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없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멘토는 없다

0 개 1,367 명사칼럼

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멘토가 누구였느냐. 처음엔 이 말을 인생 스승이 있느냐는 말로 들었다. 

 

그냥 없다고만 했다. 아예 그런 개념을 갖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기껏 얘기 좀 들어보려고 물어봤는데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없다고만 하면 물어본 사람이 민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그 뒤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없다는 대답만 하는 건 좀 무성의한 것 같았다.

 

정말 없었나를 되새겨봤다. 없었다. 왜 그런가도 생각해봤다. 돌이켜보니 나도 학창 시절엔 멘토를 찾아다녔었다.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독이 바짝 오른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당신들도 자기 하나 건사를 못 해서 고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나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내가 찾아갔던 분들은 기껏해야 사십을 갓 넘긴 분들이었다. 그 중 30대 중반이었던 교수 한분은 요즘 학생들은 스승을 원하는데 자기는 그냥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실망도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게 차라리 솔직하고 겸손한 대답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뒤 굳이 멘토를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멘토는 없었다.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들도 헤매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질문과 고민은 남들이 답하고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각자 보고 들은 대로 흉내 좀 내며 자기 방식으로 버티다가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내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게 인생 스승이 있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순수한 젊은 시절에 세운 뜻을 지키고 험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묻는 게 아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멘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회사원치고 출세한 편에 속하는 내게 당연히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알고 보니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멘토’를 구해서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었다. 조금은 시시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이것 역시 나의 짧은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 듣다 보니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승진과 출세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 깊이 자기가 하는 일을 ‘잘’ 하고 싶어했다. 승진과 보너스 때문만도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기왕 하는 일, 그걸 잘하고 싶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제대로 배울 사람이 없다. 있어도 그분은 너무 바쁘거나 관심이 없다. 한국 시스템에서 자라면서 누구에게서 정말 배웠다는 느낌을 갖는 행운을 가져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사회에 나온 뒤엔 더욱 그렇다.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더라도 비웃지 않고 가르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드물다. 그저 들키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게 그들의 말 뒤에 숨어 있는 뜻이었다. 좀더 잘하고 싶은데 그걸 가르쳐줄 멘토를 찾기가 어렵다 보니 내게 하는 하소연이었다. 나는 못 찾겠는데 너는 좀 찾았니?

 

이걸 깨달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가 느끼는 갈증의 일면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잘 배우겠는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데 어떻게 배우겠는가? 논리적 문제 해결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효과적으로 하겠는가? 선생이나 상사나 코칭보다는 일률적으로 상대평가 등수만 매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클 수 있겠는가? 키우진 않고 실적만 챙기는데 어떻게 사람이 성장하겠는가?

 

한국은 더 이상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인적 자원이 더 부족한 나라다. 일 잘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그걸 가르쳐줄 사람이 부족한 나라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람을 볶지 않고 키우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고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된 지 꽤 되었다. 그래서 남들은 국내총생산(GDP)의 20%만 투자하고도 지디피의 30%를 투자하는 우리와 비슷한 경제성장을 한다.

 

아, 그리고, 근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내 멘토는 원래 있었다. 내 아버지였다. 내가 조금 늦되었다. [*출처: 한겨레 신문] 

 

26cf88f43fba4e479a59ea09be3e9827_1560308335_087.jpg
 

■ 주 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생활 속의 붓 문화

댓글 0 | 조회 1,169 | 2020.02.12
해가 바뀌어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되자 설 날을 맞이하는 서예 전시회 하나가 열렸다. 연향회(=한우리교회 문화센터의 서예교실) 회원들이 마련한 16번째의… 더보기

‘사건’으로서의 사랑

댓글 0 | 조회 1,235 | 2020.01.28
인천의 한 마트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34세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됐다. 그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그리고 몇 개의 … 더보기

뉴질랜드 시내버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3,091 | 2020.01.14
머리말2019년 11월 11일 (월요일)과 13일 (수요일) 이틀동안 오클랜드 남동부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회사 Go Bus의 East Tamaki and Airp… 더보기

간디와 Salt March

댓글 0 | 조회 1,001 | 2019.12.23
해외여행이 요즘처럼 쉽지 않았던 20여 년 전… 해외출장은 또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의 한 토막을 엿보며 상식과 상담(商談)의 자료를 쌓는데 더 없이 귀한 기회… 더보기

‘무재팔자’에 대해서

댓글 0 | 조회 1,558 | 2019.12.10
무재팔자도 돈 만지는 직업 가능 단, 거의 쓰지 않는 ‘짠돌이’ 성격기업 자금담당이나 금융업 해도 이득 없는 분야엔 한푼 안 써팔자 걸맞은 소박한 생활하며 자족감… 더보기

다양한 상속제도

댓글 0 | 조회 1,984 | 2019.11.27
인류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상속제도는 부계상속이다. 장남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장자상속을 비롯해, 막내아들이 재산을 상속하는 말자상속, 여러 아들들이 고루 나… 더보기

