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없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멘토는 없다

0 개 1,353 명사칼럼

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멘토가 누구였느냐. 처음엔 이 말을 인생 스승이 있느냐는 말로 들었다. 

 

그냥 없다고만 했다. 아예 그런 개념을 갖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기껏 얘기 좀 들어보려고 물어봤는데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없다고만 하면 물어본 사람이 민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그 뒤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없다는 대답만 하는 건 좀 무성의한 것 같았다.

 

정말 없었나를 되새겨봤다. 없었다. 왜 그런가도 생각해봤다. 돌이켜보니 나도 학창 시절엔 멘토를 찾아다녔었다.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독이 바짝 오른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당신들도 자기 하나 건사를 못 해서 고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나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내가 찾아갔던 분들은 기껏해야 사십을 갓 넘긴 분들이었다. 그 중 30대 중반이었던 교수 한분은 요즘 학생들은 스승을 원하는데 자기는 그냥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실망도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게 차라리 솔직하고 겸손한 대답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뒤 굳이 멘토를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멘토는 없었다.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들도 헤매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질문과 고민은 남들이 답하고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각자 보고 들은 대로 흉내 좀 내며 자기 방식으로 버티다가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내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게 인생 스승이 있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순수한 젊은 시절에 세운 뜻을 지키고 험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묻는 게 아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멘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회사원치고 출세한 편에 속하는 내게 당연히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알고 보니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멘토’를 구해서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었다. 조금은 시시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이것 역시 나의 짧은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 듣다 보니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승진과 출세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 깊이 자기가 하는 일을 ‘잘’ 하고 싶어했다. 승진과 보너스 때문만도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기왕 하는 일, 그걸 잘하고 싶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제대로 배울 사람이 없다. 있어도 그분은 너무 바쁘거나 관심이 없다. 한국 시스템에서 자라면서 누구에게서 정말 배웠다는 느낌을 갖는 행운을 가져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사회에 나온 뒤엔 더욱 그렇다.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더라도 비웃지 않고 가르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드물다. 그저 들키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게 그들의 말 뒤에 숨어 있는 뜻이었다. 좀더 잘하고 싶은데 그걸 가르쳐줄 멘토를 찾기가 어렵다 보니 내게 하는 하소연이었다. 나는 못 찾겠는데 너는 좀 찾았니?

 

이걸 깨달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가 느끼는 갈증의 일면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잘 배우겠는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데 어떻게 배우겠는가? 논리적 문제 해결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효과적으로 하겠는가? 선생이나 상사나 코칭보다는 일률적으로 상대평가 등수만 매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클 수 있겠는가? 키우진 않고 실적만 챙기는데 어떻게 사람이 성장하겠는가?

 

한국은 더 이상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인적 자원이 더 부족한 나라다. 일 잘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그걸 가르쳐줄 사람이 부족한 나라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람을 볶지 않고 키우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고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된 지 꽤 되었다. 그래서 남들은 국내총생산(GDP)의 20%만 투자하고도 지디피의 30%를 투자하는 우리와 비슷한 경제성장을 한다.

 

아, 그리고, 근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내 멘토는 원래 있었다. 내 아버지였다. 내가 조금 늦되었다. [*출처: 한겨레 신문] 

 

26cf88f43fba4e479a59ea09be3e9827_1560308335_087.jpg
 

■ 주 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639 | 2일전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귀화한 러시아계 한국인인 박노자(48) 교수2001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에게…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162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에는 제주 4·3 시절 산에 올라 투쟁에 나섰던 청년들이 부르던 노래가 소개된다. 이… 더보기

‘내 잘못’보다 ‘세상의 악’ 더 성찰해야 하는 사순절

댓글 0 | 조회 411 | 2024.03.13
지난 2월 14일 수요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판결을 받은 날이면서, 교회성당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사순절, 즉 40일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죽음 이… 더보기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댓글 0 | 조회 533 | 2024.02.27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 제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무현 당선자의 일성이다. 나는 이 말을 인수위원회 파견 근무할 때 직접 들었… 더보기

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댓글 0 | 조회 1,523 | 2024.02.14
저는 직업상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적 독립 운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투사들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이 분들이 정말 “초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318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로 시작하고 싶다. 반란 성공이 확실해지고 수괴 전두광 장군(황정민)은 일행과 함께 본부로 돌아가려다 혼자… 더보기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댓글 0 | 조회 558 | 2024.01.17
공통년 392년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성당 출입을 금지당한 사건이 생겼다. 390년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났고, 황제는 군대를 보내 주민 … 더보기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댓글 0 | 조회 374 | 2023.12.22
▲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12월의 첫 주말, 저녁 산책을 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대립과 증오로 넘친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구촌 두곳… 더보기

