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와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이민와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0 개 2,170 김임수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정치인 한분이 대통령 선거유세중에 사용했던 구호가 한동안 유행했던 적이 있다. ‘국민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필자에게 살림살이라는 말은 왠지 신혼의 느낌과 함께 한다. 30-40년전만 하더라도 많은 신혼부부들이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하나 둘씩 가구나 가전제품 등 세간을 늘리고 내집 장만의 꿈을 이루는 보람과 재미로 살아갔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을 했어도 크게 불만이 없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갔기 때문이다. 

 

왠 살림타령이냐고 하시겠지만, 요사이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물론 필자도 포함)의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몇달전 한국을 방문했을때 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뉴질랜드 이민 생활 20년 내내 아들의 변변치 않은 살림걱정을 하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네, 이제 괜찮습니다”라고 답을 드렸지만 당신들은 아실 것이다. 한국의 모든 기반 다 뒤로 한채 낯설고 물설은 타국 땅에 와서 ‘맨땅에 헤딩’ 하며 살아온 세월에 ‘살림살이’가 어련하겠냐 말이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20여년전의 이민 결단은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사는 곳 다 똑 같겠지. 세상 어디 가서든 밥이야 못 먹겠나’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학력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영어까지 미숙한 이민자가 뉴질랜드 사회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생존만이 목표였던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40대 중반이 되어서는 슬펌프가 왔다. 자신들의 커리어 정점을 향해 약진하는 한국의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서 생활고에 찌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기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기간동안 한국방문을 하지 않았다. 경제적이유도 컸지만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 50대 후반으로 가는 나이.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먹고 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데에 적응이 되어서이다. 더 이상 한국의 과거와 현재에서 나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달에는 한국의 죽마고우 부부가 자녀들과 함께 뉴질랜드에 여행을 왔다. 남북섬을 횡단한 후 일정의 마지막 날에 친구가족을 집으로 초대하여 바베큐를 했다. 마침 휴가차 집에 들린 필자의 아들도 함께 했다. 식사를 하며 아빠, 엄마들의 젊은 시절 무용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들이 모르는 부모들의 옛날 얘기들이 흥미로웠는지 열심히 장단을 맞춰주는 아이들 덕에 모두들 신이 나서 떠들어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간 친구가 메세지를 보내왔다. ‘이역만리에서 잘 살아준 너의 가족을 만난 것이 여행의 하일라이트였다’ 라고. ‘누추한 살림살이’에 특별할 것 없는 바베큐 식사였지만 아무려면 어쩌랴. 친구사이에 무슨 허물이 있으며 무슨 체면이 있으랴. 

 

이민생활동안 친하게 지냈던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이곳을 떠났다. 이제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분들은 모두 오클랜드의 터줏대감들이다. 자녀들도 다 장성하고 본인들도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인지라 ‘이민생활 중간결산’과 관련한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개중에는 비지니스에 실패해서 큰 손해를 본 후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분들도 있고 빈손으로 이민와서 재산을 모은 분도 있다. 그러나, 돈이 뭔 대수랴. 모두 다 애틋하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서로 얼싸 안으며 격려하고 싶다. ‘잘 살아왔다. 애썼다’고. 

 

누구는 불치병인 ‘이민병’에 걸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이곳에 왔다고 하고 누구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눈물을 머금고 왔다고 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운명에 끌려온 뉴질랜드. 이곳에서 먹고 살고 자식키우느라 살림살이 늘 빠듯하고 어려워도 소박한 삼시세끼 가족과 함께 잘 먹을 수 있고, 추운 겨울 따뜻하게 쉴 터전이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살림살이 괜찮습니다!’ 

 

김 임수  심리상담사 / T. 09 951 3789 / imsoo.kim@asianfamilyservices.nz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