배리(背理)를 견디기 혹은 극복

댓글 0 | 조회 1,058 | 2019.11.13
존재론적 배리를 견디는 운명사회적 배리에 저항하는 숭고성정치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배리(背理)를 경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것이 논리대로… 더보기

지금 당신이 꽃입니다

댓글 0 | 조회 1,688 | 2019.10.22
땅에 쑥 돋아납니다. 해 뜨면 쑥 잎 끝에 보석 같은 이슬방울이 반짝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자연은 무궁무진무구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가 닿지 못한 … 더보기

꿈이 멎어 있는 곳

댓글 0 | 조회 1,091 | 2019.10.09
■ 유 승재“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에 나오는 영감과 솟구치는 힘이 숨어 있는 멋 있는 구절이다… 더보기

우리는 영원히 이방인일까?

댓글 0 | 조회 2,242 | 2019.09.24
머리말1세대는 백프로 이방인(other)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고 본다. 이는 본인이 뉴질랜드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얼마나 많은 키위 친구들이 자기를 아끼는가 여… 더보기

나이 들어서는 음•체•미

댓글 0 | 조회 1,637 | 2019.09.10
10대 후반에 학교 다닐 때는 ‘국어•영어•수학’ 과목이 중요하다. 여기서 결판이 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국•영•수가 좌우한다. 진로와 직업은 명문대학을… 더보기

어느 나무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997 | 2019.08.28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다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아는 것낮고 약한 것들의 푸르른 생명성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 심어졌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누군… 더보기

직업인과 직장인

댓글 0 | 조회 1,419 | 2019.08.13
나는 내 직장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지하 1층에는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그곳에서 운동을 하던 어느 날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큰 … 더보기

선비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는가?

댓글 0 | 조회 1,355 | 2019.07.24
서양 중세의 기사와 영국 근대의 젠트리는 시골에 살더라도, 자신을 마을 사람들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일본의 사무라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보기

꽃필수록 아프다

댓글 0 | 조회 1,319 | 2019.07.09
오래 전, 누가 바다 멀리 어느 섬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자꾸 환청처럼 들려온다고 했다. 거기 섬사람들의 목쉰 통곡이 분명한데, 위험해서 아무도 건너가 위로해주… 더보기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댓글 0 | 조회 1,728 | 2019.06.26
“올해 다들 환갑이라며?” 국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원탁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네” 라고 답했다. 선생님 말씀 잘 듣던 모범생의 목소리도, 그… 더보기
Now

현재 멘토는 없다

댓글 0 | 조회 1,368 | 2019.06.12
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멘토가 누구였느냐. 처음엔 이 말을 인생 스승이 있느냐는 말로 들… 더보기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이유

댓글 0 | 조회 1,858 | 2019.05.29
현실만 해결하려는 혁명은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없어꿈을 가진 학생이 더 큰 열매를 맺듯이 낮은 시선은 작은 결과 낳아머물고자 하면 머물고 날고자 하면 나는 것이 … 더보기

‘보여주기’ 와 ‘보기’

댓글 0 | 조회 1,180 | 2019.05.15
‘보여주기’는 자신을 소진하고 ‘보기’는 충전하는 행위대표적 ‘보기’ 습관인 독서ㆍ여행ㆍ산책은 영혼의 충전소​우리의 일상은 ‘보여주기’와 ‘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더보기

약 오르면 진다

댓글 0 | 조회 1,511 | 2019.04.24
어릴 적에 보았던 연속극의 한 대목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어떤 큰 부자가 집사에게 큰일을 해결하고 오라고 파견하면서 한 말이다.“약 오르면 진다.” 심리적으로 동… 더보기

1954년 2월, 한국에 온 마릴린 먼로

댓글 0 | 조회 1,752 | 2019.04.09
매년 2월이면 세기적인 매혹의 헐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M.M)가 떠오른다. 노마진 모텐슨이란 본명으로 가난한 고아로 태어나 195… 더보기

효도계약서라도 써야 하는가

댓글 0 | 조회 1,556 | 2019.03.27
지난 30년 동안 인간사회에는 뜻밖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노령화도 그중 하나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국가채무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띄는… 더보기

침묵은 파시즘이다

댓글 0 | 조회 1,589 | 2019.03.14
지난해 한국인들은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고 모두 감동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그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독일 제1공영방송의 … 더보기

두터워지는 새해를 위하여

댓글 0 | 조회 1,271 | 2019.02.26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으로 산다. 이런 점에서 이젠 한국 사람이 무엇인지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새해에는 함재봉의 책을 읽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 더보기

하늘과 우편

댓글 0 | 조회 1,331 | 2019.02.13
다시 새해다. 새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설레임과 기쁜 희망을 준다. 우리들의 인생이 무언가 새해에는 달라지고 더욱 새로워지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기대하게 되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