선한 마음 사이로도 차별이 샐 수 있다

댓글 0 | 조회 433 | 2023.12.13
▲ 단편 영화 ‘빠마’의 한 장면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농촌으로 시집 온 니샤의 일상을 통해 우리 농촌에 사는 이주여성에게 부과된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한글교실에서… 더보기

‘전쟁의 해’ 2023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댓글 0 | 조회 423 | 2023.11.29
▲ 지난 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공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조명탄이 빛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2023년이 이제 저물어간다. 2023년은 깊어져 가는… 더보기

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댓글 0 | 조회 331 | 2023.11.15
▲ 경남 합천 황강.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사람의 정성이 나무와 쇠를 감동시킨 곳영남지방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 경남에서 가장 긴 강은 남강과 황강이다. 남강은 진주… 더보기

한글날에 생각하는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댓글 0 | 조회 388 | 2023.10.25
오늘은 한글날이다.솔직하게 말해,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산 적이 별로 없다.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한국역사와 문… 더보기

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댓글 0 | 조회 518 | 2023.10.11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는 이들이 늘 집중 공격하는 것은 농업 집단화나 숙청 때와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스탈린주의를 변호할 수는 없다. 혁… 더보기

​제7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수상소감 - 메도무라 슌

댓글 0 | 조회 387 | 2023.09.27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제게 수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정위원을 비롯한 문학상 관계자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제 소설이… 더보기

우리는 왜 이토록 오만해졌을까

댓글 0 | 조회 1,108 | 2023.09.13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다’(貧而無諂, 富而無驕).‘논어’에서 제시된 이상적 인격의 형태다. 사실, 유교를 포함한 세계 모든 종교의 경전에… 더보기

한반도, 단호한 냉정이 필요하다

댓글 0 | 조회 684 | 2023.08.22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53년 7월27일, 북한 인민군과 유엔군은 상호 교전을 잠시 멈추고 더 이상의 후속조치를 멈추어버렸고 그 뒤로 … 더보기

내가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일본인, 일본 역사

댓글 0 | 조회 928 | 2023.08.09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토기를 만든 나라. 토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일본인이다. 그들은 빙하기가 끝나자 곧 토기를 사용했다. 조몬(繩文) 토기가 그것으로 규슈… 더보기

남명 조식

댓글 0 | 조회 575 | 2023.07.25
남명 조식은 세 차례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사례의 인사를 올리지도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동안 자신이 왜, 벼슬을 마다하였는… 더보기

국제 체제, 균세 (balance of power)로의 귀환?

댓글 0 | 조회 834 | 2023.07.12
애당초 국제 체제는 균세 (均勢)를 중점적 개념으로 해서 작동돼 왔습니다. 슈메르에서 여러 도시 국가들이 상호 각축하면서 나름의 ‘세력 균형’을 이루었던 시대부터… 더보기

한류, 또 하나의 착취공장인가

댓글 0 | 조회 948 | 2023.06.28
요즘 내가 여태까지 거의 하지 않았던 일을 하나 하게 됐다. 한국 대중문화 수업을 하게 되면서 특히 노르웨이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과 자주 만나 이… 더보기

조지 오웰을 찾아 - 나는 왜 쓰는가

댓글 0 | 조회 574 | 2023.06.14
나는 지난 5-6년간 많은 글을 써 왔다. 전공인 인권법 관련 글은 물론 그것을 넘어 다양한 내용의 대중적인 글을 썼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전공 관련 글은 의무… 더보기

대통령은 ‘대통령의 말’을 해야 한다

댓글 0 | 조회 1,627 | 2023.05.24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일본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은 윤 대통령의 방미를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더보기

한국의 국제적 역할?

댓글 0 | 조회 946 | 2023.05.10
분단 국가란 애당초부터 상당한 “세계성”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적 냉전의 양 진영에 의해서 한반도가 분단되어 두 개의 국가가 생긴 이상, 양쪽 국가… 더보기

전라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이 되기까지

댓글 0 | 조회 752 | 2023.04.26
선조 25년(1592) 2월, 원균은 경상 우수사에 부임하였다.이순신과 원균은 인연이 깊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조선의 무관으로서 함경도에서 여진족… 더보기

“사비로 천도했다”는 문장에서 학생들이 헤매고 있어요

댓글 0 | 조회 838 | 2023.04.11
■ 서 부원오늘도 역사 수업을 하다가 교실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게 된다. 강의에 대한 이해는커녕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아이가 많아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