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이유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이유

0 개 1,845 명사칼럼

현실만 해결하려는 혁명은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없어

꿈을 가진 학생이 더 큰 열매를 맺듯이 낮은 시선은 작은 결과 낳아

머물고자 하면 머물고 날고자 하면 나는 것이 인생의 평범한 진리 

 

현대의 걸출한 두 철학자,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게서 배운 한나 아렌트(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나 악의 평범성 말고 혁명에 관해서도 말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혁명의 보편성은 줄곧 프랑스 혁명이 차지해 왔는데, 아렌트는 미국 혁명에 주목하고, 그것을 프랑스 혁명과 함께 다룬다. 자신의 망명을 받아준 미국을 높여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아렌트가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구별하는 논리를 전개하며 사회적인 문제가 혁명의 정치성을 말살한다는 통찰을 보여준 점만을 다시 들추려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의 본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하게 보이는 어떤 점을 살펴본다.

 

아렌트에 의하면, 혁명에는 ‘새로운 시작’ 과 ‘자유’ 라는 두 가지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혁명이나 모두 ‘자유’를 기치로 든 것은 같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미국 혁명은 성공적이었던 반면, 프랑스 혁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프랑스는 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바로 빈곤으로 대표되는 사회적인 문제에 혁명의 역량이 집중된 반면, 미국 혁명은 자유라는 어젠다를 줄곧 견지한 것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다.

 

빈곤과 같은 사회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서 자연적인 필연성에 따른다.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이런 연유로 사회 문제는 인간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세계를 내려다보며 그것을 다루기 위해 구성해 가는 혁명의 정치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유’의 어젠다는 ‘빈곤 해결’이라는 구체적 정책보다도 높은 곳에 있다. 높은 어젠다를 지키느냐, 아니면 가장 중요해 보이지만 낮게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느냐가 혁명의 효율성을 다르게 하였다. 사회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사회 문제에 집중하느라 ‘자유’ 라는 높은 어젠다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함정인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학생들 가운데 대학에 들어와서 크게 성장을 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집단도 있다. 이 두 집단이 성장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있다. 크게 성장을 하는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나름대로 꿈이 있어서 그것을 이루려고 대학에 왔거나 고등학생 때는 꿈이 없었더라도 대학에 들어와서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갖게 된 경우다.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에게는 꿈이 없다. 대학 합격이 가장 큰 목표였을 뿐이다. 이런 학생들은 대학 생활을 매우 무료하게 보내거나 학점 관리 내지는 자극적인 쾌락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졸업한다. 자기 생활이 ‘꿈’에 의해 관리되느냐 아니면 눈앞의 학점을 위한 것이냐가 성장 여부를 결정한다. 학점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서, 대학 생활의 성공 여부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대학 생활의 모든 역량이 학점을 관리하는 데 투입되느냐, 아니면 그 학점 관리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냐는 매우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대학 합격도 직접적이고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머리에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만 담고 있는 사람하고, 대학 합격을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사는 인생 사이에는 그 높이와 넓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방송사에 시청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방송사가 지향하는 비전을 소홀히 하면서 시청률에만 집중하다 보면, 방송 본연의 자세를 잃고 결국에는 있으나 마나 한 방송사로 전락한다. 대학에 취업률도 직접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학이 시대를 열고 또 책임지는 인재를 배양한다는 큰 사명을 잠시 뒤로 미루고 취업률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순간 취업률 높이는 일 이외의 것들은 눈에 깊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취업률을 관리하는 그저 그런 대학으로 연명해 나갈 뿐이다. 고등학교도 대학 진학률에만 매달리다가는 여러 고등학교 가운데 명패 하나로만 남는 또 하나의 학교로 전락할 뿐이다. 눈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칠 수밖에 없다.

 

낮은 시선은 낮고 작은 결과를 낳는다. 높은 시선은 높고 큰 결과를 준다. 자유를 추구하면 자유가 처한 높이에 이르고, 자유를 잠시 제쳐 두고 빈곤만을 해결하려고 들면 빈곤이 처하는 높이에 머문다. 날고자 하면 날 것이고, 머물고자 하면 머물 것이다. 혁명만 그러하랴. 인생사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출처: 동아일보] 

 

■ 최 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54c69abcdd25cfa3e7052fafc577f6e1_1559103241_072.jpg
 

굴비가 영어로는?

댓글 0 | 조회 6,453 | 2020.12.09
“여보, 당신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 필자가 “불쑥퀴즈”를 아내에게 던졌다. “글쎄, 생각날까 모르겠네, 배우긴 배웠는데 너무 오래돼서..… 더보기

직장 동료를 존중해서 항상 영어를 사용하기 바랍니다

댓글 0 | 조회 3,626 | 2020.06.23
지난 5월 27일 RNZ에 자극적인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English language-only sign at cafe taken down’으로, 번역하자면… 더보기

뉴질랜드 시내버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3,084 | 2020.01.14
머리말2019년 11월 11일 (월요일)과 13일 (수요일) 이틀동안 오클랜드 남동부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회사 Go Bus의 East Tamaki and Airp… 더보기

노만남매를 파키스탄으로 돌려보내야만 했을까?

