병이 비슷해진다고 한다. 피는 신선한 산소, 맑은 공기… 더보기

잡종의 생존법칙

댓글 0 | 조회 1,598 | 2019.05.14
와인의 품질은 포도 품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개성에 크게 지배된다. 결국 품종이 같다면 재배지가 다르더라도 품질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 더보기

상식을 깨는 돌연변이

댓글 0 | 조회 1,724 | 2019.04.10
피노(Pinot)라는 말은 솔방울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그러니 프랑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인 피노누아(Pinot Noir)는 검은 솔방울이라는 뜻이 되… 더보기

향기(香氣)를 잃으면 독(毒)이 된다

댓글 0 | 조회 1,573 | 2019.03.13
화학약품의 조합으로 실험실에서 와인이 만들어지고 콘크리트 빌딩에서 컴퓨터로 채소와 과일이 만들어진다. 덕분에 우리의 식탁은 향을 잃은 식재료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더보기

검은 순수 VS 황홀한 지옥

댓글 0 | 조회 1,542 | 2019.02.13
커피와 와인을 마시는 것은 곧 자연을 마시는 것이다. 처음에 이 둘은 약으로 사용됐다. 기원 전 에티오피아 부족들은 커피나무 잎을 씹거나 줄기 끓인 물을 마시며 … 더보기

판타스틱 듀오, 커피와 와인

댓글 0 | 조회 1,574 | 2019.01.16
요즘 카페에서는 커피와 함께 와인이, 와인바에서는 와인과 함께 커피가 메뉴 판 리스트에 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소믈리에나 바리스타들이 실제로 … 더보기

프로세코여~.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가?

댓글 0 | 조회 1,531 | 2018.12.12
벼락처럼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는 로맨스를 우린 평생 몇 번이나 해볼 수 있을 까? 어떤 이들은 유치한 드라마 속 이야기 라고도 한다. 삶의 절정을 지나버린 나이가… 더보기

빈치(Vinci) 마을의 천재, 레오나르도

댓글 0 | 조회 1,621 | 2018.11.15
프랑스 VS 이탈리아 (II)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일 뿐 아니라 위대한 발명가였다. 자동차, 비행기, 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