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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1,854 김준

Q를 처음 보았을때..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고난 골격이 우람한것도 그렇지만 오랜 기간의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구와 형형한 눈빛이 마치 전투폭격기를 보는듯해서 마음이 든든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운동을 했던 학생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투철한 자기관리를 칭찬하다보니 Q에 대한 무조건적인 짝사랑은 필연적이었던것 같습니다. 

 

나이보다 훨씬 큰 덩치가 어머니 곁에 바짝 붙어 앉아서 다소곳이 묻는 말에만 차근차근 대답하는 것도 순수해보여 좋았고 또래의 다른 사내애들처럼 버릇없이 굴지 않고 엄마를 ‘어머니’라 부르며 존대어를 사용하는것도 매너가 꽉 찬듯해서 맘에 들었습니다. 

 

‘가만있자... 우리 딸하고 몇 살 차이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만 마시는 꼴이 될지.. 아니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봤는데 알고 보니 단감일지.. 별 요란스런 생각으로 머리속만 훼집다가 어머니의 하소연은 듯는둥 마는둥 하고 말았네요. 

 

Q는 그렇게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Y11의 어린나이이지만 결코 어려보이지 않던 Q는 언제나 단정한 말투로 저를 대했고 재치있는 농담으로 클라스 분위기를 끌어갔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는 여름날 초저녁에는 쳐지는 눈꺼풀을 끝까지 당겨올리는 근성을 보여주었고 냉냉한 찬바람에 등골이 으스스한 겨울이면 반바지에 후디만 걸치고서 ‘체력이 곧 학력’임을 만방에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Q와 저는 ‘선생과 학생’이기보다는 ‘남자 대 남자’ 로서 인연을 키워갔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고 그는 저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두 ‘남자사람들’은 근 일년의 시간동안 매주 만나며 의리를 키워갔습니다. 

 

그리고 연말.. 한 해동안의 노력이 그 진위여부를 드러내는 진실의 순간.. 그는 제게 장담했습니다. 결과를 가져 오겠노라고.. 마치 무협지에 등장하는 마초스러운 제자가 더욱 더 마초스러운 스승에게 원수의 목을 약속하는 비장한 장면처럼 Q는 그렇게 결사의 의지를 불태우며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엔 시험 당일이면 새벽부터 클라스가 모여서 4시간 동안 마지막 정리를 하고난 후 학교에 가던 시기라서 학교까지 학생들을 태워다주고 그들의 뒷덜미에 응원을 덧붙이는 건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Q는 시험장에 들어갔고 몇 시간이 지나 연락을 했습니다. 잘 치르었노라고..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무림을 재패했다는 제자의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그럼~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만족해 했었습니다. 과연 몇 점이나 받아올런지 즐거이 상상하며 다음해엔 또 어떻게 이 아이를 끌어갈 것인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 날아온 그의 시험결과는 예상과는 생판 달랐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그동안 지켜보아왔던 Q의 점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성적은 처참하고도 참혹했습니다. 그럴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동안 며칠이 흘렀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동안 또 며칠이 흘렀습니다. 그리 고 이제 다시 힘을 내서 다음 학년을 준비하자며 서로의 마음을 다잡고 두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또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새학년 새학기를 맞아 학 업에 매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Q를 대하는 저의 마음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배신의 과거를 가진 동료를 바라보듯 신뢰보다는 의심이, 격려보다는 질책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의 책망에 고개를 끄덕이고 저의 불신에 웃음으로 답하는 그를 보며 많이 안스러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미워하거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 다. 이 아이가 이루어야 할 분량이 있고 나는 그것을 이루게 하기위해 이렇게 미운말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교묘한 아전인수가 실상은 나의 아픈 양심에 붙여대는 반창고 한 조각일 뿐이란 사실을 나도 알고, 그리고 Q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한 해의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그 한 해동안 그는 줄곳 충실했고 저는 줄곳 삐걱 댔습니다.