댓글 0 | 조회 3,049 | 2021.05.11
■ 김 무인머리말이 블로그의 주 탐사 주제는 ‘ethnic relations’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재발견/부활’ 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 더보기

코로나 19 시대, 외계인보다 문어가 더 궁금한 이유

댓글 0 | 조회 2,408 | 2020.10.29
코로나19 시대에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넷플릭스를 보는 이가 주변에 많다. 넷플릭스는 미국의 주문형 콘텐츠 서비스 제작업체인데, 재밌는 콘텐츠가 너무 많은 듯하… 더보기

우리는 영원히 이방인일까?

댓글 0 | 조회 2,230 | 2019.09.24
머리말1세대는 백프로 이방인(other)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고 본다. 이는 본인이 뉴질랜드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얼마나 많은 키위 친구들이 자기를 아끼는가 여… 더보기

사형수와의 인터뷰

댓글 0 | 조회 2,100 | 2020.05.13
올해 하반기는 ‘사형 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연구를 위해 구치소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녔다. 1997년 12월 30일 집행을 마지막으로 현재 총 60… 더보기

아름다운 손

댓글 0 | 조회 2,004 | 2020.04.15
▲ Inspiringstory "The Praying Hands"​어느날 오후 내 눈 길이 우연히 아내의 손에 닿았다. 그리고 놀랐다. 어느새 굵어진 손 가락 뼈… 더보기

다양한 상속제도

댓글 0 | 조회 1,977 | 2019.11.27
인류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상속제도는 부계상속이다. 장남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장자상속을 비롯해, 막내아들이 재산을 상속하는 말자상속, 여러 아들들이 고루 나… 더보기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댓글 0 | 조회 1,934 | 2021.08.25
■ 김 무인1차 백신 주사를 며칠 전에 맞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후유증이 있다. 콧물에 몸살 증세도 수반되어 sick leave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쉬면서 … 더보기

한국은 여기까지다

댓글 0 | 조회 1,859 | 2023.02.01
선조들은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 1902년생으로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외할아버지가 생전에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잔인한 장면과 다른 증… 더보기

리더가 말하는 법

댓글 0 | 조회 1,853 | 2020.05.27
‘리더십=동기부여 역량’… 경청, 칭찬, 보상을 아끼지 말라① ‘경청’하고 인정하는 자세 - 스스로 성장하게 도와준다② 늘 누군가를 ‘칭찬’ 한다 - 우회적으로 … 더보기
Now

현재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이유

댓글 0 | 조회 1,846 | 2019.05.29
현실만 해결하려는 혁명은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없어꿈을 가진 학생이 더 큰 열매를 맺듯이 낮은 시선은 작은 결과 낳아머물고자 하면 머물고 날고자 하면 나는 것이 … 더보기

바이러스 질병의 감염과 공포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746 | 2020.02.26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한(武漢) 폐렴’에 대한 공포가 플라스틱 미세 입자처럼 세계로 퍼져나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 더보기

1954년 2월, 한국에 온 마릴린 먼로

댓글 0 | 조회 1,740 | 2019.04.09
매년 2월이면 세기적인 매혹의 헐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M.M)가 떠오른다. 노마진 모텐슨이란 본명으로 가난한 고아로 태어나 195… 더보기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댓글 0 | 조회 1,720 | 2019.06.26
“올해 다들 환갑이라며?” 국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원탁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네” 라고 답했다. 선생님 말씀 잘 듣던 모범생의 목소리도, 그… 더보기

말 잘하는 리더의 5가지 마음

댓글 0 | 조회 1,707 | 2020.11.11
리더의 말에는 ‘5심’이 있어야 한다. 말이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을 잘 심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心)이 말의 씨앗이다. 바로 그 씨앗이 좋아… 더보기

지금 당신이 꽃입니다

댓글 0 | 조회 1,680 | 2019.10.22
땅에 쑥 돋아납니다. 해 뜨면 쑥 잎 끝에 보석 같은 이슬방울이 반짝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자연은 무궁무진무구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가 닿지 못한 … 더보기

기대하던 영화 ‘미나리’를 봤다

댓글 0 | 조회 1,656 | 2021.03.23
■ 오 길영 충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기대하던 영화 ‘미나리’를 봤다. 단상을 적는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낯선 미국에서 병아리를 감별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 더보기

대통령은 ‘대통령의 말’을 해야 한다

댓글 0 | 조회 1,639 | 2023.05.24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일본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은 윤 대통령의 방미를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더보기

나이 들어서는 음•체•미

댓글 0 | 조회 1,629 | 2019.09.10
10대 후반에 학교 다닐 때는 ‘국어•영어•수학’ 과목이 중요하다. 여기서 결판이 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국•영•수가 좌우한다. 진로와 직업은 명문대학을… 더보기

도전 정신으로 훨훨 날으며

댓글 0 | 조회 1,624 | 2020.07.15
매년 11월3일은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기념일은 일본 강점 때인 1929년 11월 3일에 광주에서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놀려 한국… 더보기

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3)

댓글 0 | 조회 1,613 | 2021.07.14
이번의 역사적인 결정이 있기까지2022년부터 초중고에서 뉴질랜드 역사교육을 의무화하는 정부의 결정은 2019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2017년 노동당의 선거 공약에… 더보기

광주 환벽당

댓글 0 | 조회 1,603 | 2020.06.10
어지러운 세상, 시와 술로 달래던 김윤제의 ‘살롱’한시는 시풍에 따라 당시(唐詩), 송시(宋詩)로 나뉜다. 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당시는 가슴으로 쓰고 송시는 … 더보기

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댓글 0 | 조회 1,596 | 2020.04.23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은 여성 특히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하고 불법촬영을 하여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의 다수 회원에게 판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