 

작년과 똑같은 허망한 결과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Q의 젊은날에 지워질 또 한번의 실망 때문 이 아니라 나의 이름에 덧칠해질 불명예 때문이라는 자각이 더 두렵고 더 슬펐습니다.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거는 사수의 마음으로 Q를 시험장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뒷덜미에 덧붙여줄 응원이 제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몇 개월 후.. Q의 어머니께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이러이러한 성적이 나왔다는.. 그의 성적은 또 다시 참혹했고 그래서 저는 또 다시 현실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될듯 싶어서 Q를 만났습니다. 그는 변함없는 목소리로 담담히, 그리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이젠 더 열심히 할게요. 이제 마지막 학년이니까요”

 

부아가 치밀지도 않았습니다. 가타부타 따질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가 스스로 포기했음을 말하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사력을 다해보겠다는 의지인지 가늠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Q의 어머니를 통해 저 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까지도 그의 성적을 대하며 황망해 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혹시나 그에게 신경증적인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사자인 Q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저 되풀이해서 ‘더 잘할께요. 이번엔 정말 할 수 있어요.’ 만 되풀이하는 Q에게 이번엔 제발 그렇기를 바란다며 한 마디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유일한 위로는 그래도 일년전 보 다는 성적이 나아졌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평소의 학교성적과는 천양지차인 수준으로 말이지요.

 

또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 한해를 살아가며 저는 Q에게 큰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그에게 또 다른 짐을 더 올려놓는 선택보다는 더 욱 안전하고 더욱 확실한 선택을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Q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도데체 어디에서 그런 무모한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인지..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성적을 뒤집어놓을 ‘현자의 돌’이라도 찾은 것인지.. 그는 그저 자신이 스케쥴과 공부방법과 사용하는 교재를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에 스스로를 맞추어 나갈뿐이었습니다. 

 

큰 기대도 없이 그렇다고 큰 불안감에 떨지도 않고 Q를 시험장에 들여보냈습니다. 여전히 그의 뒤꼭지는 당당했습니다. 여전히 원수를 상대하러 세상에 나서는 협객이었고 여전히 목표를 타격하려 출정하는 전투폭격기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Q는 드디어 자신이 희망하던 대학과 전공에 필요한 점수를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과정특성상 작년에 망쳐버린 시험점수가 발목을 잡 았을 것임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그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그리고 저의 우려를 산산히 부수어 무너뜨리는 미사일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현대식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는 두가지 무기가 있다 합니다. 탱크나 대포에서 쏘아올리는 대포탄이 그 첫번째이고, 날렵한 몸매로 거의 성층권까지 올라갔다가 하강하며 목표를 타격하는 미사일이 그 두번째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각자의 전략적 중요성이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생판 다른 동작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포탄은 발사되는 당시의 폭발력만을 이용해 목표물까지 비행을 하지만 미사일은 순항하는 시간 내내 일정한 범위의 추진력을 유지한다는 차이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발사를 위한 추진력이 가 장 많이 필요하고 또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행 중에 경험하는 추진력의 유무는 궤도의 정확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도중 옆으로 불어치는 바람이 앞머리를 틀어버릴때, 미사일은 지속되는 추진력을 이용해 방향을 수정할수 있지만 한번 밀쳐진 힘으로 날아가는 대포탄은 잘못된 궤도를 수정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둘은 근거리와 장거리, 광역과 협역, 저비용과 고비용의 조건에 맞추어 전략적으로 운용됩니다. 물론 미사일의 타격력과 적중율이 훨씬 높은 것은 당연하겠지요.

 

Q를 기억해봅니다. 그는 과연 대포탄이었을까.. 아니면 미사일이었을까..

 

한번 터져나오는 폭발력에 의지해 멀고 먼 거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날아가는 대포탄이었을까, 아니면 뒤꽁무니에 불을 단 채 모든 실패와 변화와 낙심에 반응하며 스스로를 수정해 나가는 미사일이었을까.. 

 

확신하건데 그의 마음을 가득채웠던 근본을 알수없는 자신감은 오직 그만 알고있는 미사일 연료였을 겁니다. 그는 3년의 시간을 살며, 맘 같이 받아낼수 없던 성적들을 아쉬워하며, 부모님의 걱정과 선생님들의 우려와.. 그리고 저의 조급한 핀잔들을 묵묵히 견뎌가며 끊임없이 연료를 태우고 태워왔던 거지요. 

 

2019년의 첫번째 텀을 맞이한 우리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미사일이 되십시요. 주변의 모든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연료를 태우는 미사일이 되십시요. 다다라야 할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조정하는 미사일이 되십시요. 그것만이 방법이고 오직 그것만이 여러분이 나아갈 길입니다. 

 

*김 준 원장 JMK 과학전문학원 021-314-432 jmkeduconsu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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